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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34화 (234/265)

제234화

뼈뿐인 관절이 턱턱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해골이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조금 전 들은 목소리는 흰 수염인데… 그 목소리가 왜 들리는 거지? 그 영감쟁이는 분명 죽었을 텐데?”

이 말에 비스트에 깃든 흰 수염이 대답했다.

[오랜만이군 베스카넨.]

“…!”

해골의 관절이 벌어졌다.

“…정말 흰 수염의 목소리잖아?”

믿을 수 없다는 듯 관절을 떤 해골이 돌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 대단하신 흑마법사가 어쩌다 그런 꼴이 됐소?”

[긴 사정이 있네. 그보다 자네가 왜 여기 있는가?]

“흠… 이쪽도 설명하자면 긴데.”

말을 흐린 해골.

동시에 베스케넨이란 이름을 가진 네크로맨서가 히죽 웃음을 터트렸다.

“간단히 압축하자면 당신이 사라진 하늘섬에 새로운 주인이 강림하셨소.”

흰 수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 주인의 명령에 따라 제국의 수도를 이꼴로 만든 건가?]

“뭐, 그런 셈이지.”

[흠… 그것 참. 우리는 역사의 그늘이지 주인공이 아니거늘….]

혀를 찬 흰 수염이 제안했다.

[옛 정을 생각해서 좀 비켜주면 안 되나?]

베스케넨이 관절을 딱딱 거렸다.

“비켜주지.”

[……?]

“애초에 내가 받은 명령은 그쪽들을 잡아두란 것이 아니었소. 제국 시민들을 산 망자로 만들라는 거였지. 그러니 곱게 비켜주겠소.”

흰 수염이 의아해 하며 말했다.

[그럼 이 곳에 왜 온겐가?]

“그야 내가 보낸 사자를 죽인 놈의 얼굴이 궁금해서 그렇지. 그게 설마 흰 수염… 당신일줄은 몰랐지만.”

베스케넨의 말에 아더가 비스트를 향해 속삭였다.

“위험하신 분이라는 것치고 성격이 나쁘지 않은데요? 곱게 길을 비켜주신다는데?”

흰 수염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저 말을 믿나? 분명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요?”

[아까도 말했지만 베스케넨은 하늘섬 조직원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인간이야. 일단 저 놈은….]

말을 흐린 흰 수염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타고난 거짓말쟁이야. 지금부터 저 놈이 하는 말에 진실은 없다 생각하게.]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뭐, 간단하네요. 위험하고 거짓말쟁이에다 제국 시민들을 산 망자로 만든 분을 죽이고 가면 되는 거잖아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비스트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베스케넨의 몸이 흔들렸다.

그런 자신의 상태에 베스케넨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야? 곱게 비켜주겠다는 데 총은 왜 쏴?”

아더가 어꺠를 으쓱이며 말했다.

“흰 수염 씨가 당신이 거짓말쟁이라는데요? 그럼 지금 당신이 한 말은 거짓말이겠죠.”

“내가? 흠… 거짓말쟁이는 맞는데, 이번에는 진짜인데?”

“그래도 상관없어요.”

아더가 진실이를 뽑아들었다.

“당신은 애꿎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잖아요? 그것만으로 죽일 명분은 넘쳐나요.”

이 말에 베스케넨이 가래가 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참…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그런지 몰라도 정의감이 넘치는군.”

그와 동시에 베스케넨이 손에 들린 지팡이를 가볍게 두들겼다.

쿵-!

그 순간 아더와 베스케넨이 서 있는 공간이 크게 흔들렸다.

그 이변에 아더의 눈길이 좁혀진 그 때 베스케넨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분명 선의를 배풀었는데 거절한 건 그쪽이야….”

말을 흐린 베스케넨이 망토를 펄럭이며 지팡이를 계속해서 두들겼다.

“뭐, 오히려 잘 된건지도 모르겠군. 천사의 영혼이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했는데 말이야.”

입맛을 다신 베스케넨의 몸에서 기이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똑같이 고리를 진동시키려 할 때였다.

침묵하던 레온이 그 앞을 가로 막았다.

“…뭐예요, 황자님?”

“여기는 내가 맡겠네 아더.”

“…황자님이 여기를 맡겠다고요?”

“그래. 자네에겐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그리고….”

말을 흐린 레온이 방긋 웃었다.

“나는 제국의 황자네. 제국의 시민들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지. 그리고 저 놈은 제국의 시민을 건드렸어.”

“…….”

“그런 흉악범을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그러니 여기는 내가 맡겠네. 우리에겐 시간이 없기도 하니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질문했다.

“자신 있어요?”

“내 한 몸 건사할 자신은 있네.”

“흠… 뭐, 알겠어요. 황자님은 항상 숨겨둔 비장의 한 수 같은 게 있는 사람이니깐.”

레온이 다시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에 아더가 지니를 향해 곁눈질 했다.

“가죠, 지니.”

지니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정말 황자님을 혼자 두고 가시게요?”

“황자님만 자신 있다면 그게 지금 상황에서 합리적이긴 해요.”

“하, 하지만….”

말을 흐린 지니가 입술을 달싹였다.

허나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은 진짜. 그래요. 얼른 가죠.”

이 말에 여태 세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베스케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보내준다고 했나?”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발을 굴렀다.

쿵-!

그 순간 솟구쳐 오른 지면이 한순간 베스케넨과 세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 이변에 베스케넨이 놀라 중얼거렸다.

“뭐? 정령?”

그리고 뒤늦게 앞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기이한 바람소리가 그의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선을 돌린 베스케넨이 통로의 어둠 너머로 펄럭이는 새하얀 날개가 발견했다.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베스케넨이 탄식을 터트렸다.

“허허… 그것 참 빠르군. 과연 천사의 날개라 이 말인가.”

이 말과 함께 베스케넨이 고개를 돌렸다.

삐딱하게 선 붉은 머리칼의 청년이 보였다.

베스케넨이 잠시 그런 레온을 관찰하다 중얼거렸다.

“그 머리칼… 그리고 황자라는 말. 그럼 자네가 레온 마드리드. 제국의 일곱 번째 황자인가?”

레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제국의 일곱 번째 황자. 레온 마드리드다.”

“흠… 꽤 잘생긴 미남이라 들었는데 듣던대로군.”

레온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그래서 네가 제국의 시민들을 저런 꼴로 만들었나?”

베스케넨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따로 있지만… 뭐, 내가 그러기는 했지. 산 인간들. 특히 질 좋은 인간들은 구하기 쉽지 않은데 좋은 실험이었어.”

레온이 입가에 걸린 미소를 거두지 않으며 계속해서 질문했다.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베스케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좀비로 변한 사람들을 구할 생각인가?”

“구할 방법이 있다면.”

베스케넨이 스산하게 웃었다.

“방법이야 있지. 그게 아주 어렵지만 말이야.”

“아주 어렵다고?”

“저들은 아직 죽은 게 아니야.”

레온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베스케넨이 천천히 어둠 속을 걸어나와 레온을 향해 다가왔다.

“좀비? 언데드? 아니. 둘 모두 아니야. 저들은 그저 영혼을 빼앗겨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몸이 되어버린 껍데기가 된 거지.”

레온이 점차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베스케넨을 막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즉, 영혼만 다시 되찾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단 이야기인가?”

“맞아. 그럼 여기서 문제.”

베스케넨이 레온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과연 저 껍데기가 되어버린 인간들의 영혼은 어디 있을까?”

“…….”

“나한테? 아님 천국에? 그것도 아님 지옥에? 저 수많은 영혼들을 어디 숨겨두었을까?”

레온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 사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 베스케넨이 레온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황자. 그거 아나?”

그 순간 베스케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레온을 덮쳤다.

“조금 전 흰 수염이 말했지? 나는 거짓말쟁이라고. 그럼… 내가 한 말은 과연 진실일까?”

조금씩, 레온의 온몸을 속박한 연기가 그걸 넘어 레온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베스케넨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자 맞춰봐. 과연 내가 한 말이 진실일지 거짓일지.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맞추면 영혼의 위치를 알려주지.”

침묵하던 레온이 입을 열었다.

“진실이군.”

베스케넨이 턱의 관절을 덜덜 떨었다.

“떙-!”

베스케넨이 광기에 차 소리쳤다.

“땡땡땡-! 답은 거짓이야!”

“…….”

“영혼을 빼앗긴 인간이 어찌 다시 돌아올 수 있단 말이야!? 너무 어리석군! 이 쉬운 답을 못 맞히다니!”

베스케넨이 양팔을 벌렸다.

“자… 문제를 못 맞혔으니 대가로 영혼을 가져가지… 천사의 영혼을 먹기 전에 아주 좋은 에피타이저가 되겠어. 고귀한 혈통의 영혼은 맛있는 법이니깐.”

레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조금 전 네놈의 말은 진실이다.”

“…?”

“내 눈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순순히 영혼의 위치를 불어라 범죄자.”

베스케넨이 눈을 끔뻑였다.

정확히는 안광이 있어야 자리의 뼈를 덜그럭거렸다.

그는 그 상태로 한참을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네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 없다고?”

레온이 다시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러니 영혼의 위치를 말해라. 그러면 고통 없이 보내주마.”

베스케넨이 숨을 참았다.

그 순간 그의 뻥 뚫린 입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상태를 한참을 유지하던 베스케넨이 거친 웃음을 토해냈다.

“케케케케켁-!”

그 광기에 찬 웃음과 함께 베스케넨이 배꼽을 잡았다.

“웃기군, 웃겨!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것이냐!?”

이 말과 함께 베스케넨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레온의 몸을 덮쳤던 어둠에 알 수 없는 힘이 주어졌다.

신음을 내뱉은 레온이 그 상태로 천천히 허공에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베스케넨이 다시 소리쳤다.

“난 500년을 산 네크로맨서! 불멸을 위해 그리고 진리를 위해 육체를 버린 망자이자 산자다!”

이 말과 함께 베스케넨의 두 안광 사이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길할 정도로 시퍼런 불꽃과 함께 베스케넨이 다시 소리쳤다.

“그런 내게 한낱 인간 따위가 네 말을 부정한 것도 모자라 명령을 내려? 이 씹어먹을 열등한 종족이!”

베스케넨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순간 어둠에 속박당한 레온의 허리가 굽혀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베스케넨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무릎을 꿇어. 내게 사죄해라. 그것만이 네가 고통없이 내게 먹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 말과 레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무릎을 꿇어야 할 건 너다 범죄자.”

베스케넨이 발작을 일으켰다.

“이 놈이 끝…!?”

베스케넨의 두 눈이 커졌다.

정확히는 그의 안광 사이로 피어오른 불꽃이 뒤흔들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베스케넨의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반듯했던 허리는 굽혀지고 그 무릎은 땅바닥에 닿았다.

그뿐만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았던 머리가 바닥에 쳐박혔다.

네크로맨서가 된 뒤로 처음으로 취해보는 그 굴욕적인 자세에 베스케넨의 입이 당황으로 벌어졌다.

그 사이 속박에서 풀려난 레온이 중얼거렸다.

“다시 말한다. 범죄자.”

이 말과 함께 베스케넨의 고개가 강제로 들어올려졌다.

그 순간 두 눈에서 피를 흘리는 붉은 머리칼의 청년이 보였다.

그 불길한 정도로 새빨간 피에 베스케넨의 턱이 덜떨 떨렸다.

“네 놈이 숨긴 영혼의 위치를 말해라. 그러면 고통없이 보내주마.”

베스케넨이 간신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네, 네놈… 정체가 뭐냐?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레온이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는 인간들의 왕(王).”

베스케넨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 사이 레온이 베스케넨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모든 인간들을 구원할 선지자다. 예를 갖추어 날 경배해라. 죽은 자야.”

그 순간 베스케넨의 신체가 허물어졌다.

* * *

끝없는 통로.

그 길을 달리며 지니가 물었다.

“공자님. 괜찮을까요?”

아더가 정면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뭐가요, 지니?”

“…황자님이요. 그분이 뭔가 묘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런 범죄자에게 대적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그렇긴 하죠. 레온이 막 칼을 잘 쓴다거나 마법을 잘 쓰는 건 아니죠.”

“…그럼 그 자리를 피할 게 아니라 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건 아니에요. 저희에겐 시간이 없어요. 북부의 상황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이쪽 상황을 종결시켜야 하니깐. 그리고…”

말을 흐린 아더가 레온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제 총알 세례를 피해 얄밉게 달아는 그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황자… 아니 레온 그 사람 자신 있는 걸 거예요.”

“…자신 있다고요?”

“네. 자신이 없으면 나설 타입이 아니에요. 그러니 뭔가 수가 있어 그 자리를 맡겠다 자처한 걸 거예요.”

지니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아더의 조금 전 말에서 레온에 대한 강한 믿음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아더가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도착했네요.”

이 말에 지니도 고개를 들었다.

길었던 터널이 끝이 나고 어느사이엔가 거대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더가 달리는 속도를 늦추어 그 철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신선하면서도 낯선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 감각 속에서 지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중얼거렸다.

“이곳이….”

“네 맞아요.”

아더가 어둠에 휩싸인 거대한 대궐(大闕)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세상에서 제일 거대한 집. 제국의 황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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