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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37화 (237/265)

제237화

하트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내려진 총동원 명령.

그 명령에 의해 모든 병력이 한 곳으로 집결되었기 때문이다.

“들었어? 적들이 코앞에 다가왔다는데?”

“뭐!? 벌써 북부 영역에 들어섰다고?”

“그게 말이 되나? 제국에서 북부까지 못 해도 일주일은 걸릴 텐데?”

한 자리 모인 연합군들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이 수도에서 이곳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3일은 더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아케인의 시장.

윌렛 크레스톨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수도에서 3일 만에 이곳에 도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면 저들도 아케인의 연합군이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존재에게 도움을 받았을 확률이 높았다.

‘드래곤의 마법… 그게 있으면 영 불가능하지 않지.’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이동속도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 탓에 윌렛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성내를 둘러보았다.

“…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연합군은 아직 준비가 덜 끝나 있었다.

물자나 병력.

그것들의 재정비는 물론이오, 가장 시급한 군의 재평선 또 한 아직이었다.

‘전쟁은 시간 싸움인데 벌써 우리는 그 시간을 빼앗겨 버린 것이군.’

생각과 함께 윌렛이 고개를 들었다.

성벽 위에 선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 카셀이 보였다.

무언가 고민에 잠긴 듯한 그의 모습은 짧은 시간이지만 평소 보여주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 진중한 모습에 윌렛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전쟁을 앞두고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만… 제발 이번만큼은 그의 판단이 틀렸으면 좋겠군.’

카셀이 사실 착각했다.

적들은 지금 북부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연출되기를 윌렛이 내심 속으로 빌 때였다.

갑자기 세상이 갈라졌다.

“……!”

윌렛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그 사이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며 거대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

윌렛은 고막을 막으며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내질렀다.

순간적인 소음에 정신이 나갈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 난데없는 거대한 울림이 귀를 넘어 정신 그 자체에 전달되었다.

[미개한 인간들이 또다시 모여있구나. 그것도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윌렛이 턱을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태양이 떠올라있을 자리.

그곳에 웬 괴수가 거대한 두 날개를 펄럭이며 고고한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잠시 넋이 나간 윌렛은 뒤늦게 저 괴수가 카셀과 아더가 말하던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라 하르칸]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런 끔찍한 괴물이…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 때 라 하르칸의 주둥이가 벌어졌다.

“…?”

윌렛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벌어진 라 하르칸의 주둥이에서 한 번도 보지 기괴한 불꽃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검은색과 빨강.

빨강과 파랑.

그 중간 지점에 있는 미묘한 색을 띤 불꽃이 그 크기를 점차 키우더니 이내 하트의 크기만 큼이나 커졌다.

경악을 감추지 못한 윌렛이 소리쳤다.

“모두 도망…!”

하지만 한 박자 늦고 말았다.

라 하르칸의 벌어진 주둥이 머금어 있던 기괴한 불꽃이 세상을 향해 쏘아졌다.

콰앙-!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세상을 향해 떨어져 내린 불꽃이 하트로 향했다.

그 광경에 윌렛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죽었다?’

그 생각과 함께 윌렛이 두 눈을 질끈 감으려 할 때였다.

세상을 향해 내려오던 불꽃 못지 않은 거대한 빛이 하트의 성벽 위에서 터져나왔다.

화악-!

거대한 빛, 정확히는 찬란한 달빛이 기괴한 불꽃의 정중앙을 갈랐다.

그 순간 거대한 폭음이 세상을 뒤흔들며 한 줄기의 소용돌이가 하늘로 승천했다.

그 장면을 넋을 놓은 채 지켜보던 윌렛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허억?”

막아냈어? 저 불꽃을? 어떻게?

그 때 하늘 위에 떠 있던 라 하르칸이 중얼거렸다.

[카셀. 인간도 복제품도 아닌 이 이중간한 녀석아.]

이 말에 성벽 위에서 달빛을 두르고 있던 카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또 왔구나 이 괴물아.”

[당연히 와야지. 이곳에 내가 씹어먹을 것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라 하르칸이 낮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이번에야 말로 죽여주마. 육체의 죽음 뿐만이 아니라 진정한 영혼의 죽음으로.]

카셀이 맞받아쳤다.

“이쪽에서 할 말이다. 이번에야 말로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끝내자꾸나.”

이 말과 함께 카셀의 검에서 더욱 환한 달빛이 터져나왔다.

화악-!

그 강렬한 빛에 라 하르칸의 등장으로 넋을 잃었던 연합군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성벽 위에 선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두른 남자가 거대한 괴물에 맞서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그 사내가 눈빛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전군 전투 준비-! 모두 목숨을 걸고 눈앞의 괴물을 막아낸다! 그 선봉에 나, 카셀 브리드가 앞장선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 * *

지니가 눈을 굴렀다.

앞장서 걸어가는 흑색 피부의 귀쟁이가 보였다.

자신과 피부 색만 다르다는 걸 빼면은 여러모로 닮은 여자였다.

쫑긋한 두 귀에 어딘가 비정상적인 외모.

늘씬늘씬한 두 팔과 두 다리는 마치 복제라도 한 것마냥 빼닮았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저 여자가 엘프라고?’

그런데 왜 엘프가 황제의 곁에 있는 걸까?

심지어 흰수염에 말에 의하면 저 여자는 하늘섬의 조직원이라고 했다.

대륙에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조직원이란 소리는 저 여자도 그에 걸맞는 범죄자란 소리다.

처음 만난 같은 동족, 엘프가 하필 하늘섬의 조직원이자 범죄자란 사실에 지니가 심란한 기분을 숨기지 못할 때였다.

앞장서 걸어가던 엘프.

하이네스가 중얼거렸다.

“어디 출신이에요?”

상념에 빠져있던 지니가 정신을 차리고 대꾸했다.

“그걸 왜 말해줘야 해요?”

“같은 동족끼리 만났는데 이 정도는 물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

지니가 입을 다문 뒤 생각했다.

‘그건 맞는 데 우리는 지금 적 아닌가?’

아무리 같은 동족이라도 적에게 고향을 물어보나?

잠시 고민한 지니가 곧 천천히 대답했다.

고향 정도는 말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남부 출신이에요. 밀림 가득한 도시에서 태어났죠.”

하이네스가 옅게 웃었다.

“좋은 곳이 고향이군요.”

“…밀림밖에 없는 곳이 어떻게 좋은 고향이에요?”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장소죠. 저희는 숲을 사랑하는 종족이니깐.”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별로 안 사랑하는데?’

오히려 숲보다 도시가 더 좋았다.

심심하기만 숲보다는 시끌벅적한 도시가 여러모로 재밌으니깐.

그때 하이네스가 앞을 가로막는 문을 열었다.

탁-!

엄청나게 고급져 보이는 응접실이 문 너머에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값비싸 보이는 가구들의 향연에 지니가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황실의 응접실이라 다르긴 하네.’

세상이 멀쩡했다면 저 가구들 하나만 훔치고 나와 팔아도 웬만한 집 한채는 거뜬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하이네스가 어느 사이엔가 끓여온 차를 내어오며 권했다.

“자리에 앉으시죠.”

지니가 움찔 놀라 귀를 떨었다.

그 반응에 하이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놀라시는 겁니까?”

지니가 살짝 망설이며 대답했다.

“어… 저희는 적 아닌가요?”

“동포가 왜 적이죠?”

“…….”

“이상한 질문이군요. 당신은 엘프, 저도 엘프입니다. 이 세상 몇 남지 않은 유일한 같은 종족이죠. 그런 당신하고 제가 왜 싸우겠습니까?”

이 말에 지니의 입술이 달싹여졌다.

‘뭔가 이상한데 이거….’

하이네스와 격렬히 싸울 각오까지는 아니었지만 저런 태평한 소리를 하다니?

그 탓에 지니가 하이네스의 권유에도 앉기를 망설일 때였다.

앞에 있던 하이네스가 먼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좋아하지 않죠. 그리고 저는 그중에서도 거짓말을 더욱 혐오하는 분류입니다.”

“…….”

“당신을 건들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황제와 천사와의 면담이 끝날 때까지 말이죠. 그러니 경계를 푸시고 이야기나 좀 나누시죠.”

지니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무슨 대화를 나눈단 말이에요?”

하이네스가 웃었다.

“음… 가벼운 역사 수업이나 할까요?”

“……?”

“저는 이래 보여도 꽤 오래 살았습니다. 당신이 아는… 그 흰 수염보다 더 오래 말이죠.”

지니의 눈이 커졌다.

“그럼 당신이 천 년을 넘게 살았단 이야기에요?”

“그럼요. 그러니 제게 듣는 역사 수업은… 그래요. 말 그대로 역사 그 자체입니다. 시간을 때우기에는 이것 만한 게 없을 거예요.”

이 말에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

설명을 끝마치고 차를 호로록 들이켜는 하이네스는 정말로 싸울 의지가 없어보였다.

긴장감은 고사하고 여유가 넘치는 그 태도에 고심하던 지니가 결국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격렬히 싸울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런 분위기가 나을지도 몰라.’

생각과 함께 지니가 질문했다.

“이 차에 독이 들어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죠?”

하이네스가 웃었다.

“엘프에게 독을 쓰는 바보도 있나요?”

이 말과 함께 하이네스가 조금 전 권했던 차를 다시 권했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하이네스를 바라보던 지니가 그 차를 조심스럽게 들이켰다.

알싸한 향을 내뿜는 차는 첫 모금임에도 이 차의 품질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하이네스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흠… 뭐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요. 시간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니… 주제의 선정에 더욱 고민이 되는군요.”

잠시 고민한 하이네스가 곧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일단 이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군요.”

지니가 질문했다.

“무슨 이야기죠?”

“사라진 엘프 왕국.”

“……?”

“인간을 대신해 이 대륙을 지배했던…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한 왕조에 대해 설명해드릴까 해요.”

지니의 눈이 커졌다.

“사라진… 엘프 왕국? 그리고 대륙을 지배했던 왕국이요?”

하이네스가 웃었다.

“네. 재밌을 거예요. 그 왕국의 탄생과 멸망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니.”

* * *

아더가 어둠 속을 걸었다.

이곳이 24시간 빛이 사라지지 않은 황궁임을 고려하면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 올 지 모르는 침입자에 대비하기 위해 황궁의 불은 밤낮 가리지 않고 매일 같이 켜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더는 그 사소한 일에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아더의 온 신경은 제 육체.

자신의 내면.

그리고 아더 바이에른이란 한 인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무아지경에 이른 고요한 상태에서 아더는 계속해서 걸었다.

탁.

그 순간 예고도 없이 횃불이 켜졌다.

고개를 든 아더가 횃불이 켜진 쪽을 바라보았다.

모든 곳이 어둠에 휩싸여 있는데 딱 한쪽만 횃불이 켜져 있었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방향판처럼.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휩싸인 통로가 끝이 났다.

화악-!

조금 전까지 어두컴컴한 궁궐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빛들이 통로를 가득 매웠다.

아더는 고개를 들어 그 빛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마력으로 가동되는 장신구군.]

비스트에 깃든 흰수염의 말에 아더가 중얼거렸다.

“황궁답네요.”

[그렇지. 돈이 썩어 넘쳐나니, 저런 것들을 이런 복도에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거겠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화악-!

걸음을 옮길수록 통로를 가득 메우는 빛은 더욱 환해졌다.

그 세기가 어찌나 강한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눈을 뜨기도 힘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더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정면을 주시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거대한 대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곳이 아무리 황궁이라는 걸 감안해도 집안에 있어서는 안 될 크기의 대문이었다.

그 탓에 잠시 그 대문을 구경하던 아더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 대문을 밀었다.

끼익…

대문은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손쉽게 열렸다.

그 속에서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권좌에 앉아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자신과 똑같은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였다.

아더가 웃으며 그 사내를 향해 인사했다.

“다시 만나네요, 아버지.”

권좌에 파묻혀 있던 사내.

레오 바이에른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사랑스러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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