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45화 (245/265)

제245화

천사 마드리드가 속삭였다.

“가혹한 진실을 가르쳐주마, 아들아.”

이 말과 함께 그의 얼굴이 변했다.

레오 바이에른.

거짓과 현실.

그 어디쯤의 경계에서만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 레오 바이에른 변한 마드리드가 천천히 속삭였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네 아버지는 날 죽이기 위해 홀로 이곳을 찾아왔다.”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아버지가… 당신을 죽이기 위해 혼자 이곳을 왔다고요?”

“그래. 내 존재, 내 흔적을 찾아내서 홀로 황궁에 침입했지.”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저택이다. 내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그래. 입구 없는 감옥이라고도 볼 수 있지. 그런 곳을 네 아버지가 홀로 뚫고 들어온 것이다.”

아더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당신은 그럼 천 년 동안 죽지도 않고 이곳에 머문 건가요?”

마드리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들아. 넌 신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너희들에게 있어 나는 그런 존재다. 인간들의 신. 인간들의 구원자. 인간들의 선지자.”

마드리드가 양팔을 활짝 벌렸다.

“죽어가던 너희들을 내가 이끌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너희를 내가 구원했다. 그런 인간들의 신(神)이… 어찌 죽음을 맞이한다 말이냐?”

아더가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 누구도 당신보고 구원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요?”

“우매한 너희의 선조들은 구원을 해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마드리드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불쌍한 존속들을… 구원한 게 바로 나다. 그 육신이 없어지고 날개를 빼앗겼음에도… 내가 이 더러운 육체의 핏속에 녹아 살아남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아더가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 핏속에 녹아 기회를 엿보았던 건가요?”

“그래. 다시 하늘로 돌아갈 기회. 내 피를 이은 후손들이 날개를 돋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 변화를 지켜보며 천년을 기다렸다.”

아더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황가의 혈손들이 귀했구나.’

천 년이나 이어져 온 제국은 그 혈손이 희한하게도 매우 귀했다.

그래서 황가의 황손들은 대개 무난히 황태자 자리에 올랐는데 지금에서야 그 내막이 밝혀진 것이다.

‘마드리드… 이 천사가 자신의 핏줄을 이은 후손들을 가지고 실험을 한 거였구나.’

생각과 함께 아더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이 천사는 선지자나 구원자가 아니다.

만약 이 천사가 정말로 인간을 구원하는 신이었다면 제 핏줄을 이은 혈손을 가지고 실험 따위를 하지 않았을 테니.

그 속에서 마드리드가 설명을 이었다.

“그때 네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천 년 동안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내게.”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내 아버지에게서… 나는 날 버리고 하늘로 올라간 바이에른의 그림자를 엿보았어. 빛나는 눈동자, 항상 틀을 깨는 입담, 무엇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특별한 재능.”

마드리드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어째서인지 몰라도 협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레오 바이에른… 이 남자는 인간의 몸으로 나와 맞먹는 마법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무려 인간이 천상만이 이륙 할 수 있는 경지에 우뚝 선 것이지. 그래서 난 확신했다.”

마드리드가 제 얼굴을 쓰다듬던 손을 높이 쳐올렸다.

“내 핏줄… 마드리드의 혈통에서 날개를 발견할 수 없다면 바이에른의 혈통에서 날개를 발견하면 그만이라고!”

그 모습은 광기에 차 있었다.

무려 천년이나 농축된 짙은 광기.

“그리고 이 육체라면 날 고향으로 돌려보낼 날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지!”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반쪽짜리지만… 이 육체는 날개를 발현했다! 그 바이에른의 날개와 똑같은! 그래서 난 제안했지.”

마드리드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레오 바이에른의 얼굴에서 마드리드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인간의 육신… 그 육신에 정해진 필멸자의 운명을 벗어나 초월자의 운명으로 들어서자고.”

마드리드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의 정해진 수명은 레오 바이에른이라 할지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속삭였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죽을 것이냐? 세상은 물론이고 하늘에 마저 닿을 재능을 이렇게 버릴 것이냐?”

그 웃음소리가 아더의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지끈거리듯 아파왔다.

“처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그였지만 결국 점차 무너져 갔다. 그 또한 알고 있었던 거지. 이런 재능을 가지고도 그 또한 인간… 결국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그 속에서 마드리드의 얼굴이 다시 바뀌었다.

레오 바이에른의 얼굴이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이제 모르겠어… 이 남자가 마드리드인지 아니면 레오 바이에른인지.’

어쩌면 둘 다일지 몰랐다.

마드리드에게 육체를 내어준 레오 바이에른.

그의 목적이 어찌 되었건 눈앞의 남자는 제 아버지이자 악마를 닮은 천사였다.

그 상태에서 타락한 천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레오 바이에른은 제안을 승낙하고 내게 육체를 내어주었다. 그의 재능 그의 피. 모든 것을 담긴 이 육체를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왔다는 것을. 그리고….”

말을 흐린 천사가 아더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그 마지막 퍼즐이 바이에른의 핏줄에 녹아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말이다.”

아더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반쪽짜리 날개를 바이에른의 혈통으로 채워서요?”

“그래.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두 장의 날개가 필요하지.”

이 말과 함께 레오 바이에른이 아더의 어깨에 상처를 냈다.

움찔 몸을 떤 아더가 몸부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그의 육체는 바이에른 혈통의 힘에 묶여 있었다.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복종'.

한 때 인간을 구원한 마드리드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의 능력이었다.

그 사이 아더의 어깨에 상처를 낸 마드리드가 흘러내리는 피를 슬며시 훔쳐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날개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바이에른의 핏줄… 정확히는 혈통 능력을 일깨우는 것이 과제였어. 그래서 난 계획을 세웠지.”

마드리드가 손가락에 묻은 아더의 피를 낼름 핥았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처음 북부 설원에서 등장했을 때 보았던 광대의 표정이었다.

“바이에른 핏줄의 힘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그렇다면 뭐가 필요할까? 철천지원수… 그리고 목표, 마지막으로 좌절.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바이에른의 후손은 느껴야 했어.”

아더의 표정이 살짝 떨렸다.

그 속에서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와 과거.

그 다른 시간대에서도 왜 도르문트 백작이 바이에른을 끝내 멸문시키지 않았는지.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구나. 놈들이 원하는 건 바이에른이 아니라 바이에른의 핏줄에 녹아든 날개였어.’

결국 저 말이 맞다면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간의 인생은 놀아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간악한 천사의 목표를 위해.

그 사실에 아더가 진한 분노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이제 진심으로 당신을 죽이고 싶어졌어요.”

마드리드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화내지 말거라 아들아. 너를 장기말로 만든 것은… 내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니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속에서 마드리드가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바이에른의 혈통을 일깨우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누군지 아느냐?”

속삭임이 귓가를 간질인다.

그 감각에 아더의 몸이 거칠게 떨렸다

조금 전까지 반응하지 않던 육체임을 고려하면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어깨에 난 상처에서 더욱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

그 핏방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 손가락에 묻힌 레오 바이에른이 한 방울씩 입가로 가져다 되며 중얼거렸다.

“바로 네 아버지다.”

“…!”

“나와 한 몸이 된 그가 알려주었지. 바이에른 혈통을 일깨우는 방법을.”

아더가 고함을 질렀다.

어찌나 강렬한 외침인지 레오 바이에른의 머리칼이 잠깐이지만 휘날렸다.

레오 바이에른이 거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제야 믿겠느냐? 레오 바이에른이 곧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이 말에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쳐들었다.

이성을 잃은 아더의 거친 숨결이 자연스레 레오 바이에른의 이마에 맞닿았다.

그 모습에 레오 바이에른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더의 목을 붙잡았다.

“너무 슬퍼하지말거라. 이제 곧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레오 바이에른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그의 입이 아더의 얼굴을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그 상태로 아더의 머리를 우겨넣은 그가 속삭였다.

“그러면 이해할 거다. 어째서 네 아버지가 나와 한 몸이 되었는지. 그 순간 너는 인간의 운명에서 벗어나 초월자의 영역으로 들어설 것이다.”

이 말과 함께 그의 입이 닫히려던 순간이었다.

핏줄기가 튀었다.

파앗-!

레오 바이에른의 눈이 커졌다.

잠시 걸음을 비틀거린 그가 아더를 놓아버린 채 고개를 돌렸다.

“너… 는?”

이 말에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대답했다.

“오래만입니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레온 마드리드.

황가의 마지막 황자가 이 말과 함께 천사의 가슴팍에 박힌 검을 뽑아들었다.

* * *

할리버가 팔짱을 꼈다.

“흠….”

말을 흐린 그가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게 물든 하늘.

그 하늘 위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있었다.

콰앙-!

그 천둥 번개 사이로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라 하르칸이었다.

그 라 하르칸이 내뱉는 거친 울음소리에 세상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그 장면을 말없이 지켜본 할리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괴물 괴물 거리더니… 괜히 그렇게 불린 건 아닌 모양이군?”

하늘 위에서 여섯 마리의 드래곤들이 불을 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거친 화염은 라 하르칸의 비늘을 녹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라 하르칸이 내뱉는 화염은 드래곤들의 비늘을 녹이고 있었다.

이 단순한 차이가 드래곤과 괴물의 목숨을 건 사투의 승패를 가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할리버가 몸을 돌렸다.

‘저쪽은 마무리 됐고… 이제 남은 건 뭐려나.’

생각과 함께 할리버가 잠시 고민했다.

이곳으로 떠나기 전 새로운 하늘섬의 주인은 자신에게 두 가지 명령을 내렸다.

하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

또 하나는 무언가를 챙겨올 것.

그런데 그 챙겨갈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끄흥… 전쟁의 승리는 뭐 성문이 뚫린 시점에서 끝났는데… 챙겨가야 할 뭔가가 떠오르지가 않는 군.’

하도 오래살다보니 치매가 왔는지 가끔 건망증이 도졌다.

할리버는 입맛을 쩝 다시며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 놈의 명령을 받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또 이런 세상을 만들어줬으니 부탁을 안들어줄 수도 없고.’

피와 죽음.

그리고 전쟁과 싸움이 넘쳐나는 세상은 칼잡이들의 낙원이다.

그 낙원을 새로운 하늘섬의 주인은 만들어주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에 충분했고 할리버는 꽤나 의리와 신용이 있는 남자였다.

받은 것만큼 돌려준다.

그것이 은혜 건 원한이 건 말이다.

그래서 고민이 길어지던 그 때 고성의 외침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서 아가씨를 찾아라-!”

“성이 함락직전이다!”

“목숨을 걸고서 아가씨를 탈출시켜라! 싸움은 그 뒤의 일이다!”

그 외침에 할리버의 눈이 커졌다.

‘그래… 내가 가져가야 할 건 물건이 아니었어.’

사람이었다.

생각과 함께 할리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이린 바이에른.’

하늘섬의 새로운 주인.

레오 바이에른이 반드시 가져오라 말한 것은 그의 딸.

아이린 바이에른의 몸뚱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