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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60화 (260/265)

제260화

총성이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하이네스의 뾰족한 귀중 하나가 사라졌다.

천천히 입을 벌린 하이네스가 중얼거렸다.

‘총?’

착각이 아니다.

조금 전 울려퍼진 소음은 총성이고 그 총성과 함께 제 자랑 중 하나였던 귀가 사라졌다.

그랬기에 하이네스는 믿지 못했다.

그 총을 발사한 것이 무려 엘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종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여자가 쏘아낸 것이었으니.

그 때 하이네스의 손길에서 벗어난 지니가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이 총 쓰면 저주받는다는데….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 말과 함께 지니가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하이네스의 몸에서 핏줄기가 튀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구멍이 뻥 뚫렸다.

만약 본능적으로 몸을 틀지 않았더라면 심장이 꿰뚫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하이네스가 눈꼬리를 떨며 중얼거렸다.

“…당신 미쳤어요? 엘프가 왜 총을 쓰는 거죠?”

하이네스의 질문에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 쓰는 엘프 처음 봐?”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죠!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종족이 그런 흉측한 물건을 쓰는 겁니까!”

격앙된 하이네스의 외침에 지니가 피식 비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흉측한 정령을 다루는 엘프는 있어도 되고? 너무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이네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고했다.

“당장 그 총 내려놓으세요, 지니.”

“너나 저 끔찍한 흉물을 치워.”

두 엘프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쏘아져 나간 비스트의 탄알이 하이네스의 가슴팍을 노렸다.

허나 이번에는 먼저 몸을 굴러 피한 하이네스가 재빠르게 손짓했다.

[…!]

침묵하던 원시정령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떨림과 함께 원시 정령이 돌연 거체를 숙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눈을 치켜뜬 지니가 재빨리 몸을 굴렀다.

쾅-!

쏘아져 나간 주먹이 천 년간 쌓아올린 문명을 먼지로 만들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지하 바닥으로 떨어진 지니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죽을 뻔 했다.’

빈말이 아니라 조금만 늦게 반응했어도 몸이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몸을 일으킨 지니가 순간 멈칫했다.

“…뭐야 이게?”

어두운 지하실.

그곳에 웬 실험통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실험통 안에 갇힌 것은 놀랍게도 은빛 물결이었다.

위잉-!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그 은빛 물결은 거대한 실험통에서 끊임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자리 잡은 것은 인간들.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쥐죽은 듯이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그 상식에 어긋난 광경에 소름이 돋은 지니가 몸을 부르르 떨 때였다.

구멍이 난 어깨를 지혈하며 등장한 하이네스가 중얼거렸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지니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 색 원시정령의 머리 위에 올라탄 하이네스가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을 거짓으로 다스리는 자들의 비참한 결말… 인간들의 결말로 딱 어울리는 광경이지요.”

지니가 인상을 왈칵 구기며 물었다.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을 다 죽인 거야?”

하이네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기는 하지만.”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상태라고?”

“천사는 자신 날개를 빼앗은 인간들에게 분노했습니다. 그 원한을 천 년이나 묵힌 천사는 고심 끝에 인간들에게 합당한 엄벌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지니의 눈이 커졌다.

“합당한… 엄벌?”

“예. 천사는 제 육체를 인간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랬기에 그 고통을 똑같이 돌려주고자 생각했습니다.”

설명과 함께 하이네스가 거대한 실험통에 갇힌 은빛 물결을 가리켰다.

그 순간 지니는 저 은빛 물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설마 저게 저기 누운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하이네스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모든 생물은 세상에 순환됩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다시 새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순리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하이네스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영원한 고통… 예. 말 그대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빠지는 겁니다. 그게 천사가 인간들에게 내린 엄벌입니다.”

지니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 놈이 무슨 권리로 이 수많은 사람들을 그런 지옥에 빠트려-!”

하이네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천사가 인간을 지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천사가 인간을 지옥에 빠트리는 건 다른 이야기지.”

하이네스가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진짜 당신은… 하나부터 열까지, 저와 맞지 않군요.”

하이네스의 눈빛이 번뜩였다.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 백성이 되기 전 그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부터 뜯어고쳐야겠어요.”

이 말과 함께 거대한 원시정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정령의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기질의 덩어리가 흉측하게 꿈틀거리며 점차 거리를 좁혀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지니가 비스트를 꽉 움켜쥐었다.

‘…저 놈을 어떻게 쓰러트리지?’

정령을 못 쓰는 지금, 솔직히 말해 지니라는 엘프는 인간과 별다를바가 없었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면 평범한 인간보다 못한 수준이라 봐도 무방 할 정도였다.

엘프 특유의 날랜 발놀림이 있다고 한들 저런 괴물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깐.

‘남은 건 공자님의 권총인 비스트… 하지만 아무리 이 비스트라해도 저런 괴물에게 소용이 있을까?’

고민하던 지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스트의 탄환이 저 괴물을 꿰뚫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이네스. 저 여자를 직접 노리는 건데.’

그녀와의 거리를 좁힐 방법 또 한 떠오르지 않았다.

그 탓에 지니의 고민이 길어질 때였다.

손에 쥐고 있던 비스트에서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

눈을 치켜뜬 지니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비스트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로를 믿어요 지니.]

이 말에 지니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공… 자님?”

지니의 중얼거림에 비스트로부터 다시 한 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 아니, 엘프예요.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요.]

정신을 차린 지니가 다급히 소리쳤다.

“고,공자님 어떻게 지금 말을… 아니. 그것보다 저를 믿으라고요?”

[네. 그러다 보면 답이 있을 거에요.]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아니에요?”

아더 바이에른.

그의 목소리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때로는 뜬구름이라도 잡아야죠. 막다른 골목 길에 몰렸으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지니가 경악해 중얼거렸다.

“그게 지금 저한테 할 소리에요?”

[네. 그리고 이미 지니는 지푸라기를 잡고 있어요.]

“…?”

[느껴져요? 당신의 혈통이?]

지니의 눈이 커졌다.

내 혈통이 느껴지냐고?

그게 지금 무슨…

“……!”

지니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와 동시에 심장의 고동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 거친 고동소리와 함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생소한 감각이 전신을 뒤덮었다.

입을 벌려 경악한 지니가 중얼거렸다.

‘이건….’

핏줄.

놀랍게도 아더 바이에른 말대로 제 혈통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에 지니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때 아더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기억나요? 당신이 저희 집에 처음 왔을 때 노움과 실프… 그리고 엘퀴네스가 상급정령으로 진화했던 일요.]

지니의 눈이 커졌다.

“네, 네… 기억나요. 그 때… 저희 둘의 정령 모두가 바뀌었죠.”

[맞아요. 그 때 기적을 다시 한 번 일으킬 때가 되었어요.]

지니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그 때의… 기적이요?”

아더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의 선조가 함께 할 거예요, 지니. 그러니 저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주세요.]

“……!”

비스트의 떨림이 멈추었다.

그 순간 거칠게 뛰고 있던 지니의 고동 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두근두근!

이제는 귓가를 울릴 정도로 거친 고동 소리가 이내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지니의 눈앞에 흐릿한 잔상이 떠올랐다.

[왕이시여-! 어찌 저희를 버리십니까!]

그 잔상의 주인공은 엘프였다.

자신과 똑같은 뾰족한 귀를 가진 엘프.

그 엘프들 수십 명이 누군가를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 끝에 얻은 영생이…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그 절규에 치솟아 오르는 불길 너머.

거대한 권좌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대답했다.

[내가 살지.]

이 말에 지니의 눈이 커졌다.

그 권좌에 앉아있는 이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천 년을 산 엘프.

하이네스였기 때문이다.

[당신네들의 목숨으로 내가 살아… 그것이면 충분한 거 아닌가?]

하이네스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간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던 검은색 무언가가 움직였다.

콰직-!

정령이라 부를 수 없는 기괴한 존재.

그 존재가 절규하던 엘프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직 잡아먹히지 않은 엘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정령이라는 이름을 본딴 괴물은 결국 하이네스 앞에 있는 엘프들 전원을 먹어 치웠다.

그 장면을 지긋이 지켜보던 하이네스가 중얼거렸다.

[대의를 위해서네. 부디 이해해주길….]

이 말과 함께 하이네스가 권좌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불타오르던 궁전이 무너져 내렸다.

‘…….’

말없이 눈앞에서 펼쳐진 과거의 잔상을 지켜보던 지니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언제 왔는지 모를 수많은 엘프들이 보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지니가 천천히 질문을 던졌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이 말에 엘프들이 대답했다.

‘우리를 구원해주게. 그것이면 충분해.’

지니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좋네요. 단순명료해서. 그 제안… 받아들일게요.”

지니의 대답에 엘프들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지니의 몸에서 거친 빛이 터져 나왔다.

“……!”

눈을 치켜뜬 하이네스가 뒷걸음질 쳤다.

‘뭐지 저 빛은?’

눈이 멀 것만 같은 환한 빛이 순식간에 공간 전체를 감쌌다.

눈길을 좁힌 하이네스가 소름이 돋은 제 피부를 바라보았다.

뭔지 몰라도 저 빛은 위험하다.

온몸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눈빛을 번뜩인 하이네스가 명령했다.

“저 빛을 짓이겨버려-!”

그녀의 명령에 원시정령이 거대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뻗어나간 주먹이 빛과 충돌했다.

쾅-!

허나 그 무엇도 집어삼키는 원시정령의 주먹은 빛을 부수기는커녕 오히려 튕겨져 나가 버렸다.

그 예상치 못한 이변에 하이네스가 눈을 치켜뜬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이건 죽어간 엘프들의 몫.”

이 말과 함께 하이네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을 치켜뜬 하이네스가 제 왼쪽 뺨에 꽂힌 주먹을 바라보았다.

“이건 저기 있는 인간들의 몫!”

주먹이 다시 한번 꽂힌다.

이번에는 오른쪽 뺨이었다.

본능적으로 하이네스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쩍-!

다시 한번 주먹이 꽂히며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이네스가 기침을 하며 자리에 쓰러진 그 때 제 양쪽 뺨을 때린 주인공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지니… 데이븐?”

빛에 휩싸인 엘프를 바라보며 하이네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도 그럴 게 지니 데이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천 년 전 자신에게 죽은 백성들의 영혼.

그들의 기운이 놀랍게도 눈앞의 여자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 탓에 하이네스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며 질문했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뭔가요?”

지니가 천천히 대답했다.

“뭐긴 뭐야. 엘프지.”

이 말과 함께 지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원시정령을 집어삼켰다.

화악-!

빛에 삼켜진 원시정령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소멸 되고 말았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던 하이네스가 중얼거렸다.

‘엘프들은 마법을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저 빛의 정체는 정령.

그것도 원시정령보다 더 오래전 사라졌다 알려진 [빛의 정령]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저런 하등한 엘프가 자신도 불러내지 못한 빛의 정령을 다룬다 말인가?

인상을 왈칵 찌푸린 하이네스가 고성의 비명을 질렀다.

“네년!!! 정체가 뭐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하이네스가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숨기지 않으며 지니에게 달려들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거냐! 대답해라!! 정체가 무엇이냐!”

이 말에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말했잖아 엘프라고.”

대답과 함께 지니가 비스트를 치켜들었다.

지니를 향해 달려들던 하이네스가 그 묵색 권총의 등장에 움찔 몸을 떨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탕-!

울려 퍼지는 총성과 함께 하이네스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잠시 입을 뻐끔거린 하이네스가 밀랍인형마냥 스르륵 바닥으로 엎어졌다.

천 년을 산 것치고 볼품없는 최후를 맞이한 하이네스를 향해 지니가 중얼거렸다.

“물론 조금 다른 엘프긴 하지. 당신 같은 천 년전 구닥다리 엘프가 아니란 현 시대의 세련된 엘프니깐.”

이 말과 함께 빛이 폭발하며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흐릿한 잔상을 통해 지켜보던 두 천사가 고개를 돌렸다.

“…더 준비한 거 없으시죠 마드리드?”

천사, 아더 바이에른이 빙그레 웃었다.

“없으면 곱게 항복하세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종막.

마지막 장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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