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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43화 (243/265)

제243화

검을 쥔 뒤로 한계를 느껴본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검을 가르쳐준 드래곤도 이런 제 재능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셀, 나의 아이야. 너는 특별하다. 인간들을 기준으로 하자면… 그래. 검의 천재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아마 검으로 널 이길 수 있는 인간은 드물 것이다.]

그 탓에 카셀에게 있어 검이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유일하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

유일하게 남들에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것.

이 자부심은 곧 카셀이란 사람의 정체성이 되었다.

검을 쥐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검을 쥐면 누구도 이길 수 있다.

그 자신감은 라 하르칸.

그 괴물에 가까운 드래곤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저 괴물을 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드마스터가 된 지금.

카셀은 솔직히 말해 누구에게도 질 자신이 없었다.

그것을 인간을 한정으로 하면 오만한 자신감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확신이 되었다.

같은 칼을 든 인간을 상대로 소드마스터가 패배할 리 없다.

설령 같은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사력을 다한다면 승리할 것이다.

어쩌면 아더 바이에른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자신에게 총사령관 자리를 맡겼을지 몰랐다.

‘그러니 나는 절대로 패배하면 안 된다. 나의 패배는 곧 전쟁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그건 인간도 괴물도 아닌 라 하르칸.

저 괴물의 손일 것이다.

그 전에 아더 바이에른이 임무를 완수하고 자신과 저 괴물을 사냥하면 이번 전쟁은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것이 카셀이 내린 결론이었다.

허나 그의 예상은 한 남자에 모래성처럼 후루룩 무너져 내렸다.

“…컥.”

갑작스레 악마들 사이로 걸어 나온 회색 머리칼의 사내.

그 사내가 검을 휘두른 순간 카셀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커헉-!”

그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넘을 수 없는 벽.

처음으로 마주한 재능이란 거대한 벽에 대한 공포였다.

검이라기 보다는 둔기에 가까운 검은 칼을 든 사내의 움직임을 카셀은 전혀 쫓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내가 같은 칼잡이의 움직임을 놓칠 수 있는 거지?’

말이 되지 않았다.

설령 저 회색 머리칼의 사내가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말이다.

허나 이러한 자신을 비웃듯 회색 머리칼의 사내는 너무나도 여유롭게 제 시선을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휙-!

한 겨울의 눈이 생각나는 듯한 차가운 달빛을 두른 검이 온몸을 낭자한다.

그 부상을 피하기 위해 검을 들어 막기도 해보고 바닥을 굴러 자리를 피하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사내의 검을 피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기라도 한 것마냥 사내의 검은 카셀이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경로로 치고 들어와 그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

그 사실에 카셀은 육체의 고통보다는 영혼이 꺽이는 아픔을 느꼈다.

내가 검을 보지 못하다니.

유일하게 남들과 비교해 꿇리지 않는 것으로 이런 격차를 느끼다니.

아픔은 곧 분노가 되었다.

카셀은 고함을 지르며 손에 들린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 일격에 회색 머리칼의 사내.

할리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잘 버틴다 했더니 금방 망가져 버렸군?”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아주 손쉽게 카셀의 일격을 막아냈다.

눈꼬리를 파르르 떤 카셀이 제 검을 막아낸 할리버의 대검을 튕겨낸 후 다시 한번 쇄도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마저도 예측했다는 듯 할리버는 아주 손쉽게 피해냈다.

그 속에서 할리버가 중얼거렸다.

“…그래. 짜증나겠지. 그 정도 경지에 이르렀으면 여태 누군가에게 져본 경험이 없을 테니깐.”

이 말과 함께 할리버의 입가에 조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소드마스터 카셀. 세상은 가혹한 법이야. 하늘 위에 하늘이 있는 것이고 재능 위에 또 다른 재능이 있기 마련이지.”

그 조소와 함께 할리버가 검을 일자로 휘둘렀다.

그 순간 카셀의 세상이 정지했다.

정확히는 정지 할 수밖에 없었다.

파악-!

솟구치는 피 분수와 함께 가슴팍에서 짜릿한 고통이 일었다.

카셀은 입을 뻐끔거리다, 그대로 뒷걸음질 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 할리버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한 번 상상해보게. 이 넓은 세상에 자네보다 뛰어난 칼잡이가 없을까? 자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칼잡이가 존재하지 않을까? 아니… 분명 존재할 거야. 존재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태어나겠지. 그게 바로 세상의 순리고 진리거든.”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카셀의 머리 대검을 겨눴다.

간신히 고개를 든 카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할리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게. 그냥 단순한 거야. 내가 자네보다 강하고 재능이 더 뛰어났을 뿐. 그게 이 전투의 전부인 것이네.”

카셀이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의 이름이 뭐요?”

할리버가 대답했다.

“할리버. 세계, 그걸 뛰어넘어 역사에서 가장 강한 칼잡이의 이름이지.”

카셀이 표정을 왈칵 찌푸렸다.

“그런 자가 왜 악마들의 편에 있는 것이오!”

할리버가 어깨를 으쓱였다.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안 되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라면 악마들의 편에 서는 게 이상한 게 아니오!”

할리버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봐 소드마스터 카셀. 내 기준에선 악마나 인간이나 별다를 게 없어. 어차피 악마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인간들도 하지 않나?”

카셀이 흘러내리는 피를 억지로 집어삼키며 대답했다.

“그러한 인간들도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인간들이 더 많은 건 확실하오. 그러니 우리는 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소.”

“…흠. 그 말도 일리가 있군. 하지만 말이야.”

“…?”

“인간들 편에 서서 악마들과 싸우는 것보다, 악마들 편에 서서 인간들과 싸우는 쪽이 더 재밌지 않나?”

카셀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할리버가 양손을 펼쳐보았다.

“악마들 덕에 이 전쟁이 벌어졌고, 너와 내가 만났지.”

“….”

“그뿐인가? 세상은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고 더 많은 싸움과 죽음. 그리고 피비린내가 대륙에 퍼져 나갈 거야.”

그 모습에 카셀의 눈꼬리가 떨렸다.

역시 이 사내도 정상이 아니다.

특출난 칼잡이들이 대게 가지고 있는 정신병.

그 정신병을 이 사내도 앓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안 좋은 방향으로.

“싸움과 죽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칼이 있기 마련. 우리 같은 칼잡이들 입장에서는 지금의 세상이 더 좋은 법이지.”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검을 들어올렸다.

“자… 이 정도면 답변으로서는 충분한가?”

카셀도 칼을 들어올렸다.

이미 검강으로 온몸을 낭자당한 탓에 한계에 몰린 체력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마저도 이겨내며 칼을 집었다.

“대답이 됐기는 하군… 매우 안 좋은 쪽으로… 소드마스터 할리버.”

할리버가 빙그레 웃었다.

그 순간 그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 일격에 맞서 카셀도 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은 일격이기에 거의 본능에 가깝게 휘두른 검이었다.

하지만 그런 눈먼 일격에 할리버의 검이 꺾일리 없었다.

콰직-!

카셀의 검강이 깨어지고, 다시 한 번 가슴팍에 상처가 생겼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줄기와 살점에 카셀이 또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런 카셀을 바라보던 할리버가 제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조금 더 숙성된 뒤에 자네와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까워… 하지만 이게 또 자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군.”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카셀을 지나쳐 성문으로 향했다.

“……!”

둘의 싸움을 멍하니 지켜보던 병사들이 움찔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 병사들을 향해 할리버가 고민하다 말했다.

“음… 그래.”

“……?”

“딱 10초주겠네.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지키고 있는 문을 활짝 열게.”

병사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 사이 할리버가 빙그레 웃었다.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문을 열게. 나중에 죽나 지금 죽나… 그 차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살아 있는 게 좋을 거 아닌가?”

* * *

하늘에서 내려온 두 천사가 나라를 세웠다.

두 천사는 그 나라의 이름을 제국이라 명명했다.

천사들은 그 제국을 이용해 대륙에 각 전역에 뻗쳐 있는 괴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똑똑해. 우리가 조금만 거들어줘도 알아서 할 거야.]

천사, 바이에른의 예측은 정확했다.

검과 마법을 배운 인간들은 엄청난 속도로 대륙을 평정해 나아갔다.

그 속도가 어느정도 였냐면 정확히 나라를 세운지 1년만에 대륙의 전역에 있던 괴물들을 제국의 북부로 몰아내 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성과에는 천사 마드리드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숫자가 많아서 그런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바이에른이 대답했다.

[단순히 숫자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따로 이유가 있다고 바이에른?]

[그래. 인간이 가진… 음. 가능성? 여튼 그런 것들이 큰 부분에서 작용했을 거야.]

마드리드가 비웃음을 터트렸다.

[저 열등한 종족에게 가능성이 어디있다고? 숫자가 많은 걸 빼면 다른 짐승들과 똑같은데.]

바이에른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뭐, 생각은 다를 수 있지. 자, 그럼 돌아갈 준비를 하자.]

마드리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돌아갈 준비를 하자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하늘로 돌아갈 준비지.]

[…!]

[신이 내려주신 임무를 다 끝마쳤으니 슬슬 천상으로 가야지. 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던 고향으로 말이야 마드리드.]

바이에른의 말에 마드리드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와 동시에 제국의 수도가 눈에 들어왔다.

[….]

바이에른이 정한 장소.

바이에른이 모은 인간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도시.

그 도시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불과 1년 전까지 이 도시가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황무지였다는 걸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 속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두 천사를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전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님들 때문이야.”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어.”

“그분들은 구세주야. 인간들을 구원해준 구세주.”

말을 할 수 있게 된 인간들은 온갖 감미로운 언어로 두 천사를 찬양했다.

그 광경을 잠시 말없이 지켜본 마드리드는 생각했다.

‘찬양이라는 게… 이렇게나 기쁘구나.’

그 탓에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기껏 고생해서 우매한 인간들은 저런 식으로 개조시켜놨다.

그런데 그 갖은 고생 끝에 만들어 결과를 맛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천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흠… 조금 더 저들의 찬양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천상으로 돌아가면 찬양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신을 향해 찬양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고민하던 마드리드는 힐끔 바이에른을 바라보았다.

[…이봐 바이에른.]

바이에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우리 임무, 아직 끝나지 않지 않았나?]

[…우리 임무가 아직 안 끝났다고?]

[그래. 우리 임무는 세상을 구원하는 거잖아?]

바이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대륙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북부로 몰아냈잖아?]

마드리드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아니. 괴물들을 다 없어지지 않았어. 아직 저렇게나 남아있는 걸?]

바이에른의 눈이커졌다.

[어디에?]

[저기에.]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가 도시를 거니는 한 종족, 아니 수십개의 종족을 가리켰다.

그 순간 바이에른의 눈이 커졌다.

[저건… 엘프잖아?]

[엘프만이 아니야. 드워프, 오크, 트롤, 고블린….]

말을 흐린 마드리드의 눈이 위험하게 빛이 났다.

[신을 찬양하지 않은 종족들. 저 놈들마저 없애야 대륙에 진짜 구원이 찾아오지 않겠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 온 천사.

허나 그 천사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들만을 위한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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