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마드리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입을 틀어막지 않으면 비명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게 대체 뭐란… 말인가.’
제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빛은 그가 본 그 어떠한 빛보다 찬란했다.
그 빛을 뿜어내는 날개는 그 어떤 성물보다 고귀했다.
그랬기에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한낱 인간이, 아무리 바이에른의 핏줄을 이어받았다 해도 저런 날개와 빛을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탓에 마드리드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바이에른인가?”
이 말에 날개와 빛을 두른 인간.
아더 바이에른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 사이 마드리드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인간이 그런 날개와 빛을 가지는 건 말이 안 된다… 너는 바이에른인가?”
아더의 커진 눈이 점점 작아졌다.
대신 눈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 속에서 아더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바이에른이긴 하죠.”
“…?”
“아더 바이에른. 그게 제 이름이니까요.”
대답과 함께 아더가 검을 휘둘렀다.
눈을 치켜뜬 마드리드가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화악-!
퍼져나간 파장이 마드리드의 기적과 맞부딪쳤다.
그 격렬한 힘 싸움 속에서 마드리드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내 기적이 밀려?’
또 다시 말이 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이 세상의 진리마저 속일 수 있는 기적이 고작 칼자루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혹시 내가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이곳이 기적이 통용되는 세상이 아니라 그런 것일까?
수많은 의문이 마드리드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지워졌다.
허나 그 상념은 곧 깨지고 말았다.
“한눈을 팔아요, 지금?”
아더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흠칫 놀란 마드리드가 날갯짓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휘둘러진 아더의 검이었다.
촤악-!
흩날리는 달빛이 마드리드의 가슴팍을 정교하게 베어냈다.
그 순간 느껴지는 고통에 마드리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나 아더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촤악-!
다시 한번 검이 휘둘러지고 마드리드의 가슴 팍에 또 다른 검흔이 새겨졌다.
피를 왈칵 토한 마드리드가 다급히 손짓했다.
그 순간 멈추었던 기적이 재현되었다.
확-!
공간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벽이 튀어나왔다.
그 벽이 순식간에 아더의 주위를 겹겹이 감쌌다.
잠시 숨을 고른 마드리드가 재빨리 그 벽을 압축시켰다.
수욱-!
벽들이 살아 움직이며 순식간에 작은 원이 된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저 압력을 이기지 못해 폭사 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탓에 마드리드의 눈빛이 반짝인 순간이었다.
거대한 화염이 솟구쳐오른다.
화악-!
그 화염이 원이 되던 벽을 단번에 녹여버렸다.
입을 벌린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아, 아더 바이에른이 마법을 쓴다고?’
허나 깊이 고민할 수 없었다.
온몸에 화염을 두른 아더 바이에른이 또다시 검을 휘둘러왔기 때문이었다.
표정을 일그러트린 마드리드가 다시 한번 손짓했다.
화악-!
기적이 발현되며 아더의 몸 주위로 한기가 깃든다.
그 한기는 곧 아더의 몸 주위에 둘러진 타오르던 불꽃을 잠재워버렸다.
그뿐만이 아닌 두 날개와 함께 그의 신체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더 바이에른이 순식간에 냉동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탓에 마드리드의 눈빛에 약간의 기대감이 어렸다.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의 상태를 확실히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작스러운 전류가 아더 바이에른의 몸에서 터져나왔다.
콰직.
그 전류가 주변의 온도를 뒤바꾸어버렸다.
동시에 얼어붙었던 아더 바이에른의 두 날개가 다시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 광경에 눈을 치켜뜬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내… 기적을 저렇게 쉽게 부숴버린다고?”
어떻게?
아더 바이에른은 마법을 쓰지 못하던 천사 아니던가?
그런 천사가 어떻게 갑자기 자신의 기적과 맞먹는 마법을 쓴단 말인가?
결국 참지 못한 마드리드가 버럭 소리쳤다.
“아더 바이에른-! 네 놈! 어떻게 마법을 쓰는 것이냐!”
마드리드를 향해 달려가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이요?”
“그래! 기적을 다루지 못하던 네 놈이 어떻게 기적을 다루는 것이냐!”
마드리드의 외침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죄송한데, 이건 기적이 아니에요.”
마드리드의 눈이 커졌다.
“뭐? 기적이 아니라고?”
“네. 이건 기적이 아니라 혈통이에요.”
혈통?
지금 제 기적을 막는 이 힘이 마법이 아니라 혈통이라고?
그 속에서 아더의 검이 마드리드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천년 전 당신에게 죽어간 이들이 보내준 혈통.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네.”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시간을 뛰어넘는 기적.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 순간 핏줄기가 솟구쳤다.
화악-!
또다시 가슴팍에 검흔이 새겨진 마드리드의 핏줄기였다.
그 피를 나란히 흠뻑 뒤집어 쓴 아더와 마드리드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묘한 침묵 속에서 마드리드가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그 하등한 놈들의 힘이 내 기적을 막았다는 거냐?”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하등한 놈들에게 당해보니 무슨 기분이에요?”
마드리드가 입을 다물었다.
‘하등한 놈들에게 당해보니 무슨 기분이냐고?’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고작 이런 놈들에게 자신의 새 육체가 망가진 것도.
천 년을 기다려 다시 날개를 얻은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는 것에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마드리드는 그 분노를 참지 않았다.
불쑥 손을 뻗어 아더의 멱살을 쥔 마드리드가 이를 갈았다.
“아더 바이에른… 여기서 날 죽인다고 모든 게 끝날 거라 생각하나?”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어라? 당신이 모든 일의 흉계가 아니었어요?”
“그래… 내가 이 모든 일을 저지른 시작점이지. 그런 내가 고작 이런 걸로 죽음을 맞이할 거로 보이나?”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의 날개가 점점 변한다.
눈부신 순백색의 색에서 저 밤하늘보다 짙은 검은 색으로.
그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가 낮게 중얼거렸다.
‘진짜 악마네.’
지금의 마드리드는 더 이상 천사가 아니었다.
제 욕망에 충실한 악마.
세상을 어지럽히고 혼란에 빠트리는, 그 신화 속의 악마와 똑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지금쯤 내 명령을 따라 북부로 날아간 괴물이 모든 걸 파괴 시킬 것이다. 네 친구도 가족도… 그리고 너와 관련된 모두를 말이다.”
이 말과 함께 악마가 눈빛을 번뜩였다.
“그뿐일까? 내가 죽으면 수도에 잠든 인간들의 영혼은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 번뜩임 속에서 무언가 피어올랐다.
잔상이었다.
그리고 그 잔상이 무언가를 보여준다.
격전을 벌이고 있는 하트와 어둠에 잠긴 수도의 정경이었다.
“…!”
눈을 치켜뜬 아더의 검끝이 떨렸다.
악마와 드래곤.
그 드래곤에 맞서 싸우는 기사단과 병사들.
그 처절한 전투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삶을 거두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죽음에 이른 자들 중에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가 있었다.
“…카셀.”
아더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카셀 브리드가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뻥 뚫린 가슴과 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
이미 카셀 브리드란 인간의 시간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셀이… 죽는다고?’
생각과 함께 아더의 칼끝이 다시 한번 떨렸다.
그 망설임을 마드리드는 놓치지 않았다.
“내 명령이라면 지금이라도 저 칼잡이를 살릴 수 있다, 아더 바이에른….”
그 속삭임은 무척이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칼을 거두어라. 날 죽여봤자 너 혼자 남은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세상을 구하는 것도 저들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속에서 마드리드의 속삭임은 계속해서 아더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대로 검을 거두면 카셀이 살아난다.
하나뿐인 친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것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더는 쉽사리 뿌리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악마의 속삭임이네.’
왜 인간이 악마들에게 유혹을 당하는지, 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지, 그 역사 속 불변의 진리를 깨달은 아더가 낮은 탄식을 터트릴 때였다.
잔상 속에서 카셀과 검을 맞대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어째서… 넌 쓰러지지 않는 거지?]
그 사내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당황.
그리고 짜증이 섞여 있었다.
[카셀 브리드.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냐? 그런 몸뚱이로 어떻게 내 검을 받아내는 것이냐?]
거친 숨을 몰아내쉬던 카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속했다….]
[뭐? 약속?]
[그래… 나의 하나 뿐인 주군… 그 주군을 살리겠다 약속했다. 그리고….]
말을 흐린 카셀이 빙그레 웃었다.
그 순간 아더의 눈도 치켜떠졌다.
[나의 하나 뿐인 친구와도 약속을 했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그와 동시에 카셀의 검이 움직였다.
그 검무에 맞서 조금 전 질문했던 사내도 검을 움직였다.
쾅-!
두 개의 검이 맞닿는다.
그와 동시에 터져나온 빛줄기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보셨죠?”
이 말과 함께 아더의 검끝에서 흔들림이 시라졌다.
“제 친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 결투에서 반드시 승리 할 거예요.”
마드리드가 비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몸뚱이로 할리버를 이긴다고? 그게 말이나 되느냐 아들아?”
마드리드가 다시 낮게 속삭였다.
“할리버는 무려 500년을 살아온 칼잡이다 아들아. 그는 소드마스터를 사냥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의 극치에 다다른자. 이 세상 그 누구도 칼로서 그를 이길 수 없다.”
아더의 눈길이 점점 아래로 향한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 마드리드가 보였다.
그런 그가 확신을 담아 선언한다.
“너의 친구는 할리버의 검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죽겠지. 그렇게 되면 너는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는 지옥 속에서 영원을 살아갈 것이다.”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요. 저 결투에서 이기는 건 카셀이에요.”
마드리드가 다시 한 번 비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확신하느냐? 저런 보잘 것 없는 칼잡이가 어떻게 할리버를 이긴다 말이냐?”
아더가 흔들림없이 대답했다.
“라이벌이니깐요.”
“…라이벌?”
“네. 라이벌.”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저를 칼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라이벌… 그러니 반드시 이길 거예요.”
아더의 목소리에 확신이 담기기 시작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은 강한 확신이.
“카셀을 검으로 꺾을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어요. 그게 설령 500년을 살아온 칼잡이라 하더라도.”
* * *
카셀과 할리버가 검을 나눈다.
할리버는 아래에서 카셀은 위에서 검을 휘둘렀다.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개의 검에서 거친 불똥이 튀었다.
그와 동시에 두 칼잡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익-!
카셀이 지르면 할리버가 막아내고, 할리버가 휘두르면 카셀이 막아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그 검무 속에서 할리버가 입술을 깨물었다.
‘점점 빨라진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이런 몸뚱이로 이런 검무를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저런 몸뚱이로 어떻게 점점 더 빠른 일격을 내지를 수 있단 말인가?
할리버의 상식으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이건 그 어떤 기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카셀의 검이 크게 휘둘러진다.
“…!”
눈을 치켜뜬 할리버가 황급히 막아냈다.
허나 짓누르는 힘을 못 이겨 한 발자국 밀려나고 말았다.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뒤로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본 할리버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카셀은 그런 할리버의 흔들림을 보지 못했다.
‘보인다…. 무언가.’
할리버와의 검무가 시작된 뒤로 흐릿한 무언가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고 싶어도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인간인 것 같으면서도 동물 같았고 동물 같았으면서도 검을 떠올리게 했다.
그 탓에 카셀은 그 무언가를 쫓아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 일격을 할리버가 버텨낸다.
챙-!
허나 버텨내기만 했을 뿐 이겨내지는 못했다.
할리버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카셀의 검은 자비가 없었다.
조금 더 무겁고 빠르게.
빠르면서도 더 유연하게.
일정한 구도를 갖추지 않은 채 휘날리는 검격들은 점점 형태를 벗어나 완전한 선에 이르렀다.
그 아름다운 은빛의 줄기를 앞에서 지켜보던 할리버의 눈이 커졌다.
‘…이건 뭐지?’
선이 된 카셀의 검이 보이지 않는다.
은빛의 줄기로 된 것은 그저 이 세상에 하나의 형태로만 남아있을 뿐.
들고 있는 검으로 막아낼 수도 쳐낼 수도 없었다.
그 탓에 할리버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이건 그가 500년 동안 줄곧 검을 휘두르며 꿈꿔왔던 궁극의 무(武)의 형태가 아니던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검… 그랬기에 진정한 무에 다다른 검.’
생각과 함께 할리버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조소를 내비쳤다.
“내가 아니라… 고작 이런 다 죽어가는 놈이 그 경지를 밟는다고?”
이 말과 함께 카셀의 두 눈이 커졌다.
흐릿하던 무언가가 점점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카셀의 입가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카셀-!”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놀랍게도 카셀도 익히 아는 누군가였다.
“반드시 이겨요! 그리고 저에게 달려와 주세요!”
아이린 바이에른.
자신의 뒤편에 서 있던 그녀가 어느 사이엔가 할리버의 등 뒤로 다가가 손을 흔들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카셀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아….’
줄곧 도와주고 있었구나.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를 기다려 주고 있었구나.
생각과 함께 카셀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카셀의 검이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아주 정직한 일격.
하지만 할리버는 그 검에 반응하지 못했다.
여태 수많은 검을 마주한 그가 정작 가장 기초적인 베기에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 속에서 카셀의 검이 그의 목에 닿았다.
촤악-!
흩뿌려지는 피와 함께 할리버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그와 동시에 흩뿌려지는 그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카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달려가겠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