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갈라진 어둠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너라, 천사야.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쇠를 쇠로 긁는 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아더는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라 하르칸].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목적지에 찾아왔음을 깨달은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라? 오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던데요?”
[네가 건너온 숲은 망자들의 땅.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숲이다. 그런 숲을 손쉽게 통과했다는 건 네가 그 망자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란 거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천사라서 쉽게 통과했다는 거군요?”
[그래. 솔직히 말해 나도 놀라웠다. 아무리 천사라도 그 악마들과 망자들이 너를 보고 두려움을 느낄 줄이야.]
“당신도 두려움을 느끼나요?”
[내가 너에게 말이냐?]
“네. 악마니 망자니, 그런 것들이 두려움을 느껴봐야 별 쓸모도 없고….”
말을 흐린 아더가 어둠을 또렷히 바라며 말했다.
“당신이 두려움을 좀 느껴주면 참 고마울 텐데. 제게 두려움을 느끼시나요?”
목소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구나! 날 보고 두려움을 느끼냐 묻다니! 인간의 언어로 하면 이것이 농담이라는 것이냐?]
“재밌는 말이 농담은 맞는데, 전 농담을 한 적이 없는데요?”
[내가 두려움을 느끼냐는 말보다 재밌는 말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이 말과 함꼐 세 개의 눈동자가 어둠 너머로부터 튀어나왔다.
“…!”
깜짝 놀란 카셀이 뒤로 물러섰다.
샛노란 3개의 눈동자가 꿈틀 거리며 아더를 노려보고 있었다.
‘맞다! 라 하르칸… 그 괴물이 저 어둠너머에 있어!’
그 사실에 공포를 느낀 카셀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사이 어둠이 다시 한 번 갈라졌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주둥이였다.
두 개의 날카로운 어금니와, 흉측한 이빨들이 가득한 주둥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그 이빨들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며 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공포와 두려움을 먹고 사는 존재. 태초의 어둠에서 태어난 최초의 드래곤이다. 그런 내가 천사라 할지라도 겁을 먹을 것 같으냐?]
라 하르칸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최초의 드래곤이라고요?”
[최초, 시초… 그 어떤 말로도 날 표현 할 수 있지.]
“흠… 그건 알겠는데 이상하네요. 당신이 최초의 드래곤이라면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말을 흐린 아더가 질문했다.
“최초의 드래곤 하트는… 하트에 있는 데 말이죠?”
그 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그 침묵에 아더와 카셀이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어둠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가 끊겼기 때문이다.
그 이변에 아더와 카셀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순간, 갑자기 귓청이 찢어졌다.
“……!”
카셀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고, 아더가 놀라 눈을 치켜떴다.
동시에 손을 움직여 오른쪽 귀를 쓰다듬었다.
‘소리가 안 들려?’
놀랍게도 고막이 터져 있었다.
귀로부터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뭐지? 뭐가 내 고막을 터트린 거지?’
한순간 세상이 뒤흔들리더니 고막이 나가버렸다.
처음 겪는 일에 아더가 당황할 때, 거친 목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것이 내 심장이다-!]
그 목소리에 아더의 시선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무려 천 년간 빼앗긴 내 심장! 드래곤이 드래곤이라 불리는 이유인 그 심장을 북부의 인간들이 멋대로 가져가버렸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더가 중심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내 고막을 나가게 한 게 저 목소리였구나.’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소리친 것만으로 고막을 찢어버리다니?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레버쿠젠에 있는 드래곤 하트가 저 괴물의 심장이었다고?’
저 말이 사실이라면 [라 하르칸]이 하트를 공격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드래곤 하트가 없는 드래곤은 드래곤이라 불릴 수 없다.
드래곤 하트라는 지고한 심장이 있어, 그들은 드래곤이라 불리는 것이니.
본능이건 목적이건, 라 하르칸은 하트를 공격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은데요? 그럼 당신은 지금 드래곤 하트가 없다는 거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비스트를 재장전했다.
“너무 강하면 어쩌나… 라고 고민을 했는데 다행이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샛노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건방지구나… 건방져. 드래곤 하트가 없어도 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못 이길 건 또 뭐가 있어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드래곤이라 해도 죽일 자신이 있는데, 드래곤 하트가 없는 드래곤이면 더 쉽게 죽이지 않겠어요?”
이 말에 [라 하르칸]이 침묵하고, 자리에 쓰러져 있던 카셀의 입이 벌어졌다.
‘아, 아더! 너,너무… 도발하는 거 아닌가?’
저런 괴물을 상대로 겁을 먹지 않는 것도 놀라운데, 도발까지 하는 아더의 모습에 오히려 카셀이 당황했다.
그 사이 어둠이 일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예로부터 천사들은 겁이 없었지. 그건 천사의 후예인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구나.]
말을 흐린 어둠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허나 천사야. 네 겁 없는 용기가 나에게 기회를 주었구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너는 미끼란다.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미끼… 사람들은 그 천사를 바라보며 헛된 희망을 품고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가지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어둠이 일렁거리며 폭소를 터트렸다.
[그런 네 덕에 레버쿠젠 인간들은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용기를 가졌다! 그 희망과 용기 덕에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이끌어냈구나!]
아더가 다급히 질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드래곤 하트가 없는 나는 나약하다.]
“……?”
[인간의 칼날에도 상처를 입고, 하물며 검강이라 불리는 것에는 목숨마저 위협받는다. 그래서 천 년간 하트를 찾지 못하고 드래곤을 잡아 먹으며 힘을 키웠지.]
라 하르칸의 설명과 함께 아더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뭐지?’
분명 눈앞에 있는 건, 라 하르칸이다.
그러니 눈앞의 이 괴물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하지만 목덜미를 쿡쿡 찌르는 불길한 감각은 어째서인지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 됐어… 그런데 그게 뭐지?’
그 사이 라 하르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아더가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반대로 라 하르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허나 드래곤을 잡아먹고 힘을 키웠음에도, 내 심장에 보호를 받는 그 소드마스터는 여전히 내 목숨을 위협했다. 그래서 나는 떄를 기다렸지.]
라 하르칸이 거친 폭소를 터트렸다.
[용들의 가호를 받는 그 소드마스터가 스스로 그 가호를 벗어나기를. 그 가호만 없다면, 검강을 가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인간! 내 손에 죽을 수 밖에 없을 터.]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여기 있잖아요?”
[그래. 나는 여기 있지. 하지만 천사야.]
“……?”
[누가 내가 하나 라고 했느냐?]
“……!”
[지금 눈앞에 있는 내가… 나로 보이느냐?]
아더가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나로 보이냐고?’
그 순간 아더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달싹이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렇구나. 이 괴물은 하나가 아니었어!’
진실을 깨달은 아더가 다급히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쾅-!
거친 폭음과 함께 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4개의 기둥이 무너지고, 벽면에 금이 가며 지진이라도 난것마냥 대지가 흔들렸다.
그 속에서 어둠을 가르며 3개의 눈동자를 가진 거대한 도마뱀이 나타났다.
도저히 드래곤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 끔찍한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이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천사야. 날 도와준 선물이다.]
괴물의 주둥이가 벌어졌다.
그 주둥이 끝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그 에너지에 반응한 세상이 종이쪼가리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오늘 내 심장과 천사의 심장을 모두 먹어치우리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새롭게 탄생 할 것이다!]
드래곤 브레스.
드래곤만이 쓸 수 있다 알려진 세상을 부수는 기술이 아더를 향해 쏘아졌다.
* * *
보병 5천명.
기병 1000명.
기사 300명.
그 외 예비 자원까지 합쳐진 레버쿠젠의 7천명의 병력이 하트를 빠져나왔다.
그 대군의 선두에 선 것은 홀란 레버쿠젠.
북부를 지키는 용이자, 제국에서 가장 강인하다 알려진 소드마스터였다.
그가 텅 빈 오른쪽 소매를 휘날리며 거침없이 설원으로 나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버쿠젠 시민들이 목을 놓아 소리쳤다.
“북부의 수호신이시여! 부디 저희를 지켜주시옵소서-!”
“시련에 빠진 레버쿠젠을 부디 구원하시길!”
“그 찬란한 달빛으로 어둠을 부디 베어가르소서!”
그 한이 맺힌 외침에 레버쿠젠 병사들은 거대한 사명감을 느꼈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패배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저 시민들은 물론이고 천 년간 북부를 지켜온 레버쿠젠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 사실에 레버쿠젠 병사들이 흥분과 약간의 떨림을 느낄 때였다.
가장 뒷편에 서 레버쿠젠의 대군을 뒤따라가던 바이에른의 기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게 제국의 북방을 수호하는 레버쿠젠의 전력이군.”
“실로 놀랍도다… 어찌 일개 가문이 이 정도 전력을 보유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가문과 동맹을 선택한 가주님의 안목이 실로 놀랍군!”
그들의 말에 기사들의 옆에 서 있던 지니가 혀를 찼다.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실 때에요?”
“……? 그럼 무슨 소리를 해야 하는 겁니까 레이디 지니?”
“전쟁이 코앞인데 긴장이라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바이에른 기사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흠… 전쟁이 코앞이라 긴장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논리에요?”
“싸움을 앞두고 긴장을 하는 건 삼류입니다.”
“……!”
“그리고 기사쯤 되는 자들은 그런 삼류가 아닙니다. 긴장을 투지와 용맹으로 바꾸는 일류. 그들이 바로 기사이고 바로 저희입니다.”
지니의 눈이 커졌다.
‘이 바보들이… 맞는 말을 했어?’
정곡을 찔렀다는 사실보다는, 싸움 밖에 모르는 이 바보들이 이런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한 지니였다.
‘괜히 기사가 된 게 아니는거네….’
그 탓인지 몰라도 짐덩이처럼 느껴지던 바이에른 기사들이 웬지 모르게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무안해진 지니가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쪽 팔을 잃이 없는 한 노인이 무표정으로 설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한폭의 명화와 떠올리게 할 정도로 운치가 있었는데, 지니는 감상에 빠져들기 보다는 시선을 좁혔다.
‘그건 그렇고 왜 레버쿠젠의 가주만 보이고, 레버쿠젠의 후계자는 보이지 않는 거지?’
이번 전쟁의 주요 전력을 꼽으라면 홀란 레버쿠젠도 레버쿠젠이지만, 그 못지 않은 손녀 딸인 엘린 레버쿠젠도 중요했다.
헌데 그 중요한 전력인 엘린 레버쿠젠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다른 임무를 맡긴 건가? 하지만 총력전인 전쟁을 코앞에 두고 다른 임무를 맡길 이유가 있나?’
그 때 진군하던 군대가 돌연 멈추어섰다.
가장 선두에 서서 흑마를 몰던 홀란이 멈추어섰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떄, 홀란의 옆에 있던 부관이 질문했다.
“가주? 왜 갑자기 진군을 멈추….”
그 질문이 이어지기도 전, 홀란이 거칠게 소리쳤다.
“전군! 경계 태세 준비!!”
“……?”
“적이 몰려온다! 모두 창과 칼을 들어라!”
홀란의 명령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적이 몰려온다고? 대체 어디에?’
새하얀 설원 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굵직한 암벽과 눈송이에 뒤덮인 이름 모를 고목들 뿐.
그 어디에도 악마라 부를 만한 존재는 없었다.
그 때,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어? 저게 뭐지?”
“…?”
“하, 하늘이 갑자기 왜….”
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눈을 치켜떴다.
갈라진 하늘이 빙빙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이한 이변에 레버쿠젠 병사들의 입이 하나 둘 벌어진 때, 세상이 뒤흔들렸다.
“……!”
병사들이 날아가고, 기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타고 있던 말들은 졸도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그 광경에 지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 순간, 묵직한 소음이 세상에 내려앉았다.
[오래 기다렸다….]
그 소음과 함꼐 갈라진 하늘에서 무언가 천천히 내려왔다.
3개의 샛노란 눈동자와 3장의 날개를 가진 도마뱀이었다.
[천 년을 기다려, 마침내 내 심장을 찾으러왔다….]
귀를 광광 울려대는 그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강림한 도마뱀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죽고 싶지 않으면 내 심장을 내놓거라 소드마스터.]
라 하르칸.
드래곤을 잡아먹는 드래곤이 하늘을 가르며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