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하늘섬.
대륙 최악의 범죄자들이 모인 집단.
이 조직이 왜 생겨났는지 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하늘섬의 조직원들이 모든 나라, 왕국에 지명수배된 최악의 범죄자들이란 것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런 하늘섬을 두고 대륙의 호사가들은 확인되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을 떠들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면 그들이 등장할 거야!’
‘대륙의 파멸을 불러오는 존재 하늘섬!’
‘그들은 가장 위험하고 잔인한 인간들이 모인 조직이야!’
그 이야기들 중에는 놀랍게도 맞는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도 있었다.
허나 그 누구도 진실은 알지 못했다.
하늘섬의 이름은 유명하지만, 그 실체가 드러난 적은 단 한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하늘섬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은 마치 ‘드래곤’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진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염소를 탄 해골기사가 나타난다면 반항하지 말고 그 즉시 무릎을 굽혀라.’
하늘섬의 사자.
그들이 보내는 섬뜩한 경고를.
그리고 지금.
그 하늘섬의 사자가 제국의 도로 한복판에 나타났다.
딸랑~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웬 시체가 등장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늘섬이라니… 여기랑 엮여서 좋은 게 없는데 곤란하네요.”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자가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와버렸다.
자욱한 안개.
그 사이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랑~
그 어딘가 불길하면서도 익숙한 소리에 지니의 눈이 커졌다.
“…이 종소리. 어디서 들어본 적 있지 않아요?”
이 말에 옆에 있던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종소리 저희 모두가 들은 적이 있어요.”
“어, 어디였죠? 황자님?”
“아케인의 노예 경매장.”
“……!”
“지니 양이 그곳에서 노예로 갇혀 있다 탈출하기 직전 들었던 종소리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하늘섬의 사자를 만났죠.”
말을 흐린 레온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건 옆에 있던 지니도 다르지 않았다.
‘…지하 경매장?’
떠올리기 싫은, 그래서 애써 잊어버리려 했던 가장 악랄한 기억이 다시금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 탓에 공포와 두려움이 뇌를 넘어 육체를 지배하려던 순간이었다.
한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탕-!
쏘아져 나간 작은 섬광이 안개 너머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를 꿰뚫었다.
그 순간 옅은 비명과 함께
철푸덕!
무언가 앞으로 꼬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지니와 레온이 놀라 눈을 치켜떠진 사이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흠… 그 때는 해골기사였는데 지금은 시체네요?”
그때 손에 쥐어진 비스트가 부르르 떨리며 흰 수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호… 신기하군. 하늘섬의 사자가 데스나이트가 아니라 시체라니? 내가 없는 사이에 뭐가 바뀐 건가?]
이 말에 아더가 느긋이 질문했다.
“뭐, 좀 정보 없어요, 흰 수염 씨? 그래도 한 때 하늘섬의 수장이었잖아요.”
[이 사람아. 내가 죽은 지가 언제인데 지금의 하늘섬에 관해 알고 있겠나? 그리고 알고 있었으면 진작 알려줬지.]
아더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흰 수염 씨도 모르는 하늘섬의 사자라니… 대체 뭘까.’
거기다 그 하늘섬이 왜 제국의 수도에 있단 말인가?
그들은 역사 속에 가려진 그늘이자 어둠 아니었던가?
‘그림자와 어둠은 항상 가려져야 하는데… 그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별로 좋지 않아.’
그 탓에 아더가 고민에 잠기려는 찰나, 지니가 말을 더듬으며 질문했다.
“그, 그… 공자님?”
“네?”
“제가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서요… 갑자기 왜 비스트를 보고 흰 수염이라 하는 거예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라? 지니? 여태 모르고 있었어요?”
“…뭘요?”
“비스트가 흰 수염 씨에요.”
“…!”
지니가 경악해 입을 벌렸다.
그건 옆에 있던 레온도 다르지 않았다.
“아, 아니 잠깐? 지금 그러니깐 이 권총이 그 하늘섬의 수장이라고?”
“네. 정확히는… 흠. 흰 수염 씨. 흰 수염 씨의 상태를 뭐라 부르죠?”
비스트가 부르르 진동했다.
[마법적으로 설명해줄까 상식적으로 설명해줄까?]
“시간이 없으니 상식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아쉽군. 마법적으로 들어도 꽤 견해가 넓혀질 텐데. 일단 설명하자면 일종의 ‘빙의’라고 보면 돼.]
아더가 비스트의 총구를 두 사람에게 흔들었다.
“들으셨죠? 빙의랍니다. 과정까지 듣고 싶으시면 나중에 따로 물어봐 주세요. 자리를 마련해드릴게요.”
“…….”
지니와 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그들의 표정 위로 당혹, 경악.
그리고 옅은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늘섬의 수장, 흰 수염이 누구던가?
대륙 최악의 흑마법사이자 일개 단신으로 왕국을 멸망시켰다는 최악의 범죄자.
그 죄질만 따진다면 지금 황제와 비견돼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흉악범이 지금 아더의 손에 들린 권총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탓에 지니가 걱정을 숨기지 않으며 질문했다.
“…공자님. 진짜 그 권총이 흰 수염이라면 당장 부셔야 하지 않나요?”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지니?”
“그, 그야… 그 권총의 깃든 흰 수염이 공자님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고… 육체를 빼앗으려 할 수도 있고….”
“아, 그건 걱정 마요.”
아더가 방긋 웃었다.
“진짜 흰 수염은 제가 죽였잖아요? 지금 비스트에 깃든 흰 수염 씨는… 음. 그래요. 찌꺼기에요. 흰 수염의 찌꺼기.”
지니와 레온의 눈이 다시 커졌다.
그 사이 아더가 비스트를 툭툭 두들기며 설명을 이었다.
“본체의 흰 수염 씨라면 모를까, 찌꺼기인 흰 수염 씨는 제게 아무 짓도 못 해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설명을 끝마친 아더가 방긋 웃었다.
그 모습에 지니와 레온이 할말을 잃고서 입을 다물었다.
그 때 흰 수염이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거 참…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찌꺼기가 뭔가? 찌꺼기가? 저들도 그래서 당황하고 있지 않나?]
“흠?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한데 지금 흰 수염 씨는 사람 아니잖아요?”
[그 말이 더 서운하군. 이러면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아더가 즉시 사과했다.
“죄송해요. 흰 수염 씨. 농담 좀 해봤어요.”
[그게 농담이면 자넨 어디 가서 총 맞고 죽을 거야. 자 사담은 이쯤하고….]
말을 흐린 흰 수염이 탄성을 내질렀다.
[오호. 저 시체. 평범한 시체가 아니군?]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평범한 시체가 아니라고요? 그럼 뭔데요?”
[저건… 반 쯤 경보기야.]
“경보기요?”
[그래. 경보기. 저놈이 죽거나 뭔가 위해를 입으면 주변 일대에 아주 커다란 소음이 울려 퍼질 거야.]
“……?”
아더가 이번에는 눈을 끔뻑였다.
“어? 그럼 지금 경보가 울린단 소리예요?”
[그렇지? 그렇게 되면 뭐가 몰려오건 이쪽을 향해 몰려올 올걸세.]
“…….”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비스트의 탄환에 맞고 머리가 꿰뚫린 시체에서 거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끼에에에엑-!
그 침묵을 깨는 소음과 함께, 안개에 휩싸인 수도가 들썩였다.
지니가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어… 이 소리는.”
말을 흐린 그녀가 곧 놀라 입을 벌렸다.
“고, 공자님! 황자님! 피해야 해요!”
이 말에 레온이 황급히 눈을 굴리며 물었다.
“피해야 한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뭐가 몰려와요!”
“몰려온다고요??”
“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지니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거렸다.
“수백… 수천 마리에 달하는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어요! 그러니 어디로든 숨어야 해요!”
이 말에 아더가 대답했다.
“음… 그 무언가 아무래도 시체 같네요.”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안개 너머 검은색 잔상들이 일렁거렸다.
[끼에에엑-!]
그것은 한때 제국의 시민.
지금은 언데드로 변해 버린 시체.
그 끔찍한 괴물들 수백 마리가 아더의 일행을 덮치기 위해 달려왔다.
* * *
괴물들의 등장에 레온이 다급히 소리쳤다.
“일단 안으로-!”
이 말에 아더가 지니의 손목을 홱 낚아챘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고통에 지니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더가 낮게 속삭였다.
“세게 잡아서 미안해요, 지니.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이 말과 함께 지니의 신체가 허공을 날았다.
“……!”
정확히는 아더의 달음박질에 의해 난 것처럼 느껴지는 거였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니는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세계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사이 레온이 첨탑의 문을 닫으며 소리쳤다.
“젠장! 제국 수도에 침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잠입을 들켜버리다니!”
아더가 레온의 손목마저도 낚아채며 대답했다.
“그건 뭐 딱히 안 아쉬워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제국 수도에 들어온 시점에서 아버지는 저희를 눈치채고 있었을 거예요.”
“뭐? 텔레포트를 썼는데… 눈치를 챈다고? 자네 아버지 마법사라도 되나?”
“글쎄요. 그건 저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레온이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더의 말에 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그 상태로 잠시 고민한 레온이 옅은 신음을 흘렀다.
“킁… 마법사는 아닌데 눈치는 챘을지 모르겠군. 자네에게는 아버지 되는 내 형님은 항상 눈치가 빨랐으니깐.”
“거봐요. 그러니깐 잠입을 들킨 건 아쉬워 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저희에게 중요한 건….”
아더가 턱짓했다.
“그 사람에게 가는 가장 빠른 길. 그게 필요해요. 이제 어디로 가면 돼요 황자님?”
이 말에 레온이 다급히 소리쳤다.
“계단을 타고 꼭 대기로 올라가-! 그럼 마법진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달렸다.
손목을 낚아챈 두 사람은 그 순간 다시 한번 허공을 날았다.
그 감각은 매우 기묘했는데 덕분에 지니는 옅은 구토증세를 느꼈다.
허나 이 상태로 토할 수는 없기에 간신히 참아내며 주변을 살폈다.
[…끼에에엑-!]
기괴한 비명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로 그 소음의 원인을 살핀 지니가 중얼거렸다.
‘…시체. 그런데 모두 살아있는 사람 같아.’
레온이 막아두었던 첨탑의 문을 뚫고 들어온 시체 군단.
그런데 그들의 생김새가 통상 알고 있는 언데드들과는 뭔가 달랐다.
그들은 시체지만 피부에 온색이 돌고 있었고 흰자위만 빼놓으면 상처를 입은 부위도 찾을 수 없었다.
그 탓에 외형만 놓고 본다면 시체라기보다는 마치 정신이 나간 [미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래서 지니가 입술을 달싹이던 그 때 아더가 소리쳤다.
“레온! 저 주문진이에요!?”
이 말에 아더의 손에 매달려 대롱대롱 흔들리던 레온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저곳으로 그냥 들어가면 돼! 아더!”
레온의 대답에 아더가 허공을 뛰었다.
그 순간 첨탑의 꼭대기 위에 마련되어 있던 주문진에서 번쩍 빛이 일었다.
한순간 시야를 빼앗긴 세 사람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들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첨탑이 아닌 거대한 동굴이 눈앞에 있었다.
“오. 여기가 그 황궁으로 이어지는 지하통로에요?”
아더의 말에 레온이 입을 틀어막으며 대답했다.
“마, 맞아… 이곳이 그 황궁으로 이어지는 그 지하통로야.”
“신기하네요. 언제 이런 땅굴을 파놓으셨대.”
“내가 좀 대단… 우웩.”
참지 못한 레온이 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지니도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느낄 때 흰 수염이 중얼거렸다.
[아더. 내가 곰곰이 고민을 좀 해봤네.]
아더가 주변을 살피며 대답했다.
“뭘 고민을 했는데요 흰 수염 씨?”
[방금 전 그 사자 말이야. 그 시체도 산자도 아닌 것을 누가 만들 수 있을까 말이네.]
“오. 누군지 알아내셨어요?”
[짐작이지만 떠오르는 인간… 아니 시체가 있긴 하군.]
아더의 눈이 커졌다.
“인간이 아니라 시체라고요?”
[그 놈 그거… 네크로맨서거든. 그것도 500년을 산 네크로맨서.]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500년을 산 네크로맨서요? 꽤 대단한 시체네요?”
[그렇지. 그런데 그 놈이 평범한 방법으로 500년을 산 게 아니야.]
“평범한 방법으로 500년을 산 게 아니라고요?”
[그 놈은… 그래. 어찌보면 나보다 더한 악질이야. 나는 사는 거에 집착했다면 그 시체는 되살아나는 거에 집착….]
흰 수염의 말이 끊겼다.
동굴 건너편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흰 수염?”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해골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어딘가 기괴한 모습에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린 그 때 해골이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어째서 흰 수염의 목소리가… 저 권총에 들리는 거지?”
이 말에 비스트에 깃든 흰 수염이 혀를 찼다.
[여전하군. 영혼약탈자 베스카넨. 조심하게 아더. 저 놈은 하늘섬 조직원 중에서 가장 위험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