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비명과 고함이 빗발쳤다.
-으아아악!
-사,살려줘!
-괴,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
-아니야! 저건 괴물이 아니라… 악마야!
그 속에서 기괴한 존재가 하늘로 비상했다.
[끼에에엑-!]
인간의 형상을 닮은 괴물.
악마.
그 끔찍한 존재가 수십, 수백 마리씩 한데 뭉쳐 제국의 시민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이 고함을 지르며 도망 쳤지만 소용없었다.
두 날개를 이용해 허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악마들은 인간들의 달음박질보다 훨씬 빨랐다.
결국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제국의 시민들이 그들의 손에 쥐어진 삼지창에 심장이 꿰뚫렸다.
그 광경에 아이린이 입꼬리를 파르르 떨다 비명을 질렀다.
“카셀! 데리고 나가세요!”
아더의 다급한 외침에 카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물을 펑펑 터트리는 아이린을 부축하며 회의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 속에서도 마력통신구로 영상은 계속 재생됐다.
제국의 시민들의 사지가 잘리는 장면.
목이 잘리는 장면.
심장이 축출되는 장면.
죽음과 공포의 향기.
그것들이 물씬 묻어난 삶의 끝자락의 장면들이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되었다.
결국 참지 못한 윌렛이 책상을 내리치며 질문했다.
“저게… 대체 뭔가? 저것들이 뭔데 제국의 시민들을 공격하는 거야?”
아더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악마라고 부르고 있어요.”
“…악마? 그럼 저것들이 지옥에서 올라온 거라고?”
“글쎄요. 지옥에서 올라온 것까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저 괴물들을 부리는 존재가 현 제국의 황제라는 사실요.”
윌렛이 숨을 참았다.
'저 괴물들을 제국의 황제가 부리고 있다고?'
그의 상식으로서는 믿기가 힘든 이야기였다.
도대체 제국의 황제가 뭐가 부족해 저런 괴물들을 수하로 부린다 말인가?
하지만 깊이 고민할 수 없었다.
만약 아더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괴물들의 다음 먹잇감이 이곳, 하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윌렛의 표정이 굳어진 사이 조금 전 나갔던 카셀이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든 아더가 그런 카셀을 향해 물었다.
“카셀. 이 영상, 언제 보내온 거예요?”
이 말에 카셀이 찌푸려진 미간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정확한 시간은 몰라. 그 영상을 보내온 우리 쪽 첩자들의 생사가 확인이 안 되거든.”
“생사가 확인이 안 된다고요?”
“…죽었거나, 붙잡혔거나. 혹은 연락을 할 수 없거나. 여튼 좋은 상황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네.”
아더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 사이 회의장이 침묵이 깨지고 웅성거림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저게 대체 뭐야?”
“악마? 그럼 우리가 상대할 놈들이 저런 괴물이라고?”
“…허. 제국의 군대만으로도 버거운데 어떻게 저런 괴물하고까지 싸워?”
그 웅성거림은 주로 악마를 처음 본 아케인과 바이에른 진영 쪽에서 흘러나왔다.
허나 그 누구도 그런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동요를 하지 않은 레버쿠젠 진영의 사람들도 저들의 심정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저 괴물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그리고 공포에 떨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악마를 처음 본 연합군의 반응은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허나 레버쿠젠 쪽 진영의 사람들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악마를 본 아케인 진영의 사람들의 두려움이 예상보다 더 컸다는 것이다.
“이건 상정 외의 변수요!”
아케인 진영 쪽 사람 중 한 명이 격렬하게 소리쳤다.
“우리는 이런 일을 보고 받은 적 없소! 악마라 불리는 괴물과 싸우라니!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면 우리는 이번 전쟁에 빠지겠소!”
그 외침은 다른 연합군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파장은 곧 동요로 변해 다른 연합군의 수장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저 말이 맞아.”
“우리는 이런 존재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했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니? 그것도 악마? 저런 것들과 어떻게 싸우란 말이야!”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엘린이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런 괴물….”
허나 그녀의 다급한 외침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어느 순간 울려 퍼진 권총의 장전 소리 때문이었다.
“……?”
울려 퍼져서는 안 되는 그 소리에 모두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손에 든 비스트를 휘리릭 돌렸다.
그 모습을 한쪽 구석에서 지켜보던 지니가 놀라 중얼거렸다.
“아, 아니죠? 공자님?”
“뭐가 아니에요, 지니?”
“그, 그러니깐… 쏴버리려는 건….”
그녀의 말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제가 미친놈도 아니고 왜 그러겠어요?”
“미친놈 맞잖아요….”
“어라? 절 여태 미친놈으로 보고 있었던 거예요?”
“…….”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어깨를 으쓱인 아더가 시선을 돌려 연합군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연합군의 수장들이 흠칫 놀라 소리쳤다.
“지, 지금 우리를 협박하겠다는 거요?”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협박이요?”
“권총을 꺼내 들지 않았소!”
“아, 비스트요?”
“그런 흉측한 물건을 들이밀어도 소용없소! 이번 일에 대한 자세한 진상을 밝히지 않는 한 우리는 연합군에서 빠지겠소!”
연합군의 말에 아더가 씩 웃어보였다.
“빠지면 어디로 가시려고요?”
“아케인으로 돌아갈 거요!”
“아케인으로 돌아가면 저 괴물을 안 마주칠 것 같으세요?”
“……?”
“저 괴물이 제국을 집어삼키면 그 다음은 인근 왕국이 되겠죠. 그 인근 왕국들마저 집어삼키면 그 다음은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 거예요.”
아더가 다시 한번 비스트를 휘리릭 돌렸다.
회전을 하는 묵색 권총에서 기이한 바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소리에 연합군의 수장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킬 때, 아더가 설명을 이었다.
“그 과정은 아케인도 피해갈 수 없겠죠. 그 순간에도 당신들은 도망칠 건가요?”
연합군의 수장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는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럼 아케인으로 돌아가세요.”
아더의 대답에 연합군의 수장들이 눈을 치켜떴다.
‘뭐지? 이렇게 순순히 돌려보내 준다고?’
그 사이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던 윌렛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더. 저들이 빠지면 우리가 가져온 물자들 대부분을 돌려줘야 해.”
이 말에 아더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히 그 물자는 남겨두고 가야죠.”
“……!”
“저들이 떠나는 건 상관없는데 가져온 물자는 이야기가 다르죠. 애초에 그건 저희를 위해 준비해둔 물건이잖아요?”
연합군의 수장들이 경악하다 뒤늦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요! 당연히 물자도 가져가야지!”
“이게 협박이나 다름없지 않소!”
“대의를 따라주시오! 바이에른 가문의 가주여!”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제 대의에요.”
“…뭐?”
“저는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를 죽여야 해요. 그 과정에서 여러분들의 물자는 꼭 필요하고요.”
아더가 말을 흐리며 천천히 비스트를 들어올렸다.
“여러분들이 아케인에 돌아가는 것까지는 막지 않을게요. 하지만 물자는 두고 가세요.”
들어올려진 비스트의 끝이 연합군 수장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 노골적인 협박에 수장들이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시정잡배… 삼류 깡패…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이 딱 그거요 아더 바이에른.”
연합군의 수장들이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의 이 행동이 그 악인들과 다를 게 뭐요!? 대체?”
이 말에 아더가 웃었다.
“어라 모르셨어요?”
“…뭐?”
“저는 제가 단 한번도 착한 놈이라 생각한 적 없어요. 오히려 비교하자면….”
말을 흐린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쁜 놈에 가깝죠. 그런 나쁜 놈이 싸구려 협박 좀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안 그래요? 여러분?”
연합군 수장들이 할 말을 잃고서 입을 다물었다.
* * *
회의는 파산했다.
그 과정에서 아케연 연합군의 몇몇이 하트를 떠났다.
물론 그들이 가져온 물자들은 함께 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은 빈손으로 하트를 떠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녀의 말에 같이 성벽 위에서 하트를 떠나가는 아케인 연합군의 수장들을 바라보던 윌렛이 대답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나쁜 쪽은 맞소.”
“…그럼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지 않나요?”
“글쎄. 난 말리는 것보다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군.”
“…?”
엘린이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윌렛이 품속을 뒤져 시가 한 대를 꺼내 들었다.
허나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는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주제에 레버쿠젠 가문의 가주에게 설교를 하는 건 분수에 어긋나니 짧게 설명하겠소. 전쟁 중에 가장 무서운 건 적의 교란이나 병력의 차이가 아닌 내부분열에 있소.”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씹어먹던 시가를 입가에서 땠다.
그 순간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럼에도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만약 회의장에서 아더 바이에른이 물러섰다면? 지금 하트를 떠나 아케인으로 돌아가는 세력이 한둘이 아닐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했겠지.”
엘린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해도 도리가….”
“전쟁 중에 도리는 의미가 없소 레버쿠젠 가주여. 오로지 승자와 패자. 산 자와 죽은 자만이 있지.”
“….”
“도리는 우리가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뒤에 해도 늦지 않소. 그런 의미에서 아더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결집시켰다고 볼 수 있지.”
엘린이 중얼거렸다.
“그 대가로 아더 바이에른은 천하의 나쁜 놈이 되지 않았나요?”
“이미 나쁜 놈인데 뭘.”
“….”
“농담이오. 하지만 너무 아더의 행동을 나무라지 마시오. 내가 보기엔 거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윌렛의 말에 엘린은 부정했다.
아더의 행동을 나무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평판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 한 걱정이었으니깐.
하지만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윌렛의 말대로 그 평판조차 전쟁에서 승리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각과 함께 엘린과 윌렛이 조용히 하트를 떠나가는 아케인의 연합 수장들을 지켜볼 때였다.
성내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윌렛이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난 것 같소만?”
엘린도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같이 가실까요?”
“사양않지.”
이 말과 함께 나란히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다시 하트의 성내로 향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부산스러운 성내의 상황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 때 저 멀리서 레버쿠젠 마크를 단 기사 한명이 다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눈을 치켜뜬 엘린이 그를 불러세웠다.
“가, 가주님-!”
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질문했다.
“무슨 일이라도 났어요? 다들 왜 이런 분위기에요?”
기사가 놀라 질문했다.
“아직 못 들으셨습니까?”
“…네?”
“지금 바깥에 나가 있던 정찰병으로부터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북부 설원에 제국의 깃발이 포착됐다고.”
엘린이 경악해 입을 벌렸다.
“그 말씀은….”
“예. 맞습니다. 마침내 적들이 이곳 북부로 발을 디딘 겁니다.”
엘린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윌렛이 다급히 질문했다.
“아더 바이에른.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나?”
기사가 대답했다.
“아더 바이에른 님은 아마 지금쯤 회의실에 계실 겁니다.”
대답을 들은 윌렛이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넋을 놓고 있던 엘린도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다급히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이 이내 회의실에 도착했다.
윌렛은 달아오른 숨결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으며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아더! 들었나! 지금 적들이…!”
윌렛이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뒤따라 들어오던 엘린이 그 변화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질문했다.
“무슨 일이에요? 왜 갑자기 말을 하다…….”
“없어.”
“네?”
“없다고.”
엘린이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윌렛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그 미친놈이 결국 참지 못하고 사고를 쳐버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