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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55화 (255/265)

제255화

시체가 수군거린다.

[마드리드.]

[악마 마드리드다.]

[우리를 잔혹하게 살인한 악마. 그가 여기에 있어.]

놀랍게도 이 속삭임은 한 명이 아니었다.

수 십, 어쩌면 수백이 될지 모르는 목소리가 한데 엉켜 들려온 울림이었다.

그 기이한 합창에 마드리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누구냐! 누가 날 보고 이리 수군거리는 것이냐!”

이 말에 울림이 대답했다.

[우리를 잊은 것이냐?]

[네 손에 죽어간 우리들을?]

[용서 못한다. 너만큼은 용서 못한다 악마 마드리드야.]

그 순간 허공에 떠다니던 시체들이 들썩였다.

“오.”

탄성을 내지른 아더가 입을 벌렸다.

들썩이긴 시작한 시체들이 놀랍게도 형체를 갖추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시체들 중에는 놀랍게도 아더가 처음 보는 생물, 정확히는 종족들이 섞여 있었다.

“저 녹색 괴물은 뭐지? 고블린을 닮았는데 고블린보다 덩치가 큰데?”

흰수염의 노예인 고블린.

키가 작고 녹색 피부를 가진 그 난쟁이는 교활하고 돈을 탐내기로 유명한 종족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 녹색 괴물이 그 고블린과 기묘하게도 닮아 있었다.

체구나 크기 덩치.

그 모든 게 차원히 다른 괴물임에도 말이다.

그 사실에 아더가 눈빛을 반짝인 그 때 굳게 닫혀 있던 괴물의 입이 열렸다.

[네 놈의 머리통을 부셔주마. 이 악마야.]

이 말과 함께 녹색 괴물이 포효를 시작했다.

그 엄청난 외침에 아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이 포효를 끝마친 녹색 괴물이 마드리드를 향해 뛰쳐들었다.

그 위협적인 돌격을, 말없이 지켜보던 마드리드가 조소를 터트렸다.

“…네 놈. 그 녀석이군.”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녹색 괴물의 주먹을 바이에른의 검으로 막아냈다.

“천 년 전 내 손에 의해 멸종한 트롤. 그 악마를 닮은 끔찍한 괴물아니더냐?”

녹색 괴물, 트롤이 거칠게 대답했다.

[천 년전에는 우리가 멸족을 당하였지만, 이번에는 네가 당할 것이다 이 악마야!]

분노가 뒤섞인 외침과 함께 트롤이 엄청난 힘으로 마드리드를 몰아붙였다.

주르륵 뒤로 밀려난 마드리드가 옅은 신음을 흘린 그 때 아더가 놀라 중얼거렸다.

“어? 저 괴물이… 트롤이라고?”

익숙한 단어다.

아니, 익숙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때 제 목숨을 위협했던 사내이자 육체적인 힘만 놓고 봤을 때는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야수.

‘테이큰. 그 남자의 혈통이 트롤이었잖아?’

그런데 놀랍게도 그 혈통의 원주인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트롤이 마드리드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큭-!”

신음을 내뱉은 마드리드가 무릎을 살며시 꿇었다.

트롤의 괴력에 못이겨 굽혀진 무릎이었다.

그 광경에 아더가 감탄을 하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저 천사가 힘에 굴복당하다니.”

그러는 한 편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이 공간, 정확히는 비스트로 인해 생겨난 이 또 다른 세상에 왜 잊혀진 종족인 트롤이 있는 것일까?

그 때 또 다른 울림이 울려퍼졌다.

[크오오오-!]

이번에도 깜짝 놀란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트롤 못지 않은 거대한 거인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응? 저건 또 뭐야?”

갑자기 세상을 진동시키며 달음박질을 하는 거인은 놀랍게도 트롤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거인은 트롤과 마찬가지로 마드리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엄청난 소음과 함께 마드리드의 신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입술을 살며신 깨문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오우거. 신이 잘못만든 피조물도 여기 있었구나.”

이 말에 아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우거? 저게 저 괴물의 이름인가?

그런데 마드리드는 저 괴물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걸까?

잠시 고민한 아더는 어렵지 않게 그 답을 떠올렸다.

‘저 괴물도 마드리드가 멸종시킨 혈통의 원주인이구나.’

여기까지 되자 아더는 깨달을 수 있었다.

[마드리드….]

[널 죽이겠다.]

[우리를 죽인 너를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마.]

마드리드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저 수많은 시체들.

저 시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이다.

“저 시체들은… 천 년전 사라진 종족들이야.”

천사 마드리드.

그의 손에 의해 이 대륙에서는 더이 상 볼 수 없는 혈통들의 원주인들이 놀랍게도 어두운 어둠에 방치 되어 있었다.

* * *

트롤과 오우거.

그 두 종족에 이어 수많은 종족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크와와왁-!]

괴성을 내지르는 웨어울프.

창을 치켜든 노울.

그 뿐만이 아닌 인간들도 개중에는 섞여 있었다.

[악마! 당신이 우리 아이와 가족! 그리고 부족을 멸족시켰어요!]

그 인간은 특이하게도 전신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인간은 놀랍게도 번개를 쥐고 있었다.

마법보다 더 특별해 보이는 그 기이한 현상에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쥴리. 혹시 그 아이의 선조인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쥴리의 혈통이 눈을 떴다.

지이잉-!

쥴리가 벼락이 되었을 때보다 훨씬 선명하게 번개의 혈통이 느껴졌다.

그 신비로운 감각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내질렀을 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치며 깨어난 혈통들의 주인들을 휩쓸었다.

이에 깜짝 놀란 아더가 고개를 돌리니, 피투성이가 된 천사가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말이다!”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기적이 발현되며 마드리드를 향해 덤벼드는 수많은 혈통의 주인.

그리고 지금은 추방자가 되어버린 시체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바이에른은 내게 말했다! 이 수많은 종족들을 이대로 대륙에 쫓아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자신이 따로 이들을 모아 봉인시키겠다고!”

재가 되어버린 추방자들이 아더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 속에서 마드리드가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그 흔적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모여 있었구나! 대륙을 좀 먹던 이 간악한 괴물들이!”

또 다시 추방자들이 재가 되어 버렸다.

이곳이 마법이 발현되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인 걸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힘… 기적.’

그리고 지금, 마드리드는 그 진짜 기적을 부리고 있었다.

이에 아직 재가 되지 않은 추방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중얼거렸다.

[악마다….]

[우리를 죽인 악마가 다시 재림했다….]

[우리는 죽어서도 또 다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단 말인가?]

그 피어나는 공포 속에서 추방자들이 주춤 물러났다.

허나 마드리드는 그 뒷걸음질을 봐주지 않았다.

그는 쉼없이 손짓하며 기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기적이 중첩될수록 수많은 추방자들이 또 다시 죽음을 맞이해 재로 돌아갔다.

그 광경을 침묵한 채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비스트… 내 권총이 사실 천 년 전 대륙에 쫓겨난 추방자들의 무덤이었어.’

그리고 그 무덤을 지은 주인이 마드리드의 말에 의하면 바이에른이었다.

자신의 선조.

그리고 이 핏줄의 시초가 되는 그 천사 바이에른이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바이에른의 혈손이 바이에른이 지은 무덤을 사실 지키고 있었다.

묘한 운명과 예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탓일까.

아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바이에른의 혈통은 또 다른 혈통을 흡수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여기에는 그 혈통이 널려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 아닌 수십 수백 개의 혈통이.

그 순간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굴을 뵌적 없는 선조님… 고마워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당신의 먼 후손이 당신의 배려 덕에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짧은 기도문을 끝마친 아더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작은 광채가 눈앞에서 피어올랐다.

그 광채가 무엇인지는 아더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그 광채 속에 있는 누군가가 아주 장난기 섞인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는 것을.

그 사실에 아더도 즐거운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누군가를 향해 다가갔다.

마드리드의 마법에 죽어가던 트롤이었다.

[…천사?]

트롤이 움찔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아더가 인자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네. 당신을 대리러 온 천사에요. 그러니 트롤 씨?”

천 년전 대륙에서 쫓겨난 추방자.

동시에 대륙의 그린스킨 종족의 우두머리로서 군림한 트롤이 눈을 치켜떴다.

“당신의 피를 먹어도 될까요? 아주 많이는 아니고 한 모금이면 충분해요.”

* * *

트롤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내 피를… 먹고 싶다고?]

“네. 혹시 안 되나요?”

아더의 말에 트롤이 거칠게 이를 갈았다.

[…입 닥쳐라 이 악마야!]

아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제가 악마로 보이나요?”

[그 날개! 그 날개는 악마의 상징이다!]

“오… 그래요? 하지만 전 악마가 아닌 걸요?”

트롤이 재가 되어가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소리쳤다.

[거짓말 마라! 네 마법으로 우리를 찣어죽일 순 있어도 내 눈마저 속이지는 못한다! 너는 악마다!]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흠… 당신의 먼 후손도 대화가 안 통했는데, 당신도 마찬가지네요.”

이 말에 살기를 내뿜던 트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내… 후손이 있다고?]

“네. 테이큰 씨라고. 아주 멋진 전사가 있죠. 북부 설원에서 온 야만인인데 힘이 아주 장난이 아니에요.”

트롤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거짓말 마라. 우리 부족은 멸망당했다. 바로 너희들의 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멸망은 아닌 것 같은데요? 당신의 후손은 분명 이 세상에 살아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제 주인을 섬기며.”

아더의 설명에 트롤이 입을 다물었다.

[…….]

그는 아스라져 가는 육신의 고통을 느끼며 제 앞에 선 악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새하얀 날개와 대비되는 검은 머리칼.

그리고 맑게 빛나는 눈동자.

이제와서 보니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악마와 닮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우면서도 보고 싶은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외모였다.

그 탓에 놀란 트롤이 중얼거렸다.

[너… 바이에른이냐?]

아더가 씩 미소지었다.

“바이에른은 아니고, 바이에른의 먼 후손이에요.”

[후손? 그 친구의 후손이라고?]

“어라? 제 선조님하고 친구 먹은 사이였어요?”

[…….]

트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한 채 고민에 잠겼다.

그 모습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인 그 때, 트롤이 중얼거렸다.

[그 친구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그러니 언젠가 사죄를 하겠다고.]

트롤이 고개를 들어 아더를 바라보았다.

[그 사죄가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그러니 바이에른의 후손. 네가 대답해라.]

아더의 눈이 커졌다.

“선조님이 빚진 걸 왜 제가 갚아요?”

[싫다는 거냐?]

“싫은 건 아닌데 음… 갑작스러워서 말이죠.”

트롤이 거친 웃음을 터트렸다.

[거창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네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면 된다.]

이 말에 아더가 고민에 잠겼다.

‘흠… 해줄 수 있는 거라니. 도대체 이 시체분들에게 뭘 해줘야 하지?’

천사가 되었다지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랬기에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이 시체인지 영혼인지 모를 트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탓에 잠시 고민한 아더가 곧 눈을 끔뻑였다.

“오. 뭔가 생각난 게 있어요.”

트롤이 눈빛을 반짝였다.

[말해보거라. 그게 무엇인지.]

“여기서 대리고 나가 줄게요.”

[…?]

“여기 오랫동안 갇혀 지냈잖아요. 그러니 제가 대리고 나가 줄게요. 천 년이나 한 곳에 갇혀 있었으니 많이 답답하셨을 거 아니에요?”

트롤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게 네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달리 이것 밖에 없는데 마음에 안 드시나요?”

트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금 전 아더와 마찬가지로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한참을 골똘히 궁리하던 트롤이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거면 충분 할 것 같군….]

말을 흐린 트롤이 아더를 향해 말했다.

[대신 확실히 약속해라. 여기서 우리를 빠져나가게 해주겠다고.]

아더가 씩 미소지었다.

“약속드리죠. 대신 당신의 피를 좀 섭취해야 되요. 많이는 아니고 한 모금 정도. 괜찮으시죠?”

트롤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썩은 시체이기에 피가 흐리지 않는다.]

“……?”

[천 년이나 된 시체에 어찌 피가 흐른다 말이냐?]

이 말에 눈을 끔뻑이던 아더가 뒤늦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천 년이나 된 시체에 어찌 피가 흐른다 말인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깨달은 아더가 신음을 흘렸다.

‘이럼 큰일인데… 피가 흐르지 않으면 혈통을 흡수 할 수가 없어.’

이러면 살점이라도 먹어야 하나?

하지만 천 년이나 된 살점을 먹고 탈이 안날 수 있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아더가 다시 고민에 잠길 때였다.

그 때 트롤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걱정마라. 피 대신 조금 더 좋은 게 있으니깐.]

이 말과 함께 트롤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아더의 입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

깜짝 놀란 아더가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트롤의 이마와 입술이 맞닿았다.

그 물컹거리는 불쾌한 감촉에 아더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른 그 때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화악-!

트롤의 시체가 사라진다.

대신 빛으로 변한 알갱이가 아더의 몸 주위로 흩뿌려졌다.

그 이변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 그 때 빛의 알갱이가 된 트롤이 속삭였다.

[너와 함께 하겠다. 내 친구의 후손아.]

이 말과 함께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너는 우리와 내 친구와 맺었던 약조를 지켜라.]

나약하고 힘이 없던 시절.

자신을 지켜주고 한 때 위협했던 최강의 혈통.

[억울하게 이 세상에서 추방당한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놓거라. 그것이 너에게 힘을 빌려주는 조건이다. 천사, 아더 바이에른.]

트롤.

그 그리운 감각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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