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화 (3/488)

3. 칼날 구보

"공부는 안 합니까?"

"이게 공부지."

자연인 아저씨는 단호했다.

난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보고 자연인 아저씨가 물었다.

"너 각성했지?"

"네."

"실험은 해 봤냐?"

자연인 과외 선생이 말하는 실험이 뭐겠나.

불멸에 관한 시험이다.

그래, 솔직히 해 봤지.

커터칼로 팔뚝 좀 그어 봤다.

상처가 생기는 것보다 빨리 낫진 않았지만, 금세 낫긴 했다.

커터칼로 그은 상처가 몇 분도 되지 않아 사라졌으니.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기면 낫는 원리 알아?"

모른다.

각성도 엊그제 했고 내가 불멸자란 것도 아버지의 커밍아웃 덕에 나흘 전에 알았다.

과외 선생이 흙바닥 위에 나뭇가지로 뭘 쓱쓱 그었다.

그림이다. 다친 상처와 회복하는 장면을 그린 것 같은데.

이걸 알아보라고 그린 건가.

4살 먹은 애가 와서 그려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싶다.

그림은 무시하는 게 옳았다.

"상처를 회복하는 건 치유력이지. 그 치유력의 기초가 되는 건 첫째가 체력이다."

"네, 체력."

난 반사적으로 우등생의 면모를 보였다.

복명복창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가르치는 사람의 욕구를 자극한 거다.

나 되게 관심 많다!

말하면 철석같이 알아들을 것이다!

복명복창과 눈빛으로 이걸 표현하자, 과외 선생이 침 튀기며 말을 잇는다.

"두 번째는 감각을 단련하는 거지."

과외 선생이 간단히 체력과 예민한 감각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원리를 설명했다.

단순했다.

기초 체력이 높으면 더 빨리 낫는다.

감각이 예민하면 고통을 크게 느끼지만, 대신 뼈가 잘못 맞물리거나 하는 경우 금세 알아챌 수 있다는 거다.

네, 다 알아들었습니다.

근데 그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자연스레 우등생의 면모를 보였지만, 이게 뭔가 싶다.

"다 알아들었으면 달려."

"어딜요?"

"여기."

아버지, 유연호 씨, 당신 아들 제대로 보낸 거 맞지?

난 과외 선생이 말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곳이 평지였다면 그냥 구보 정도의 체력 단련으로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 구보를 해야 할 땅 위에 날카로운 쇠붙이가 가득 붙어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발바닥 지압치고는 과한데요."

"네 발바닥은 강철이냐? 저게 지압이 돼?"

아, 혹시나 했다.

다 알면서 달리라고 하는 거 맞구나.

혹시나 이 작자가 미친 작자면 얼굴에 원투 꽂고 튈까 고민했다.

"제가 여길 왜 달려야 할까요?"

이거 궁서체다.

난 진지했다.

"시험 본다며."

그러니까 그 시험이 뭔지,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이거다.

"연호 선배가 말 안 했구나."

네, 안 했습니다.

이런 불성실한 아버지 같으니라고.

"너 불멸 특수 기업 지원하잖아."

변신과 불멸을 각성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 분명 딸꾹질을 했을 거다.

하지만 놀랍도록 강건한 내 육체와 정신은 상대의 말을 의연히 받아들이게 했다.

"왜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아니, 무슨 특수 기업? 그건 뭔데?

"불멸특수대 몰라?"

모른다. 몰라. 처음 들어 보는 소속이다.

얼굴에 의문을 보이자.

"군인 비슷한 거야."

저리 부연 설명을 한다.

그건 말 안 해도 알겠습니다.

UDT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왜?

공무원 시험이라며?

"할 거야? 말 거야? 안 할 거면 가."

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근데 여길 달리는 이유가 뭡니까?"

궁금한 것도 더럽게 많네, 과외 선생은 얼굴 근육으로 그리 말했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는 그러면서도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체력 단련 겸, 불멸의 육체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거다."

"아, 네."

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일단 이 시험을 통과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변한 건 없었다. 그저 내가 생각한 시험과 아버지가 말한 시험이 종류가 좀 다를 뿐.

"달려.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네, 그럼 갑니다.

불멸 육체 훈련 전통, 칼날 구보.

바닥에 칼날을 박아 넣고 그 위를 달리는 거다.

"윽."

아프다. 송곳에 푹 찔려 발바닥이 반쯤 뚫렸다.

조금만 더 힘주면 발등 위로 솟은 어여쁜 송곳의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쉬지 마!"

뒤에서 과외 선생이 혓바닥 채찍을 휘둘렀다.

"뒤에서 적이 쫓아오는데 아프다고 멈출래? 응? 그래? 그냥 죽여 달라고 빌지 그러니?"

아니, 무슨 적이 쫓아온다고.

그리 말하면서도 난 달렸다.

찔리고 베이고 달린다.

겨우 50m 달리는 데 지옥 순례길을 걷는 기분이다.

변신족의 육체 덕분에 반사적으로 큰 상처를 피해서 그렇지.

진짜 음경 될 뻔했다.

그렇게 한 번 구보를 끝내자, 선생이 다가와 찢기고 베인 내 정강이, 종아리와 발을 빤히 본다.

"치유력 끝내주네."

아물어가는 살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피하지 말고, 더 밟아, 상처를 더 크게 만들어."

아니, 이런 미친놈이.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무슨 개소리야.

"많이 다쳐 보고 회복할수록 재생력은 빨라진다."

선생이 말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더럽게 아픈데.

"엄살 부리지 말고."

선생이 말했다.

엄살 아닌데, 이거 궁서체인데. 진지하다. 진짜 더럽게 아프다.

하지만 과외 선생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강요했다.

"뛰어."

운동 신경을 이용해 일부러 다리에 깊은 자상을 만드는 과정은 자해나 다름없었다.

"다른 놈들은 피하지도 못하는 걸 용케 피하더라니, 너 운동 신경 좋구나. 타고났네. 그렇지, 일부러 밟아, 다리를 절단 내."

아니, 염병, 저 새끼가.

과외 선생이 어디서 평상을 가져와 그 위에 앉은 채로 말했다.

참 편해 보인다. 누구는 죽을 고생 중인데.

"야, 너 불멸자야. 그런 거로 안 죽어. 심장이 터져도 살아날 것 같은 놈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거 언제까지 합니까?"

"원래는 쇼크 몇 번 오고, 쇼크를 이겨 내야 끝나는데……."

선생이 말끝을 흐리다가 묻는다.

"근데 넌 왜 쇼크가 안 오니?"

* * *

불멸자의 육체는 재생력이 끝내주고 오감이 예민하지만, 튼튼하다고 할 순 없다.

그래서 선대의 불멸자는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쇼크를 경험해 보는 것."

한 번 경험함으로써 고통의 역치를 높이는 훈련이다.

그래서 생긴 첫 번째가 칼날 구보.

칼날 위를 달리며 눈깔이 뒤집히고 기절하는 걸 경험하는 거다.

그 훈련을 통해 전장에서 기절하거나 고통으로 패닉을 일으키지 않는 건데, 그런 건데.

"너, 왜, 음. 안 아프냐?"

아프다니까.

진짜 심각하게 말하는데 더럽게 아프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아프다.

"아픈데요."

"근데 왜 쇼크가 안 와?"

아, 난 선생에게 훈련 취지와 목표를 듣고 깨달았다.

변신족의 육체는 강건하다.

열여덟 각성 이후, 가벼운 빈혈조차 느껴 본 적이 없다.

변신족은 감기도 안 걸린다. 어지간한 독에 중독돼도 기침 몇 번 하면 해독하는 몸뚱이다.

세계 제일의 튼튼한 몸뚱이라는 거다.

그런데 쇼크?

충격과 고통으로 인한 쇼크?

피를 한 사발 흘려도 배고프다고 치킨집에 달려갈 변신족한테 쇼크는 무리다.

"그거 말고 이거 통과하는 기준 같은 거 없어요?"

"너 50m 몇 초 달리냐?"

진심으로 달려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적당히 조절해서 6초 초반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은 날 한 달이나 쫓아다녔다.

"넌 육상을 위해 태어났다. 달려라. 광익아, 그게 네 삶의 이유다! 나랑 같이 세계를 제패하자!"

안 해요. 달리기로 세계 제패 안 해!

겨우 뿌리쳤었지.

"6초쯤이요."

진짜로 달리면 글쎄 5초대는 나오지 않으려나.

세계 신기록이 5초 중반이다.

학교에서 기록을 잴 때, 혹시 저 기록을 깰까 봐 미리 검색까지 하고 가야 했다.

인터넷 세상에는 없는 게 없지.

50m 세계 신기록도 있다고.

드노반 메일리의 5.56, 그게 세계 신기록이다.

"칼날 구보 쇼크 외 통과 조건, 전속력으로 칼날 구간 통과다."

아, 그럼 쉽지.

난 칼날에 옷과 신발이 상할까 봐 벗고 과외 선생이 준 너덜너덜한 반바지만 입은 채였다.

그 반바지를 걷어서 접었다.

튼실한 허벅지 근육이 불끈불끈 솟았다.

"그럼 쉽죠."

아프긴 아프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얍."

작은 기합과 함께 난 칼날 위를 달렸다.

퍽! 발이 베이고 찢기다 못해, 칼날이 뼈에 닿는 기분은 끔찍했다.

실시간으로 재생돼서 다리가 간지럽기도 했다.

난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냅다 달려 칼날의 범위를 벗어났다.

"와."

고통의 경감되길 기다리며 무릎을 바닥에 대고 뒤를 돌아봤다.

과외 선생이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너 뭐냐?"

불멸자의 육체는 단련하지 않으면 일반 사람 기준으로도 약하다.

그런데 난 아니다.

지금 과외 선생의 얼굴에 떠오른 황당함은 그거 때문이겠지.

"유광익이요."

이름을 묻는 건 아니겠지만, 달리 할 말도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사실 내 어머니는 변신족이고 아버지는 불멸자인데.

두 분이 금단의 사랑, 아니, 금단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하여간 두 분의 사랑이 만든 기적입니다. 라고 말할 순 없지 않나.

상처가 회복된다.

발바닥 살이 재생되며 그 사이로 파고든 흙을 뱉어 낸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안이 벙벙한 선생이 말했다.

"한 번 더."

"뭘요?"

"한 번 더 뛰어 봐."

"방금 통과했잖아요."

쇼크로 고통을 견디는 역치를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또 뛰어?

아니, 신기하다고 그걸 보여 달라는 거냐?

이건 아니지.

한마디 따지려는데, 선생이 스마트폰을 꺼내며 입을 연다.

"시간 안 쟀어."

아 씨. 맞네. 안 쟀다.

통과 조건이 쉽기에 그냥 냅다 달려 버렸다.

"아, 네, 한 번 더."

나 사실 머리가 안 좋은 걸까.

잡생각을 하며 난 칼날 구보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물론 가볍게 통과다.

"두 번째 훈련은 숨 참기다."

좀 멀쩡한 훈련인가 싶었다.

잠수 훈련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이건 교수대 아닙니까?"

칼날 구보를 한 곳 뒤쪽 숲으로 향하니, 목매달기 좋은 튼튼한 가지가 보였다.

물론 그 가지에 머리가 쏙 들어갈 올가미 형태의 로프가 걸려 있었다.

"숨 참기 훈련 교보재다."

선생이 말했다.

이 새끼가 미친 걸까, 불멸자의 육체 단련이 미친 걸까.

후자가 맞겠지.

그러니 이 작자를 원망하진 말자.

"통과 조건은요?"

"이제까지 최고 기록은 8분 48초였다."

불멸자는 잠깐 산소가 끊어지는 거로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훈련은 자살 훈련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자살 훈련으로 보였다.

아니, 아까 칼날 구보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자살 잘하는 법 따위를 배우는 기분인데.

"로프는 튼튼해서 안 끊어지니 걱정하지 말고."

과외 선생의 눈이 이상한 기대감으로 빛났다.

이건 딱히 피할 길이 없지 않냐 이거다.

목이 졸리는 압박감을 견디며 목 근육으로 버티는 게 훈련의 핵심이었다.

"자, 이거로 목 근육을 단련하고 여기에 목을 매달면 된다."

과외 선생이 친절하게 자살법을 설명해 준다.

목에 줄을 매달아 무거운 쇠공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훈련을 통해 목빗근을 단련하는 거다.

"목이 졸려 기절하면 끝이다. 그걸 견디기 위한 훈련이지."

개무식하네. 솔직한 감상이다.

그래. 불멸자는 팔 하나 다리 하나 자르는 거로 제압할 수 없다.

그럼 제압하는 방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쇼크를 일으켜 기절시키고, 기도 압박을 통해 기절시키고.

"특수종 전쟁은 인간이 우리를 상대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계기가 됐지만, 그 반대 효과도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냐?"

과외 선생이 그리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니 이건 기절 대비 훈련이란 거다.

그래, 다 이해는 하는데.

더럽게 하기는 싫었다.

"바로 가죠."

빗근 강화 훈련을 준비하던 선생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기절 한 번 해 보고 시작하는 것도 좋지."

운동 신경이 좋은 것과 근육 강화는 별개.

이것만은 너도 어쩔 수 없지.

라고 선생의 눈이 말했다.

난 그 선생의 기대를 무참히 부수고 싶진 않지만, 시간 낭비는 싫었다.

"통과 조건은요?"

"없다. 버티다 기절하는 건데 최소 5분은 넘게 버텨야지."

5분이라니.

내 잠수 최고 기록은 비공식으로 19분 20초다.

변신족의 폐활량은 불멸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었다.

"시작하죠."

난 의자에 올라가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훈련임을 아는데도 기분은 더러웠다.

아무리 봐도 자살하는 기분이잖아.

"준비됐지?"

선생이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내 발밑에 놓인 의자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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