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47화 (247/265)

제247화

새하얀 날개가 펄럭였다.

그 날갯짓이 계속 될수록 텅 빈 제단 위에 새하얀 날개가 쌓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천사, 마드리드가 전율에 떨며 중얼거렸다.

“돌아왔다… 내 날개… 내 날개가 돌아왔어.”

이 말과 함께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 년.

그 긴 시간을 인내하여 마침내 얻은 날개.

이 날개가 있기에 천사들은 천사라 불렸으며 천상으로 갈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날개를 되찾은 마드리드는 이제야 스스로를 천사라 부를 수 있었다.

“아아… 나는… 다시 특별해졌다… 저 인간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마드리드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간 겪었던 지옥 같은 나날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지나갔지만 지금의 이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오열하고 기뻐하며 스스로를 자축하던 마드리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목이 없어진 아더 바이에른.

그리고 심장이 꿰뚫린 채 죽어있는 레온 마드리드가 보였다.

자신이 집어삼킨 레오 바이에른과 칸 마드리드의 동생과 아들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해서 친혈육의 죽음이었지만 마드리드는 털끝만큼의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레오 바이에른과 칸 마드리드는 이미 일찍이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허나 가슴을 울리는 약간의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레오 바이에른과 칸 마드리드의 잔재 탓이었다.

그 미묘한 감정을 잠시 동안 서서 만끽하던 마드리드가 빙그레 웃었다.

“걱정마라. 이제 모두 끝이다. 모든 인간은 정화 될 것이고 세상은 원래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신께서는 인간을 위해 대륙을 구원하라 이르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인간은 구원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었어.”

천 녀간 보아온 인간은 간사했다.

그 어떤 짐승보다 간악했다.

또 한 지나친 탐욕으로 주변에 해를 입혔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며 주변은 물론이고 세상을 농락했다.

그런 인간이 과연 신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마드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신을 찬양하기는 커녕, 스스로를 신이라 추앙했다. 그런 놈들에게 필요한 건 구원이 아니라 무거운 업보다.’

그 업보란 이들이 구원받기 전 세상을 되돌려놓는 것.

인간이 짐승보다 못하며 괴물에게 상처입는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이룬 모든 걸 파괴해야 되겠지만… 상관없다.’

인간들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온정 하나도 털어버린 후였다.

더 이상의 망설임도 자비도 없었다.

오늘 이후로 인간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난 천 년간 인간게 의해 육체와 날개를 잃은 천사 마드리드가 내리는 천벌이자 복수였다.

생각을 끝마친 마드리드가 날개짓을 했다.

그리고 내리쬐는 빛을 향해 힘찬 비상을 시작했다.

화악-!

그의 날개에서 떨어져 내린 깃털 하나가 제단 위로 떨어졌다.

정확히는 제단에 누워있는 아더 바이에른.

목을 잃은 시체의 가슴팍에 내려앉았다.

그 상태에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

아더 바이에른의 시체에서 갑자기 격한 경련이 일어났다.

그 이변과 함께 목이 잘려 사라진 그의 시체에서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화악-!

솟구친 피분수와 함꼐 새로운 머리가 돋아난 것이다.

그 기이한 이변과 함께 아더가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엣취-! 아우… 죽을 뻔 했네 이거.”

이 말과 함께 제단 위에서 일어난 아더가 기지개를 폈다.

“죽은 척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진짜로 죽을 뻔 했어.”

죽음에 이르렀던 남자.

그 남자가 다시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 * *

목이 잘리고 다시 되살아난 아더가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제 몸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호흡과 근육.

더 나아가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

그 모든 것을 점검하던 아더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모두 정상이야. 더 이상 속박당하고 있지 않고 있어.’

그 사실에 아더가 안도의 한숨을 내어쉴 때였다.

옆에 놓여져 있던 비스트가 부르르 진동했다.

[오? 자네. 어떻게 다시 되살아 났나?]

비스트에 깃든 혼령.

흰수염의 말에 아더가 아직 뻐근한 목더미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되살아난 게 아니라 죽은 적이 없는데요? 겨우 목이 잘린 정도로 죽을 리가 없잖아요?”

[…뭐, 불사신이라도 되나?]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

“며칠 전에 드래곤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적이 있거든요. 덕분에 목이 잘린 정도로 죽지 않을 육체가 되어버렸어요.”

흰수염이 낮은 탄식을 터트렸다.

[…맞군? 그 때 라 하르칸의 피를 뒤집어 썼었지?]

“네. 그래서 되살아나기는 했는데 놀랍네요.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 쓴 인간은 거의 불사에 가까운 육체를 얻는다더니 허언이 아니었어요.”

흰수염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내가 아는 아더 바이에른 답군. 그래… 이렇게 쉽게 쓰러져서는 안 되지.]

“칭찬은 고마운데 흰수염 씨?”

[왜 그러나?]

“마드리드 씨… 어디 갔어요?”

흰수염이 잠시 침묵했다 대답했다.

[흠… 혼자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하늘로 솟구쳤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럼 벌써 하늘로 돌아간 거에요?”

[그건 아닐 거야. 혼자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무슨 정화작업을 벌인다더군.]

“…정화작업이요?”

[나도 그 의미까지는 모르겠지만… 뭐,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겠나?]

흰수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미친놈… 아니 미친 천사가 벌이는 정화작업이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거 말이야. 그러니 어서 놈을 죽여주게나 아더 바이에른.]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흰수염 씨도 세상이 멸망하는 건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네요?”

[그럼. 멸망한 세상이라면 내 손으로 멸망시켜야지.]

“오. 그건 나쁘지 않은 의견이네요. 흠… 하지만….”

말을 흐린 아더가 고민에 잠겼다.

‘간신히 되살아 나기는 했는데… 어떻게 천사 마드리드를 죽이지?’

지금은 그가 없는 탓인지, 아니면 다시 되살아난 탓인지 몰라도 황가의 속박에 걸려 있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복종의 피… 그 능력이 있는 한 마드리드 씨를 다시 만나도 죽일 방도가 없어.’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그의 피에서 벗어날 방법은 일단 찾고 다시 마주해야했다.

허나 그 방법이라는 게 무엇일까?

마법도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아티펙트의 능력도 아닌 혈통 그 자체의 힘을 막는 방법은 아더로서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 탓에 고민이 길어지던 그 때였다.

등뒤에서 옅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친구.”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리니 피투성이가 된 한 남자가 웃고 있었다.

“역시… 자네 다워. 목이 잘리고도 되살아나다니. 이쯤 되면 인간도 천사도 아니라 그냥 괴물 아닌가?”

그의 말에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괴물이라면 황자님이야 말로 괴물 아니에요? 가슴이 찢어지고도 살아있잖아요.”

아더의 지적에 레온이 쓴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꿰뚫렸다.

심장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기는 했지만, 이제 살아날 방도는 없어보였다.

즉, 한 평생 도망쳐 다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두려움을 레온은 애써 떨쳐내며 대답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뭐, 괜찮아. 어차피 곧 죽을 몸이었거든.”

아더의 눈이 커졌다.

“곧 죽었어야 할 몸이라고요?”

“그래. 황가의 혈통… 이 저주받은 능력을 사용하는 대가가 뭔지 아나?”

“…?”

“수명이야. 한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대가로… 제 수명을 받치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이 능력을 무려 20년을 넘게 써왔네.”

아더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황자님의 수명은….”

“길어야 1년… 짧으면 몇 달 안에 죽었을 거네. 심장이 꿰뚫리지 않았어도.”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뒤 천천히 질문했다.

“그렇게 제 수명까지 바치면서 하려했던 일이 뭐예요?”

“복수.”

“…?”

“모두를 죽인… 내 형님에게 복수를 하려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해버렸군. 형님은… 모두를 죽인 게 아니었어.”

이 말과 함께 레온이 고개를 숙였다.

“천사… 그 빌어먹을 존재가 사실은 모두를 위협했던 거야.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 평생 형님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던 거였어.”

그 모습에 아더의 입이 다물어졌다.

레온 마드리드.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짧지도 않았다.

그 인연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시간 속에서 놀랍게도 아더는 레온의 진실된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레온을 믿지 않았지. 저런 사람들은 꼭 언젠가 뒷통수를 치기 마련이니깐.’

하지만 지금.

그 몇십 년간 알고 지낸 인연 속에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레온의 진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내가… 내 손으로… 형님을 죽여버렸어. 날 살리기 위해 노력한 그 사람을….”

그의 숨겨진 모습은 어린아이 같았다.

항상 여유가 넘치고 능글맞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처 입고 두려움에 휩싸인 아이 말이다.

그 탓에 아더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레온이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움찔 몸을 떨었다.

“…갑자기 왜 웃어?”

“아니 웃기잖아요?”

“…?”

“당신을 알고 지낸 몇 십년이 되는데, 이제야 당신의 진짜 모습을 봤잖아요.”

레온의 눈이 커졌다.

그 후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했다.

“…많이 추했나?”

“아뇨. 오히려 좋았어요. 이제야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천천히 레온을 향해 다가왔다.

그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레온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휘광이 비치는 것 같다.’

착각인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아더 바이에른은 매우 특별해 보였다.

그 속에서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왜 믿을 수 없는 당신과 제가 계속 엮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황자님. 아니 레온. 당신은 저랑 똑같은 사람이었던 거에요.”

레온이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대답했다.

“내가 자네와 똑같다고?”

“네. 모두의 복수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인간. 그 숭고한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

레온의 눈꼬리가 살며시 떨렸다.

“하지만 난 실패했네… 복수도 인생도… 모든 걸 실패해버렸어.”

“누가 실패했대요?”

“…?”

“아직 제가 남아있잖아요. 당신의 친구가요. 그 친구가 해주는 복수는 복수가 아니란 소리에요?”

레온의 눈이 커졌다.

그 속에서 아더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레온. 당신의 피가 필요해요.”

레온이 당황해 대답했다.

“뭐? 내 피가 필요하다고?”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네. 제가 그 천사에게 닿기 위해서는 황가의 능력에서 벗어나야 돼요. 그리고 당신의 피라면 그 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레온이 뒤늦게 아더의 말을 이해하고서 중얼거렸다.

“…그렇군. 내 혈통을 흡수하겠다 이 말인가?”

“네. 그 피를 이용해 천사 마드리드를 죽이겠어요.”

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

침묵한 레온이 제 앞에선 아더를 빤히 바라보았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는 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 않은 듯 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줄곧 기적을 펼쳐왔던 아더 바이에른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렇군.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던 건지도 모르겠어.’

생각과 함꼐 레온이 먼 추억을 떠올렸다.

제 형님.

칸 마드리드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이야기였다.

[레온. 네 이름은 나의 절친한 친구가 지어준 이름이란다.]

지금과 달리 인자한 미소를 띈 제 형님.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미소와 함꼐 칸이 어릴 적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오 바이에른. 그 친구가 꼭 이 이름으로 부탁해 지은 거란다. 제 이름과 비슷하게 이유를 물어보니… 흠. 자기를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나?]

레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기억 속의 칸 마드리드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레오 바이에른… 그 사람처럼 멋진 사내로 자라거라. 네가 이 나라의 미래가 될 것이다.]

추억의 복기를 끝마친 레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아더의 가슴팍을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한 가지 약속하게 아더.”

레온의 죽어가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앞의 진실을 외면하지 말게. 그럴 자신이 있나?”

이 말에 아더가 약간 놀란 눈치로 레온을 바라봤다.

‘레온이 이 말을 어떻게 아는 거지?’

이 글귀는 아버지가 남겨진 유품에 적힌 말인데?

그 탓에 잠시 고민한 아더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약속 할게요.”

아더가 레온의 손을 맞잡았다.

“절대 눈앞의 진실에서 외면하지 않을게요. 그 진실이 가혹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 말에 미소를 띄운 레온이 맞잡은 손을 살며시 풀었다.

그리고 아더의 손바닥 위로 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점차 흘러내리기 시작한 피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쌓여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온의 숨결도 점차 잦아들었다.

‘이게 제가 할 일이었습니까, 형님….’

말을 흐린 레온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딱히 나쁘지 않군요. 처음으로 얻은 친구… 그 친구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게 말입니다.’

그 순간 레온의 생각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손바닥 위로 레온의 피가 흘러넘쳤다.

“….”

옅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눈을 감은 레온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쉬고 있어요 레온. 금방 돌아올게요.”

아더가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물기를 억지로 털어냈다.

“그러니 죽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있어요. 복수가 끝난 뒤, 이제 자유롭게 살아야죠. 누군가에게 얽매인 삶이 아니라 당신, 레온 마드리드의 삶 말이에요.”

이 말과 함꼐 아더가 레온의 피를 들이켰다.

그 순간 엄청난 빛이 주변을 물들었다.

화악-!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그 빛 속에서 아더는 알 수 있었다.

레온 마드리드의 피.

지금 이 피가 자신이 먹는 마지막 피가 되리라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새하얀 두 날개가 아더의 등뒤로부터 치솟아 올랐다.

화악-!

또 한명의 천사.

세상을 구원할 진짜 선지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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