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바이에른은 생각했다.
‘이 놈이 갑자기 왜 이러지?’
같이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천사 마드리드는 매일 같이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다.
그런 마드리드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천상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대륙은 모든 것이 불안했다.
완벽에 가까운 존재인 마드리드가 그런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마드리드가 돌연 대륙에 남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신의 계시는 대륙의 구원이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대륙을 구원하지 않았어. 아직도 신을 따르지 않는 불안한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있잖아?]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덧붙이고 있지만 바이에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지금의 마드리드는 대륙에 남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탓에 의문에 휩싸인 바이에른이 제 팔뚝을 툭툭 두들겼다.
‘뭔 속셈일까 이건….’
잠시 고민한 바이에른이었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마드리드는 계속해서 대륙에 남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덧붙였다.
인간의 구원.
신의 말씀의 전파.
신도들의 숫자를 늘리는 일까지.
두 천사가 하지 않아도 될 잡다한 일까지 마드리드는 그럴싸하게 포장해 말했다.
바이에른은 그 모습에 짙은 의문을 느꼈지만, 곧 입꼬리를 올렸다.
‘수상하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은데?’
바이에른도 대륙에 아직 흥미가 남아 있었다.
대륙은 천상과 달리 불안정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곧 가능성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천상과 달리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상의 요소들은 어떤 변화를 줄지 몰랐다.
바이에른은 그것들을 좀 더 관찰하고 보고 싶었다.
‘뭐, 큰일이라도 있겠어? 있어 봐야 수습하면 그만이지.’
지금 천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대륙으로 돌아올 기회는 영영 없을지 몰랐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바이에른이 마드리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역시, 자네라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마드리드가 기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내려주신 사명이 끝나는 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바이에른이 잠시 고민하다 턱짓했다.
[그런데 마드리드. 우리가 여기서 뭘 더할 수 있어?]
[뭘 더 할 수 있냐고?]
[그래. 천상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하잖아? 하지만 우리는 대륙의 악귀들도 북부로 몰아냈고 할 일을 다 끝마쳤잖아?]
마드리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 맞지. 악귀는 다 몰아냈지… 하지만 아직 더한 악귀들이 남았잖아?]
바이에른의 눈이 커졌다.
[더한 악귀들이 남아있다고?]
[저기.]
[…?]
바이에른이 커진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마드리드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숨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저건….]
[그래 맞아.]
마드리드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인간을 제외한 이종족… 신을 따르지 않는 사탄마귀들. 아직 저들이 대륙을 활보하고 있다고 바이에른.]
천사.
그들은 세상이 아닌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천사였다.
* * *
레오가 추억에 젖어 중얼거렸다.
“고민에 본 적 없느냐 아들아? 대체 이 혈통이란 건 어디서 온 걸까? 특히 인간이 아닌 기괴한 괴물들의 피는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이 말과 함께 레오가 빙그레 웃었다.
“그 정답은 천년 전에 있단다. 모든 혈통에는 선조가 있기 마련이고, 그 선조는 정확히 천년 전에 실제로 존재했지.”
아더가 뒤늦게 상념에서 빠져나오며 대답했다.
“그 혈통의 선조를… 마드리드란 천사가 없애버린 거군요?”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없애버렸다기보다는 정화였지.”
“…?”
“혈통은 이단이란다. 신이 허락하지 않은 특수한 이물질들. 본래 이 대륙에 있어야 할 건 짐승과 인간. 그리고 악마뿐인데 혈통 종자란 아주 특수한 생물들이 언젠가부터 생겨났으니 말이야.”
아더의 눈길이 좁혀졌다.
“그래서 그 특수한 이물질들을 제거했다?”
“그런 셈이지.”
“그건 그냥 학살 아니에요?”
레오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
“천년 전 바이에른도 마드리드에게 그런 말을 했지. 그건 인간을 위한 게 아니라 그냥 미치광이 학살자라고. 역시 그의 혈통을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너라서 그런지 남다르구나.”
아더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썩 달갑지 않은 이야기네요.”
“영광스러운 일이야. 무려 천사의 핏줄에 가장 적합하단 이야기니깐. 허나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레오가 잔을 튕겼다.
그 순간 텅 비어있던 잔에 붉은색 와인이 채워졌다.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현상이자 마법이라 볼 수 있지만 아더는 내심 놀랐다.
‘도대체 아버지의 진짜 능력은 뭘까.’
비어있는 잔에 와인을 가득 채워 넣다니.
보통 마법이라는 것이 현상이나 법칙을 어그러트리는 걸 고려하면, 지금 보인 마법은 거의 창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마드리드가 마법의 시초라 했어. 그럼 아버지는 그 천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더가 고민에 잠겼다.
만약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버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렇게 아더의 의식이 상념의 바다로 흘러갈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오호. 사소하지만 대단한 능력이군. 물질 그 자체를 저리 쉽게 순간이동 시키다니.]
아더의 눈이 커졌다.
허나 그 이상의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지 않은 채 재빨리 속으로 소리쳤다.
‘흰 수염 씨!’
[뭘 그리 애타게 부르나?]
‘애타게 부를 수밖에요! 제가 몇 번이나 부른지 아세요?’
흰 수염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자네 연인도 아니고 애타게 부를 일이 뭐가 있어?]
‘지금 제 꼴 안 보여요? 이상한 혈통 능력 때문에 꼼짝도 못 하고 있어요.’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인가?]
‘……’
아더가 얼척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죽으면 다음 주인이 흰 수염 씨를 살려둘까요?’
[오. 그건 좀 문제가 되겠군.]
‘그렇죠. 그러니깐 흰 수염 씨의 생존은 저의 생존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흰 수염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흠…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 동의는 하네. 자네만 한 주인을 찾기란 힘들지. 자,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 속박에서 벗어날 방법, 뭐 없을까요?’
[아, 그건 불가능하네.]
‘…?’
[지금 자네가 꼼짝 못하는 건 마법이 아니야. 그보다 고차원적인 능력… 정확히는 종의 문제지.]
아더의 반짝이던 눈이 커졌다.
‘종의 문제… 라고요?’
[그래. 제국 황실이 왜 여태 인간들의 나라 중 가장 가성하고 거대한 나라로 군림했는줄 아나?]
‘……?’
[제국 황실… 저들의 피에 새겨진 저주받은 혈통 능력 때문이지. 그 능력의 정체는 모든 인간들의 ‘복종.’]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복종… 이라고요?’
[뭐, 길게 설명하자면 그보다 복잡하긴 하지만 일단 그렇단 소리지. 황실 제국의 피를 일깨운 자가 힘을 쓰면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명령을 거를 수 없어. 인간이란 종을 탈피하지 않는 이상.]
아더가 당황해 눈꼬리를 살짝 떨었다.
‘인간인 이상 이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럼 이대로 꼼짝도 못하고 죽어야 한단 소리인가?’
그럴 수는 없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 싶은 사람들, 정을 준 사람들.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돌아가야 했다.
그 탓에 아더가 다시 한번 흰 수염을 닥달하려 할 때였다.
전혀 예상 못한 이야기가 흰 수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보다 아더. 내가 잠시 고민을 해 봤어. 대체 내게 하늘섬이란 조직을 만들라고 한 자가 누구인지 말이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해요?’
[중요한 이야기니깐 들어. 자네와도 연관이 된 이야기네.]
‘……?’
아더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사이, 흰 수염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천년 전… 정확히는 한 900년 전. 나는 스승과 헤어지고 죽음이 두려워 골방에 틀어박혔지. 그런 한심한 나에게 누군가 찾아왔었어.]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구인데요?’
[저기 저 사내.]
‘……!’
[어둠 너머에 가려져 있었지만 분명히 봤어. 900년 전 날 찾아온 건… 저 사내야. 악마를 연상케 하는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
아더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만약 흰 수염의 말이 맞다면 아버지는 무려 900년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900년전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흰 수염의 사례를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기이한 사실임은 변함이 없었다.
그 때 레오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로 들려왔다.
“아들, 누구랑 대화하고 있길래 얼을 타고 있어?”
흠칫 놀란 아더가 정신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못 된 아버지를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직도 포기를 안 한 게냐?”
“포기를 왜 해요? 시도조차 못 했는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흥… 거참. 누구 아들아니랄까봐 끈덕진 것도 똑 닮았군.”
“부전자전이죠.”
“좋은 말이다. 흠… 일단 중단된 이야기나 다시 할까?”
이 말과 함께 레오 바이에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그래… 혈통에 관한 비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구나. 그 뒷이야기를 해주자면 두 천사는 극심이 싸웠어. 마드리드는 인간을 위해 모든 종족의 멸종을 외쳤고 바이에른은 조화를 외치며 그 일에 반대했지.”
자리에서 일어난 레오가 아더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아더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볼 때 레오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격렬한 논쟁은 곧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어. 결국 바이에른이 한 발자국 물러서는 걸로 합의를 보고 말았지. 대신 모든 종족의 멸종이 아니라 모든 종을 내쫓는 걸로 말이야.”
아더의 눈이 커졌다.
“종을 내쫓는다고요?”
“그래. 뭐, 내쫓는다고 해봐야 멸종이나 다름없었지. 이종족들을 몰아내기로 합의를 본 곳이 제국의 북부였으니깐.”
아더가 침묵한 채 떠올렸다.
제국의 북부.
그곳에서 보았던 신비한 악령과 악귀들.
그것들의 숨겨진 정체에 아더가 작은 감탄을 일으키는 사이 레오가 계속해 설명했다.
“그 뒤는 별거 없었어. 마드리드는 황제가 되었고 바이에른은 공작가를 세웠지. 싸움에서 밀린 바이에른이 이인자로 물러난 거야. 그 상태에서 제국은 더없는 황금기를 맞이했어. 가장 풍요롭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그래 맞아.”
레오가 빙그레 웃었다.
“마치 천상과 같은 지상낙원이 완성된 거야. 그 모든 걸 마드리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해냈고.”
아더가 대답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행복한 결말이네요.”
“그래 맞아. 여기까지만 들으면 행복한 결말이지.”
“뒷이야기가 더 있는 건가요?”
레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인간은 짐승이지.”
“……?”
“은혜를 모르고 감사함을 몰라. 오로지 제 사리사욕과 탐욕만을 쫓는 열등한 종족이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레오가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제 머리를 감싸쥐며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인간들을 위해 모든 걸 다받쳤어. 하지만 인간들은 천사에게 점점 더 과도한 걸 요구했지. 천사는 그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놨어. 하지만 결국 점점 능력에 부쳤어.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거든.”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레오 바이에른의 모습을 한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에 깃든 것은 후회와 슬픔.
그리고 짙은 분노였다.
“그럼에도 마드리드는 인간들을 위해 모든 걸 받쳤어.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려 햇지. 하지만 그의 자비도 인간들의 욕심은 이기지 못했어. 그는 결국 목숨보다 소중한 날개를 빼앗기고 죽을 위기에 처해버린 거야.
아더는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그래서… 천사 마드리드는 어떻게 됐는데요?”
레오 바이에른이 대답했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 했어. 고향… 천상. 모든 것이 완벽한 그 세계로.”
“하지만 못 돌아갔군요.”
“그래 맞아. 이미 날개를 인간들에게 빼앗긴 뒤였으니깐. 심지어 되찾으려 해도 빼앗긴 날개는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지.”
아더의 눈길이 좁혀졌다.
“그럼 바이에른 천사는요?”
“그 놈은 이미 돌아간 뒤였어.”
“……?”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 때 레오가 두 손으로 아더가 묶인 제단을 쾅! 소리내어 내리쳤다.
그 거친 행동에 아더가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떤 사이 레오가 소리쳤다.
“그 개자식은 이미 돌아간 뒤였다고-! 날 버리고! 하나뿐인 친구를 버리고! 인간과 똑같이 날 배신한 채 천상으로 돌아갔지!”
이 말가 함께 레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당신이 바이에른 혈통에 집착한 이유는.”
“맞아. 날 배신한 바이에른… 그 천사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지.”
레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아더의 시선이 좁혀졌다.
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의 얼굴은 어느사이엔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 변화 속에서 낯선 사내가 되어버린 레오가 중얼거렸다.
“제 피가 섞인 자식들을 남겨두고 갔다는 것. 천사의 피가 섞인 혈통을 말이야.”
이 말과 함께 레오가 천천히 아더를 향해 다가왔다.
그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레오 바이에른은 점점 다른 모습이 되어갔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당신은 제 아버지가 아니라.”
이 말과 함께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천사 마드리드였군요? 맞죠?”
레오 바이에른이 웃음을 터트렸다.
“반쯤의 정답이야. 나는 천사 마드리드며 레오 바이에른. 둘 다니까.”
이 말과 함께 레오 바이에른이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그러니 아들아.”
레오 바이에른의 손길이 아더의 날갯죽지로 향했다.
“아버지이자 인간을 구원한 황제를 위해 내놓거라.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개를."
하늘에서 떨어져 버린 천사.
그 천사의 작은 꿈이 밝혀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