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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27화 (227/265)

제227화

아이린이 뚫어져라 카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던 카셀은 안절부절못하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저렇게 바라보는 거지?’

여자, 그것도 저런 대단한 미녀에게 이런 시선을 받아본 적 없던 카셀은 가슴이 콱 막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론 그사이에도 아이린의 시선은 여전했다.

그 집요한 시선에 카셀이 참다 못해 중얼거렸다.

‘물어봐? 왜 쳐다보냐고?’

잠시 고민한 카셀은 신음을 흘렸다.

과정이 어땠던 지금의 자신은 아더의 기사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은 그 아더의 여동생이다.

‘즉 내가 모셔야 할 사람이란… 소리지.’

그런 사람에게 왜 쳐다보냐고 물어본다?

시장바닥의 시정잡배도 이런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카셀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한숨만 푹푹 내쉴 때였다.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바이에른 기사 중 한명이 물어왔다.

“이봐 캡틴. 오늘 중으로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나?”

정신을 차린 카셀이 대답했다.

“조금 빨리 달리면 가능 할 것 같은데?”

“…흠. 그럼 불가능 하겠군.”

“왜? 벌써 지치기라도 했나?”

“나야 멀쩡하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기사가 뒤편을 가리켰다.

카셀의 시선이 자연스레 돌아갔다.

바이에른 가문의 깃발.

그 깃발을 짋어진 수많은 식솔들.

그리고 그 식솔들을 호위하며 전진하는 병사들.

그들 모두가 어느사이엔가 매서운 북풍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카셀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다들 북풍에 대한 준비를 전혀 안했군.”

“준비를 해도 어쩔 수 없었겠지. 북부의 추위는 다른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니.”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이쯤에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 하트로 출발하지.”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좋아보이는 군. 그럼 모두에게 그리 전달하지 캡틴.”

바이에른 기사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 사이 말을 멈춘 카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뻥뚫린 설원에 보이는 거라고는 거대한 산맥.

그리고 눈뿐이었다.

허나 카셀은 방심하지 않았다.

이곳은 악령과 괴물이 도사리는 망자의 땅.

심지어 며칠 전에는 악마와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까지 나온 곳이다.

아무리 주변이 뻥뚫려 있다 하더라도 언제든 이변이 생길 수 있었다.

그 탓에 카셀이 예민한 감각을 거두어들이지 않은 채 주변을 계속해서 경계할 때였다.

그 모습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린이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와. 저게 내가 아는 못난이 카셀이라고?’

바이에른 일족을 암살하려든 괴한.

그게 바로 카셀의 정체였다.

허나 그 담대한 행동과는 별개로 그의 진짜 성격은 소심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들보다 제일 소심했는데.’

그런 사내가 북부로 떠난 사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니… 이걸 바꼈다 해야 하나?’

정확히는 카셀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특히 카셀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은 바이에른 기사들은 그를 캡틴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기사단의 캡틴은 기사단의 인정을 받은 기사들이 부르는 호칭….’

즉, 카셀은 지금의 바이에른 기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단 소리다.

‘…내가 아는 제일로 찌질한 남자가 어떻게?’

고개를 갸웃거린 아이린이 계속해서 카셀을 뚫어져라 바라 볼 때였다.

밤을 지새울 야영 준비가 끝이 났다.

화르륵-!

타오르는 모닥불이 주변의 어둠을 잡아먹고, 곳곳에서 고소한 수프 냄새가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얼어붙은 손을 온기가 맴도는 수프와 모닥불에 녹이며 진한 한숨을 토해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셀도 천천히 쥐고 있던 검을 내려놓았다.

제 아무리 소드마스터라지만 24시간 감각을 일깨우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감각을 거두어들인 카셀이 뭉친 어깨를 툭툭 두들길 때였다.

낯선 손길이 제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

잠시 눈을 끔뻑인 카셀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제 목을 문지르고 있는 아이린이 있었다.

카셀이 입술을 달싹이다 비명을 질렀다.

“레, 레이디 아이린!”

그 외침에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신이라도 봤어요? 왜 그렇게 놀라요?”

“그, 그…!”

말을 흐린 카셀이 아직도 제 목덜미에 있는 아이린의 손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린이 코끝을 살짝 찡그렸다.

“흠… 이런 모습을 보면 바뀐 게 없는 데 이상하네요. 대체 바이에른 기사단이 왜 카셀을 캡틴이라 부르는 거예요?”

아이린의 말에 카셀이 여전히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그게….”

“설마 오라버니가 시킨 건가요?”

“아, 아닙니다!”

“그럼?”

“…그.”

말을 흐린 카셀이 대답을 망설일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바이에른 기사단의 기사 중 한 명이 대답했다.

“기사단의 캡틴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정해지는 게 아닙니다. 레이디 아이린.”

이 말에 아이린이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그래요? 그럼 왜 카셀을 갑자기 캡틴이라 부르시는 거예요?”

“그가 저희를 이끌 자격이 있기 때문이죠.”

“…카셀에게 자격이 있다고요?”

바이에른 기사가 방긋 웃었다.

“나머지는 캡틴 카셀에게 전해 들으십시오. 제가 다 말씀드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

대답을 남긴 바이에른 기사가 물러났다.

아이린이 자연스레 돌려 카셀을 바라봤다.

“…!”

움찔 어깨를 떤 카셀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허나 물러선 거리만큼 아이린이 다가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린의 숨결이 카셀의 얼굴을 덮었다.

그 미묘한 온도에 카셀의 귀가 점차 달아오른 그 때,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더 궁금하네요….”

말을 흐린 그녀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도대체 북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제대로 설명….”

아이린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동시에 세상이 뒤집혔다.

“……!”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서로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 속에서 밤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무언가가 등장했다.

새까만 어둠과는 대조되는 붉은 빛 비늘.

그리고 어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였다.

그 사내가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아이린과 카셀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흠 이게 뭐죠?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인데?"

이 말에 아이린의 입이 벌어졌다.

“오, 오라버니?”

아이린의 외침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여동생을 시집보낼 생각은 없으니 일단 좀 떨어져 봐요, 두 사람.”

* * *

하트에 오랜만에 활기가 깃들었다.

낯선 외부인들은 하트의 장엄한 광경.

그리고 하늘을 비행하는 드래곤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고, 하트의 시민들은 그들이 가지고 온 물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윌렛이 혀를 내둘렀다.

“드래곤… 내 생에 저 신비한 생물을 볼 날이 올 줄이야.”

이 말에 옆에 있던 아더가 웃었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조금 뒤에 볼 드래곤을 보면 더 놀랄걸요?”

“…드래곤이 여기 말고 또 있어?”

“네. 황자… 칸 마드리드를 따르는 드래곤이 있는데, 그놈이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이에요.”

“…?”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흉악하게 생겼는데, 직접 보시면 엄청 놀라실 거예요. 괴물 그 자체거든요.”

아더의 말에 윌렛의 표정이 묘해졌다.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세상에 그런 생물이 존재한다고?’

드래곤은 지상의 신이다.

그런데 아더의 말에 의하면 그 신을 잡아먹는 괴물이 적진에 있다고 한다.

윌렛의 상식으로서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또 농담기 없는 아더의 얼굴을 보니 영 허언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드래곤이 등장한 시점에서 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긴 하지만….’

말을 흐린 윌렛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아더 바이에른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달려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황은 냉철히 봐야했다.

‘그런 괴물까지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수단, 승산이 과연 있는가?’

던져진 질문에 윌렛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상대는 제국.

이쪽에 드래곤 있다고 한들 그 드래곤마저 잡아내는 게 제국의 군대였으니.

그 탓에 윌렛의 고민이 길어지려는 때였다.

어디선가 등장한 쥴리가 아더의 품에 안겨들었다.

“아저씨!”

아더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오? 쥴리? 또 키가 컸네요?”

쥴리가 대답하는 대신 얼굴을 아더의 가슴에 부볐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윌렛이 혀를 찼다.

“하루종일 자네 이름만 부르더니 이제야 소원성취를 하는군.”

쥴리가 아더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제가 언제 아저씨 이름을 하루종일 불렀어요, 어르신!”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단 게냐?”

“거짓말은… 아니지만, 과장은 됐죠!”

윌렛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여전하네요. 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밥이라도 먹을까요? 때마침 식사 시간 때기도 하고.”

아더의 제안에 쥴리와 윌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린 아더가 그대로 두 사람을 식당으로 안내하려 할 때였다.

맞은편 기둥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아차차… 여러분. 감동의 재회를 방해해서 죄송한데, 잠시 이 친구 좀 빌려가겠습니다.”

붉은 머리칼의 사내.

레온 마드리드였다.

그의 등장에 윌렛의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제국의 황자님 아니십니까?”

“오? 절 알아보시는 겁니까?”

레온의 반문에 윌렛이 시선을 좁히며 대답했다.

“레온 마드리드. 제국의 칠황자… 현 시점에서 당신을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하죠.”

레온이 애매하게 웃었다.

표정을 굳힌 윌렛의 시선에서 적개심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때 앞길을 가로막힌 아더가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많이 바쁜 일이에요? 어르신이랑 밥먹어야 하는데.”

레온이 황급히 대답했다.

“꽤 중요한 일이야.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급한 일이기도 하고.”

이 말에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어르신? 일단 먼저 식당으로 가 계실래요? 황자님이랑 이야기 좀 하다 갈게요.”

윌렛이 레온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러지. 이야기 나누고 천천히 오게나.”

윌렛이 몸을 돌려 식당으로 걸어갔다.

아더의 옆에서 눈치를 보던 쥴리가 슬그머니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온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어후… 저 어르신,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시선만으로 사람도 죽일 수 있겠어.”

레온의 말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르신 시선이 좀 매섭긴 하죠.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황자님?”

레온이 대답하는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마석으로 작동되는 아티펙트였다.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아티펙트로부터 흘러나왔다.

-제국의 반역자…

-처단…

-북부의 원정…

-며칠 안 있으면 곧 도착…

아더가 눈을 치켜뜬 채 중얼거렸다.

“이건….”

“맞아. 때가 되었어.”

레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국의 군대가 마침내 준비를 끝내고 이곳으로 오고 있어.”

“…!”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곧 출정식을 할 걸세. 그 식이 끝마치면 곧바로 제국의 군대가 북부로 밀고 들어올 거야.”

아더가 시선을 좁히며 물었다.

“규모는 대략 짐작 가요?”

“예상이긴 하지만….”

말을 흐린 레온이 손가락 3개를 치켜들었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국의 군대… 특히 정벌군은 본대가 총3 개로 나뉘어 있어.”

“…?”

“그 어떤 나라, 왕국도 이런 식으로 본대가 3개로 나뉘지 않지. 오로지 오랜 기간 전쟁으로 단련된 제국만이 가능한 전술이야.”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레온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중 선봉으로 오는 병력수가 대략 5만.”

“…!”

“이쪽의 병력을 다 끌어모아 합치면 대략 일만이니… 딱 다섯 배 정도 되는군. 물론 2진, 3진으로 오는 본대를 뺐을 때의 차이지만.”

아더가 레온의 말을 되새겼다.

‘5만…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전력의 우위를 점한 상태면 모를까.

그마저도 제국의 군대와 비등한 상황에서 수적인 열세를 이렇게 보인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그 탓에 아더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때, 레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안 하나를 할까 해.”

“…?”

“내가 보기엔 지금의 이 열세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야. 어쩌면 작전만 잘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모두가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아더의 눈이 커졌다.

“모두가… 살 수 있다고요?”

아더의 말에 레온이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운이 좋다는 가정하에. 뭐, 어찌 되었건 들어나 보겠나?”

이 말에 아더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들어보죠. 그 제안이 대체 뭐에요?”

레온이 눈빛을 빛내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도?”

“평범한 지도가 아니야.”

레온이 자신감에 찬 손길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황궁의 비밀통로의 위치가 적힌 지도라네.”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은….”

“맞아.”

레온이 눈빛이 반짝였다.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에… 자네에게는 아버지. 나에게는 형님 되는 그 사내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몰라. 아더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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