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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52화 (252/265)

제252화

천 년을 산 엘프.

하이네스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니가 중얼거렸다.

‘저게 대체 뭐지?’

하이네스의 몸을 감싼 검은 연기에서 놀랍게도 희미한 정령의 냄새가 맡아졌다.

그런데 정령의 냄새가 나는 것치고 왠지 모를 위화감도 같이 느껴졌다.

특히 정령의 냄새나는 연기의 색에서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았는데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아낸 그녀였다.

‘무슨 정령이길래 색이 검은 색인 거지?’

정령은 자연에서 파생된 존재다.

그리고 그 자연에서 파생된 존재인 정령은 고유의 색을 가지게 된다.

당장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실프는 바람의 정령답게 흰색을 띠고 있었다.

허나 지금 눈앞에 있는 연기는 검은색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검은색을 띤 정령은 들어보지 못한 그녀였기에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하이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년 전 저는 제 왕국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지니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왕이란 작자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도 돼요?”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사실 그때 나도 천사가 지워버린 왕국과 함께 사라졌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이런 고통을 받을 바에야 내 백성과 함께 영면에 드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이네스가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모든 게 끝입니다. 왕국도 백성도… 제가 있으면 다시 재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때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친 제 판단이 맞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지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 위로가 심하시네요?”

“당신은 이해 못 할 겁니다. 모두를 이끄는 자리에 앉은 저를.”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네요.”

하이네스의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우매한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도 왕이 해야 할 일. 그러니 지니… 잘못된 길로 빠져든 당신을 지금부터 제가 바른길로 인도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하이네스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솟구쳐 나간 검은 색 채찍이 지니를 노렸다.

눈을 치켜뜬 지니가 재빨리 소리쳤다.

“실프-!”

그녀의 부름에 옆에 있던 바람의 정령이 응답했다.

돌풍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검은색 채찍을 쳐낸 것이다.

그 사이 몸을 구른 지니가 재빨리 방안을 빠져나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저 검은색 기운… 위험해!’

본능이 경고했다.

저 검은 색 채찍에 절대로 맞아서는 안 된다고.

그런 의미에서 저 검은색 기운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일단 거리를 두는 게 좋아보였다.

‘거기다 내가 잡히면 공자님에게도 폐니깐,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해.’

생각과 함께 지니가 재빨리 걸음을 놀렸다.

그 달음박질에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실프가 힘을 실어주었다.

그 덕에 어둠에 휩싸인 궁전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게 된 지니가 하이네스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속도에 힘을 실을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지니!]

깜짝 놀란 지니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푸른 머릿결의 여인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에, 엘퀴네스?”

[지니! 다행히 무사했군요!]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노움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럼 무사해야지. 저 귀쟁이가 죽으면 아더가 얼마나 화를 낼 텐데.]

두 정령의 만담에 지니가 잠시 넋을 잃었다 웃음을 터트렸다.

‘공자님. 역시 살아 있었군요.’

하이네스의 말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

아더 바이에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가 죽었더라면 그의 정령들이 저렇게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을 테니.

눈빛을 빛낸 지니가 두 정령들에게로 달려가며 물었다.

“공자님은 어디 있어요, 엘퀴네스!”

[아더 말하는 거예요, 지니?]

“네! 지금 황제… 아니. 아버지랑 싸우고 있는 중인가요?”

그녀의 말에 엘퀴네스가 잠시 머뭇거리다 하늘 위를 가리켰다.

[아더라면… 저기 위에 있어요.]

지니가 눈을 치켜떴다.

아더 바이에른이 하늘 위에 있다고?

그 생각과 함께 지니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놀라 입을 벌렸다.

“저게… 대체 뭐야?”

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갈라진 하늘에서 엄청난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과도 그 풍경 속에서 새하얀 깃털이 내려오고 있었다.

“…….”

꼭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깃털.

지니는 그 깃털의 주인이 아더 바이에른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깃털 중 하나를 손에 쥔 지니가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공자님. 이기고 있는 거 맞죠?”

물음에 답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니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그 불길함은 아더 바이에른을 만난 뒤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 * *

하늘이 울린다.

그 속에서 마법과 검이 격돌했다.

쾅-!

울려 퍼지는 폭음과 함께 아더의 신체가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볼 옆을 쇄도해왔다.

깜짝 놀란 아더가 기형적인 자세로 그 무언가를 피해냈다.

그 순간 저 뒤편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니 조금 전 제 볼을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가 하늘을 잡아먹고 있었다.

“….”

잠시 침묵한 아더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마법이지?’

마법이 기적의 산물이라 해도 하늘을 잡아먹는다니?

아니 애초에 하늘이란 것을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인가?

‘불가능해. 그런데 그 불가능을 마드리드의 마법은 해내고 있어.’

시선을 좁힌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천 년 된 천사가 있었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놀랍느냐, 아들아?”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양손을 펼쳤다.

그 순간 그의 손바닥 위로 불과 물이 피어올랐다.

허나 아더가 아는 그 상식적인 불과 물이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원초적인, 그리고 위험한 무언가였다.

그 위험한 무언가를 스르륵 하나로 합친 마드리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마법의 원류가 되는… 천상의 학문을 실제로 보니 어떤 기분이 드느냐?”

마드리드의 질문에 아더가 대답했다.

“솔직히 대답하면 얼척이 없네요? 아무리 마법이라도 하늘을 잡아먹는 게 말이 돼요?”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너 다운 답변이군… 그래. 마법이란 것은 원래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기적(奇跡)이라 불리는 것이지.”

아더가 손에 들린 진실이를 휘리릭 돌려잡았다.

“신이 행한 권리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신이 행한 권리는 축복이지 기적이 아니다. 허나 마법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일으키는 힘이지. 바로 지금처럼.”

마드리드가 아더를 향해 조금 전 뭉쳐놓은 위험한 무언가를 쏘아냈다.

진실이를 돌려 잡은 아더가 눈빛을 번뜩이며 그 무언가를 잘라냈다.

솨악-!

흩날리는 달빛이 아더를 향해 쏘아져 온 무언가를 깔끔히 베어냈다.

허나 아더는 움찔 몸을 떨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뭐지? 베었는데 벤 것 같지 않은 이 느낌은?’

불길한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검강으로 베어낸 무언가가 분열을 시작했다.

하늘을 좀 먹으며 늘어난 그 무언가가 이내 불과 물로 다시 나뉘어 아더를 등뒤에서 덮쳤다.

인상을 찌푸린 아더가 쥴리의 벼락을 일으켰다.

쾅-!

쏘아져 나간 섬광이 불을 막아냈다.

등 뒤에서 덮쳐오는 거대한 물결은 검강으로 막아냈다.

허나 그럼에도 불과 물은 멈추지 않았다.

혀를 찬 아더가 하늘 위로 비상하려는 순간이었다.

“위로 도망치면 피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냐?”

이 말과 함께 어느사이엔가 아더보다 먼저 떠오른 마드리드가 손을 끌어모았다.

그 순간 허공이 갈라지며 거대한 무언가가 입을 벌렸다.

[…꾸에에엑-!]

공간을 찢으며 나타난 괴물, 아니 고래가 입을 벌렸다.

그 기괴한 장면에 아더의 입도 덩달아 벌어졌다.

“와 처음 보는 고래인데… 원래 고래의 서식지가 하늘이었나?”

이 말과 함께 입을 벌린 고래가 아더를 덥석 물어 삼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흠… 여기서 끝나면 좋을 텐데, 아니겠지?”

피식 웃음을 터트린 마드리드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순간 아더를 집어삼킨 고래의 턱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파앗-!

허공을 찢으며 나타난 고래의 주둥이가 일자로 양분되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린 고래를 뒤로하고,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아더가 가래침을 허공에다 퇫! 내뱉었다.

“고래 고기가 그렇게 맛난다는 데 생각보다 별로네요.”

마드리드가 입을 열어 설명했다.

“그 고래는 지상의 고래가 아니다.”

“제가 아는 고래가 아니라고요?”

“그래. 그보다 훨씬 오래된 존재. 신께 허락받지 못하고 어둠으로 쫓겨난 아수(我修) 중 한 명이지.”

아더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수는 또 뭐지? 괴물의 별명인가?’

고민하던 아더는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괴물의 이름이 아수건 그 정체가 아수건 상관이 없었다.

‘마드리드의 마법. 저걸 어떻게 해야 해.’

저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마드리드에게 전혀 닿지를 못하고 있었다.

검강이건 혈통이건, 그에게 접근을 해야 하는 데 마드리드가 일으키는 마법에 전부 가로 막히고 있었다.

‘반면 마드리드의 마법은 치명적이야. 스치기만 하면 바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그를 쓰러트리기는커녕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그 탓에 아더가 마드리드를 주시하며 고민에 빠질 때였다.

왼손에 쥐어진 비스트가 찌르르 진동했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중얼거렸다.

“흰 수염 씨?”

아더의 부름에 비스트에 깃든 혼령이 대답했다.

[설명은 됐네. 저 마법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이 말에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고 계셨군요?”

[깨어난 지가 언제인데 보고 싶어도 보게 되었지. 자, 그것보다 아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하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저 천사의 마법은 무적이네.]

“…?”

[그러니 그 등 뒤에 새로 단 날개로 도망치거나 저 천사의 밑으로 들어가게나. 자네의 힘으로는 저 마법을 깰 수 없네.]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고작 그걸 말씀하시려고 제게 말을 거신 거예요?”

[고작 그거라니? 승산도 없는 승부를 말려준 건데.]

“…다시 잠에 드세요, 흰 수염 씨. 괜히 엄한 사람 사기 꺽지 말고.”

[승산이 없는데 싸우려고?]

“승산이 없어도 싸우는 거죠.”

아더가 검을 치켜들었다.

“여기서 모든 게 마무리 돼요. 물러날 곳도 피할 곳도 없단 말이죠. 그러니 저는 어떻게든 이 대결에서 이겨야만 해요.”

흰 수염이 잠시 침묵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다운 답변이군. 흠… 그래서 정말 안 도망칠 건가?]

“네.”

[정말로?]

“정말이라니깐요.”

[…그럼 속는 셈 치고 내 말에 한 번 따라보겠나?]

아더의 눈이 커졌다.

“뭔가 수가 있는 건가요?”

[수가 있기는 하지. 그게 워낙 말이 안 돼서 그렇지만.]

아더의 눈빛을 반짝였다.

“역시 흰 수염 씨네요. 그 수가 뭔지 말씀해주세요.”

흰 수염이 잠시 텀을 두었다 대답했다.

[지금 저 천사의 마법은 기적 그 자체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원하는 바를 성취해주지. 어쩌면 저것이야 저 천사의 말대로 마법의 원류일지 몰라.]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알고 싶은 건 그 기적을 깨부수는 방법이에요.”

[그래. 그 기적을 깨부수는 방법은 대체 뭘까?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네.]

흰 수염이 웃음을 터트렸다.

[죽음에 이르게.]

“…?”

[기적은 살아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네. 하지만 죽음에 이르면 그 기적도 행사할 수 없지. 이 세상에 유일하게 허락되지 않은 기적이 바로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니까.]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니깐 지금 흰 수염 씨의 말은….”

[자네가 생각하는 바가 맞네.]

흰 수염이 약간의 확신을 담아 조언했다.

[지금 당장 죽음에 이르게 아더 바이에른. 그게 자네가 저 천사의 마법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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