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새파란 불꽃이 홀란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 하르칸은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뭐지 저 불꽃은?’
저 인간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치솟은 순간 온 전신이 거칠게 떨렸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을 먹고 자란 자신이 지금의 저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인상을 왈칵 찌푸린 라 하르칸이 거칠게 포효했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다 소용 없다!]
그 포효와 함께 세상이 거칠게 뒤흔들렸다.
[나약한 인간주제에 운명을 거스르지말라! 오늘 너는 여기서 죽는다!]
그 순간 라 하르칸의 주둥이가 벌어졌다.
동시에 홀란이 두른 불꽃 못지 않은 새빨간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드래곤 브레스.
드래곤이 쓰는 사상 최악의 마법이 발현 된 것이다.
그 속에서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악마 거신병들이 움직였다.
[크와와왁-!]
동료를 잃은 악마 거신병들이 화가난 듯 거칠게 발을 구르며 앞을 향해 돌격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홀란이 가볍게 무릎을 숙였다.
그 순간 홀란의 신형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
드래곤 브레스를 준비하며 홀란을 주시하던 라 하르칸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지?
저 인간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 의문과 함께 갑자기 피분수가 솟구쳤다.
깜짝 놀란 라 하르칸이 고개를 돌리니, 악마 거신병 어깨 위에 올라탄 홀란이 보였다.
그리고 그 홀란의 검에 의해 목이 잘린 악마 거신병의 얼굴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쿵!
한 박자 늦은 소음과 함께 악마 거신병의 신체가 무너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 하르칸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네 놈-!! 무슨 불길한 힘을 쓰는 것이냐!]
외침과 함께 라 하르칸의 주둥이에서 거대한 불구덩이가 쏘아졌다.
엄청난 열기에 악마들과 전투를 벌이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드,드래곤 브레스-!”
세상을 멸할 수 있다 알려진 불구덩이가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겁을 먹은 레버쿠젠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른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끼어든 푸른 색 불꽃이 머리 위에로 내려오던 드래곤 브레스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
경악한 레버쿠젠 병사들이 털썩 쓰러지고, 기사들조차 놀라 입을 벌렸다.
뭐지?
갑자기 왜 드래곤 브레스를 쪼개져 버린 거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레버쿠젠 군대가 당황하는 사이, 홀란이 중얼거렸다.
“…시간이 얼마 없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10개의 고리를 공명이 아닌 말 그대로 불태워버렸다.
그 대가는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났다.
우웅-!
수 십년간 쌓아온 마나가 한꺼번에 폭발하며, 전혀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처음 밟아보는 경지이기에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무엇이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속에서 홀란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얼마만인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달성하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신감이었다.
그 탓일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육체가 서서히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언제가부터 잘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의 감각이 생생히 느껴지고, 비만 오면 통증을 느끼던 무릎 관절도 젊은 날 그때처럼 탄력이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닌 이질감이 느껴지던 왼손의 제약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저 괴물에게 잡아먹힌 오른 손마냥 익숙하다 못해 지금 쥐고 있는 칼과 하나가 된 듯했다.
그 상태를 잠시 만끽하던 홀란이 입꼬리를 올렸다.
“최고로군.”
아마 이 싸움이 끝나면 마지막 불꽃을 태운 어마어마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홀란은 두렵지 않았다.
그 불꽃을 태운 대가로 레버쿠젠을 구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더 태울 수 있었다.
그렇게 상념을 정리한 홀란이 고개를 들어 라 하르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 달리 두려움에 질린 괴물이 보였다.
씩, 입꼬리를 올린 홀란이 푸른 불꽃에 휩싸인 검을 치켜세우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널 죽이겠다.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아.”
운명을 바꾸는 불꽃이 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 * *
고리를 태운 홀란은 악마 거신병과 라 하르칸을 상대로 놀라운 무력을 보여주었다.
[크아아아악-!]
두 괴물은 홀란을 잡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드래곤의 전유물인 용언.
압도적인 크기에서 나오는 속도.
숫적인 우위를 이용한 압박.
그 모든 것을 동원해 마지막 불꽃을 태운 홀란을 잡으려 했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육체의 제약을 벗어던진 홀란은 그 모든 압박에서 가뿐히 벗어났다.
촤악-!
그 속에서 남은 악마 거신병의 머리가 하나 둘 떨어졌다.
연이은 칼질에는 라 하르칸의 두터운 비늘에 상처를 냈다.
그 광경은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저 괴물들이 어떤 괴물인가?
하나는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에, 또 하나는 전설 속에 존재하던 거인을 닮은 악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단 한명의 칼잡이가 우위를 점한 채 궁지에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 탓에 레버쿠젠 병사들의 입에서 거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칼의 신(神)이 우리와 함꼐 한다!”
레버쿠젠의 상징.
레버쿠젠의 모든 것.
레버쿠젠이 낳은 최고의 천재.
그 모든 수식언을 가진 가문의 수장이 적들의 수장을 압도한다.
이 사실은 레버쿠젠 병사들의 사기를 최고조로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허나 레버쿠젠 기사들은 그 환호에 동참 할 수 없었다.
‘가주께서 고리를 태웠다.’
그들은 지금 홀란이 어떤 각오를 하고서 전투에 임하는지, 눈치를 챘기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칼잡이의 고리를 태운다는 것은 생명을 태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고리를 태우는 이는 조금 전까지 피투성이었던 노인이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 노인이 생명을 태운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했다는 의미.
그 탓에 레버쿠젠 기사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주께서… 이번 싸움에 목숨을 거셨다.’
기사들은 이 사실에 오열 할 수 밖에 없었다.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 죽움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 탓에 마음이 꺽이려는 찰나, 레버쿠젠 장군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언제까지 애새끼마냥 질질 짜고 있을 것이냐!”
“……!”
“네 놈들의 주군이 지금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고 있다! 그 시간을 헛되이 사용 할 셈이냐!”
전장을 관통하는 그 목소리에 기사들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 속에서 홀란의 곁에서 수십년을 함께한 레버쿠젠 장군들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긴 채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승기를 잡았다! 이 틈을 놓치지 마라! 레버쿠젠의 수장이 가져다준 이 기적을 그대로 이어간다!”
내려진 명령과 함꼐 기사단이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손에 쥔 칼에 힘을 준 채 다시 돌격을 시작했다.
“레버쿠젠의 영광을 위하여-!”
그 외침과 함께 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리고 그 치열해진 전장의 승기를 잡은 쪽은 레버쿠젠이었다.
[끼에에엑-!]
사기가 오를 대오른 레버쿠젠 군대의 상대롤 악마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곳곳에서 피분수가 터져나오고, 그들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그 광경을 마지막 악마 거신병을 처리하며 지켜보던 홀란이 빙그레 웃었다.
‘다들 너무 잘 해주고 있군.’
기사들은 그렇다 치고 일반 병사들은 눈앞의 괴물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기사들처럼 강인한 정신을 가진 것도, 자신처럼 검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 더 뛰어난 병장기술을 익혔을 뿐.
그런데 그런 기술만을 가지고 눈앞의 악마들을 상대로 전혀 겁먹지 않고 선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찌보면 마지막 불꽃을 태운 지금의 자신보다 기적같은 광경이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부러지지 않은 저들의 근성이 기적을 발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기적을 이어나갈 의무가 있었다.
홀란은 겁을 집어먹어 한 걸음씩 물러나는 라 하르칸을 향해 칼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제 끝이다 괴물아.”
이 말에 라 하르칸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소리쳤다.
[닥쳐라!! 여기서 내가 포기 할 것 같으냐!!]
그 외침과 함께 세상이 일순간 뒤흔들렸다.
[무려 천 년을 기다려왔다! 내 심장을 되찾기 위해 천 년을 숨어 지내왔다! 그런 내가 여기까지와서 물러날 것 같으냐!]
악에 받친 외침을 내뱉은 라 하르칸이 주둥이를 벌렸다.
드래곤 브레스.
세상에서 제일로 강력하다 알려진 드래곤의 마법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홀란이 검을 사선으로 빗겨들었다.
‘불꽃이 꺼져간다… 그렇다면 아마 이번 일격이 내가 휘두르는 마지막 검이겠지.’
눈길을 좁힌 홀란이 온몸의 감각을 세밀히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무릎은 30도 각도로.
허리는 검과 사선이 되도록.
시선은 적을 향하며, 두 발은 일정한 간격으로 벌린 채 도약 햘 준비를 했다.
수 천, 수 만번을 휘두르며 찾아낸 홀란 레버쿠젠이라는 칼잡이만의 일격.
그 마지막 춤사위의 준비를 끝낸 홀락이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 순간 라 하르칸이 드래곤 브레스를 토해냈다.
…쾅-!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이 홀란의 정면을 향해 날아왔다.
그 불꽃을 향해 홀란이 달빛을 두른 검을 휘둘렀다.
솨악-!
쏘아져나간 달빛이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그 순간 정면을 향해 날아오던 드래곤 브레스가 두 동강이 나고, 그 빈틈을 파고든 홀란이 마침내 라 하르칸의 정면에 다다랐다.
[……!]
눈을 치켜뜬 라 하르칸이 입을 벌렸다.
그리괴 뒤늦게 몸을 움지기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화아아악-!
마지막 불꽃을 머금은 한 자루의 검이 괴물의 미간에 정확히 꽂혔다.
그 속에서 홀란이 중얼거렸다.
“즐거운 싸움이었다 괴물아. 이제 네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라.”
이 말과 함께 라 하르칸의 거대한 육체가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
일순간 세상이 정지한 듯,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속에서 홀란과 시선을 마주치던 라 하르칸의 고개가 아래로 불쑥 떨구어졌다.
쿵-!
육중한 울림과 함께 라 하르칸이 고개를 뚫린 채 쓰러졌다.
동시에 깨뚫린 미간으로 부터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작은 불씨였던 그 불꽃은 점차 퍼져나가 곧 라 하르칸의 전신을 태웠다.
그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입을 벌렸다.
“…쓰러트렸다.”
드래곤.
그것도 악마들을 부하로 대동한 괴물.
그 괴물이 한 명의 칼잡이에게 쓰러졌다.
그 사실을 머릿속이 받아들인 순간 거친 환호성이 전장을 지배했다.
“쓰러트렸다고!! 저 괴물을! 홀란 레버쿠젠! 우리의 기사가 쓰러트렸다고!”
그 속에서 레버쿠젠 병사들을 상대하던 악마들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끼에에엑-!]
기괴한 괴성을 내뱉은 그들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 갑작스레 녹아내렸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의 장군들이 놀라는 사이, 기사들과 대치하던 드라칸도 거칠게 울부짖었다.
[크오오오-!]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의 육체도 악마들처럼 녹아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버쿠젠 기사들은 깨달았다.
‘끝났구나.’
홀란 레버쿠젠.
그가 괴물들의 수장을 쓰러트린 순간, 악마들은 물론이고 드라칸마저 사라졌다.
몇 천에 달하는 악의 군대가 한번에 사라진 것이다.
‘홀란 레버쿠젠… 저분 혼자서 이 악마의 군대를 상대하신 거나 다름없다.'
그 어떤 서사의 영웅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레버쿠젠 기사단은 뭉클한 가슴을 숨기지 못하며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홀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서 홀란은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느려졌군.’
심장의 박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고리의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 일격을 내지른 순간, 홀란 레버쿠젠이란 인간의 삶도 종지부를 찍은 듯했다.
‘후회 할 만한 삶이었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홀란은 고개를 저었다.
여러 후회가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그 후회를 뒤엎을 만한 성과를 냈다.
이 정도면 홀란 레버쿠젠이란 인간의 삶은 적어도 실패가 아니었다.
그 탓에 홀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을 때였다.
홀란의 화염에 천천히 죽어가던 라 하르칸이 거칠게 중얼거렸다.
[…계획대로구나.]
이 말에 홀란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을 지키는 기사가 삶을 다하고 드래곤 하트는 아직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인간이 지키고 있어.]
황급히 고개를 돌린 홀란이 라 하르칸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던 괴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웃고 있었다.
그 광경에 홀란이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 느낀 순간 라 하르칸이 포효했다.
[내 마지막 분신이 곧 있으면 하트를 차지할 것이다! 모든 게 내 뜻대로, 계획대로 흘러갔다!]
이 말과 함께 라 하르칸이 어둠으로 녹아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홀란은 하나 뿐인 혈육을 떠올렸다.
‘엘린!’
하트에 남아 드래곤 하트를 지키고 있는 마지막 레버쿠젠의 혈육.
그 아이를 떠올린 홀란이 황급히 몸을 돌렸을 떄였다.
갑자기 복부로부터 거친 통증이 느껴졌다.
흠칫 몸을 떤 홀란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 날개를 단 사내가 손에 쥔 검으로 제 복부를 찌르고 있었다.
“너… 는?”
말을 흐린 홀란의 눈꼬리가 떨렸다.
그 속에서 홀란의 복부에 검을 꽂아 넣은 사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더 바이에른은 어디있나? 홀란 레버쿠젠.”
광기에 몸을 맡긴 진짜 악마가 등장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