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99화 (199/265)

제199화

홀란의 말에 엘린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 하트를… 내게 보여주신다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최초의 드래곤 하트는 오로지 당대 레버쿠젠 가주만이 볼 수 있는 보물.

그 보물을 보여준다는 것은 다음 차기 가주 자리를 자신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는 가주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그 탓에 엘린이 당황했지만, 홀란은 이미 마음을 먹은 듯 했다.

그는 거침없는 걸음 걸이로 성내 어딘가로 향했다.

엘린은 망설이다 결국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10여분 정도 걸었을 때, 홀란이 한 방문 앞에 멈추어섰다.

이 성에서 거의 평생을 자란 엘린도 처음 보는 방문이었다.

그 탓에 고개가 갸웃거려진 그때, 홀란이 그 방문을 문을 열지도 않고 통과해버렸다.

“……!”

깜짝 놀란 엘린의 입이 벌어졌다.

뭐지? 지금 할아버지가 닫혀있는 방문 너머로 그냥 걸어가신 건가?

그때 방문을 통과한 홀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린 놀랄 거 없다. 그냥 간단한 마법이니깐.”

엘린이 놀란 정신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그,그 간단한 마법이 레버쿠젠 성에 있는 게 특이한 거 아닐까요?”

레버쿠젠은 마법을 극도로 꺼려했다.

충직한 기사다문답게, 그들은 아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마법에 의지하지 않았다.

허나 홀란은 아주 태연히 그 상식을 깨부셨다.

“애초에 이 성 자체가 마법으로 지어진 것이다. 이런 마법 한두 개쯤 걸려 있다 해도 이상할 거 없지.”

처음 안 사실에 엘린의 입이 벌어졌다.

그 사이 방문 너머로 사라진 홀란이 엘린을 재촉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넘어오너라. 이 방문이 나타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깐.”

정신을 차린 엘린이 다급히 방문을 넘었다.

그 순간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 마냥 온 몸에 압박이 가해졌다.

그 후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이게 대체 뭐야?”

방문 너머에 있는 것은 거대한 신전이었다.

그 크기만 따지고 놓고보면 레버쿠젠의 내성에도 뒤지지 않을 거대한 신전.

그 탓에 엘린이 놀람을 숨기지 못한 그 때, 먼저 방문 너머로 들어온 홀란이 손짓했다.

“이리 오너라 엘린.”

엘린이 고개를 돌렸다.

홀란이 신전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입을 열어 질문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이런 공간이 성에 있는 거에요? 진짜로 이곳에 드래곤 하트….”

엘린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동시에 홀란의 뒷편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처음보는 그 찬란한 빛에 엘린의 입이 달싹였다.

‘저런 빛… 처음 봐.’

저녁 노을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떠오르는 태양과 비슷하기도 했다.

허나 콕집어 정의 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눈앞의 빛은 생전 처음 보는 다채로움을 담고 있었다.

그 사이 홀란이 입을 열어 설명했다.

“최초의 드래곤이 남겼다는 하트. 그리고 북부에 있는 모든 악령과 망자. 그것들로부터 대륙을 보호하는 수호석이다.”

엘린의 눈이 커졌다.

저 빛을 담은 보석이 최초의 드래곤 하트?

그 순간 수호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화악-!

어찌나 눈부신 빛인지 눈이 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엘린이 중얼거렸다.

“이게… 우리 레버쿠젠 가문이 천 년을 지켜온 보물인가요?”

“정확히는 이 보물이 우리 가문을 천 년이나 지켜준 거지.”

“……?”

“드래곤 하트 안을 보거라 엘린.”

홀란의 권유에 엘린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건!”

“그래. 최초의 드래곤 하트는 단순한 드래곤의 심장이 아니다.”

이 말과 함꼐 홀란의 거대한 구슬 안에 갇힌 드래곤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심장은, 천 년 전 대륙을 구한 수호신들의 레어다. 우리는 그 수호신들을 지키는 기사이고.”

엘린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 * *

카셀과 아더는 검은 숲을 가로질렀다.

카셀의 손에 들린 [사 카투니아]가 횃불마냥 그 앞길을 밝혔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앞장서 걷던 카셀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전이랑 왔을 때랑 뭔가 다르다.’

부모와도 같던 존재를 죽인 원수.

[라 하르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숲을 처음 방문했을 때, 카셀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것도 그냥 악몽이 아니라 현실의 악몽이었다.

온갖 망자와 악령.

그것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불행과 저주를 쉴 틈 없이 쏟아내는 그것들은 강인한 칼잡이의 정신이라 할지라도 녹아내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지금은 그 악령과 망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난 3년이란 시간 동안 그 사악한 존재들이 사라진 것일까?

고민하던 카셀은 고개를 저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설령 그것들이 사라졌다 해도 이 숲으로 잠적한 악마들도 보이지 않다니?’

악령과 망자들은 사라졌어도, 레버쿠젠의 하트를 공격하던 그 악마들마저 보이지 않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 탓에 카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더에게로 향했다.

“어우. 사방이 어두우니깐 이건 뭐 밤낮 구별을 못 하겠네요.”

“…….”

“이러면 수면시간이 엉망이 되어버리는데… 곤란하네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 아더의 표정은 정말로 심각해 보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숲에서 잠을 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곰곰이 고민하던 카셀은 곧 탄성을 터트렸다.

‘아더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군?’

남들과 다른 저 사내라면, 이 숲에서 잠을 잘 생각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탓에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다시 아더를 바라봤다.

분명 악령과 망자.

그리고 악마들이 나타나지 않은 원인이 자신에게 없다면, 남은 건 아더 때문이다.

그런데 저 사내의 어디가 그 존재들을 쫓아낸 걸까?

‘하트에서의 그 전투를 보고 악마들이 겁을 먹었나?’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 가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정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로 습격을 멈출 거였으면, 악마라 불리지도 않았을 테니깐.

그때 앞장서 걷던 아더가 걸음을 멈추었다.

카셀이 눈을 끔뻑이며 질문했다.

“뭐가 있나? 왜 갑자기 멈추나 아더?”

“음… 카셀. 저희 똑바로 가고 있는 거 맞죠?”

“똑바로 가고 있냐고?”

“네. 벌써 꽤 걸은 것 같은데, 제자리를 빙빙 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그 드래곤을 닮은 괴물에게 정확히 가고 있는 거 맞아요?”

아더의 질문에 카셀이 곧바로 대답했다.

“정확히 가고 있을 걸세. [사 카투니아]는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는 검이니깐.”

이 말과 함께 카셀이 제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붉은 대검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

우웅-!

그 순간 붉은빛이 대검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 마냥 옅은 진동을 보냈다.

그 광경에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리는 사이, 카셀이 설명했다.

“단지, 이 숲에 정해진 길이 없어서 나아가고 있단 느낌이 안 드는 걸 거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해진 길이 없다니요?”

“이 숲에는 길은 없네.”

“…오호?”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길이 매 순간 바뀌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 마냥 모든 지형지물이 시시각각 변한단 말이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럼 영원히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닐 걸세. [사 카투니아]가 있으니 결국은 길을 찾을 거야. 단지 그 정확한 목적지를 언제 찾냐가 문제지만….”

말을 흐린 카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아더가 혀를 찼다.

‘흠… 이럼 곤란한데.’

지금의 이 싸움은 시간 싸움이다.

악마들이 먼저 레버쿠젠을 공략하느냐.

아니면 이쪽이 먼저 악마들의 수장인 [라 하르칸]을 잡아내느냐.

둘 중 어느 쪽이 목표를 달성하냐에 따라 이번 전쟁의 승패가 크게 갈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흘러가면 그 시간 싸움에서 밀릴 확률이 커.’

그 탓게 고민하던 아더는 눈빛을 반짝였다.

시간이 지체된다면 그 시간을 앞당기면 된다.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카셀을 향해 물었다.

“카셀. 이 숲에서 하늘을 날면 안 된다는 뭐, 그런 법칙이라도 있나요?”

카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하늘을 날지마라는 법칙? 흠… 글쎄. 없지 않을까? 나도 시도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래 보이는군.”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굳이 걸어갈 필요 없겠네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등 뒤에서 두 장의 날개가 돋아났다.

“……!”

깜짝 놀란 카셀이 뒷걸음질 치다 결국 엉덩방아를 바닥에 찍었다.

“자, 자네! 등 뒤에 뭔가 이상한 게!”

아더가 오랜만에 꺼내든 날개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뭘, 그렇게 놀라요. 이미 한 번 봐놓고서.”

“…? 내가 그 날개를 봤다고?”

“카셀도 참 어지간하네요. 설명하기 귀찮으니깐 일단 제 손을 잡으세요.”

카셀이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결국 아더의 말에 따라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아더의 두 날개가 움직였다.

휘익-!

순식간에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아더가 엄청난 속도로 하늘로 향해 비상했다.

그 속도에 짓눌린 카셀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아더의 등에서 왜 날개가…!’

그때 온몸을 압박하던 공기의 저항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덕에 다시 눈을 뜬 카셀이 탄성을 터트렸다.

북부로 와 처음보는 새파란 하늘이 코앞에 있었다.

그 사이 아더가 중얼거렸다.

“후우. 앞이 탁 트이니,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네요. 안 그래요 카셀?”

카셀이 고개를 돌렸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사내가 싱긋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지켜보던 카셀은 마침내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니라면, 왜 악령과 악마들이 등장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는 군.’

새하얀 두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지금 아더의 모습은 흡사 천사와 같았다.

그런 천사가 옆에 있는데 악마와 악령들이 등장하는 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탓에 카셀이 헛웃음을 터트린 그 때, 아더가 질문했다.

“카셀. 그 드래곤의 레어는 어디 쪽이에요?”

정신을 차린 카셀이 대답했다.

“북쪽. 북쪽을 가리켜는 군.”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신나게 날아볼까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으니, 금방 도착 할 것 같네요.”

* * *

지상이 아닌 하늘을 선택한 아더의 결정은 탁월했다.

앞을 가로막는 거목과 잡초가 없으니 그 속도가 전과 비교 할 수 없이 빨랐다.

그렇게 아더와 카셀이 [사 카투니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주파했다.

그 속에서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카셀의 말이 진짜였네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숲이 살아움직이다니… 저런 광경은 또 처음 보네요.”

허공에서 바라본 검은 숲은 카셀의 말대로 정말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고목들이 바다의 물결 마냥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것이 북부의 차가운 북풍 때문에 일어난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카셀이 질린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보니 더 기괴하군… 저러니 자격이 없으면 들어가지를 못하지.”

“흠… 하지만 저희는 하늘을 비상하니, 이제 상관없지 않아요?”

“그래 보이는군. 하지만 하늘을 비상해서 상관이 없는 건 아닐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카셀이 시선을 돌려 아더의 등 뒤에 돋아난 날개를 바라보았다.

“이 검은 숲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몇몇 모험가들이 하늘을 나는 방법도 궁리했다더군.”

“오. 그 사람들은 정답을 찾아낸 거네요?”

“아니. 그건 정답이 아니었어.”

“……?”

“하늘을 비행하려는 순간 저 고목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더군. 그러니깐 하늘을 날지 못하게 말이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거 이상하네요. 저희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잖아요?”

“자네 날개가 조금 특별한 것 같아.”

“제 날개가요?”

“그… 천사의 날개지 않은가?”

카셀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설명했다.

“이 숲 자체가 악마의 본거지니, 자네의 날개에 뭔가 영향이 있지 않을까… 라는 내 추론이네. 뭐, 확실치는 않지만.”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자신 없이 설명한 것치고, 꽤 그럴듯했다.

만약 이곳이 악마들의 영역이고, 그 악마들의 말에 따르는 거라면 제 날개에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날개는 내 피의 힘으로 탄생한 날개니깐.’

그리고 바이에른의 핏줄은 천사의 혈통과 관련이 있다.

흥미로운 가설에 아더가 잠시 고민하던 그 때, 카셀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아더. 다 왔네.”

카셀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라 하르칸]… 놈의 레어가 코앞이네!”

그 외침에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눈빛을 반짝였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그 속에서 주변의 풍경이 또 다시 뒤바뀐다.

아더가 날갯짓의 속도를 천천히 늦추고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고목들이 즐비하던 검은 숲이 끝나고, 거대한 신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이질적인 광경에 아더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카셀이 중얼거렸다.

“저곳이 맞네. [라 하르칸]… 그 괴물이 저곳에 있어.”

두려움이 묻어나온 그 목소리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보겠네요. 그 소문으로만 무성한 드래곤을 닮은 괴물이란 존재를.”

이 말과 함께 아더가 허공에서 내려와 지상으로 착지했다.

거대한 신전이 그런 아더를 집어삼키려는 것 마냥 제 웅장함을 드러냈다.

허나 아더는 그 기세에 짓눌리지 않고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끼익…

그 순간 신전의 정면에 위치해있던 대문이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도 저절로 열렸다.

그 이변에 카셀이 눈을 치켜뜨고,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기다리고 있었다… 뭐 그런 건가요?”

이 말과 함께 진실이와 비스트를 꺼내든 아더가 전방을 주시했다.

새까만 어둠에 가려진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이변을 확인한 아더가 비스트를 치켜들었다.

탕-!

울려 퍼진 총성이 침묵을 가로질렀다.

그와 동시에 아더가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단 한 방. 따끔하죠?”

이 말에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괴한 총이구나. 천사야. 내 비늘에 흠집을 내다니.]

드래곤을 닮은 괴물.

[라 하르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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