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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25화 (225/265)

제225화

달빛이 내리쬐는 어두운 밤.

레온이 술잔을 내밀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됐는데 이렇게 술잔을 나누는 건 처음이군?”

아더가 레온이 내민 술잔에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됐으면 술잔을 부딪쳐야 해요?”

“꼭 그런 건 아닌데, 이런 게 낭만이지 않나?”

“…흠. 이해하기 어렵네요. 술잔을 부딪치는 게 낭만이라니.”

“아직 자네가 어른이 아니라는 증거야. 뭐… 그게 자네답긴 하지만.”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술잔을 들이켰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온.”

“왜?”

“피부는 왜 태운 거예요?”

레온이 들이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씩 미소지었다.

“구리빛 피부는 건강의 상징이지. 귀족가의 안방마님들이 환장하는 피부기도 하고.”

“…오. 그럼 남의 집 마누라 때문에 그런 피부를 했다는 거예요?”

“…꼭 말을 그렇게 해야 하나?”

“…? 레온 말이 그런 뜻 아니었어요?”

아더의 질문에 레온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정할 수 없지만, 그 말을 육성으로 들으니 뭔가 좀 그렇군.”

“제비네요.”

“황자한테 제비? 처형당하고 싶나?”

“진실을 말한 것도 죄가 돼요?”

두 사내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 다시 한 번 술잔을 부딪쳤다.

찰랑-!

주거니 받거니.

오랜만에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며 잔을 나누니 금방 가져온 술들이 동이 났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렇게 밀린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때였다.

레온이 바닥을 드러낸 술병에 그나마 남은 술을 끌어모아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뭘요?”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레온이 무언가를 툭 내밀었다.

한 장의 신문이였다.

아더의 시선이 그 신문의 1면으로 돌아갔다.

그 1면에는 놀랍게도 제 얼굴이 커다랗게 낙인 찍혀 있었다.

[사상 최악의 범죄자, 아더 바이에른.]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보니 사진 빨을 좀 받는 얼굴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레온이 재차 질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오건, 자네 목에 걸린 현상을 노리는 암살자들이 찾아오건 할텐데 어떻게 할 건가?”

아더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제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그렇지. 억울한 누명이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건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제가 잘못을 안 했다는 거고 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에요.”

레온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제국에 반기를 들 생각인가?”

“네.”

“그것 자체만으로 반역자가 될 텐데?”

아더가 어꺠를 으쓱였다.

“필요하다면 그것보다 더한 것도 되야되겠죠?”

이 말에 레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넨… 가끔보면 참 대단해.”

“어디 가요?”

“어려운 문제를 쉽게 생각하는 거. 흠…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레온이 술잔을 들며 중얼거렸다.

“자네 아버지를 자네 손으로 죽일 수 있나?”

이 말에 아더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은 레온이 재차 질문했다.

“제국의 반역자건 뭐건…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아더가 고개를 돌려 레온을 바라봤다.

미소년에서 사내가 되어버린 붉은 머리칼의 사내.

그 사내가 심중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적의 수장의 목을 칠 수 없냐 있냐… 지금 상황에선 이게 중요하지. 그래야 우리는 같은 편으로서 싸울 수 있으니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질문했다.

“황자님이 적의 수장이 제 아버지란 걸 어떻게 알았어요?”

“자네가 사라진 7년 동안 난 놀고먹은 게 아니네.”

“…놀고먹은 게 아니다?”

레온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칸 마드리드… 내 형님의 뒤를 쫓았지. 그 사람의 정체, 권력, 힘 모든 걸 알아내기 위해.”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요? 뭘 어떤 식으로 했는데요?"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나? 사람의 환심을 사는 거야. 사람의 환심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나? 외모를 가꾸는 거지.”

“…….”

“그럼 마지막으로 속내의 비밀을 털어 놓는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딘지 아나? 침대라네. 특히 귀부인들의 입이 아주 솜털이라 그만한 장소가 없지.”

아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거에요?”

“이봐 아더. 난 하늘이 정해놓은 선을 넘은 거라네. 아무리 목표를 위해서라지만 남의 마누라와 잠자리에 들었으니 분명 지옥에 갈 거야.”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럴 것 같기도 하네요. 황자님은 나쁜 사람이에요.”

“칭찬 고맙군. 그래서 자네 대답은?”

아더가 술잔을 들어올렸다.

“저도 황자님이랑 똑같아요. 이왕 시작한 일… 마무리 지어야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온이 질문했다.

“그게 설령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지라도?”

“남의 마누라와 잠자리에 든 일, 아버지를 죽이는 일. 둘 중 뭐가 더 악질일까요?”

“…흠. 둘 다 너무 악질이라 고르기가 쉽지 않군. 하지만 나는….”

말을 흐린 레온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후자를 고르겠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아버지를 죽이나?”

“그럼 레온보다 제가 더 나쁜놈이네요.”

“그래 맞아. 자네가 더 나쁜 놈이야. 내가 졌어.”

키득키득.

아더가 웃음을 터트리며 숨겨 놓은 술 한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레온의 잔에 술을 따라준 뒤, 제 잔을 부딪쳤다.

찰랑.

잔에 담긴 술이 기분 좋게 넘쳐 흘렸다.

아더와 레온은 그 술이 바닥에 흐르기 전에 모두 들이켠 뒤 밤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새까만 어둠에 휩싸인 더없이 맑은 하늘이보였다.

그 하늘을 바라보며 레온이 말했다.

“자네를 돕겠네.”

이 말에 아더가 다시 시선을 돌려 레온을 바라봤다.

“자네와 내 목표는 똑같아. 그 사람을 죽이건 살리건… 일단 마주하고서 결판을 내야하니깐.”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좋죠. 그래서 뭘 어떻게 협력하실 건데요?”

“비밀통로.”

“…?”

“지난 7년 간, 내가 만들어놓은 비밀통로가 있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레온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수도의 황궁으로 직선으로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통로지. 거기를 제공하겠네.”

어지럽던 길이 일직선으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 * *

레온의 등장과 함께 성의 분위기는 또 다시 반전되었다.

“들었어? 제국의 수도에서 레온 마드리드! 제국의 황자님께서 오셨다더군!”

“뭐? 이 변방까지 그분이 무슨 일로?”

“듣기로 우리 하트를 지원하기 위해 오신 모양이야.”

하트의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레온의 등장으로 인해 여론이 미묘하게 뒤바뀌기 시작했기 떄문이다.

[레온 마드리드 황자-! 제국의 반역자 아더 바이에른의 품에 안겨….]

[레온 마드리드 황자의 알 수 없는 행보.]

[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한 피의 숙청에서 권력을 위한 내전으로 뒤바뀐 상황….]

[아더 바이에른. 과연 그는 정말로 반역자인가?]

제국의 새로운 황제.

칸 마드리드의 공표 덕에 아더 바이에른은 제국의 공적이 되었다.

허나 하트의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아더 바이에른이 제국의 공적이 아니라 현 새로운 황제가 제국의 공적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사실을 알릴 길이 없었다.

현재 북부로 향하는 모든 길목이 막힌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사실을 알린다고 한들 새로운 황제에게 반기를 들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레온의 합류로 아더 바이에른의 거짓된 죄목이 흔들렸다.

그뿐만이 아닌 의도치 않은 정당성까지 얻게 되었다.

제국의 황자인 그는 그 신분만으로 제국에서 보증된 인물이다.

그런 레온이 아더 바이에른에게 합류한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여론이 점차 제국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작은 변화는 하트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기에 충분했다.

그 속에서 레온이 아더에게 말했다.

“부족해. 전쟁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이 말에 레온의 옆에 있던 아더가 질문했다.

“부족하다고요? 저~어기 드래곤도 있는데?”

아더의 말에 레온의 시선이 돌아갔다.

일곰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이 몸을 웅크린 채 기사들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레온이 잠시 말을 잃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저건 확실히 조금 놀랍기는 한데… 그래도 부족해.”

“이유는요?”

“저쪽에도 드래곤이 있으니깐.”

이 말에 아더의 눈에 놀람이 깃들었다.

‘레온… 북부에 없었는데, 라 하르칸의 존재를 알고 있네?’

그의 말대로 정보를 열심히 수집한 덕일까?

아더가 묘한 의문을 느끼는 사이 레온이 중얼거렸다.

“뭐 드래곤은 그렇다 치고… 제일 시급한 건 병력과 물자야.”

정신을 차린 아더가 질문했다.

“병력과 물자요?”

“제국의 군대는 세계 최강이야.”

“…?”

“지금 이곳에 있는 북부의 병사들도 엄청난 수준이지만…솔직히 말해 제국의 군대를 상대로는 거의 호각이라 볼 수 있지.”

레온이 손가락으로 기사들의 검을 가리켰다.

예리함으로 번뜩이는 그들의 검.

하지만 세월의 흔적과 그간의 전투로 쌓인 피로는 속일 수 없었다.

기사들에게 있어 목숨보다 중요한 검이 언제 부서져도 안이상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 점을 레온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런 와중에 물자까지 부족하니…솔직히 말해 전쟁을 치른다면 백이면 백. 이쪽의 패배야.”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레온 뭐, 꿍쳐놓은 돈 없어요?”

“있기야 하지. 하지만 전쟁에 들어가는 돈이 한두푼도 아니고, 내 돈만으로 부족하네.”

이 말에 아더가 상념에 잠겼다.

‘흠…바이에른의 재정을 끌어와 볼까?’

바이에른 고성의 골렘.

헤이치가 들으면 경악할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전쟁이 패배로 끝나면 단순히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니깐.

그렇게 아더가 어떻게 물자를 충당할지 고민할 때였다.

익숙한 뾰족귀가 갑작스레 등장했다.

“공자님.”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오. 지니?”

“오. 지니 양?”

옆에 있던 레온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런 두 사내의 반응에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갑자기 뭐에요? 왜 그런…부담스러운 반응이에요?”

“지니가 갑자기 나타났으니깐요?”

“지니 양을 오래만에 보니깐?”

“…”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어딘가 상반되는 두 사내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니가 생각했다.

‘…한 사람도 벅찬데,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버렸어.’

혀를 찬 지니가 품속에 있던 서신 한 장을 건네주었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이게 뭐예요?”

“지금 공자님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요.”

“…?”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물건?

‘그건 돈인데?”

그 돈이 이 서신으로 해결된다고?

그 때 지니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케인에 계신 윌렛 어르신 보내온 서신이에요.”

“…!”

“대충 내용을 요약하면…아케인을 떠나 북부로 향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물자 자원은 챙겨서…공자님을 돕기로 나선 사람들 모두가.”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그 말은…”

“네.”

지니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쥴리. 안젤리나 시장님…그 밖의 아케인 교수님들. 모두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어요.”

정신을 차린 아더가 당황해 질문했다.

“어…고맙기는 한데, 그분들이 왜 이곳에 오는 거예요?”

이 말에 옆에 있던 레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 당연히 오겠지?”

“…?”

“모두 자네한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지 않나?”

“…”

“그 빚을 갚기 위해 오는 거야. 아더 바이에른. 자네가 한 일들이 되돌아 온 거지.”

아더가 망설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위험하잖아요? 제국을 상대로.”

“어허. 이 친구가 갑자기 답답하게 왜 그러나.”

레온이 아더의 가슴을 툭 쳤다.

그 가벼운 두들김 속에서 레온이 단호히 선언했다.

“그만큼 자네에게 진 빚이 큰 거야. 더불어…”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씩 미소지었다.

“자네를 그만큼 아낀다는 거지. 목숨을 걸 만큼. 자네가 베푼 선행이 되돌아온 거야.”

아더가 침묵했다.

“…”

그 침묵 속에서 아더의 가슴이 조금씩 크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 미묘한 두들김 속에서 아더는 생각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인 지금의 상황.

그 상황에서 묘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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