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23화 (223/265)

제223화

제국의 황제.

이는 세상 그 어떤 자리보다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인간들의 나라가 대륙에 처음 생겨나고 처음으로 스스로를 왕이라 자처한 이가 제국의 황제였으니.

그랬기에 제국은 대륙의 절반에 달하는 영토를 지배했다.

그 힘과 권위에 대륙을 지배하는 강대국도, 상권을 좌지우지 하는 연합 왕국도.

심지어 종교를 지배하는 신성교회조차 머리를 숙여 예를 보냈다.

그런 제국의 황제가 교체된다는 것은 대륙에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는 의미였다.

그 무엇이건 할 수 있는 새로운 절대 권력자의 탄생.

새로운 황제의 의지에 따라 대륙의 정세가 바뀌고 한 나라의 존망이 결정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제국의 52대 황제.

알폰스 마드리드가 하야를 결정했다.

이 소식은 금방 대륙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급보요 급보-!”

“현 황제가 권좌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오!”

“제국의 해가 마침내 졌소!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는 소식이오!”

태풍.

말 그대로 태풍과도 같은 파급력이 전 대륙에 불어닥쳤다.

평범한 시민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귀족들은 경악을 토했으며 나라의 지배자들은 근심을 표했다.

“아니…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 아니오?”

“언젠가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해버리다니….”

“우리도 대비라는 걸 해야 하는데, 너무 일방적인 통보군….”

하지만 근심과 불만을 토로했을 뿐,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나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황제는 곧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다.

그런 세상의 왕에게 첫인상부터 괜히 낙인찍힐 필요가 없었다.

대륙의 수많은 왕국과 나라들은 불만을 뒤로 한 채 화환과 사신을 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다음 새로운 황제는 누구지?”

그 의문에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그… 황태자가 있지 않나?”

“황자들은 다 죽었잖아.”

“아니야! 두 명 있어! 두 명!”

“일곱 자식 중에서 단 두 명이 살아있잖아!”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제국에는 황태자가 있다.

그런데 그 황태자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었는데, 황태자의 직위는 공식적으로 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위이다.

즉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닌 두 번째 사람이란 소리다.

헌데 그러한 권력자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 탓에 모두가 혼란에 빠진 그 때, 한 남자가 황궁을 빠져나왔다.

“….”

구릿빛 피부에 붉은 머리칼.

선선한 외모를 자랑하는 그는 먹구름이 끼인 제국의 황궁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복수는 차갑게, 사랑은… 뜨겁게.”

이 말과 함께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남자가 몸을 돌렸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형님. 제 머리와 가슴은 아주 차게 식어 있어요.”

남자, 레온 마드리드가 황궁을 등진 채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실눈의 사내가 나직이 질문했다.

“황자. 어디로 가실 겁니까.”

레온 마드리드의 충복.

마시알 더스트였다.

그의 말에 레온이 북쪽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 친구 아더 바이에른에게 합류한다. 이제 그를 이용 할 때가 왔어.”

또 다른 복수자가 움직인 순간이었다.

* * *

제국의 52대 황제.

알폰스 마드리드.

그에게는 총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다.

딸 둘.

아들 다섯.

자손이 귀한 황실의 혈통임을 생각하면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큰 경사임은 확실했다.

자손이 많다는 것은 새로운 황제를 고려할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오, 능력 있는 이를 선별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니.

그랬기에 일곱 명의 황자와 황녀들은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았다.

철저한 능력주의로 이루어지는 제국의 성향을 고려하면 나이가 많고 적음은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능력만을 보고 새로운 황제를 선출할 것이고 그랬기에 일곱 명의 황자와 황녀들 모두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배움과 공부.

그리고 재능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기대에 힘입어 일곱 자식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일곱 자식 모두 천재라 칭송받으며 또래에 비해 엄청난 두각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제국의 충신들은 만족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에 선출할 황제가 다시 제국을 황금기로 이끌지도 모르겠군.'

'일곱 황자와 황녀들 모두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인 이가 황제가 될 것이다.'

그들은 다음 대의 황제에서 제국이 다시 한번 찬란한 황금기를 맞이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일곱 황자와 황녀들의 능력은 뛰어났으니깐.

허나 그 예상은 몇 년이 채가지 않아 뒤바뀌고 말았다.

“?”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황녀와 황자.

그 일곱 명의 천재들이 원인 모를 병과 암습으로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그리고 최고의 경비를 자랑하는 황궁임을 생각하면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모두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황녀와 황자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다섯이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는 단 두 명.

칸 마드리드와 레온 마드리드.

2황자와 칠황자.

일곱 명의 자식들 중 가장 뛰어난 천재와 가장 평범한 범재였다.

그중 가장 뛰어난 천재라 불리는 칸 마드리드가 천천히 단상 위로 걸어 나갔다.

“…….”

그 모습을 무릎을 꿇은 채 지켜보던 황실의 가신들은 생각했다.

'…칸 마드리드 황자, 아니 황제 폐하의 용모가 저랬던가?'

아무런 말 없이 긴 비단 망토를 이끌며 걸어 나가는 칸 마드리드의 외모가 낯설다.

그가 이 제국의 황자.

심지어 이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황태자라는 걸 고려하면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제국의 가신들은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여태 칸 마드리드의 얼굴을 직접 본 기억이 없었다.

그가 성인이 된 뒤로 단 한 번도 말이다.

이 기이한 사실에 가신들의 입이 의지와 상관없이 천천히 벌어졌다.

'어떻게… 한 번도 얼굴을 못 볼 수가 있지? 이게 말이나 되나?'

은근한 공포가 가신들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평생을 황궁에 살아왔는데, 황태자.

심지어 이제는 황제가 될 이의 얼굴을 처음보다니?

그때 칸 마드리드가 비어있는 권좌에 털썩 주저앉았다.

“…….”

가신들의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늘 황제에게 고해야 할 보고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그 막중한 업무를 앞두고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이어질 때였다.

칸 마드리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제가 됐는데….”

“…?”

“경들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나 보오?”

이 말에 가신들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 그!! 황제 폐하! 경축드리옵니다!”

“마침내 황제의 좌에 오르신 걸 진심으로 경축드리옵니다!”

“제국의 새 시대! 분명 천 년의 시대 중 그 어떤 시대보다 찬란히…!”

칸 마드리드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가신들의 입에서 쏟아지던 빈 칭찬세레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 속에서 칸 마드리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데?”

“……?”

“아직 즉위식을 치르지 않았지 않소? 그런데 황제라 불리기에는 너무 이르군.”

가신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들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던 칸 마드리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오. 새 시대, 새 천 년의 시대에 그대들이 과연 필요할까?”

“……?”

“낡아빠진 시대는 허무는 게 맞지. 지금껏 수고 많았소, 경들.”

방긋 웃은 칸 마드리드가 다시 손짓했다.

그 순간 대궐의 지붕이 뜯겨져 나갔다.

“……!”

그 광경에 가신들의 경악해 입을 벌렸다.

그 사이 모습을 드러난 기괴한 괴수가 날카로운 어금니로 대궐을 가득 채웠던 가신들을 꿀꺽 집어삼켰다.

파직.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피와 살점이 대궐을 점령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칸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어… 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시녀가 한 명이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한동안 지켜보던 칸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음… 부와 권력.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인간들보다 네가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네가 공덕을 많이 쌓았다는 거겠지.”

칸이 방긋 웃었다.

“시녀야. 일어서거라. 너에게 시킬 일이 하나 있다.”

이 말에 시녀의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시녀의 몸이 거짓말처럼 일으켜 세워졌다.

그 속에서 칸이 무언가를 툭, 그녀 앞에 내밀었다.

한 장의 양피지였다.

그 양피지를 가리키며 칸이 중얼거렸다.

“제국에 반기를 드는 반란분자가 생겼다. 죄목은… 음. 그래.”

칸이 방긋 웃었다.

“제국 충신들의 암습 살해 협박. 그러니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죄를 지은 반란분자가 탄생한 것이다.”

* * *

제국의 황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들었어? 이번 대의 황제 이름이 칸 마드리드라더군?”

“칸 마드리드? 그런 황자가 있었던가?”

“그 있잖아… 전대 황제의 일곱 자식 중 둘째.”

“…그래도 모르겠는데? 일곱 자식 중 둘째의 이름이 칸 마드리드였어?”

대륙에 있는 모두가 새로운 황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칸 마드리드라는 이름에 의문을 보냈다.

제국의 황태자.

현시대의 새로운 황제.

그런 엄청난 자리에 앉은 인물치고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모두가 은근한 불안감을 느낄 때였다.

새로운 소식이 대륙 전역을 강타했다.

“이런 미친-! 반란이 일어났어!”

그 소식은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제국의 충신들!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최악의 반란분자가 탄생했다고-!”

새시대.

새 천년을 이끌어나갈 가장 경사스러운 날.

제국을 떠받치던 기둥들이 모조리 죽인 사상최악의 범죄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이었으니.

모두가 경악해 두렴을 토해냈고, 대륙 전역에 순식간에 전운이 감돌았다.

제국을 건들고 살아남은 인간은 없다.

하물며 나라도 없다.

그런 와중에 제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신들과 충신들을 죽였으니 새 황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십중팔구.

거대한 전쟁 혹은 숙청이 대륙을 휩쓸 것이다.

이에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그 다가올 태풍에 대비하려던 순간이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누가 이 미친 짓을 저지른 거야?”

누가 새 시대, 새 천 년의 황제 앞에 칼을 들이민 걸까.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아더 바이에른?”

허나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이었다.

“제, 제국 최고의 가문의 수장이… 황제께 칼을 들이밀었다고?”

제국 충신과 대신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인 진실.

그랬기에 모두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이러면… 내전이 일어나는 거야?”

그 불길한 예감 속에서 새 황제.

칸 마드리드.

동시에 레오 바이에른이라 불리는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왔나?”

그의 질문에 어둠을 가르는 거대한 대검이 등장했다.

“…일단 불러서 왔는데, 대답해줘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아.”

그 대검에 묻은 피였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의 피.

그 피에 서린 원한을 잠시 지켜보던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궁금하나?”

“일단 네 놈 정체부터.”

이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대검을 든 30대 중년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겉 인상만 보았을 때는 나이를 세련되게 먹은 노신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이기도 했다.

허나 레오는 그의 진짜 나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시대의 사람이 아닌 수백 년의 사람이며 역사 속에서 잊혀진 최강의 칼잡이.

동시에 소드마스터 사냥꾼이라 불리는 칼의 신(神).

할리버 크리스티안.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에서 가장 강한 소드마스터였다.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던 레오는 손짓했다.

“아직 손님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기다리게.”

이 말에 할리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 말고 다른 놈들이 더 온다고?”

“음… 그렇게 많지 않아. 아마 내 예상으론 두 명이 더 올 걸세.”

레오가 빙그레 웃었다.

“모두 자네와 같은 [하늘섬] 소속이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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