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05화 (205/265)

제205화

볼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그 땀 한 방울이 흐르는 느낌이 곤두선 신경을 통해 생생히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육체가 뒤바뀐다.’

여태 마나를 모아 서클을 달성하며 점점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한계에서 벗어나기만 했을 뿐, 결국은 인간의 육체.

결국 신체적 구조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10개의 고리를 달성한 순간 육체가 재구성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팔과 다리.

그리고 심장과 폐.

눈과 귀가 가진 한계를 마침내 벗어나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 영역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 할 수 없었다.

처음 밟아보는 경지이고, 처음 보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신비로운 감각 속에서 아더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확장된 후각이 더 없이 청량한 냄새를 폐로 받아들였다.

자연스레 고개를 숙인 아더가 제 가슴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박하 향이 제 몸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오. 체취마저도 달라졌다 이건가?”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제자리뛰기를 해보았다.

“후우. 후우. 후우.”

일정한 리듬 속에서 무릎과 팔의 관절을 이리저리 꺾어보았다.

그뿐만이 아닌 팔과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 근육도 움직여보았다.

그렇게 온몸의 상태를 체크하던 아더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몸의 제한이 없어진 것 같은데?’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신체적 한계.

팔과 다리라는 불안정한 이족보행의 육체의 단점이 지금은 놀랍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팔과 다리가 있는데 그 단점이 안 느껴지다니?’

순수이 감탄한 아더가 혀를 내둘렀다.

“여태 소드마스터라 말하고 다닌 게 부끄러울 정도네 이거….”

육체의 변화가 이 정도인데, 10개의 고리로 뿜어내는 검강은 어느 정도일까?

아더는 그 그림을 상상하다 문득 어깨를 떨었다.

묘한 시선이 뒤편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몸을 돌린 아더가 비스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동시에 눈을 치켜뜬 아더가 중얼거렸다.

‘빠르다?’

생각과 함께 아더도 움직였다.

오른손으로 뽑아든 진실이로 제 뒤편으로 파고드는 무언가를 향해 내려찍었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자, 잠시! 뭐하는 거야 자네!”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카셀?”

하지만 이미 진실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어진 뒤였다.

카셀은 그 소름 돋는 살수에 황급히 제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챙-!

두 개의 검이 맞닿으며, 정확히 중간에서 멈추어섰다.

그 순간 아더도 카셀도 놀라 눈을 치켜떴다.

‘검이 막혔어?’

‘검이 막혔다?’

똑같은 생각을 한 두 사내가 잠시 멀찍이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침묵 속에서 아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카셀 당신….”

카셀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그런데 자네도… 또 성장한 것 같군?”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카셀이 소드마스터가 됐다고?’

착각이 아니었다.

조금 전 일격은 틀림없는 소드마스터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카셀의 마나가 소드마스터에 근접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더군다나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10개의 고리에 걸맞는 깨달음 얻어야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란 것이 단순한 번뜩임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도 거의 50년을 검만 휘둘러서, 얻은 깨달음인데….’

그 탓에 아더가 다시 한 번 카셀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카셀의 육체에서 은은한 박하 향이 맡아졌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중얼거렸다.

‘나와 똑같은 체취… 착각이 아니야. 카셀은… 정말로 소드마스터가 됐어.’

탄성을 터트린 아더가 다급히 질문했다.

“아니 카셀? 대체 잠시 눈을 감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더의 말에 카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말의 어폐가 조금 있군.”

“…?”

“잠시가 아니네. 자네는 3일 동안 명상에 잠겨 있었어.”

이 말에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제, 제가… 3일이나 명상에 잠겨 있었다고요?”

“몰랐나? 나는 혹여 죽었나 싶었네. 숨만 쉬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깨워야 되나 고민을 했을 정도니깐.”

카셀의 설명에 아더가 놀람을 억지로 삼켰다.

‘그 짧은 사이에 3일이나 지나 있었다니….’

그렇다면 지금 레버쿠젠 영지도 3일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거 아닌가?

표정을 굳힌 아더가 카셀을 재촉했다.

“잠을 너무 오래 잤네요. 카셀! 빨리 움직이죠! 저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카셀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질문했다.

“시간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라 하르칸은 한 마리가 아니에요!”

“……!”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몰라도, 놈은 세 마리에요! 그러니깐 지금 남은 한 마리가 레버쿠젠의 영지를 공격하고 있단 소리죠!”

아더의 말에 카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사이 아더가 카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일단 여기 있는 한 마리부터 빨리 잡아내고, 하트로 향하죠! 소드마스터가 두 명이니깐,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몸을 되돌렸을 때였다.

아더의 신체가 뒤로 기우뚱 기울였다.

눈을 끔뻑인 아더가 고개를 돌리니,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카셀이 보였다.

“여기 있는 놈은 잡을 필요가 없어.”

“……?”

“그러니 바로 하트로 가지. 자네 날개라면 금방 도착 할 수 있을 거야.”

카셀의 말에 아더가 당황해 질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카셀? 여기 있는 놈을 잡을 필요가 없다니요?”

“말 그대로네 아더.”

카셀이 슬며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라?”

어둠 속에 가려진 거대한 형체.

여태 왜 저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는지, 의아 할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무언가에서 검은색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사이, 카셀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라 하르칸은 이미 죽었네.”

이 말과 함꼐 카셀이 우쭐한 표정으로 턱짓했다.

“자네가 잠든 사이 내가 처리했거든. 그러니 바로 하트로 달려가지. 자네의 말이 사실이면, 우리에겐 시간이 없으니깐.”

아더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 * *

홀란 레버쿠젠.

그리고 라 하르칸.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과, 드래곤을 지키는 기사의 싸움은 기습으로 시작되었다.

‘…!”

악마들을 처리하기 위해 검은 숲에 들어온 홀란을 라 하르칸이 야밤을 틈타 공격했다.

그 위협적인 공격을 홀란은 기적적으로 막아내는 사이, 라 하르칸이 속삭였다.

[내 함정에 걸려들었구나 드래곤을 지키는 기사야. 너는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 말과 함께 라 하르칸을 따르는 악마와 드라칸이 홀란과 레버쿠젠 기사들을 공격했다.

어둠에 몸을 숨겨 기습을 하는 그들의 공격은 평범한 맹수의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홀란은 소드마스터.

어둠은 그의 시야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못했다.

그의 매서운 칼질이 라 하르칸과 악마들의 공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막아냈다.

허나 기습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라 하르칸과 악마들은 밤만 되면 홀란과 레버쿠젠 기사들을 찾아와 괴롭혔다.

그 끊임없는 기습은 계획적이고 빈틈이 없었다.

허나 홀란의 칼질 또 한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악마들의 공격은 물론이고, 라 하르칸의 일격마저도 모두 방어해냈다.

그가 왜 제국 최고의 기사라 불리는 지 보여주는 맹위였다.

허나 함께 온 레버쿠젠 기사들은 점점 이 야습에 지쳐갔다.

‘…….’

기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둠에 몸을 숨겨 기습을 해오는 악마와 라 하르칸의 공격에 몸은 물론이고 정신마저도 흔들렸다.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연이은 야습은 그들의 체력을 깎아먹었다.

그 광경에 라 하르칸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시작이다. 드래곤을 지키는 기사야. 이 숲을 그냥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라 하르칸의 경고는 사실이었다.

검은 숲은 허락되지 않은 자들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 결과 홀란과 레버쿠젠의 기사들은 들어왔을 때와 달리 쉬이 검은 숲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 속에서 라 하르칸과 악마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둠은 우리의 편. 너희는 매일 밤, 끝나지 않은 악몽 속에서 해맬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레버쿠젠의 기사들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차라리 죽자….’

‘어차피 희망이 없어….’

‘이런 고통을 받을 바에야 죽는 게 나아.’

강이한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악마들의 공격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특히 오랜 기간 잠을 자지 못한 탓에 그들의 인내심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결국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스스로 목을 매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레버쿠젠 기사단의 붕괴를 일으켰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그들은 목적도 사명도 잊은 채, 넋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눈앞에 적이 있음에도 칼을 들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라 하르칸이 속삭였다.

[홀란 레버쿠젠의 목을 내게 가져다 받쳐라. 그러면 너희는 살려주마.]

절망 속에 들려온 달콤한 속삭임.

레버쿠젠 기사들은 목숨까지 받치겠다는 충성도 잊은 채 그 속삭임에 흔들렸다.

그 속에서 밤이 찾아왔다.

‘….’

눈이 빨갛게 충혈된 레버쿠젠 기사들이 칼을 들었다.

악마과 라 하르칸이 찾아오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호흡은 거칠었다.

그 상태에서 레버쿠젠 기사들은 잠시 잠이든 홀란 레버쿠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아 안색이 피리한 한 노기사가 보였다.

그 모습에 레버쿠젠 기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과연 이게 맞나?

내 손으로 내 주군의 목을 자르고 살아난다한들, 과연 의미가 있을까?

머릿속으로 드는 수만 가지의 생각과 함께 레버쿠젠 기사들이 탄식을 터트릴 때였다.

다시 한 번 라 하르칸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어떤 죽음도, 살아있다는 기쁨보다 못한다. 너희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냐?]

기사들의 눈동자가 다시 커졌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숨결이 다시 거칠어졌다.

‘후우… 후우… 후우….’

흥분한 기사들이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그래 맞아.

여기서 나는 죽을 사람이 아니야.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삶을 끝내야 해?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함께 그들의 검이 치켜 올라갔을 때였다.

눈을 감고 있던 홀란이 중얼거렸다.

‘날 죽이면 반드시 살아나가라.’

‘…!”

‘만약 내 목을 벨 거면, 반드시 살아남아라. 그러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너희에게 죄를 따져 묻겠다.’

이 말에 기사들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와 동시에 거친 울음을 쏟아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그 울음을 홀란은 못 본 척 못들은 척 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홀란이 기사들이 불러 모았다.

‘아무래도 이 숲의 괴물은 날 노리는 것 같구나.’

이 말과 함께 홀란이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협상을 해서 너희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그 괴물에게 혼자서 맞서겠다. 그렇게들 알고 있어라.’

기사들이 놀라 반대했다.

‘안 됩니다! 어찌 가주님을 혼자 그 괴물에게…!’

‘악마의 유혹에 흔들린 기사들은 필요 없다.’

‘…!’

‘너희를 흔들리게 한 괴물에게 날 안내해라. 너희의 죄까지 그 괴물에게 따져묻겠다.’

기사들이 입술을 달싹이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수치심에 스스로의 목을 찌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무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홀란의 시선이 무서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결국 기사들은 홀란을 괴물에게 안내했다.

그 길은 어렵지 않았다.

괴물의 목소리가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인도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선택을 내렸구나. 드래곤을 지키는 기사야. 너 혼자서 날 상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수하들까지는 상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괴물의 목소리가 이끌리는 곳으로 향한 순간, 기사들은 어느사이엔가 검은 숲을 빠져나와 있었다.

‘…!’

허나 그들의 주인.

홀란 레버쿠젠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기사들이 자리에 털썩 쓰러져,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살기 위해 스스로의 주군을 적에게 받친 기사.

그 사실에 기사들이 절규하며 앉은 자리에서 3일 밤낮을 지새웠다.

그렇게 4일째 되는 날.

살아남은 20명의 레버쿠젠 기사들이 마침내 결심을 하고 칼을 뽑아들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죽어서 홀란 레버쿠젠. 우리의 주인에게 사죄하리라.’

눈을 감은 그들이 뽑아든 칼로 제 목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검은 숲이 일렁이더니, 한 노인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 광경에 깜짝 놀란 레버쿠젠 기사들이 소리쳤다.

‘가, 가주님-!’

그 외침에 온몸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노인이 웃었다.

‘멍청한 놈들.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었느냐?’

그 웃음과 함꼐 텅 빈 오른쪽 소매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 광경에 기사들의 입이 벌어졌다.

‘오른 팔이… 없어?’

홀란 레버쿠젠.

제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

그런 그의 오른 팔이 놀랍게도 사라져 있었다.

그 때 홀란이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목숨 값이라 생각하면, 싸게 넘겼지. 다들 걱정말라.’

이 말에 기사들이 다시 한 번 눈물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홀란은 조용이 웃어보였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 마침내 다시 마주한 라 하르칸과의 전쟁.

[너희를 죽이고, 내 심장을 되찾겠다!]

괴물의 선언과 함께 시작된 전쟁은 치열하게 이어졌다.

죽고 죽이는 싸움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 속에서 20명의 레버쿠젠 기사들은 각오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리라.’

그 각오가 통했던 것일까.

20명의 레버쿠젠 기사들의 활약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라 하르칸과 악마들의 대군을 상대로, 하트는 3일 간 치러진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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