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카셀은 발을 동동 구르며 생각했다.
‘아더 그 친구. 혹시 미친 거 아닐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왜 자신에게 연합군의 전권을 위임한단 말인가?
자신보다 아케인 시장이나 레버쿠젠의 성주.
하다 못해 바이에른 기사단의 노기사들이랑 레버쿠젠의 장군들에게 맡기는 게 훨씬 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게 맞아… 아니. 미친 게 확실하군. 그 친구, 어딘가 특이한 면이 있으니깐.’
문제는 그 특이점이 왜 하필 이런 시점에 발동되었냐는 것이다.
그 탓에 카셀은 어떻게든 일을 수습하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케인의 시장.
윌렛 크레스톨이 문제였다.
‘아더, 그 녀석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릴 리가 없지. 전언대로 이제부터 자네가 연합군의 총사령관이네.’
그 깐깐한 노인은 어떻게든 아더의 뜻을 관철 시키려 했다.
그래서 마지막 희망인 엘린 레버쿠젠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전쟁이 코앞이에요. 그런 와중에 최고 결정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라고요?’
그녀는 다른 의미에서 윌렛 크레스톨보다 깐깐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명령에 따르는 게 맞아요. 너무 걱정 마요. 저도 당신을 지지해 줄 테니까.’
카셀은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을 참아내며 소리쳤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자신 같은 얼간이가 이런 막중한 일을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얼간이의 판단으로 모두를 죽게 할 수도 있었다.
카셀은 울고 싶은 심정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숙일 때였다.
갑작스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요, 여기서?”
“……!”
깜짝 놀란 카셀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 사이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아이린 두 눈을 치켜뜨며 질문했다.
“귀신이라도 봤어요? 뭘 그리 놀래요?”
“어, 언제 오신 겁니까?”
“방금요. 카셀 같은 기사가 제 발걸음 소리도 못 들었어요?”
카셀이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뭐라 항변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고민에 빠진 나머지 진짜로 아이린이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그런 카셀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이린이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흐음~ 이래 가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겠어요, 총사령관님?”
“……!”
“가녀린 여자애 발걸음 소리도 놓치는데… 적의 발걸음 소리는 안 놓칠 수 있겠어요?”
카셀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던 그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다독였다.
“에효… 진짜 당신도 한결같은 사람이네요. 어째 이럴 것 같아서 찾아왔더니 정말로 이러고 있다니.”
이 말에 카셀이 울적한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이린.”
“뭘요?”
“아더… 그 친구가 왜 제게 이런 자리를 맡겼는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카셀 정도면 꽤 훌륭한 사령관이지 않나요?”
“…농담하지 말아주세요. 전 꽤 심각합니다.”
카셀이 약간 흥분을 해 소리쳤다.
“저는 아케인의 시장처럼 냉철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레버쿠젠의 성주처럼 전술에 통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사령관을 맡겠습니까?”
아이린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다시 이성을 찾은 카셀이 아차 싶어 황급히 사과했다.
“그, 그…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그거 빼고 다 가지고 있지 않나요?”
“네?”
“방금요. 방금 말한 그거 빼고 카셀은 전부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이번에는 카셀이 눈을 치켜떴다.
그 사이 아이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은 그들처럼 냉철하지도 전술에 뛰어나지도 못해요. 하지만 그들은 가지지 못한 경험이 있죠. 적의 괴물들과 맞서 승리한 경험.”
“…….”
“그뿐일까요? 오라버니와 맞먹는 검술 실력에 상냥한 성격을 지녔죠. 적어도 아군을 사지로 몰아넣을 선택을 하지 않는 상냥한 성격이요. 거기다….”
아이린의 설명은 끝이 없었다.
자신의 검술 실력부터 시작해 은근한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그 탓에 카셀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뭐지?
왜 눈앞의 여자가 자신에게 이런 과분한 칭찬을 하는 거지?
그의 머리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아이린이 불쑥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인정을 받았잖아요. 그 바이에른 기사단에게 말이에요.”
깜짝 놀란 카셀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온정….”
“아뇨. 제가 들었어요. 기사란 사람들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캡틴이라 부르지 않는다고요.”
“….”
“그런데 카셀은 그 깐깐한 기사들에게 인정을 받았죠. 하물며 얼마 전까지 카셀을 무시하던 그들에게 말이죠. 이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요?”
아이린이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제가 오라버니라도 카셀에게 사령관 자리를 맡기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이니깐.”
카셀의 눈이 커졌다.
‘…뭐지? 왜 이렇게 확신을 하는 거지?’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눈앞의 아이린이 확신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케인의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맞다는 사실을.
그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카셀도 혹여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린의 모습에서 아더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 우연이지 아니면 기적인지 모를 현상에 카셀이 탄식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남매. 이 두 사람이 남매라는 게 안 믿겼는데 이제 와서 보니 똑 닮았구나.’
넘치는 자신감.
남들과는 다른 시선.
그 속에서 남을 배려하는 상냥함까지.
카셀은 왠지 모르게 기묘한 기분에 휩싸이며 아이린을 향해 물었다.
“…제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이린이 작게 미소 지었다.
“해내야죠. 당신이 해내지 못하면 다 죽는데.”
“….”
“농담 같지만 진심이에요. 당신이 해내지 못하면 절 포함해 다 죽어요, 카셀. 그리고 전 아직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카셀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아이린이 처음으로 목소리 끝을 살짝 떨며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가 보고 싶은 곳도 많고요. 그러니… 제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세요.”
“….”
“미안해요. 이런 부탁만 하는 저라서. 염치가 없는 건 알지만 꼭 이겨주세요. 전 아직….”
아이린이 말을 흐리며 웃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카셀.”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그의 가슴 속이 활활 불타올랐다.
이유는 몰랐다.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복수를 다짐했던 그 날 이후로 처음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열망도 생겨났다.
‘이 사람의 꿈… 바람. 그걸 이뤄주고 싶다.’
그 탓일까.
카셀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전쟁이 끝나고 잠시 찾아온 여유.
그 여유 속에서 바이에른 기사단에게 배운 예법이었다.
무릎을 굽히고 오른손을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고개는 살짝 숙인 상태로 눈은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런 카셀의 모습에 놀란 아이린이 중얼거렸다.
“카, 카셀? 지금 무슨….”
“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
“하지만 지금 왜 역사 속 그 수많은 기사들이 한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말과 함께 카셀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 앞에서 당황한 아이린이 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카셀이 살며시 웃었다.
“당신의 소망을 이뤄드리겠습니다, 레이디 아이린.”
“….”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이건 카셀 브리드, 제이름과 영혼에 약속하는 맹세입니다.”
아이린이 입을 뻐금거리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제 오른손을 살며시 내밀며 속삭였다.
“이제는 진짜 기사 같네요… 좋아요."
아이린이 내민 손등 위에 카셀이 가벼운 키스를 했다.
“나의 기사. 부디 절 지켜줘요. 그리고 모두를 구해줘요. 그게 제가 당신에게 내리는 첫 번째 명령입니다.”
카셀이 대답했다.
“Yes, My lord.”
* * *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전방을 주시하던 레온이 물었다.
“갑자기 북쪽은 왜 쳐다 봐?”
“…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요.”
“불길한 느낌?”
“네. 갑자기 제 여동생이 훌쩍 떠나버린 느낌?”
“…?”
레온이 눈을 끔뻑였다.
“훌쩍 떠나버리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도 모르겠어요. 여튼 그런 느낌이 들어요.”
레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때 옆에 있던 지니가 놀라 중얼거렸다.
“…여, 여기가 제국의 수도라고?”
이 말에 두 사람이 시선을 돌렸다.
“…….”
검은 안개에 휩싸인 수도가 보였다.
제국, 아니 대륙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이자 인간의 모든 기술력이 모두 들어간 최첨단 도시.
그랬기에 불이 꺼지지 않은 성이라고까지 불리던 도시가 지금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허나 더 놀라운 점은 그 어둠 속을 거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제국 수도의 인구가 얼마인데?”
레온의 말에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
어둠에 휩싸인 도시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없었다.
그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레온의 말처럼 제국 수도의 인구는 어림잡아도 작은 왕국의 총 인구수에 육박할 것이다.
그런 대도시에서 사람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그 탓에 눈길을 좁힌 아더가 중얼거렸다.
‘그때 카셀이 보여주었던 마력통신구의 영상에서 제국 시민들이 악마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그 공격으로 제국 시민들이 모두 죽은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수많은 시민들이 모두 죽었을 리 없었다.
허면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다 어디로 간 걸까?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고민에 빠진 그 때, 지니가 중얼거렸다.
“…그, 저희 이제 곧바로 황궁으로 가는 건가요?”
이 말에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민에 빠져있던 레온이 보였다.
그가 지니의 질문에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시간을 늦춰봐야 좋을 게 없겠지. 그러면 이토록 빨리 제국의 수도로 온 보람이 없으니깐.”
대답을 한 레온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지니와 아더가 잠시 텀을 두고 뒤따랐다.
세 사람 모두 기척을 숨기는 데 능숙했기에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허나 낮게 가라앉은 검은 안개 탓인지 몰라도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수도를 감싼 안개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탓에 지니가 바짝 걸음 옮겨 두 사람 뒤를 따라 붙었다.
‘이, 이러다 놓치는 거 아니야? 꼭 괴담들 보면 이런 데서 세 사람이 흩어지고 사람이 한명 죽던데….’
떠오른 생각과 함께 지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웬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자신이 될 것 같았다.
그 불길한 예감 속에서 앞장서 걸어가던 레온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야.”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오?”
검은 안개에 휩싸인 거대한 첨탑이 보였다.
기억하기론 제국에서 유일한 첨탑이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그 사이 레온이 주변을 살피며 짧게 설명했다.
“이 첨탑의 지하 밑에 황궁으로 가는 지하통로가 있어.”
아더가 첨탑의 외벽을 손으로 두들기며 질문했다.
“왜 하필 이곳에 지은 거예요?”
“이곳이 제일 은밀하거든.”
“…이런 눈에 띄는 곳이 은밀하다고요?”
레온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라면 이곳은 제국 수도의 수색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야. 즉 외부인이 드나들 여지가 없다는 거지.”
아더가 낮은 탄식을 터트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 그 말이군요?”
“그런 셈이지. 그 누가 제국 경찰이 지키는 곳에 황궁으로 가는 지하통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나?”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였다.
가슴팍에서 옅은 진동이 울려퍼졌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라 흰 수염 씨?”
이 말에 놀랍게도 아더의 가슴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든 사이에 또 다른 곳에 와있군그래?]
“……!”
옆에 있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허나 아더는 개의치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금 제국의 수도에요.”
[제국의 수도? 마침내 패륜아가 되기로 결정한 건가?]
“그런 셈이죠. 그런데 갑자기 왜 깨어나신 거예요?”
[뭔가 익숙한 향기가 나서 말이야.]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익숙한 향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권총에 코라도 달렸나? 어떻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지?
그 때 흰 수염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늘섬.]
아더가 깜짝 놀라 질문했다.
“하늘섬이요? 갑자기 웬 하늘섬이에요?”
[…그 섬의 냄새가 나.]
“그 섬의 냄새요?”
[그래 이 안개는….]
흰수염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그 순간 낮게 깔인 안개 사이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딸랑~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종소리에 레온과 지니가 깜짝 놀랬다.
“이,이 소리는-!”
그 때 흰수염이 혀를 차며 끊어진 말을 이었다.
[하늘 섬의 사자가 등장할 때 나타나는 안개야. 즉, 지금 제국의 수도에 하늘섬의 일원이 있다는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