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제발 나 좀 살려 줘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런데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아카데미까지 불려 온 공작저의 주치의는 자신을 찢어 죽일 듯한 공작의 눈길을 받아 내고 있었다.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와 이성을 잃은 남자의 노성이 의무실에 울려 퍼졌다.
“다시 살펴. 어서! 제대로 살펴보라고!”
그가 다시 공작 부인을 살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공작이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리세트! 눈 좀 떠 봐. 어서, 눈을 떠 나를 봐! 정신을 놓으면 안 돼!”
치유 계열의 마법사들을 여섯이나 동원했지만 리세트의 몸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뒤틀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몸부림쳤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리세트를 누인 침대는 피로 물든 지 오래였다.
“아파서 숨을, 못 쉬겠어……. 제발, 그만해! 제발!”
“조금만 참아. 금방 나을 거야. 괜찮아. 조금만…….”
요한은 이불깃을 움켜쥔 창백한 손을 힘주어 붙잡았다.
“아파……. 너무 아파, 요한. 이 사람들, 전부 내게서 떨어트려 줘. 부탁이야……. 내가 죽을 것 같아. 너무 아파. 아파……. 요한.”
리세트는 울컥 피를 또 토해 냈다. 어떻게든 출혈을 잡기 위해 마법사들은 한곳에 모은 마력을 리세트의 몸에 쏟아부었다.
“살려 줘! 요한, 나 좀 살려 줘!”
마법사들이 사력을 다해 리세트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쉽게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요한!”
주치의와 마법사들은 발작하듯 튀어 오르는 리세트의 몸을 사방에서 짓눌렀다.
시트에 얼룩을 남긴 핏자국과 피투성이가 된 리세트의 몸을 살핀 눈길은 초록빛 눈동자 위에서 멈추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 눈을 더는 지켜볼 수가 없어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세웠다.
리세트의 손을 내려놓은 손이 형편없이 떨렸다.
“요한, 살려 줘…….”
요한의 모든 신경은 홀로 남겨 둔 리세트에게 향해 있었다.
“요한…….”
드문드문 그의 이름을 부르고 살려 달라며 빌고,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고. 한참을 울부짖던 리세트의 입술 사이로 이제는 갈라진 숨소리만 번져 나왔다.
“마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이대로 의식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요한은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살려 달라는, 제발 멈추어 달라는 리세트의 간절한 목소리를.
다시 몸을 돌려 세운 요한의 두 눈에 끔찍한 광경이 비쳤다. 리세트의 손목은 천을 찢어 만든 줄로 칭칭 감겨 침대 모서리에 묶여 있었다. 더 이상 발악할 힘도 없어 축 늘어진 몸을 짓누르며 마법사들은 마력을 쏟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리세트의 입에서는 핏물이 흘러나왔고 눈동자는 빛을 잃은 것처럼 아득해 보였다.
“요한…….”
리세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지만 꼭 인형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죽은 것처럼 보였다.
새빨간 입술이 작게 움직이는 것을 본 요한은 리세트에게 달려갔다. 손목에 묶인 천을 모조리 뜯어내고 리세트를 품에 안았다. 그 순간에도 마법사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법을 전개해 나갔다.
리세트는 힘겹게 손을 뻗어 요한의 뺨을 감쌌다.
“제발……. 요한. 멈추라고, 이제, 그만하라고 해. 내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숨이, 안 쉬어져.”
더 큰 마력이 밀려들자 리세트의 눈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요한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만!”
“하지만, 주인님……!”
“마법진을 파훼해. 어서!”
의무실을 가득 메우던 마력이 사라지자 리세트의 호흡이 차츰 진정되어 갔다. 힘에 부쳤는지 그의 뺨에 닿아 있던 손이 툭, 침대 위로 떨어졌다.
“정말, 미안해…….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해.”
움직이고 싶은 것인지 힘없이 늘어진 리세트의 팔이 움찔거렸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리세트의 손을 잡아 제 뺨을 감싸게 했다. 리세트는 손끝으로만 그를 만졌다. 눈물이 흐른 곳을 더듬어 내려가는 손가락은 싸늘한 냉기만 흘렀다.
“나, 이제는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리세트는 잘도 그런 소리를 했다. 실소가 터져 나온 입가에 고인 눈물이 피로 얼룩진 리세트의 뺨에 떨어졌다.
“나, 조금만 자고 싶어. 쉬고 싶어. 내가 깨어났을 때…… 네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
“…….”
“가지 마. 가면 안 돼, 요한. 나만…… 두고 가지 마.”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아 요한은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제야 안심한 듯이 리세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요한, 울지 마.”
속삭이듯 흘러나온 목소리가 기어이 요한을 무너트렸다.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무어라 대답을 해 주고 싶은데,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건 한숨 같은 울음뿐이었다.
요한은 차갑게 식은 뺨에 입을 맞추어 하지 못한 말들을 흘려보냈다. 다 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리세트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평온해 보여 요한은 차마 리세트를 불러 볼 수가 없었다.
눈을 뜬 리세트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할까 봐.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색색거리는 숨결 사이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래. 나 여기에 있어.”
리세트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응,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눈을 뜨면, 바로 내가 보일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자도 돼.”
잠에 빠져드는 듯 리세트의 얼굴이 더욱 평온해졌다. 이제 더 이상 아프다는 말도, 대답하는 목소리도,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셀번 밀란. 노바르 로슈만.”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들에게 요한은 차가운 목소리로 명했다.
“두 사람을 데려와. 지금 당장.”
❖ ❖ ❖
리세트는 안온한 꿈에 빠진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가녀린 몸과 부어오른 붉은 눈시울은 그래서 더욱 아프게 요한의 마음을 할퀴었다.
미동조차 없는 몸을 깊이 끌어안자 차디찬 기운이 느껴졌다. 요한은 덜컥 겁이 나 팔에 힘을 실었다.
이대로 놓치면 리세트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의무실로 들어온 사용인들은 숨을 죽인 채로 자신들의 일을 해 나갔다. 흠뻑 젖은 이불을 걷어 내는 손길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마님의 몸을 씻겨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어렵게 용기를 낸 메이는 울지 않기 위해 더욱 또박또박 말했다.
“이대로 잠드시면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
재차 간곡하게 말했지만 공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주인님께서도 어서 씻으셔야지요.”
난처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메이는 입술을 달싹이다 도로 다물었다.
주인님은 지금 어떠한 소리도 듣지 못하시는구나.
빛을 잃어버린 듯 공허한 시선으로 공작은 아내의 얼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저하던 메이는 다시 용기를 끌어냈다.
“마님께서 눈을 뜨셨을 때, 주인님의 모습을 보고 놀라시면 어떡해요.”
그제야 공작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와 눈을 마주한 메이는 뒤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공작도 분명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을 것이다. 하지만 새카만 색의 옷을 입은 터라 그 흔적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얼굴과 손, 살결이 조금이라도 드러난 부분은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시도 마님을 놓지 않고 있던 손으로 공작은 그녀가 들고 있던 수건을 가져갔다.
“내가 직접 할 테니 그만 가.”
“일단 주인님께서 먼저 씻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씻으러 가신 사이에 제가 마님을 씻겨 드릴게요.”
그제야 제 모습을 살핀 요한은 건조한 웃음을 흘리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품에는 리세트를 소중히 안은 채였다.
“너는 이곳을 마저 정리해.”
느린 걸음으로 의무실을 나선 요한은 문득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하늘은 어두운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흔한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 ❖ ❖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이동하다 리세트의 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요한은 기숙사에 머무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리세트는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다. 요한은 침대가에 의자를 끌어와 앉아 리세트의 손을 잡았다. 따듯한 물로 오랫동안 씻겨 주었는데도 리세트의 몸은 아직도 차갑기만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차가운 손을 만지고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그저 가만히 리세트를 지켜보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런 것뿐이었다.
“이게, 무슨…….”
소식을 듣고 달려온 셀번 밀란은 떨리는 손을 들어 제 입술을 막았다.
“내가, 어서 리세트를 살펴볼게요.”
그녀가 마력을 흘려 보낸 순간 리세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것을 한눈에 파악한 요한은 그녀의 손목을 다급하게 움켜쥐었다. 침대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마법진이 스르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함부로 마법진을 파훼했다가는 리세트가 다칠 수도 있어요. 그걸 잘 아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런…….”
“보시다시피 제 아내의 몸은 다른 마력을 받아들일 여력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만 연구실로 돌아가 보시죠.”
“내 마력은 치유 계열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치유 계열의 마력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거지요?”
“리세트가 지금, 그 마력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의무실에서 내내 지켜봤으니 확실합니다.”
마지못해 셀번 밀란이 물러가자 요한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낮에 셀번 밀란을 찾아갔다는 말을 기억해 내 일부러 그녀를 부른 것인데, 리세트는 지금 그녀의 마력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요한.”
끊길 듯이 희미한 목소리는 그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리세트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으니까.
“하지 마……. 제발, 부탁이야.”
나쁜 꿈이 찾아왔는지 리세트는 울고 있었다.
“제발 놓아줘. 그러지 마…….”
너의 꿈속에 내가 있구나. 그런데 그건 끔찍한 악몽이구나.
요한은 은색 대야에 담겨 있던 수건을 꺼내 물기를 짜냈다. 식은땀이 맺힌 이마를 닦아 주고 흐르는 눈물을 지워 냈다.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리세트의 호흡이 다시 편안해졌을 무렵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리세트의 손을 놓아준 요한은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내 문을 응시했다.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노바르 로슈만. 리세트가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