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요한 델피니움
요한 델피니움. 이 이름 앞에는 무수히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불의 마력 계승자. 영광된 델피니움의 후계자. 제국의 보물.
이 정도야 면전에서 들어도 자연스럽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소년. 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 말은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소년이 견디기에는 다소 잔인한 면이 있었다. 정말이지 언제 들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유치한 말이었다.
“형아…… 뭐 해?”
잠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생각에 잠긴 요한을 일깨워 주었다. 동화책을 들고만 있던 손이 분주하게 다음 장을 넘겼다. 따스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에 두 어린아이들의 그림자가 그려졌다.
“미안. 어디까지 읽었지?”
요한은 제 무릎을 베고 누운 동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동그랗게 눈을 뜬 노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입술을 톡톡 두드려 보아도 마찬가지.
“너무해!”
노아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눈가를 벅벅 문지르는 작은 손을 바라보다 요한은 결국 웃어 버렸다. 그 모습이 퍽 얄미웠는지 노아는 이제 등을 돌린 채로 종알거렸다.
“형은 바보야. 엄청 똑똑하다고 하다더니 다 거짓말이지? 똑똑한 사람이 왜 방금까지 읽었던 책 내용을 기억 못 해?”
어지간히 속이 상했는지 노아는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말했다. 한껏 치솟았던 어깨가 풀썩 내려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결국 본심을 드러내고야 마는 동생이 귀여워 요한은 소리 죽여 웃었다.
그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부터는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탓에 노아는 나날이 응석을 부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책을 읽어 달라며 찾아오고, 공부를 하지 못하게 책을 숨겨 두고, 노아는 제 나름대로 형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미안해, 노아. 어서 이리 와. 책 읽어 줄게.”
“책 말고 다른 건?”
요한은 화해의 신호를 기민하게 잡아냈다. 지금 이 순간, 노아가 바라는 건 책이 아니라는 걸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뭐든. 네가 들어 달라는 건 다 들어줄게.”
“정말?”
밝은 목소리와 환한 웃음이 돌아온 방 안을 밝히는 불빛이 늘어났다.
동생이 원하는 대로 요한은 마력으로 피워 낸 불꽃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놀아 주었다. 천장에서 눈앞으로, 창문과 커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온 파란 불꽃이 마침내 요한의 손 위로 올라왔다. 노아는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었다.
해맑은 얼굴로 지켜보던 노아가 불시에 몸을 수그리며 기침을 했다. 콜록거리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에는 방을 수놓던 파란 불빛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요한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동생의 등을 연신 토닥이고 문질러 주었다.
“나도 빨리 아카데미로 가고 싶어.”
한참 만에야 고개를 드는 노아의 눈시울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였다. 입술을 거칠게 문질러 닦는 노아의 소매에 붉은색이 스며든 걸 보았지만 요한은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노아는 어머니를 닮아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괴롭히는 원인불명의 병이 야속하고 미웠다. 매일매일, 동생과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찢기는 듯했다.
내 마력이 치유 계열이었다면…….
부질없는 소망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때도 있었지만 요한은 열 살 무렵에 그 희망을 놓아주었다. 제국의 이름난 치유 계열 마법사들도 두 사람의 병을 고쳐 주지는 못했으니까. 그가 그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대를 놓지 못해 바라고 또 바랐다.
어서 나아 함께하기를.
“형아.”
“왜?”
요한은 팔을 활짝 벌리는 동생을 떨리는 손으로 끌어안았다.
“내가 아카데미에 가면 꼭 같이 수업을 듣는 거야. 알겠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요한은 굳이 알려 주지는 않았다.
“그래.”
언젠가는 꼭 함께 아카데미로 갈 날을 고대했으니까. 그래서 노아가 희망을 잃지 않길 바라며 매일 거짓말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어서 나아. 같이 가게.”
동생을 재운 뒤에 방으로 가려고 했지만 요한은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려 보아도 다정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살며시 문을 열어 보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서재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침실에도, 노아의 방에도 오지 않으셨다. 그러니 서재로 가셨겠지.
오늘따라 유독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듯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서재의 문을 조금 세게 두드렸지만 이번에도 조용하기만 했다.
“아버지?”
서재로 들어온 요한은 두리번거리다 금방 나와야 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뒤로 밀려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와 시선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 소리는 2층, 어머니의 침실이 있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2층으로 내려온 발걸음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어머니의 침실 옆,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방의 문을 열자 벽 한 면에 자리한 또 다른 문이 보였다. 요한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만의 비밀 통로를 발견한 듯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후계자로서 항상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잠시 떠올랐지만 곧 잊어버렸다. 지금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신이 난 듯 폴짝이던 발걸음을 억지로 멈추어 서게 한 건 차가운 목소리와 눈빛이었다. 계단을 다 내려와 새로운 문을 연 요한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는 눈짓으로 조용히 있으라는 뜻을 보였다.
지금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대한 마법진 위에 어머니가 주저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를 움켜쥔 채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곳을 채운 파란빛의 마력이 일제히 어머니의 몸으로 쏟아지자 어머니는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너는 늘 어머니와 동생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파드득 경련하다 힘없이 늘어지는 몸을 안아 올린 아버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너의 마력을 완성시키기 위해 희생하다 생을 마감하는 거다. 델피니움의 안주인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이지.”
“아버지, 그게 무슨…….”
“이제 곧 노아의 마력도 전부 너에게 갈 거다. 두 사람의 고귀한 희생을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가주가 될 너의 도리야.”
너를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아버지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노아의 희생으로 일구어 낸 그 번영과 위상이라는 것이, 겨우 그런 게 그토록 중요한 걸까? 왜?
“저 때문에 아픈 거예요?”
그를 남겨 둔 채 계단을 올라가는 아버지를 붙잡았다. 옷자락을 움켜쥔 작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머니와 노아가, 저 때문에 아픈 거였어요?”
아니라고, 제발 아니라고 답해 주길 바랐다.
“죽을 때까지 그렇겠지.”
“죽을 때까지, 저를 위해서요? 평생을요? 어떻게 그런 고통 속에서 어머니와 노아를 살게 해요!”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도 언젠가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
아버지는 그를 내버려 둔 채 먼저 계단 위의 세상으로 떠나갔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의 피를 먹고 자라난 힘. 비틀거리다 털썩 주저앉은 요한은 이곳을 밝힌 파란 불꽃을, 지금껏 자랑스럽게 여기던 마력으로 피워 낸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는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를 위해서.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을 악몽 같은 밤이었다.
❖ ❖ ❖
어머니와 노아의 얼굴을 더는 볼 수가 없어 일부러 피해 다녔다. 주말에도 공작저로 돌아가지 않고 아카데미에 남았다. 노아가 보내는 편지에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줄 수가 없기도 했다. 편지를 열어 보지도 못했으니까.
요한은 마법을 전개하는 행위를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마력을 내보낼 때마다 어머니와 노아가 아파할 거라는 걸 떠올리면 당연한 듯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몸에 흐르는 마력을 전부 도려내고 싶었다. 두 사람에게서 빼앗은 거나 다름없는 힘이라면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원한 적 없었다. 단 한 번도 바라지 않은 힘이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가 없어 매일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요한 델피니움.
그 이름을 위해 노력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이제 자랑거리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마법을 전개해야 하는 수업은 모조리 빠졌다. 다른 수업도 귀찮기만 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무단으로 수업을 빠지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그 일을 전해 듣게 된 아버지는 어느 날 그를 찾아와 믿기 힘든 제안을 했다.
“당분간 영지로 가 있어라.”
그 말의 저의를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 다정한 얼굴로 돌아와 그를 위로했다. 지하실에서 본 모습과는 딴판으로, 익히 알고 있던 그 모습으로.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네가 다 크면 알려 주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구나. 잠시 어머니와 노아를 데리고 영지에서 푹 쉬다 와.”
거절하기 힘든 제안에 속절없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사용인들도 최소한으로 남겨 두라고 지시했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기회. 요한은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도 줄곧 멍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음 생에는 우리 모두 새로 태어날까?’
침대에 누워 그를 꼭 안아 주던 어머니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하실에서 본, 그 끔찍한 밤의 비명 소리를 잊을 만큼이나 명랑한 목소리였다.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자유로운 새가 되는 거야. 엄마는 그때도 너희의 엄마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우리가 계속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희미해지자 노아가 매일 밤마다 소원이라며 재잘대던 말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픈 몸이 나으면 아카데미로 가자. 함께 놀러 가자. 실습도 같이, 수업도 같이.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자. 노아가 그토록 원했던 삶을 빼앗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요한 자신이었다.
아픈 몸이 다 나으면…….
살려 달라는 어머니의 비명 소리와 기침을 하면서도 소원을 줄줄 읊던 노아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