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01화 (201/265)

제201화

아더는 눈을 떴다.

“오.”

짧은 탄성을 내지른 뒤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고막이 웅웅 울렸다.

‘아 맞다. 조금 전에 고막이 찢어졌었지?’

트롤의 혈통을 발동시키니 그 이명이 점차 잦아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허나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이번에도 실패했다.

눈을 끔뻑인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잘려나간 두 다리가 보였다.

잠시 침묵한 아더가 중얼거렸다.

“뭐야. 다리도 잘려나갔었네?”

머리를 긁적인 아더가 이번에도 트롤의 혈통을 일으켰다.

그 순간 잘려나간 두 다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아더가 중얼거렸다.

“으음… 드래곤 브레스 때문이구나. 하긴… 그 정도 화력이면 다리가 잘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지.”

라 하르칸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화력이 자신과 카셀을 덮쳤다.

그 화력은 드래곤 브레스.

세상에서 제일로 강력하다 알려진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명성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일격으로 목숨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엄청난 마법이었다.

‘카셀은 그 불꽃이 닿기 전에 다행히 밀어넣어 무사했을 텐데, 내가 직격으로 맞아버렸네.’

상황을 판단한 아더가 고민에 빠져들었다.

‘드래곤 브레스… 생각보다 너무 강한 마법인데?’

그것이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무엇도 잘라내는 검강도, 세상 최악의 흑마법사가 깃든 흑마법사의 총탄도.

더불어 여태껏 모아온 혈통의 능력도 발동시킬 틈이 없었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아더는 그 순간 세상이 끝장나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막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말이지.”

한 번 맞아보니 약점이 없는 건 아닌 듯 했다.

주둥이가 벌어지기 전 잘하면 피할 수 있을 듯했다.

아니면 아예 드래곤 브레스를 못 쓰게 베어내는 방법도 있었다.

그 위력은 명성만큼 대단했지만, 파훼 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시 마주쳤을 때는 이렇게 무력하게 지지 않을 거야.’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복기가 적당했다.

결론을 내린 아더가 재생된 두 다리로 일어나 뒤늦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디지?”

조금 전까지 라 하르칸의 신전에 있었는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신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대한 종유석과 끝이 안 보이는 천장.

그리고 어둠으로 휩싸인 토굴은 그 어디에도 신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굴? 흠… 일단 동굴인가.”

턱을 쓰다듬은 아더가 다시 조금 전 상황을 되새겼다.

드래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 신전의 바닥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두 다리를 잃은 것 까지 기억이 났다.

‘그럼 여기는 신전의 밑바닥인가?’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흘러가는 상황으로는 일단 그래보였다.

‘그렇다면 라 하르칸도 근처에 있다는 거네.’

그 정도 괴물이라면, 자신이 살아있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어떻게든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다시 움직일 테니,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일단… 카셀부터 찾자.”

그리고 다시 그 괴물을 죽여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놀랍게도 드래곤을 잡아 먹는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것이 분신인지 혹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놈은 두 마리였다.

‘지금 이쪽에 한 마리가 있으니깐, 다른 한 마리는 지금 쯤 레버쿠젠의 하트를 공격하고 있을 거야.’

홀란 레버쿠젠이라는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칼잡이가 있기는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괴물의 절기인 드래곤 브레스는 상식을 초월한다.

그 브레스가 인간의 군대에게 쏘아지면 그 후에 있을 피해는 어느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탓에 아더가 다급히 걸음을 옮길 때였다.

옅은 숨소리가 귓가로 느껴졌다.

‘카셀? 라 하르칸?’

숨소리의 크기를 보니, 전자인 것 같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허나 아더의 주저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하트가 라 하르칸의 브레스에 멸명하기 전 이곳의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 * *

하늘이 갈라지고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버쿠젠의 군대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저게… 뭐야?”

산전수전을 다 겪은 레버쿠젠의 병사들도 저런 괴물은 처음 보았다.

두 장의 날개와 세 개의 샛노란 눈동자.

그리고 엉덩이 사이로 난 두 개의 꼬리는 보는 것만으로 절로 혐오감을 들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끔찍한 외형에 몇몇 병사들은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 속에서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홀란이 중얼거렸다.

“…라 하르칸.”

이 말에 괴물의 주둥이가 천천히 열렸다.

[오랜만이구나. 용의 기사야. 그간 잘 지냈느냐?]

놀랍게도 주둥이 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초저주파에 가까운 소리의 형태의 무언가였다.

그 저주파가 모두의 고막을 흔들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못 이겨 결국 혼절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홀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검이 무서워, 줄곧 숨어 있던 괴물이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냐.”

홀란의 말에 라 하르칸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 검이 무서워 내가 숨어있었다고?]

“부정 할 생각마라. 너는 하트를 끝장 낼 수 있음에도 내 검이 무서워 숨어있지 않았느냐?”

라 하르칸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터져나온 초저주파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마나를 두르지 못한 일반 병사들은 그 저주파에 낙엽이 떨어진 것마냥 후드득 쓰러졌다.

그 속에서 라 하르칸이 속삭였다.

[드래곤의 기사야. 그러는 너야 말로, 내가 무서워 저 성안에 틀어박히지 않았느냐?]

이 말에 홀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은 라 하르칸이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날 잡기 위해 검은 숲으로 들어왔다 기사의 상징이라 불리는 오른 팔이 잘리고, 그 공포에 못이겨 용들의 지켜야 할 존재가 용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숨지 않았더냐?]

“…….”

[공포를 부정하지마라 용들의 기사야. 두려움을 밀어내지 마라 용들의 기사야. 공포와 두려움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당연한 감정.]

라 하르칸의 날개가 펄럭였다.

그 순간 중천 위에 떠올라있던 태양이 가려졌다.

숨죽여 라 하르칸과 홀란의 대화를 엿듣던 병사들의 입이 그 광경에 벌어졌다.

그 속에서 라 하르칸이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내뱉었다.

[그 감정을 밀어내려 할수록, 너는 더욱 깊은 구덩이로 빠져들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고 무릎을 꿇어라 기사야.]

이 말과 함께 라 하르칸의 세 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 순간 홀란의 신체가 의지에 상관없이 비틀거렸다.

‘용언?’

마법사는 마력과 주문으로 기적을 실현한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그 마력과 주문이 없어도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그들의 말이 곧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의 시초라 불리는 존재들이 가진 특권.

그리고 지금, 그 특권이 발동되어 홀란의 신체를 두들겼다.

‘무릎을 꿇어라. 무릎을 꿇어라. 무릎을 꿇어라.’

만약 그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칼잡이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릎을 꿇었을 정도로 강력한 속박마법이었다.

그 탓에 홀란의 표정이 흔들렸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전장으로 나온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두려움이건 공포건.

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안배는 해두었다.’

엘린과 아더.

두 사람을 떠올린 홀란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두 사람에 의해 덜어지자, 제 오른 팔을 뜯어낸 괴물을 마주했음에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홀란 레버쿠젠. 앞으로 나아가라. 이곳에서 자신의 미래와 실력을 시험해라.”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과 함께 마지막 두려움과 공포마저 사라졌다.

망설임 또 한 사라졌다.

그 순간 홀란이 검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라 하르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포기를 모르는 구나.]

“포기를 할 거였으면, 진작에 포기를 했겠지.”

이 말과 함께 홀란이 숨을 참았다.

그리고 잠시 텀을 두고서 거칠게 소리쳤다.

“전군은 들어라!”

“…!”

“지금 우리 눈앞에 그간 하트를 괴롭히던 사악한 괴물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외침에 공포에 절여졌던 병사와 기사들의 몸이 떨렸다.

동시에 홀란이 제 가슴팍의 고리를 거칠게 진동시켰다.

화악-!

제국, 최고의 기사라는 칭호에 걸맞은 엄청난 마나가 한데 모여 달빛이 되었다.

그 순간 어둠에 휩싸여 있던 설원이 다시 색을 되찾고 라 하르칸은 그 빛에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의 병사들이 입이 천천히 벌어진 그 때, 그들의 주인으로부터 마지막 명령을 내려왔다.

“우리는 여기서 저 괴물을 죽이고 영웅이 된다!”

“…!”

“북부를 넘어 대륙을 구하는 전장의 주인이 된다! 그러니 레버쿠젠의 아이들아!”

이 명령과 함께 홀란이 입꼬리를 올렸다.

“두려워 하지 말고 내 뒤를 따르거라. 마지막 그 순간까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

홀란의 외침과 함께 잠시 전장에 침묵이 깃들었다.

“…….”

그 잠시뿐인 침묵 속에서 레버쿠젠의 기사와 병사들의 가슴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함께 하겠다.”

레버쿠젠의 주인.

레버쿠젠을 지키는 수호령.

그가 맹세하는 최고의 주문.

그 순간 레버쿠젠의 기사와 병사들이 거친 함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아-!”

그 함성은 라 하르칸이란 괴물의 존재를 넘어 설원을 뒤흔들었다.

“레버쿠젠의 깃발을 높이 들어올려라!”

“레버쿠젠의 주인! 홀란 레버쿠젠의 뒤를 따르라!”

“그 분을 지켜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 하르칸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리석도다 어리석어… 희망이란 부질없는 것이거늘.]

그 웃음과 함께 검은 숲이 들썩였다.

[끼엑?]

인간을 닮은 괴물.

그랬기에 악마라 불리는 괴물 수 천 마리가 검은 숲에서 기어 나왔다.

허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끼에에에엑!]

드래곤이 되지 못한 구렁이인 드라칸과 수 십 마리의 악마 거신병들 또 한 검은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대군을 뒤에 거느린 라 하르칸이 하늘 위로 비상하며 소리쳤다.

[좋다! 인간들의 도전을 받아주마!]

그 외침과 함께 인간의 군대와 괴물의 군대가 맞부딪친다.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피와 살점.

그리고 죽음의 향기 속에서 라 하르칸이 선언했다.

[오늘 여기서 세상의 운명은 크게 바뀐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리라!]

* * *

어두운 방안.

제국의 2황자이자, 현재는 황태자라 불리는 칸 마드리드가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꿈속에서 뭘 보았느냐?”

그의 질문에 어둠에 가려진 사내가 대답했다.

“제 목표를 보았습니다.”

“그 목표가 무엇이더냐?”

“제 아들을 죽인 범인이었습니다.”

칸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어떻더냐?”

사내가 잠시 침묵했다.

그 속에서 꿈속에서 보았던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려야 하는데….’

말을 흐리며 천천히 죽어가는 그 모습을 되새기던 사내의 몸이 거칠게 떨렸다.

그 모습을 어둠에 기대어 지켜보던 칸 마드리드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분노구나.”

“…….”

“그리고 슬픔… 그래. 이안 도르문트. 그 아이는 내게 전부나 마찬가지였지.”

칸 마드리드의 위로에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

“제 인생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난 날… 저는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세상이 사라졌습니다.”

이 말과 함께 어둠이 일렁거렸다.

그 이변에 칸 마드리드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놀랍구나. 그 꿈속에서 얻은 건, 달빛만이 아니었던 것인가?’

진실을 마주하고, 달빛을 얻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게 그 이상을 얻어내다니.

칸 마드리드는 눈앞의 사내의 재능에 진심으로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내가 고르고 고른 장기 말답구나.’

그 때 눈물을 삼키던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정신을 차린 칸 마드리드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질문했다.

“원하는 게 있느냐?”

사내가 대답했다.

“제 아들의 원수가 어디 있습니까?”

칸 마드리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이곳을 기준으로 해 북쪽에 있다.”

사내가 칸 마드리드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북쪽.”

“그래. 더 정확한 위치도 원한다면 가르쳐 줄 수 있다. 하지만 케인 도르문트.”

칸 마드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만약 그 북쪽으로 가 아들의 원수를 죽일 거라면 너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럴 자신 있느냐?”

칸의 질문에 사내가 침묵했다.

“….”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

세상 그 누구나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3가지를 모두 동시에 가진 사내였기에 조금 전 질문의 의미는 매우 컸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원수를 죽이라는 말씀이시구나.'

그 탓에 잠시 고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정을 내리기는 매우 쉬웠다.

세상을 잃은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은 세상을 잃었다.

그러니 저 질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예. 모든 걸 버리겠습니다.”

그 대답에 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든 걸 버리고… 아더 바이에른. 놈에게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할 겁니다. 그것이 제 선택입니다 주군.”

복수에 미친 또 다른 사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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