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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46화 (246/265)

제246화

피가 가슴에서 흐른다.

맥박의 흐름도 점차 느려지고 육체의 감각도 느슨해졌다.

바닥에 엎어진 카셀이 그런 제 육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죽는 건가.’

가슴이 관통당했다.

일반적인 검도 아닌 무려 소드마스터의 검강에.

그 덕에 드래곤의 피로 재생되야 할 육체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나중에 죽나 지금 죽나.

살아날 방도는 없어보였다.

그 속에서 카셀은 생각했다.

‘더 하고 싶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이렇게 쓰러질 수 없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일어나 다시 성문을 틀어막아야 했다.

악마들의 진격을 멈춰야했다.

온몸을 던져가며 악마들을 막아내는 병사들을 도와야 했다.

허나 그런 마음과 달리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팍에 새겨진 상처가 마치 족쇠라도 된 것 마냥 그의 육체를 깊은 수면으로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그 무기력감은 곧 절망과 안락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 했으면 충분한 거 아닌가?’

쉼 없이 달려왔다.

복수를 위해 몸과 영혼을 던졌다.

그 과정은 너무나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매 순간이 위기였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카셀은 마지막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 자비를 배풀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은… 쉬고 싶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괴롭지 않고… 이제 여기서 모든 걸 그만 두고 싶다.’

어차피 여기서 살아난다 한들 달리 방도도 없었다.

할리버란 이름을 가진 칼잡이는 카셀이 난생 처음 마주한 벽이었다.

그 무슨 수를 쓰건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은 벽.

그 벽은 기적이나 운에 기대어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 벽을 넘지 못한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그랬기에 카셀의 눈은 감겼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다.

성은 함락당했고 자신은 패배했다.

유일한 친구의 믿음에 보답 하지 못한 채 실패자의 인생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카셀이 간신이 붙들고 있던 숨을 거두려 할 때였다.

눈앞에서 번쩍 빛이 일어나며 한 장면이 보여졌다.

‘용감한 계집이구나.’

할리버.

자신에게 벽을 느끼게 한 칼잡이였다.

그 괴물 같은 칼잡이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조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고 흠… 내 앞을 가로막다니.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 했어.’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턱짓하며 질문했다.

‘그 용기가 가상해서 자비를 배풀어주마. 순순히 끌려갈 테냐 아니면 죽어 시체가 되어 끌려갈 것이냐.’

할리버의 질문에 누군가 대답했다.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가녀리고 떨림을 숨길 수 없는, 그런 연약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카셀은 알 수 있었다.

그 연약한 목소리에 숨겨진 용기를.

‘그러니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겁니다. 당신이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싸늘하게 식은 제 몸뚱이입니다.’

이 말과 함께 아이린 바이에른.

목숨을 받쳐 지켜주기로 맹세한 레이디가 검을 들었다.

그 순간 카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

거친 숨을 한 번 몰아쉰 카셀이 신음을 토해냈다.

“허억….”

입 밖으로 나온 끈쩍한 피와 숨결이 지독한 두통을 유발했다.

하지만 카셀은 그 고통을 감내하며 몸을 움직였다.

“으아아악-!”

괴성을 지른 카셀이 간신히 일어서 두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한 평생 함께 한 검을 찾아 쥐었다.

솨악-!

서늘한 검의 감촉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 순간 잠깐이지만 정신을 괴롭히던 지독한 고통이 사라졌다.

그 상태에서 고개를 돌린 카셀이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악마들을 상대로 격전을 펼치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캐, 캡틴 카셀!?”

외침과 함께 카셀이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아, 아니? 캡틴 카셀… 저 기사는 조금 전에 죽은 거 아니었던가?’

그것도 심장이 관통당한 채로 말이다.

허나 지금의 그는 놀랍게도 살아움직이며 성내로 향하고 있었다.

그 기괴한 현상을 병사들이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카셀을 향해 다가갔다.

“안 됩니다! 더 이상 움직이시면 정말로 죽을 수 있습니다!”

병사들의 만류에 카셀이 손을 내저었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보내주게.”

이 말과 함께 카셀이 피를 왈칵 토했다.

검은 색으로 점칠된 피가 카셀을 만류하던 병사의 가슴을 적셨다.

소스라치며 놀란 병사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이,이런 상태로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어서 의원에게….”

“기다리고 있어.”

“……?”

“날 기다리고 있어. 나의 주인이.”

이 말에 병사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카셀이 검을 지팡이 삼아 다시 한 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할리버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목숨을 바쳐 지키기로 맹세한 나의 주인이… 날 부르고 있어. 그러니 날 보내주게나.”

* * *

마드리드가 비틀거리며 제단 뒤로 쓰러졌다.

털썩.

옅은 숨을 몰아 내쉬던 그가 제 가슴팍을 관통한 검을 바라보았다.

붉은 빛 기류가 감도는 검이 육체의 재생을 막고 있었다.

불사에 가까운 육체임을 고려하면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 탓에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천 년 전에도 그랬지.”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천 년 전. 인간들에게 날개를 빼앗기고 육체적인 죽임을 당했을 때도 이 검이었어. 천사 바이에른의 검 파 하룬드(Fa Harund).”

마드리드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이 검이 대체 어딜 갔나 궁금했는데… 네가 들고 있었구나 동생아.”

마드리드의 말에 붉은 머리칼의 사내.

레온 마드리드가 침묵을 깨며 대답했다.

“몇 십년을 숨겨왔죠. 이 순간을 위해 말이죠.”

“흐음… 몇 십년. 그렇다면 이 모든 게 계획된 거란 말이냐?”

“예. 아무리 천사의 검이라도 당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찔려주지를 않을 테니 말이죠.”

레온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중요하고 간절한 순간을 맞이하면 절대로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고요.”

마드리드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소리구나.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때이니.”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끄덕이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의외구나. 네가 알기로 너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채로 살았는데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다니?”

마드리드의 말에 레온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가 눈에 띄었으면 저를 죽였을 거 아니었습니까, 형님?”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맞지. 눈에 띄었다면 죽였겠지. 그래서 때를 기다린 게냐?”

“예. 맞습니다. 당신이 저의 형님과 누님… 다른 가족들을 차례로 죽여나가는 걸 지켜보며 저는 이 날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말과 함께 레온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씩 떨어져내린 피눈물이 점점 웅덩이를 이루었다.

허나 레온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멈출줄 몰랐다.

그 속에서 레온의 입이 다시 열렸다.

“무려 20년… 당신을 죽이기 위해 기다려온 시간입니다. 먼저 죽어간 형제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그들의 복수를 지금 이 순간 하겠습니다.”

마드리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복수를 위해 네 수명을 바치겠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입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뭐지?”

레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신을 죽였다는 제 만족감…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과 함께 레온이 검을 휘둘렀다.

쾅-!

허나 어디선가 나타난 푸른 방벽이 그 일격을 막아냈다.

그 광경에 레오의 눈이 커진 그때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바이에른의 검… 파 하룬드는 그 무엇도 소멸시킬 수 있는 검이지. 그래 마치… 칼잡이들의 검강과 같이 말이야.”

이 말과 함게 마드리드가 입을 벌렸다.

그 순간 벌어진 그의 입에서 무언가 울컥울컥 기어나왔다.

지켜보던 레온도 간신히 살아난 아더도 그 광경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사이 마드리드가 침을 줄줄 흘리며 뱉어낸 무언가를 툭 건들였다.

그 순간 가려져 있던 무언가의 정체가 드러났다.

“형님…?”

레온의 입이 벌어졌다.

마드리드의 입밖으로 나온 것은 놀랍게도 칸 마드리드.

한 때 제국의 황태자이자 지금은 황제라 불리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마드리드가 입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검이 찌른 것이 내 육체가 아니라 내 육체에 집어 삼켜진 네 형님이구나.”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의 가슴에서 허연 연기가 올라왔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의 가슴팍에 난 상처가 회복되었다.

그 광경에 정신을 차린 레온이 움찔 몸을 떨었다.

“뭐…? 되살아났다고?”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되살아났지. 네 형님 덕분에 말이다.”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손짓했다.

그 동작에 움질 놀란 레온이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쾅-!

레온의 육체가 속박당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사지에서 피분수가 일어났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육체를 난자해버린 것이다.

그 광경에 아더가 거칠게 소리쳤다.

“레온-!”

레온이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닌 전신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신히 붙들어맨 숨결이 깜빡이는 정신줄만 애써 유지할 뿐이었다.

그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긴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귀여운 내 동생아. 진실을 하나 가르쳐주랴?”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쥐죽은 듯이 살아서도 아니고 내가 자비를 배풀어서도 아니다.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의 말에 피범벅이 된 레온의 두 눈이 커졌다.

“계약… 이라고?”

“그래. 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네 형님. 칸 마드리드와 내가 약조를 했기 때문이다.”

“…!”

“육체를 내어주는 대신 동생만은 살려달라는 약조. 어처구니없게도 놈은 스스로를 버리는 대신 너를 선택한 거란다 동생아.”

레온의 입술이 벌어졌다.

“형님이… 날 위해 죽었다고?”

“뭐, 더 자세한 내막이 있긴 한데 설명하기는 귀찮구나.”

마드리드가 빙그레 웃었다.

“너는 이거 하나면 알면 된다. 지금 이 순간 너는 네 손으로 널 살려준 형님을 죽인거다. 이 어찌나 기구한 운명이더냐?”

이 말에 레온의 시선이 창백하게 죽어있는 칸 마드리드의 시체로 향했다.

그 순간 그의 가슴팍에서 피분수가 일어났다.

‘아….’

옅은 탄식을 흘린 레온이 고개를 숙였다.

제 가슴팍을 관통한 마드리드의 손이 보였다.

잠시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본 레온이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것을 확인한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내 마지막 핏줄이 이렇게 가버렸구나. 애석한 지고.”

이 말과 함께 천천히 몸을 돌린 마드리드가 아더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아더가 온몸에 속박 당한 채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또 다른 이의 삶을 망쳐놓은 모양이네요.”

마드리드가 빙그레 웃었다.

“그게 너희둘 뿐이겠느냐?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의 삶을 망쳐왔지.”

아더가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반드시 당신을 죽일 거에요 천사 마드리드.”

“그만 두거라 아들아. 할 수도 없거니와 제 손으로 제 형님을 죽인 저 놈처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깐.”

이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긴 마드리드가 아더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이제 하나가 될 시간이다 아들.”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 뜻대로는 안 될 거에요. 두고 보세요.”

마드리드가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유언치고는 재미없구나. 그럼 잘 가거라.”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아더의 얼굴을 와락 씹어삼켰다.

파앗-!

얼굴 째로 뜯겨져 나온 아더의 목에서 피분수가 일었다.

그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마드리드가 황홀해 하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이 말과 함께 그의 등뒤에서 새하얀 두 날개가 치솟아 올랐다.

“드디어…!”

그 날개의 감각에 마드리드가 자리에 털썩 쓰러지며 오열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어. 나는 다시 천사가 된 거야….”

천 년을 해맨 천사.

그 천사가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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