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과외
다음 날 아침, 식탁 앞에 앉았을 때다.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
아버지가 말했다.
"……공무원이요?"
어머니도 놀라신 걸 보니 상의하고 한 말은 아니신 것 같다.
갑자기 공무원?
"갑자기요?"
어머니도 물으셨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와서 그래."
"뭔데요?"
어머니는 당황하셨다. 그럴 만도 하시지.
불멸자가 정부 소속이 대부분이라면, 변신은 조금 다르다.
이쪽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 쪽이랑 연관이 있으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멀쩡한 대학만 가면 취업은 그쪽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예 대학을 다니며 인턴 형식으로 꽂아 넣을 생각이신 듯했다.
외할아버지 쪽 인맥인 것 같은데, 자세하게 말씀은 안 하셨으니 뭐, 나야 알 도리가 없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살다 보면 변신족의 본능에 휘둘릴 텐데, 보통 사람 사이에 끼어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란 거다.
최소한 그곳에서 기본 훈련은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실 거다.
그러니.
"이제 스물이에요. 대학도 가야죠."
이리 말씀하실 법했다.
"아니, 대학이 중요한가, 사람이 가진 바 능력이 중요하지. 공무원 좋잖아."
"아니, 공무원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광익이가 벌써 고시원에 들어가 사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요."
"고시원까지 갈 필요도 없어. 광익이 머리도 좋잖아."
음음, 이 말은 부인할 순 없지.
난 전교 1등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내내 전교 30등 밖으로 나가 본 적은 없다.
공부도 체력이 받쳐 줘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
열여덟 살, 늦여름 각성 이후 난 체력왕이 됐고.
책상에 앉아 버티는 힘이 늘었으며 집중력도 덩달아 늘었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피의 본능으로 인한 참을 수 없는 욕구도 딱히 없어서 적당히 공부했다.
나머지는 놀았지.
피시방은 제2의 고향과도 같았으니.
그나저나 각성한 건 하나도 안 물어보시고 대뜸 진로 상담이라니.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복지 좋고."
"광익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물어봐야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시는 일이 없다.
실제로 싸운다고 해도 아버지가 쥐어 터지는 꼴이 나올까 무섭긴 하다.
어머니의 육체는 그 자체로 무기다.
아름답지만, 강인한 어머니시다.
더욱이 어머니는 변신족이다. 일반 사람보다 완력이 세 배에서 네 배 이상 강한 변신족.
불멸자는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맞아서 안 아픈 건 아니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이미 실험해 봤다.
볼을 꼬집었는데 아프더라.
평소보다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럼 광익이한테 물어보지."
"그래, 광익아, 너 공무원 하고 싶니?"
"음. 저요?"
사실 이날까지, 난 두 분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열여덟 살, 어머니를 통해 내가 변신족인 걸 알게 된 이전부터 소망한 꿈이 있었다.
두 분의 눈을 보며 난 입을 열었다.
"저 UDT 가고 싶은데요."
Underwater Demolition Team.
해군 특수부대의 줄임말이다.
스트리밍 방송 보다가 흥미를 느꼈지만, 얼마나 멋진가.
몸을 극한까지 단련한 군인 집단.
멋있다.
난 적당히 국가도 존경하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며, 육체는 말할 것도 없다.
일반 사람 사이에 변신족 육체로 비비면 그냥 콜드 게임이지.
"양심."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일반 군대에 들어가서 그러고 싶니? 라고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럼 편한 길 놔두고 왜 어렵게 가야 합니까, 어머니.
전 어머니가 말씀하신 기초 훈련받은 다음 곧장 장교로 입대할 겁니다.
그래서 훈련받고, 하고 싶은 거 다 한 다음에 돌아와서 어깨 딱 펴고 다닐 거라 이겁니다.
말뚝 박을 생각은 없지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이거다.
"군인?"
아버지가 눈썹을 씰룩이셨다.
저건 곤란할 때 짓는 표정이다.
"깊게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옆에서 날 흘겨보고는 말했다.
"어머니, 소자도 벌써 스물입니다. 머리가 굵어질 만큼 굵어졌지요."
"굵다 못해 부은 것 같구나. 아들아."
어머니가 미소와 함께 말했는데 살기가 느껴진다.
예민해진 오감과 더불어 태어난 육감이 경고했다.
개기지 마!
아, 이거 씨알도 안 먹히겠다.
어머니가 반대하시면 이거, 음, 안 될 텐데.
난 어머니를 이길 수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나? 여기 있다.
우리 어머니는 날 언제나 이기신다.
힘으로도, 말로도.
그런 어머니를 꺾을 유일한 사람은 단 한 명뿐.
"아니, 군인도 나쁘지 않은데."
아버지가 턱을 쓰다듬으며 내 손을 들어주셨다.
"겉멋 들어서 군인 하고 싶은 건 아니지?"
"음, 뭐, 그것도 조금."
이럴 땐 솔직한 게 낫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싫어하시니.
"그것도 좋지. 스물 먹은 놈이 벌써 나라를 위해 싸우고 싶어 환장했다면 그게 더 이상해."
정답.
"그래도 군대는 좀."
어머니는 왜 저렇게 군을 싫어하시나.
"괜찮아. 군대 간다고 전부 소말리아 파병 가서 해적이랑 싸우고 그러는 거 아니야. 훈련받고 자대 배치받아서 군 생활 잘하면 되는 거지. 어차피 가는 군대, 장교로 가면 나중에도 좋을 거고."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네, 뭐, 당신이 그러자면."
어머니가 물러나셨다. 물러나시며 날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내셨지만, 이미 끝난 일.
"소자, 그럼 뜻대로 해도 됩니까?"
"되는데, 지금 당장은 안 되지."
"네, 알아요. 일단 대학부터 가야……."
"아니, 공무원 시험."
아버지 어디서 에듀빌 뒷광고라도 받으셨나.
왜 이리 시험을 강조하시나.
"이 시험 합격하면 보직 유예하고 군대 가면 돼. 그게 싫으면 그냥 회사에 방위산업체 같은 거로 퉁쳐도 되고. 장교로 가면 가산점도 있을걸?"
"그게 그렇게 돼요?"
나보다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그래, 상식적으로는 안 되지.
"돼."
하지만 아버지가 된다고 하시면 될 거다.
정부에서 일하는 분 아닌가.
다 수단이 있으신 거다.
"그럼 치죠. 시험."
"어렵다고 할 순 없지만, 놀면서 준비할 정도는 아닐 거다."
"문제없어요."
공부 따위야.
"과외로 속성 수업해 줄 사람이 있다. 일주일에 이틀이면 될 거야."
"이틀이요?"
갑자기 뭔 소리인가 싶어 물으니.
"주말 이틀만 비워, 경기도 화성에 아빠 아는 사람 있으니까 거기서 공부해."
"공부를 무슨 거기까지 가서 해요?"
어머니가 물으시고.
"그럴 만한 사람이야. 또 거기가 공기도 맑고 좋아. 논밭 일구며 사는데, 그 친구가 영 도시는 안 오려고 해서."
어머니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시고.
난 아침을 위해 준비된 삼겹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먹고 보자. 어제 먹은 건 벌써 소화 끝나고 아침에 화장실에서 대장을 통해 세상으로 내보냈다.
새로이 먹을 걸 채울 때다.
먹고 쉬고 자고.
좋았다.
난 타고난 몸과 운동 신경이 다르다.
학교 다닐 때는 오히려 이런 걸 숨겨야 했다.
"난 아들이 평범하게 살았으면 해."
어머니는 각성하는 날 그리 말씀하셨다.
변신족은 보통 어떤 단체에 소속된다.
그리고 대부분 전투 요원으로 빠지는데, 그 요원은 흉흉한 세상의 전면에 나선 투사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거기로 내몰리는 게 싫은 눈치였다.
사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그리 평화롭다고 할 수 없었다.
환경 오염이나 전염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실질적인 위협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명 ‘어스 블랙홀’이란 거다.
대략 이십 년 전에 나타난 검은 구멍을 말함이다.
그 구멍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맞다고 생각하게 했다.
허공에 뻥 하니 뚫린 구멍.
그건 바다 위, 하늘 위, 땅 위.
어느 곳에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인간과는 다른 생명체가 나오기 시작했고.
오, 끔찍해라.
역사 선생님은 그 게이트가 나온 해를, 테러블 이어라고 불렀다.
끔찍한 한 해.
말 그대로다. 괴물은 나와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고.
경찰은 권총을 빵빵 쏴댔다.
군대가 도시 내부로 진입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탱크가 도심을 가로질렀다.
"그때 참 끔찍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시절을 안 살아봐서 모르겠죠?"
역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모르지, 그래도 그 시대 사료는 많이 남아 있다.
역사서에 따르면, 빌딩 숲 사이에 놓인 블랙홀은 박격포로 포격도 어려웠다는 것 같은 거 말이다.
포탄이 지나갈 자리를 건물이 막으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첫 번째 특수종이 모습을 드러냈지요."
불현듯 역사 수업 일부가 떠올랐다.
내 처지에서야 불멸자와 변신족을 먼저 말했지만.
이쪽이 역사적인 첫 번째 형태의 특수종이다.
에스퍼, 초능을 지닌 사람이다.
일명 초능력자다.
고작 스푼을 구부리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염력, 발화, 결빙, 전격.
다양한 힘을 쓰는 초능력자가 나서서 블랙홀의 적과 싸웠다.
그 뒤에는 팔이 잘리고 내장이 터져도 죽지 않는 불멸자가 나섰다고 한다.
다음은 변신족이다.
곰과 늑대 따위로 변한 이들이 몰아치니, 적을 때려잡기도 좋았을 거다.
초능, 불멸, 변신, 그리고 마지막 마법.
특수종 셋에 특수한 기술 하나다.
그 시대에 마법이라면 마술, 트릭에 영역에 가까운 거였을 터.
근데 이거는 진짜였다.
초능과는 또 다른 힘이다.
오롯이 재능이 있는 자들만이 부릴 수 있는 그 신비가 적을 내리쳤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과 다름없었을 텐데.
아버지는 왜 주위 사람들에게 불멸을 숨기고.
어머니는 왜 내가 평범하게 살길 바랄까.
그 이유가 뭐겠냐.
어찌어찌 블랙홀을 때려 막고 숨 좀 돌리겠다 싶으니, 내분이 일어났다.
불멸의 비밀을 캐자.
마법을 가르쳐라.
초능은 어떻게 각성하느냐.
"정말 슬픈 일이었습니다. 겨우 외침을 막자마자, 어제의 전우가 적이 된 거니까."
역사 선생님은 그리 말했지.
사람들, 참 욕심도 많아.
그 뒤는 핍박의 시간이 이어졌다.
사람과 사람이 사냥감과 사냥꾼으로 나뉘어 싸운다.
그 시간이 지난 뒤, 불멸은 정부에 귀속했고.
변신은 세계적인 기업과 결탁했으며.
초능은 스스로 단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마법은 숨었다.
그 타이밍에 두 번째 홀이 생겼다.
이번에 생긴 건 ‘어스 화이트홀’.
블랙홀이 나오는 구멍이라면, 화이트홀은 들어가는 구멍이었다.
반대로 우리도 적의 세계를 침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이 땅에는 없는 새로운 자원이 있었다.
‘이터널티테라라이트’ 따위의 이름도 복잡한 것들이다.
홀로 빛을 내는 발광석도 있고.
마법사들이 처음 보는 마나를 품은 돌도 있었다.
새로운 금속, 새로운 식물, 새로운 동물.
모든 게 새로운 자원이다.
그 자원이 준 효과는 무엇일까.
인간의 영원한 숙제 몇 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탈모와 조루.
우습지만, 세상에 처음 공개된 건 탈모약이었다.
누구라도 머리에 바르기만 하면 탈모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신약.
금액? 부르는 게 값이었다.
없어서 못 샀다.
사서 되파는 놈이 몇 배는 수익을 남겨 먹을 정도였다.
이걸 처음 판 건, 전 세계 정부 연합기구, 올드포스였다.
초강대국 미국과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이 중심이 된 기구였다.
그 이후 누구나 한 달만 복용하면 조루 증상을 깨끗하게 없애 주는 약이 나왔다.
그 약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엑스큐라시에서 만들었다.
그 이후 암세포 억제제, 노화 억제제, 간 이식 후 거부 반응을 없애는 약 등.
믿을 수 없는 신약과 새로운 것이 세상을 강타했다.
그래서 세상이 더 살기 좋아졌냐고?
꼭 그렇진 않다.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모른다. 난 테러블 이어에 태어난 테러블 베이비였으니까.
내가 본 세상은 이미 변화가 시작된 이후였다.
그러니 내 눈에는 그냥 이게 일상이다.
정부 연합 올드포스랑 세계적 기업 엑스큐라시는 사이가 더럽게 안 좋고.
초능 단체, 사이오닉은 애매한 위치라는 거고.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거다.
어스 블랙홀의 침범이야, 이제 옛날얘기, 그러니까 역사 수업에나 들을 얘기니까.
아직도 그 전선에서 누군가 싸우고는 있다.
예전에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지금은 자원을 위해서.
더 많은 걸 얻기 위해서.
그런 면에서 변신족은 유리했다.
타고난 완력과 운동 능력은 그들을 무지막지한 전투 인재로 만드니까.
그리고 드물게 자기 자신이 변신족인 걸 모른 채 각성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대로 정부에 끌려갔다.
그러니까 지금은 엑스큐라시에도 불멸자가 취직하고, 정부 기관에도 변신족이 들어가는 세상이다.
어떻게 사람이 딱 정해진 대로 나눠 살겠나.
어머니는 내가 어디서든 그리 싸우는 걸 바라시지 않았다.
그래서다.
적당히 어머니의 취향도 맞추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욕구도 채우는 중간 지점.
그게 군인이다.
본래라면, 군인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더 나은 일을 하고 싶었지.
* * *
일주일에 이틀, 아버지의 말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산속이었다.
"너 불멸 맞아? 왜 이렇게 튼튼하게 생겼냐?"
‘자연인이다’에 나올 것 같은 아저씨가 날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낡은 반바지만 입었는데, 얼굴은 또 말끔하다.
솔직히 말해서 미중년이다.
대충 정보를 종합하면 불멸자라는 판단이다.
"네, 뭐 혼혈이라 그런가 봐요."
"혼혈? 불멸의 피는 진해. 하물며 네 아버지가 누군데, 인간의 피가 그사이에 섞여?"
핍박의 시절, 역사 수업에서 말하길, 특수종 전쟁은 혈통 우월주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과외 선생이 그런 냄새를 풍겼다.
물론 난 아니다.
난 그런 거 없다.
사람은 다 사람이다.
"어머니 피도 진하시거든요."
솔직히 말해 주고 싶지만, 비밀이라 차마 말을 못 해 준다.
"특이한 놈이네. 가자."
"어딜요?"
"뭐야, 연호 선배한테 아무것도 못 들었어?"
유연호, 아버지 성함이시다.
"과외받고 오라고……."
"그래, 그 과외."
뭐지, 뭔가 이상하다.
번듯한 건물은 아닐지라도, 대충 책상하고 펜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근데 산속으로 가?
아, 절에서 공부하나?
아니었다.
"여기다."
공부는 무슨.
아버지, 대체 아들에게 뭘 가르치려는 겁니까.
난 속으로 그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