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64화 (264/265)

제264화

레온이 눈을 떴다.

“컥-!”

숨을 거칠게 몰아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가 흠뻑 젖은 제단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온이 놀라 중얼거렸다.

“…나 살아있는 건가?”

그의 마지막 기억은 제 형님.

칸 마드리드의 칼에 의해 심장이 깨뚫리고 아더 바이에른 제피를 주었을 때였다.

‘아더… 그 친구가 내 형님을 막아냈나?’

아니면 막아내지 못했나?

살아있는 걸 보니 전자가 확률이 높아보였다.

생각을 끝마친 레온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끈질긴 인간… 결국 살아있네요.”

“네가 살린 거 아니냐 아들아?”

“제가 살리긴 했죠. 그런데 정말로 살아날 줄은 몰랐네요.”

레온이 눈을 치켜뜨며 들어올렸던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아더 바이에른과 그의 등뒤에 업힌 늙은 노인이 보였다.

그 예상치 못한 광경에 레오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아더 바이에른?"2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아더 바이에른이죠.”

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등뒤에 업혀 있던 늙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레온… 나와 이름이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던 친구의 동생이지.”

당황하던 레온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늙은 노인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내 친구… 칸 마드리드는 너를 참 아꼈단다. 늦둥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자식처럼 널 생각했지. 그러니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너를 지키기 위해 네 형님은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버렸으니깐.”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떤 레온이 소리쳤다.

“당신 누구…!”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아더와 늙은 노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새하얀 깃털 한 장이었다.

“이게 무슨…?”

말을 흐린 레온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아더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 그가 남기고 간 깃털을 조심스레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서 흐릿한 잔상이 스쳐지나갔다.

‘사랑하는 동생아. 미안하구나. 너에게 모든 것을 다 떠넘겨서.’

그 잔상에 있는 것은 칸 마드리드였다.

한 때 모든 것을 걸고서 죽이려했던 남자.

한 때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가족이자 형님.

그 남자가 눈물을 펑펑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행복하게 살거라…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나의 동생 레온 마드리드.’

기억이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레온이 털썩 자리에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형님?”

입을 다문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과 함께 레온이 천천히 떠올렸다.

‘형님-!’

가장 행복했던 추억.

그리고 유일하게 가족들 모두가 함께 놀러갔을 때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 속에 중심에 선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늦둥이. 어서 가자꾸나. 오늘이 아니면 다음에는 즐길 수 없어.’

칸 마드리드.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하던 남자의 미소였다.

* * *

아이린이 한 남자의 볼을 쓰다듬었다.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차가운 피부가 매만져졌다.

그 낯선 감촉에 아이린이 중얼거렸다.

‘카셀이… 죽었어.’

거짓도 연기도 아니다.

카셀 브리드는 죽었다.

이 전쟁을 위해 칼을 들었고 자신을 위해 싸우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끝에 모든 것을 지키고 숨을 거둔 것이다.

그 사실이 현실이 되어 다가온 순간 아이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

소리없는 오열이 시작된다.

그 오열과 함께 아이린은 카셀의 이름을 낮게 부르짖었다.

“카셀… 카셀…..”

왜 지금 이 순간 떠난거예요.

아직 저는 당신을 떠날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 다시 눈을 떠줘요.

소리 없이 건네는 메아리들이 눈물이 되어 카셀의 볼 위로 떨어졌다.

허나 눈을 감은 남자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 탓에 아이린의 눈에서 더욱 많은 눈물이 떨어져 내릴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이린.”

“……!”

깜짝 놀란 아이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놀라 입을 벌렸다.

“오, 오라버니?”

아더 바이에른.

지금쯤 수도에 있을 제 오빠가 울적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서 있었다.

그 탓에 아이린이 당황을 금치 못할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아이린이냐?”

아이린이 다시 한번 깜짝 놀라 주춤 물러났다.

허나 어느 사이엔가 몸을 움직인 아더가 지긋이 막아서며 말했다.

“아이린 놀라지 마요. 아버지에요.”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아버지?

저 노인이 아버지라고?

새하얀 백발에 자글자글 주름진 피부.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 노인의 모습에는 어디에도 바이에른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탓에 아이린이 쉽사리 아더의 말에 동의를 표하지 못할 때였다.

노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아이린… 네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의 이름이란다.”

“……?”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먼 북방 쪽에서만 피어나는 꽃이지. 새하얀 꽃잎에 검은색 봉오리… 세상에서 이런 색을 가진 꽃은 아이린뿐이었단다.”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 꽃대로 잘 자라주었구나, 아이린….”

아이린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어린 당황과 놀람을 느낀 아더가 살며시 아이린의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아간 아이린이 노인과 다시 시선을 마주한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맞나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상에서 제일 못난 아버지란다.”

아이린이 와락, 노인을 향해 안겨들었다.

그런 아이린을 가까스로 안아든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아더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을 때였다.

새하얀 빛이 갑작스레 피어올랐다.

“……!”

눈을 치켜뜬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빛이 뿜어져 나온 곳은 카셀의 심장이었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그의 육체에 빛이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더의 입이 작게 벌어졌을 때였다.

레오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아들. 남은 시간이 얼마 없구나…. 이제 가야만 해.’

이 말에 천천히 벌어지던 아더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레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던 노인이 한쪽 눈을 찡그려 윙크를 보냈다.

그 장난기 어린 모습에 아더는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걸 느꼈다.

그 속에서 레오가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린. 이 못난 아비가 네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레오가 빙그레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가 되거라.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웃는 아가씨가 되거라. 그 모습을 언제 어디서나 지켜보마.”

이 말에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뭐지?’

무려 태어나서 처음 만난 아버지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또 다시 훌쩍 떠나버릴 것 같은 말을 했다.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 아이린이 다급히 소리치려 할 때였다.

눈앞에 있던 노인이 예고도 없이 훌쩍 사라져 버린다.

“……!”

깜짝 놀란 아이린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아, 아버지?”

가까스로 입을 연 그녀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 어디에도 조금 전 노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이린은 다시 한번 소리치려 할 때였다.

이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목소리가 귓가로부터 울려 퍼졌다.

“아이린?”

“……!”

움찔 몸을 떤 아이린이 입을 벌렸다.

‘뭐지? 왜 이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설마 환청인가?

하지만 환청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목소리였다.

그랬기에 아이린이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망설일 때였다.

조금 전 들려왔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아이린…? 혹시 제 말이 안 들리십니까?”

“……!”

참지 못한 아이린이 결국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카셀 브리드가 놀랍게도 자리에 일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다리 힘이 풀린 아이린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레오 바이에른이 남긴 말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아이린. 이 못난 아비가 네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그 말을 되새기던 아이린이 눈물을 왈칵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고마워요.”

이 말과 함께 아이린이 카셀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요넬 바이에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오던 시녀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어휴 마님! 지금 나가시면 안 됩니다! 공자님께서도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라 하셨잖아요!”

이 말에 요넬이 희미하게 웃었다.

“고작 내 별장에 있는 정원에 나가는 거야. 너무 걱정 말게.”

“하지만 마님……!”

“벌써 일주일 째 집안에 갇혀 있었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건 알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싶어.”

뒤따라오던 시녀가 마지못해 물러섰다.

“…예. 알겠습니다. 간단한 다과라도 준비할까요?”

“아니. 혼자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네.”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허락에 요넬이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

북부와는 멀리 떨어진 남부.

제국의 수도와도 거리가 있는 이 비밀스러운 별장의 정원에 핀 화사한 꽃들이 보였다.

허나 불편한 심기 탓인지 몰라도 그 아름다운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더하고 아이린은… 무사할까?’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현재 머무는 바이에른 고성이 위험하다는 아이린의 판단에 의해서였다.

이제 가문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그녀였기에 아이린의 말대로 순순히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가문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바이에른 가문이 전쟁을 하고 있다.

그것도 이곳이 아닌 저 먼 북부에서.

그 말은 즉슨 아이린과 아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들이 그 전쟁터에 있다는 소리였다.

그 탓에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북부에 가고 싶었지만 냉혹한 현실이 그녀의 발목을 묶었다.

내가 그곳에 가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되려 아이들의 발목이나 잡는 것이 아닐까?

눈앞에 마주한 문제들이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오늘도 의미 없는 고민만을 한 요넬이 울적한 기분을 담아 중얼거렸다.

“…이럴 때 그이가 있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잠시 고민한 요넬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레오 바이에른.

자신이 만나본 그 어떤 남자보다 독특한 남자.

그가 있었더라면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그 생각과 함께 요넬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새하얀 백발에 흰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른 노인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

깜짝 놀란 요넬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반응을 지켜보던 노인이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중얼거렸다.

“안녕하시오?”

“…….”

요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 상태로 잠시 노인을 바라보던 요넬이 돌연 물러섰던 거리만큼 거리를 옮겼다.

그리고 순식간에 노인의 지척까지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

이번에는 노인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하늘 높이 치솟은 요넬의 손이 노인의 뺨을 때렸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노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아더가 입을 쩍하고 벌렸다.

‘어라? 뭐지 이건?’

어머니가 누군가의 뺨을 때리다니?

그런데 어머니는 저 사람이 누군지나 알고 때린 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더가 직접 나서야 되나 고민할 때였다.

그 때 요넬이 돌연 노인의 와락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이 바보야-!”

“……?”

“너 역시 살아있었지! 그렇지!”

이 말에 노인도 놀라고 아더도 눈을 치켜떴다.

그 사이 요넬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래! 그럴 거 같았어! 그 레오 바이에른이 지병 따위로 죽었을 리가 없지! 난 믿고 있었다고!”

노인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거 알고 있었소?”

“그럼 왜 알고 있지 왜 모르겠냐!”

요넬이 눈물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날 가장 행복하게 해주겠다 선언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렇게 죽을 리가 없잖아….”

노인, 레오 바이에른이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몸을 돌렸다.

그 후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비켜드려야겠네.”

지금은 자신의 시간이 아니다.

수십 년만에 재회한 저 두 사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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