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요넬과 레오는 쉼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
몇십 년 동안 담아왔던 이야기에 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둘은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으며 울기도 했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마치 수십 년 전 연애를 하기도 전 시절.
요넬 바이에른에게 첫눈에 반한 레오 바이에른이 구애를 하던 그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둘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없었다.
요넬은 제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운 채 천천히 숨을 고르는 레오를 향해 툭 질문했다.
“이제 진짜 죽는 거구나.”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이렇게 먼저 가버려서.”
“…미안한 걸 알면 조금 더 사는 게 어때?”
“그럴 수 있었으면 그랬겠지만… 안 돼.”
레오가 씁쓸히 웃었다.
“지은 죄가 너무 많아. 나는 그 죄를 감당해야 해.”
요넬이 도끼 눈을 떴다.
“나쁜 짓을 한 거야?”
“응.”
“얼마나?”
“엄청 많이.”
“…….”
요넬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제 부인을 잠시 지켜보던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요넬의 뺨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당신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
레오가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야. 당신의 그 얼굴을 다시 보려고… 지금껏 달려온 거니깐.”
요넬이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 사이엔가 이곳에 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울적한 기분을 숨기지 못하는 그 표정에 레오는 알 수 있었다.
‘내 시간이 끝나가는구나.’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건 무엇일까.
고민하던 레오는 곧 입꼬리를 올렸다.
딸에게도 선물을 주었고 부인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그런데 자신을 구원해준 아들에게는 아직 선물을 주지 못했다.
레오는 그런 아들에게 줄 적당한 선물을 떠올리고서 중얼거렸다.
[아들, 들리느냐?]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속에서 레오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너에게는 참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사과해야 할 일도 많고… 하지만 지금은 이 말을 먼저 하고 싶구나.]
레오의 목소리 끝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란다 아더.]
아더의 눈이 커졌다.
마치 조금 전 들려온 레오의 말을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하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네가 필요로 하는 사람 곁으로 가거라. 지금 잡지 않으면 다시는 붙잡지 못할 사람 곁으로 향하거라. 그게 이 아비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조언이란다.]
정신을 차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내가 있어야 할… 곳?’
그런 곳이 어디지?
지금 부모님이 계신 이곳이 아닌가?
고민하던 아더는 곧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레오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허락에 아더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그리고 사랑해요.’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 사이 난데없이 웃음을 터트린 레오를 향해 요넬이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죽어가는 와중에 뭐가 그렇게 웃겨?”
레오가 대답했다.
“요넬. 만약 말이야….”
“응.”
“손주가 태어나면 칸이라 짓고 손녀가 태어나면 홀란이라 짓는 게 어때?”
요넬이 인상을 찡그렸다.
“손주는 그렇다 치고 손녀 이름을 홀란이라 짓자고? 홀란 오라버니처럼 대장부라도 되라고?”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때?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그 의미니깐….”
말을 흐린 레오가 요넬을 와락 껴안았다.
그 난데없는 포옹에 깜짝 놀란 요넬이 비명을 지르려던 그 때 레오가 속삭였다.
“다시 만나도 너야.”
“…!”
“다시 태어나도 너야. 죽어서도 너야. 그러니 꼭 다시 만나. 내가 먼저 찾아갈게. 길지도 몰라. 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줘.”
요넬이 울먹이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레오가 조용히 맹세했다.
“반드시 찾아갈게, 내 사랑 요넬 바이에른. 그러니… 지금은 잠시 이별하자.”
이 말에 요넬이 대답했다.
“멍청아! 이별이 찾아올 필요도 없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널 찾아낼 테니깐.”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체가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럼에도 눈을 뜨지 않은 요넬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잘 가 레오. 내가 제일 사랑했던 남자.”
* * *
지니가 고개를 들었다.
웅성거리는 수도가 보였다.
허나 그 분위기는 그렇게 암울하지 않았다.
영혼을 빼앗겼던 사람들은 전부 원래대로 돌아왔고 수도를 좀먹던 괴물들도 모조리 사라졌다.
죽은 사람은 있었지만 대다수가 멀쩡했다.
조금 과장 되게 보태면 돌아왔다.
그 참혹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으로 말이다.
그 기적과 같은 광경을 바라보며 지니가 중얼거렸다.
“끝났네.”
[끝났군.]
“…….”
지니가 고개를 숙였다.
부르르 진동하는 비스트가 보였다.
지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저기 흰 수염 씨? 왜 저한테 붙어있는 거예요?”
[왜긴 왜야. 주인이 날 버렸으니 새로운 주인 곁에 있는 거지.]
“…그게 하필 왜 저예요?”
[자네 정도면 오히려 적당하지. 무려 최후의 엘프 아닌가?]
지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오래 살고 싶은데 죽이실 건 아니죠?”
[안 죽인다니깐? 그것보다 자네.]
“네?”
[이제 어디로 갈 건가?]
“….”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어디로 갈 거냐라….’
어렴풋이 느끼는 거지만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니깐 이 모든 사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엉망진창이었던 것들이 전부 원래 대로 되돌아간단 소리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장소는?”
곰곰이 고민하던 지니가 쓰게 웃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은 인간이 아닌 엘프.
그 엘프가 섞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탁을 한다면 머물 곳이야 넘치겠지만 진짜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는 역시 아니었다.
‘…내 집은 어디일까.’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보금자리.
그 보금자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고민한 지니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제 한번… 제대로 찾아볼까?’
지니라는 인간이 진짜로 머물 보금자리.
그 장소를 지금부터 찾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지니가 그렇게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한 남자가 멀찍이 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놀란 지니가 중얼거렸다.
“고, 공자님?”
이 말에 아더가 대답했다.
“공작인데요, 지니?”
“…!”
“어느 순간부터 저를 계속 공자라 부르시네요. 공작임에도 불구하고.”
지니가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그, 그것보다 괜찮으신 거예요?”
“저요?”
“네! 갑자기 사라지셨잖아요!”
이 말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사라지려 한 건 지니였죠.”
“제가요?”
“네. 갑자기 또 제 눈앞에서 사라지려 했잖아요. 아니에요?”
정곡을 찔린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아더의 말대로 이대로 떠나려 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납득이 가지 않아 질문했다.
“어… 떠나면 안 되나요?”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그 사이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전쟁도 다 끝났고, 이제 해결해야 할 건 다 끝났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제 뭔가 정체성을 좀 찾기 위해 떠나려 하는데… 안 되는 건가요?”
아더의 입술이 달싹였다.
안 되나?
된다.
지니는 이번 전쟁의 숨은 공신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금 자리를 떠나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더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지니가 떠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나 그 마음을 인정하는 게 또 왠지 기분이 나빴다.
그 탓에 아더가 갈팡질팡 망설이며 중얼거렸다.
“어… 지니는 유능하니깐 필요한 곳이 많아요. 그러니깐 여기 좀 더 머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단숨에 아더와의 거리를 좁히며 소리쳤다.
“공자님…?”
움찔 놀란 아더가 대답했다.
“네, 네?”
“혹시… 아프신 거예요?”
“네?”
“그런데 왜 갑자기 말을 횡설수설 하고 그래요?”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지니의 걱정 가득한 표정이 아더의 두 눈에 담겼다.
그 모습을 잠시 뚫어져라 지켜본 아더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왜 지금 지니를 보내기 싫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낸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고마워요, 아버지.”
“…?”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아버지?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 채 대답했다.
“지니.”
“네?”
“저희 결혼해요.”
“…?”
지니가 다시 한번 눈을 끔뻑였다.
뭐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그러니깐 지금 눈앞의 남자가 결혼…
그때 아더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니를 사랑해요. 그러니깐 저랑 결혼해주세요.”
“…!”
지니가 입을 벌렸다.
“저, 저를 사랑한다고요?”
아더가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네. 지니가 아니면 안 돼요. 그러니깐 저랑 결혼해주세요.”
지니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아니 이 미친놈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사랑한다는 건 둘째치고 갑자기 결혼이라니?
진짜로 머리를 다친 거 아닐까, 이 남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지니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할 때였다.
아더의 표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
더없이 진지한 그 표정에는 한점의 장난기도 담아있지 않았다.
그 탓에 지니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진짜…이 미친놈이 날 좋아한다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소름이 돋은 지니의 귀가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입을 열어 대하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아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정답이다, 아들아. 남자는 후퇴 없이 직진뿐이다. 그래야 사랑을 쟁취할 수 있지.]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어?”
말을 흐린 아더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평소에 보던 그 하늘과 별다를 바 없는 하늘이었는데, 오늘 따라 왠지 이상하게 보였다.
그 이유를 아더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와….”
은연중에 앓고 있던 그 정신병.
그 정신병이 더는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아더는 낮은 탄식을 터트렸다.
“나았어.”
공작가의 미친놈.
그 미친놈이 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평생을 함께할 여자를 찾은 순간에 말이다.
* * *
시간이 흘렀다.
그 말도 안 되는 전쟁이 있고 난 직후 거의 10년.
어쩌면 그보다 많은 시간이 말이다.
그 속에서 바이에른 공작가의 새로운 주인이 된 아이린이 투덜거렸다.
“하아…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전재 공작가의 주인.
아더 바이에른은 몇 년 전 갑자기 저택을 홀연 떠나버렸다.
‘지니가 자기 근원을 찾고 싶대요. 그러니 잠시 자리를 좀 비울게요. 뒤처리는 아이린이 좀 맡아서 해줘요.’
공작가의 전대 안주인.
지니 데이븐을 데리고서 말이다.
덕분에 원치도 않은 공작가의 주인에 앉은 아이린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과도한 업무량에 치이고 있었다.
그런 아이린을 옆에서 지켜보던 카셀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도울 게 있소, 부인?”
“없어요.”
“…그게 그렇게 단언할 일인가?”
“단언할 일이죠. 카셀이 예전에 제 업무를 돕다가 다 망쳐버린 거 기억 안 나세요?”
카셀이 입맛을 쩝 다셨다.
“그건 맞지만 흠….”
“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할 거 없으시면 나가서 파티 준비나 도와주세요.”
카셀이 반색해 대답했다.
“그러지. 몸 쓰는 건 내 전문이지 않소?”
이 말과 함께 카셀이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린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내 남편이지만 진짜 귀엽네.”
십여 년이 지나도 어쩜 저렇게 한결같을까.
생각과 함께 아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대륙 곳곳에 보낼 편지들이 보였다.
편지들의 주인공은 지난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들에게 보낼 편지였다.
‘북부 설원의 전투. 그 전투에서 바이에른을 도와준 소중한 분들.’
그 전쟁이 있고 난 후 같이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사람들을 모아 매년 한 번씩.
파티를 열고는 했다.
그날을 잊지 말자는 취지와 함께 얼굴을 보기 힘든 그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한테 먼저 보낼까.’
순서는 상관없지만 괜시레 고민하게 된다.
고심하던 아이린은 곧 첫 번째 사람을 떠올렸다.
‘레온 마드리드. 새로운 황제.’
레온은 그 전쟁이 있고 난 직후 새로운 황제에 올랐다.
유일한 마드리드 황가의 혈통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새로운 황제가 된 그는 무너져가는 제국을 빠르게 부활시켰다.
그런 레온을 두고 제국의 시민들은 천년의 암흑기가 끝나고 마침내 제국의 신시대가 부활했다 소리쳤다.
‘바쁘셔서… 오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내놔야겠지?’
안 보내면 분명 속에 담아두고 평생을 투덜댈 것이다.
레온의 성격이라면 말이다.
씩 입꼬리를 올린 아이린이 다음 편지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북부를 지키는 용의 가문.
그 가문의 주인이자 가장 용맹한 기사라 칭송받은 엘린 레버쿠젠이었다.
‘엘린도…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녀 또 한 레온과 마찬가지로 쉴 새 없이 바빴다.
십몇 년 전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북부를 재건하기 위해 그녀는 상업 도시 아케인과의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그뿐만이 아닌 수도로부터 광범위한 지원을 받아 이제는 북부를 넘어서 제국에서 가장 권세가 강한 가문의 안주인이 되었다.
덕분에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는데 아이린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음음 좋아. 이런 걸 핑계로 다들 얼굴을 보는 거지.”
생각과 함께 아이린이 다음 편지의 주인공들을 한두 명씩 떠올렸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아케인으로 돌아가 전 사장인 안젤리나 베이비와 결혼식을 올린 윌렛 크레스톨.
그 윌렛 크레스톨을 따라 전쟁에 참여했던 쥴리.
‘그러고 보니 쥴리는 이제 선생님이 되었다지?’
보육원을 설립해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을 대신 돌봐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빙그레 미소 지은 아이린이 다음 주인공들을 계속 떠올렸다.
전 집사장이었던 안나.
현재 고향에 내려가 꽃집 사장인 그녀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지금도 바이에른 고성에 남아있을 천년 된 골렘.
헤이치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쟁의 영웅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 내려가던 아이린이 펜대를 멈칫거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람에게는 못 보내겠네.”
아더 바이에른.
그리고 지니 데이븐.
그 전쟁의 중심에 섰던 두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몇 년째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두 사람이 현재 위치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아… 진짜 오라버니도 너무하네. 어떻게 몇 년째 안부 편지 한 통이 없을 수 있지?’
독특한 사람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이해하지 못한 그녀였다.
결국 어깨를 으쓱인 아이린이 몇 년 째 보내지 못한 편지를 또 다시 고이 보관함에 넣으려 할 때였다.
제 집사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돌연 귓가로 들려왔다.
“공작 각하-!! 큰일 났습니다!”
눈을 치켜뜬 아이린이 소리쳐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집사!?”
“그, 그게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아이린이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뭐지? 저 침착한 집사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하지만 곧 의문을 접은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방문을 열고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련 쪽을 향해 달려나갔을 때였다.
검을 치켜든 카셀이 보였다.
“카셀?”
아이린의 부름에 카셀이 고개를 돌렸다.
“아아… 왔소, 부인?”
“네… 그런데 갑자기 칼은 왜 꺼내 들고 있는 거예요?”
“그게… 재미난 게 와서 말이오.”
“…?”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요. 이리 오시오.”
카셀의 말에 아이린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다.
“허?”
검은 생머리칼.
약간 치켜 올라간 눈동자.
약간 재수 없어 보이는 자신만만한 미소.
그리운 누군가들을 꼭 떠올리게 외모를 가진 앳된 소녀가 놀랍게도 바이에른 정문 한가운데서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이린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 박동에 아이린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질문했다.
“너는… 누구니?”
소녀가 대답했다.
“공작가의 주인.”
“…?”
“공작가의 주인 자리를 받으러 왔는데요?”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소녀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홀란 바이에른.”
이 말과 함께 소녀의 품에서 묵색 권총이 튀어나왔다.
광기에 차 있던 남자가 사용했던 권총과 똑 닮은 권총이었다.
그 권총을 치켜든 소녀가 다시 한번 선언했다.
“공작가의 주인 자리를 받으러 왔어요. 그러니 다들 비켜주시겠어요?”
이 말에 정신을 차린 아이린이 깨달았다.
공작가의 미친놈이 돌아왔다.
아니, 공작가의 광녀(狂女)가 다시 가문으로 돌아왔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