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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40화 (240/265)

제240화

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화되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라-!”

“이 전투가 끝으로 모든 것이 결정 난다!”

“우리의 가족, 친구, 그리고 먼 후손을 위해 칼을 들어라!”

끝없이 밀려오는 악마들.

그 악마들에 맞서 싸우는 연합군.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전장을 가로지르는 기사단들.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목숨을 건 채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 처절한 광경을 지켜보던 윌렛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둠에 휩싸인 창공.

그 하늘 위에 찬란한 빛을 내뿜는 일곱 마리의 드래곤이 하트를 등지고 있었다.

[라 하르칸. 이 사악한 괴물아. 너는 우리가 상대해주겠다.]

일곱 마리의 드래곤 중, 붉은빛 비늘을 가진 드래곤의 말에 괴물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들만으로 나를 상대한다고?]

라 하르칸.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재밌구나… 재밌어. 천년 전 수많은 드래곤들을 이끌고 왔을 때도 너희는 날 끝내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푸른 빛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대답했다.

[너의 존재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심장을 빼앗기고도 죽지 않는 것이지.]

[그래… 그 심장을 빼앗기고도 죽지 않은 존재가 나다.]

라 하르칸이 세 개의 눈을 번뜩였다.

[그런 내가 심장까지 되찾아 원래의 힘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런 날, 너희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일곱 마리의 드래곤들이 낮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우리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아낼 것이다, 이 괴물아.]

[좋다… 어디 한 번 해보자꾸나. 천년 전 마무리 짓지 못한 싸움… 오늘 여기서 끝을 내리라.]

이 말과 함께 라 하르칸과 일곱 마리의 드래곤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콰앙-!

거대한 울림이 어둠에 휩싸인 하늘을 반으로 갈랐다.

그 장엄한 광경에 윌렛이 전율에 떨며 중얼거렸다.

‘이제 모든 싸움이 시작됐다.’

드래곤은 드래곤이.

악마는 연합군이

어떻게 맞추었는지 몰라도 균형의 추가 얼추 맞는 전쟁이.

‘허나 균형만 맞추었을 뿐. 이쪽의 열세는 여전하다.’

특히 악마와 연합군의 차이가 매우 컸다.

현재 하트에 있는 연합군의 숫자는 채 1만이 넘지 않는다.

허나 저 설원을 점령한 악마들의 숫자는 1만을 넘어 2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숫자일지도 몰랐다.

[끼에에엑-!]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괴수 군대.

그 무모한 돌진에 연합군의 병사들은 벌써부터 공포와 피로를 토해내고 있었다.

다행히 그 공백을 연합군의 기사단이 메꾸어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안 된다!”

“놈들에게 발목이 잡히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끊임없이 베고 쓰러트려라! 팔과 다리가 분질러도 검을 멈추지 마라!”

설원을 뒤덮은 악마들의 진영을 헤집는 레버쿠젠 기사단.

그 기사단을 위해 열어둔 유일한 탈출구를 막아주는 바이에른 기사단.

그들의 놀라운 선전에 의해 종의 격차는 물론이고 숫적인 공백마저도 비등해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현재 가진 강력한 무기인 기사단의 저력.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무기에 기댈수는 없다.’

결국 전쟁은 기사단이 아니라 그 기사단을 뒷받침 해주는 병사에 의해 결정 난다.

그 사실을 떠올린 윌렛이 눈빛을 번뜩였다.

‘현재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합군의 병력을 효율적으로 지휘해 전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생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지휘를 자신이 할 수 있을까?

고작 몇 명의 용병들을 관리한 게 전부인 자신이?

고민하던 윌렛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군… 할 수밖에 없군.’

전쟁의 패배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직 자신은 죽을 수 없다.

인생의 황혼기, 끝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작은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눈빛을 빛낸 윌렛이 거칠게 고함을 쳤다.

“레버쿠젠의 장군들-!”

“……!”

“그리고 날 따라 하트로 온 아케인의 고참급 용병들은 지금 즉시 이곳으로 모여라!”

어찌나 강렬한 외침인지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움찔 놀랬다.

하지만 각지로 퍼져있는 참모급 인력들을 불러 모으기에는 부족했다.

그 탓에 윌렛은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지목해 명령했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내 명령을 각 연합군의 참모들에게 전해라.”

지목당한 병사들이 윌렛의 강렬한 기세에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허나 몇몇 병사들은 의문을 품고서 질문했다.

“그, 그… 누구시길래 참모를 불러 모으라는…?”

“이번 전쟁을 지휘할 사령관이다.”

“…?”

“못 들었나? 이번 전쟁을 지휘할 사령관이다. 지금 당장 발을 안 놀리면 명령불복종으로 즉결처형하겠다.”

의문을 품던 병사들이 즉결처형이란 말에 깜짝 놀라 조금 전 병사들처럼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윌렛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전황을 살폈다.

‘저 뻥 뚫린 성문은… 카셀 브리드. 아더가 남겨주고 간 친구가 잘 막아주고 있군.”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불안한 구석이 의외로 철통처럼 방어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불안한 건 남쪽 성벽이다.’

눈앞의 지형을 그린 지도도 그렇고 흘러가는 전황도 그렇고.

다른 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은 남쪽 성벽이 제일 불안했다.

그 탓에 윌렛은 이 남쪽 성벽에 추가 병력을 파견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 잔여병력을 살펴보았다.

허나 쉽지 않았다.

‘제일 불안 한 게 남쪽 성벽이라 그렇지… 다른 쪽의 상황도 그렇게 여의치 않군.’

지금 하트의 성벽을 비유하자면 언제 터져도 안 이상할 시한폭탄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쪽의 병력을 끌어다 쓰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윌렛은 곧 눈빛을 반짝였다.

‘수성을… 굳이 병사들로만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지금 이 성에 있는 것은 연합군의 병사만이 아니다.

하트의 시민들도 같이 성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시민들의 숫자는 병사들의 숫자를 월등히 능가했다.

‘허나 일반 시민들에게 창과 칼을 쥐어줄 수는 없다. 그들이 대신 할 일을 찾아야 해.’

생각과 함께 윌렛이 그 시민들을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할 때였다.

새하얀 설원 위.

그곳에서 손에 들린 꽃을 이리저리 굴리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흠… 갈까. 말까.”

이 말과 함께 사내가 꽃잎을 한 장씩 때었다.

갈까에 한 장.

말까에 한 장.

그렇게 한 송이 꽃의 꽃잎을 모두 때어버린 사내가 탄성을 터트렸다.

“가야된다, 에 걸렸군?”

운명의 여신이 이 꽃으로 자신의 싸움이 이곳에 있다 점지해주었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 내 싸움이 있을까?”

던져진 질문과 함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괴물과 인간.

그 치열한 격전이 시야에 들어왔다.

[끼에에엑!]

“크아아악-!”

각기 다른 비명을 내지르며 두 종족이 서로의 목에 창과 발톱을 꽂아넣는다.

그 혈투를 지켜보던 사내는 곧 눈빛을 빛냈다.

“일단 재밌어 보이는 건… 저쪽이군?”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기사단.

그들이 전쟁의 균형의 추는 물론이고 승기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 탓에 사내의 눈길에 흥미가 깃들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칼잡이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광경은 쉬이 볼 수 없었으니.

하지만 그는 곧 입맛을 쩝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저기도 탐이 나지만… 아니다.’

자신을 싸움.

자신의 전장은 안타깝게도 저 수준 높은 기사단이 아니었다.

곧 고개를 돌린 사내가 이 전장에서 가장 많은 시체가 쌓여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찬란한 달빛이 사내의 눈을 물들였다.

화악-!

눈이 멀 것 같은 그 달빛이 사악한 괴물들을 끊임없이 베어넘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 수준 높은 달빛에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찾았구나. 나의 새로운 먹잇감.”

이 말과 함께 사내, 할리버가 걸음을 옮겼다.

치잉-!

그 순간 그의 묵직한 흑도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그 소음에 할리버가 흑도를 살며시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래… 너도 기대가 되는 모양이지?”

할리버가 경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20년만에 나타난 소드마스터. 놈의 피가 얼마나 맛있을지.”

소드마스터를 사냥하는 소드마스터.

역사에서 가장 칼잡이가 움직인 순간이었다.

* * *

두 명의 천사가 지상에 내려왔다.

신의 계시를 받아 지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한 명의 천사는 불만을 가졌다.

[왜 우리가 열등한 인간 때문에 천상을 벗어나 이곳에 와야 하는 거지?]

그 천사는 지상의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상과 달리 모든 것이 검은색인 지상.

천사가 되지 못한 열등한 인간들.

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못난 짐승들도 넘쳐났다.

태어날 때부터 천상에만 있었던 천사는 그 모든 것들이 혐오스러웠다.

허나 같이 내려온 또 다른 천사는 달랐다.

[이곳이 지상이구나. 제법 흥미로운데?]

그는 천상과 다른 지상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과 달리 날개가 없는 인간들이 흥미로웠다.

천상에서는 볼 수 없는 짐승들마저도 뭔가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했다.

그 모습에 또 다른 천사가 불만을 품고서 말했다.

[이봐 바이에른.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이 말에 바이에른이라 불린 천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재밌지 않아? 천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지상에는 넘쳐나는데?]

또 다른 천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상에 내려오니 미쳐버리기라도 한 거야?]

[어라? 몰랐어? 나 원래 미쳐 있었는데?]

[…]

또 다른 천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 바이에른이란 이름을 가진 천사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신께서 우리를 내려보내신 이유를 알 것 같아. 이런 재미난 곳이 조금 더 그럴 싸하게 바뀌면 얼마나 더 멋진 곳으로 변하겠어?]

그 모습을 또 다른 천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바이에른이라 불린 천사는 개의치 않아 했다.

자신과 똑같은 계시를 받고 내려온 천사.

‘마드리드’는 항상 매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 해서 신의 계시마저도 불만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의 바이에른은 그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점이었다.

그렇게 지상에서 내려온 두 천사는 대륙을 거닐며 고민했다.

[신께서는 우리보고 대륙을 구원하라 했어. 하지만 어떻게 이곳을 구원해야 할까?]

마드리드의 질문에 바이에른이 대답했다.

[일단…대륙에 방해되는 것들을 싹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방해되는 것들을 싹 없애자고?]

[응. 예를 들어 저기 저 놈들.]

이 말과 함께 바이에른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시선을 돌린 마드리드는 바이에른이 가리킨 무언가를 확인하고서 눈을 치켜떴다.

[…저건 짐승이잖아?]

[정확히는 감정이 없는 고깃덩어리들이지.]

바이에른이 팔짱을 꼈다.

그 사이 두 천사가 바라보는 기괴한 짐승이 기괴한 울음을 내뱉었다.

[끼에에엑-!]

듣기만 해도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은 짐승이 무언가를 파훼쳤다.

두 천사는 어렵지 않게 그 무언가가 천사가 되지 못한 짐승.

‘인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기괴한 짐승이 한 인간의 내장과 심장을 모두 파먹을 때까지 구경한 천사들이 중얼거렸다.

[굳이 왜 저것들부터 없애자는 거야?]

[감정이 없으면 신앙심이 안 생겨.]

[…?]

[신앙심이 없으면 신을 믿기가 힘들지. 우리가 내려온 목적이 뭐야? 널리 신의 존재를 퍼트려 이 대륙에 신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아니야?]

바이에른의 말에 마드리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 그런 계시였나?]

[그런 계시겠지. 아니면 말고.]

[……?]

[내 나름의 해석인데 일단은 이게 가장 그럴 싸 하잖아? 그리고 이 추론대로라면 저 괴물들은 신앙심이 생길 수 없어.]

바이에른이 코끝을 살짝 찡그렸다.

[감정이 없는 놈들이 어떻게 신을 믿어? 안 그래?]

마드리드가 오묘한 눈빛으로 바이에른을 바라보았다.

[헛소리가… 날이 갈수록 느는구나?]

[칭찬이지?]

[….]

[뭐, 그건 됐고 일단 저 괴물부터 싹 정리하자고. 그 다음에 뭘해도 될 것 같으니깐.]

마드리드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해 바이에른.]

[어째서?]

[저 괴물들은 너무 많아.]

마드리드가 손가락을 치켜들며 지적했다.

[우리가 괴물들을 죽이러 다니는 속도보다 저 괴물들이 번식하는 속도가 더 빠를 거야. 즉, 대륙에서 저 괴물들을 없앨 수 없단 소리지.]

바이에른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왜 우리가 없애?]

[…?]

[우리 대신 움직여줄 손발이 넘쳐나는데?]

마드리드가 눈을 끔뻑였다.

[손발이… 넘쳐난다고? 그게 누군데?]

[누구긴 바로 인간들이지.]

[……!]

마드리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 괴물 하나에 수십수백이 죽어 나가는 인간들이 어떻게 우리의 손발이 되어줘?]

바이에른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니깐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지.]

바이에른이 호기심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마드리드. 넌 지금부터 인간들에게 마법을 가르쳐. 난 지금부터 인간들에게 검을 가르칠게.]

마드리드가 경악해 소리쳤다.

[너, 너 제정신이야?]

[왜?]

[처, 천상의 학문을 인간들에게 가르치겠다고?]

바이에른이 어깨를 으쓱였다.

[못 가르칠 건 또 뭐야?]

이 말과 함께 바이에른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괴물에게 심장과 내장이 파먹혀 비참하게 죽은 인간이 보였다.

그 인간을 바라보며 바이에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이 날개라는 것뿐인데? 그러니 잔말 말고 내 말에 따라 마드리드. 그래야 네가 원하는 천상에 빨리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두 천사는 인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법과 칼.

인간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명(文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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