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54화 (254/265)

제254화

지니가 움찔 몸을 떨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두 귀가 떨렸다.

쫑긋 솟은 두 귀가 갑작스레 들려온 폭음에 찌르르 반응한 것이다.

자연스레 고개를 든 지니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갈라진 하늘 사이에서 누군가의 흔적이 옅게 느껴졌다.

“공자… 님?”

이 말에 옆에 있던 엘퀴네스가 눈을 치켜떴다.

[아더의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녀의 말에 반대편에 있던 노움도 놀라 입을 벌렸다.

[어… 진짜인데? 아더의 기운이 사라졌어!]

정신을 차린 지니가 표정을 굳혔다.

‘…갑자기 폭음이 들리고 정령들이 공자님의 기운이 사라졌다 말하고 있어.’

그렇다는 건 지금쯤 천사, 마드리드와 싸우고 있는 아더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공자님…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정령들이 주인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대게 해당 계약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만 정령들이 그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그 탓에 지니의 표정이 어두워진 그때 엘퀴네스가 중얼거렸다.

[… 괜찮을 거예요. 아더잖아요?]

이 말과 함께 엘퀴네스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아더라면… 또 기적을 보여 줄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해야 돼요, 지니.]

옆에 있던 노움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그 미친놈이 이리 쉽게 죽을 리도 없어.]

두 정령의 말에 지니가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공자님을 믿어야 해.’

어차피 눈앞에 있는 천 년을 산 하이엘프.

하이네스가 있는 한 섣불리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두 정령의 말대로 아더를 믿고서 흔들림 없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맞았다.

생각을 정리한 지니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엘퀴네스를 향해 질문했다.

“저런 정령… 혹시 본 적 있어요, 엘퀴네스?”

이 말과 함께 지니가 하이네스의 몸 주변을 돌고 있는 검은 색 물질을 가리켰다.

“형체도 갖추고 있지 않고 색도 검은색인데…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요. 혹시 제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죠 엘퀴네스?”

엘퀴네스가 시선을 좁히며 대답했다.

[…아뇨. 정령은 일단 맞아요, 지니.]

지니의 눈이 커졌다.

“저런 게 정령이라고요?”

[네. 물론 지금은 사라져서 없어진… 아주 옛날의 정령이지만.]

옛날의 정령?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린 그때 하이네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물의 정령왕이라니. 이런 귀하신 분이 직접 행차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엘퀴네스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당신이 저 정령의 주인인가요?]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어디서 저 정령과 계약한 거죠? 제가 알기론 이 정령은 현시대에 존재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하이네스가 입꼬리를 이죽거렸다.

“현시대에 없다라…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년 전에 이 정령과 계약을 했죠.”

이 말과 함께 하이네스가 손을 뻗었다.

깜짝 놀란 지니가 뒤로 물러나고 엘퀴네스가 두 손을 모았다.

화악-!

그녀의 두 손으로부터 솟구쳐 오른 물기둥이 지니를 덮쳐오는 검은색 물질을 막아냈다.

그 광경에 지니가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했다.

‘나쁘지 않아! 저 기괴한 존재도 엘퀴네스의 방어벽은 못 뚫어!’

무려 정령들의 '왕'이란 호칭을 단 엘퀴네스다.

그런 그녀가 함께 있는 한 이 세상 그 어떤 정령도 지금의 자신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 생각과 함께 지니가 실프와 노움을 힘을 빌려 하이네스를 공격하려 할 때였다.

…콰직!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금이 간 엘퀴네스의 물의 장막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그 광경에 지니가 놀라 입을 벌리고 엘퀴네스가 신음을 흘렸다.

[피해요 지니!]

그 외침에 지니가 몸을 굴렀고 실프와 노움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지니를 향해 쇄도하는 검은 색 물질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섬광처럼 솟구친 검은 색 물질이 지니의 어깨에 상처를 냈다.

“큭!”

신음을 내뱉은 지니가 이를 갈며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신체 중심이 갑자기 기우뚱거리며 통제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 탓에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지니가 당황해 소리쳤다.

“뭐, 뭐? 몸이 왜 갑자기….”

옆에 있던 엘퀴네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노움, 실프! 지니를 데리고 도망쳐요!]

그녀의 말에 지니가 눈을 치켜뜬 채 질문했다.

“도망이라니요, 엘퀴네스! 같이 싸워야죠!”

[안 돼요! 저희는 저 존재를 이기지 못해요!]

“…?”

지니의 표정에 당황이 어렸다.

정령들의 왕인 엘퀴네스의 입에서 싸우기도 전에 패배 선언이 나오다니?

그때 하이네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물의 정령왕이라 그런지 눈치는 빠르시네요. 제가 섬기는 신의 정체를 단번에 꿰뚫으시고.”

지니의 눈이 커졌다.

신? 저 검은 색 물질이 신이라고?

‘어떻게 저런 게 신일 수가 있지?’

그때 엘퀴네스가 거친 목소리로 다그쳤다.

[어서 도망쳐요! 저 검은 색 물질은 암흑의 정령!]

그 외침과 함께 하이네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색 물질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모든 정령들의 시초… 그리고 한때 세상을 집어삼키려 했던 괴물이에요!]

잠들어 있던 고대의 망령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마드리드의 눈이 커졌다.

‘여긴 어디지?’

세상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조금 전 있던 수도도 자신의 마법으로 인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이곳의 어둠은 뭔가 더 특별했다.

무겁고 낮게 가라앉은 어둠이 흡사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을 떠다니는 것은 시체.

그 시체에는 인간도 있었고 짐승도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멸종시켰던 종족들도 섞여 있었다.

그 기이한 광경을 마드리드가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오. 뭔가 아는 얼굴이 지나가는데요?”

조금 전 스스로의 손으로 목숨을 끊은 아더 바이에른이었다.

“비스트를 처음 쓰고서 죽인… 광대분이 여기에 있었군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드리드가 눈길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아들. 여기는 어디지?”

아더가 턱을 쓰다듬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마드리드를 바라봤다.

“이곳이요? 흠… 간단하게 설명해드리자면….”

말을 흐린 아더가 불쑥 검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마드리드가 뒤로 물러났다.

허나 그 물러섬을 봐주지 않고 아더가 재빠르게 접근했다.

혀를 찬 마드리드가 손을 휘저었다.

솨악-!

용언을 뛰어넘는 기적, 그 자체의 마법이 발동되며 어디선가 생겨난 사슬이 아더를 옭아맸다.

그 속에서 마드리드가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아더의 신체를 옭아맨 사슬이 동서남북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사지가 속박당한 아더가 신음을 내뱉었다.

허나 곧 침착히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사슬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 모습에 마드리드가 코웃음을 쳤다.

“고작 그런 걸로 내 사슬…!”

마드리드의 비웃음이 끊겼다.

그와 동시에 그의 표정에 놀람이 어렸다.

검강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은 제 마법이 아더 바이에른의 가벼운 몸동작으로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뭐지? 내가 실수한 건가?’

아더 바이에른이 제 마법을 저렇게 쉽게 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표정을 굳힌 마드리드가 조금 전보다 더 섬세히 마법을 발동시켰다.

화륵-!

기이한 푸른 불덩이가 아더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아더는 그 불덩이를 보지도 않은 채 앞을 향해 질주했다.

그 무모한 돌격에 마드리드가 소리쳤다.

“학습능력이 없구나, 아들아! 내 불꽃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손짓했다.

허공에서 나타난 불덩이가 아더의 등 뒤에 정확히 명중했다.

눈빛을 빛낸 마드리드가 아더 바이에른의 불타오르길 기다릴 때였다.

아더의 등 뒤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제 명령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입을 벌려 경악한 마드리드가 주춤 물러났다.

뭐지? 내가 잘못 본 건가?

왜 내 마법이 조금 전부터 멋대로 사라지는 거지?

허나 깊이 고민할 수 없었다.

어느 사이엔가 거리를 좁힌 아더 바이에른이 검을 찔러 넣어왔기 때문이다.

상념을 버린 마드리드가 손에 들린 바이에른의 검으로 아더의 검을 쳐냈다.

챙-!

거친 소리와 함께 두 천사가 검을 맞대었다.

그와 동시에 가까워진 거리 속에서 아더가 씩 미소 지었다.

“드디어 당신에게 닿았네요, 마드리드.”

마드리드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무슨 수술을 벌인 거냐?”

“수술이요?”

“그래! 이 공간이 대체 뭐길래 내 마법을 방해하는 거지!”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설명을 안 해드렸네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마드리드의 검을 쳐냈다.

그 반동으로 마드리드의 중심이 무너진 그때 아더가 다시 한번 쇄도해왔다.

그 위협적인 돌격에 마드리드가 반사적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아더는 그 도주마저 예상했다는 듯 똑같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번들거리는 검을 치켜들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디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말을 흐린 아더가 검을 내질렀다.

마드리드가 그 검을 피해내며 바이에른의 검을 아더의 정수리를 향해 찔러넣었다.

허나 고개를 트는 것만으로 그 일격을 피해버린 아더가 불쑥 마드리드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곳이라면 당신의 그 성가신 마법… 정확히는 '기적'이 발현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쯤 설명하면 이해가 됐을까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마드리드의 콧등을 향해 박치기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드리드의 코뼈가 부서졌다.

허나 아픔을 느낄 틈은 없었다.

밑에서부터 치고 들어오는 아더 바이에른의 검이 심장을 노렸기 때문이다.

결국 추하게 몸을 비트는 것으로 그 일격을 피해낸 마드리드가 검을 반원으로 휘둘렀다.

그 일격을 훌쩍 뛰어오르는 것을 아더가 피해냈다.

그 사이 마드리드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기, 기적이… 발현이 안 된다고? 그럼 이곳이 살아있는 세상이 아니란 소리냐?”

아더가 씩 미소 지었다.

“그건 저도 모른다니깐요. 뭐, 기적이 발현되지 않은 지옥쯤 되지 않을까요?”

이 말에 마드리드가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지옥? 이곳이 지옥일 리 없다.’

미개한 인간들은 천상이 있으니, 지옥이 있다, 믿지만 사실 지옥이란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천상에 들지 못한 모든 것들은 일정 시간 뒤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끝없는 순회.

그것이 악인이건 선인이건 예외는 없었다.

그랬기에 지옥을 언급한 아더 바이에른의 말은 틀렸다.

‘그렇다면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어째서 내 마법이 통용되지 않는다 말인가?’

마드리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의 상식으로도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아더 바이에른의 검이 예고도 없이 눈앞에 나타났다.

챙-!

바이에른 검으로 간신히 그 일격을 막아낸 마드리드가 입술을 악물었다.

마법을 두르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내는 아더 바이에른의 검은 마치 돌덩이 같았다.

그 엄청난 압박감은 다시 천사의 날개를 되찾은 마드리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일단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다음에 이 찰거머리 같은 놈을 사냥해도 늦지 않아!’

생각과 함께 마드리드가 날갯짓을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요!”

아더도 그에 맞추어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추격전 속에서 마드리드가 어떻게든 아더의 검에서 달아나려 할 때였다.

낯선 목소리가 비행을 시작한 두 천사 사이로 울려퍼졌다.

[마드리드?]

이에 아더도 깜짝 놀라고 마드리드도 흠칫 어깨를 떨었다.

“누구냐!”

마드리드가 비행을 멈추지 않은 채 거칠게 소리쳤다.

그 외침에 조금 전 들렸던 낯선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퍼졌다.

[…설마 우리를 잊은 것이냐.]

이 말과 함께 허공을 떠다니던 시체들이 돌연 멈춰 섰다.

그 이변에 마드리드의 눈이 커진 그때 시체들이 감고 있던 눈을 일제히 치켜뜨며 소리쳤다.

[네 놈의 손에 죽어간 우리를… 벌써 잊은 것이냐!]

쫓겨났던 추방자.

그들이 천년 만에 다시 눈을 뜨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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