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98화 (198/265)

제198화

레버쿠젠 하트 성벽 위.

그곳에서 설원 너머로 향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홀란과 엘린이 중얼거렸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엘린이 울컥한 심정을 숨기지 않으며 항의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둘이서 그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걸 허락 할 수 있어요?”

홀란이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더가 둘이서 가겠다 결정한 거야. 나머지 인원은 필요 없다고.”

“…!”

엘린의 입이 벌어졌다.

“그, 그 말이 사실에요?”

“그럼 사실이지.”

“…아더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거 아니에요?”

홀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더구나.”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아더는 나보다 이 사태의 내막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었어. 악마들의 배후 세력까지 알고 있었으니깐.”

엘린의 눈이 치켜떠졌다.

“아더가… 배후 세력까지 알고 있었다고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아더는 분명 북부….”

말을 흐린 엘린이 고민에 잠겼고, 홀란도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은 설원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결국 검은 숲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홀란은 고개를 돌려 엘린을 바라보았다.

“아더가 걱정되느냐?”

엘린이 검은 숲에서 시선을 떄지 못하며 대답했다.

“…네. 걱정되요.”

“아더가 좋아서?”

“네. 아더가 좋아…!”

흠칫 놀란 엘린이 고개를 돌렸다.

능글 맞은 미소를 입가에 띄운 홀란이 보였다.

당황한 엘린이 황급히 소리쳤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할아버지?”

“무슨 소리긴, 우리 손녀가 드디어 시집을 가나… 라는 생각을 했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면 말고.”

“…그런 말투는 어디서 배웠어요?”

“날 너무 늙은이 취급하는 거 아니냐? 이래봬도 아직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

홀란의 농담에 엘린이 화를 내려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홀란도 웃음을 터트리며, 엘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말아. 예감이 좋아.”

엘린이 홀란의 품에 안겨들며 말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빈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 전쟁에서 우리 모두 살아남을지 몰라….”

말을 흐린 홀란이 아더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온 뒤로 하트의 분위기가 변했어. 그 증거로 너와 내가 이렇게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기지 않았느냐?”

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그걸로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고작 그게 중요한 거야. 아더의 등장만으로 패배 밖에 생각하지 않던 우리가 희망을 가지지 않았느냐?”

“…….”

“그리고 전쟁에서 희망이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거란다 엘린. 승리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승패가 갈리니깐.”

엘린의 눈이 커졌다.

진중한 홀란의 표정을 보니, 지금의 이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말은 즉, 홀란은 정말로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단 소리였다.

그 사이 홀란이 선선히 불어오는 북부의 바람을 맞으며 중얼거렸다.

“…아더 그 아이가 바람을 바꾸었어. 그렇다면 우리도 여기서 그치면 안 되겠지.”

고개를 돌린 홀란이 전쟁을 준비하는 레버쿠젠 병사들을 바라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그 바람이 폭풍이 될 수 있게, 우리도 지원한다. 준비를 해서 악마들을 끌어내야 해.”

* * *

카셀이 설원을 걸으며 설명했다.

“아더. 검은 숲에 들어가면 절대로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게.”

아더가 시선을 돌리며 질문했다.

“저 숲이 미로라 그런 건가요?”

“그런 셈이지. 자격이 없는 자들은, 저 숲에서 절대로 길을 못 찾아.”

“카셀은 그 붉은 색 대검이 있어서 길을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카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 카투니아]는 존재꼐서 내게 하사한 검. 이 검 앞에서는 그 어떤 마법이나 환청도 통하지 않아.”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호… 존재라면, 드래곤이 하사한 검이란 소리군요?”

“그런 셈이지.”

“신기하네요. 그럼 드래곤의 힘이 깃든건가요?”

“흠… 그거 하고는 미묘하게 달라. 이 검으로 마법을 쓸 수는 없거든.”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사이, 검은 숲에 도착했다.

고개를 든 아더는 을씨스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숲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장난아니네.’

거대한 고목들이 하늘을 가린 탓에 숲의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조만 보면 자격이 있어도 길을 해맬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그 사이 카셀이 거대한 대검을 횃불마냥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럼 진입하지.”

이 말과 함께 카셀이 검은 숲으로 들어갔고, 아더가 그 뒤를 따랐다.

무릎까지 자란 잡초가 앞길을 방해했지만, 아더와 카셀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속에서 10여분 정도를 걸었을 때, 주위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갑자기 곳곳에서 나타나고, 거대한 고목이 기괴한 형태로 변화했다.

그 이변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뭔가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요?”

긴장한 채, 앞장서 걸어가던 카셀이 움찔 놀라 질문했다.

“이 광경을 본 적이 있다고?”

“네. 그것도 꽤 많이 봤어요.”

“…대체 어디서 이런 광경을 봤단 말인가? 대륙 전역을 돌아다닌 나도 이런 구조는 검은 숲에서밖에 보지 못했는데?”

아더가 제 머리를 툭 두들겼다.

“여기서요.”

“…?”

“가끔 정신이 돌아버릴 때가 있거든요. 그럴 떄마다, 꽃밭이 나타나는데 지금의 광경이 딱 그때랑 닮았네요.”

카셀이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돌아버릴 떄, 이런 풍경을 본다고?”

“네.”

“…농담이지?”

“아뇨? 진담인데요.”

“…….”

아더의 말에 갑자기 오한이 든 카셀이 어깨를 떨었다.

“갑자기 자네가 검은 숲보다 더 무서워지는군….”

“그게 무슨 소리에요?”

“됐어… 그런데 아더.”

“네.”

카셀이 망설이며 질문했다.

“정말로 그 괴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질문을 한다고요?”

“…출발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오니 걱정이 되는 군.”

“흠… 갑자기 겁이라도 먹은 거에요?”

카셀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결코 아닐 세. 단지… 걱정이 되는 군.”

“걱정이요?”

“내가 [라 하르칸]을 잡기 위해 이 숲에 왔을 때는, 내 목숨만 걱정하면 됐네.”

카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허나 지금은 내 목숨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려있지. 그러니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되는 싸움인데… 잘 모르겠어.”

카셀이 말을 흐렸다.

“과연 우리 둘만으로 그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지. 자네가 소드마스터….”

카셀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동시에 뒤통수에서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눈을 끔뻑인 카셀이 고개를 돌리자, 손을 들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몇 대 맞을래요 카셀?”

카셀이 당황해 질문했다.

“몇 대… 맞을 거라니?”

“쓸데 없는 소리를 하니, 맞아야죠. 그래야 정신을 차리니깐.”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카셀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 그 말로 하게 말로! 왜 사람 뒤통수를 때려!”

“그럼 정신 차릴 거에요?”

“…정신 차릴게.”

“좋아요. 정신차렸으니 이제부터 그런 헛소리 하지 마세요.”

“…….”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아더가 앞을 가로막는 잡초를 베어넘기며 말했다.

“그 드래곤이 강하고 약하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카셀. 중요한 건 우리가 그 드래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거죠.”

그 순간 가로막혀있던 길이 훤하게 열렸다.

아더가 앞장서고, 카셀이 자신도 모르게 그 뒤를 따르며 질문했다.

“우리가 그 드래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네. 어차피 그 드래곤을 죽이지 못하면 모두가 죽어요. 그런 상황에서 죽일 수 있냐, 죽이지 못하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

“반드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잡념과 고민은 방해만 될 뿐이에요. 지금 중요한 건 자신감.”

아더가 몸을 돌려, 카셀의 가슴을 툭 두들겼다.

“그 드래곤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자신감이에요. 더군다나 카셀은 복수도 해야하잖아요? 복수의 대상 앞에서도 그런 약한 소리 할 거예요?”

카셀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다시 몸을 돌린 아더가 점점 더 진해지는 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눈빛을 빛낸 아더가 그 어둠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니 걱정 말고 절 따라와요. 어떻게든 해 보일 테니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셀이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 그래.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자신감이 전부겠군.”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셀이 중얼거렸다.

“역시 내 라이벌… 인가. 또 다시 내게 가르침을 주는군.”

그렇게 카셀마저 아더를 따라 어둠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차가운 북부의 바람이 검은 숲을 흔들었다.

솨악-!

두 사람을 집어삼킨 검은 숲은 한동안 계속해서 흔들렸다.

* * *

계획에 따라 하트는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아더 바이에른과 카셀 브리드.

두 사람이 [라 하르칸]의 토벌을 지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세에 나서기 위해.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몰라!”

“모든 걸 쏟아부어라!”

“갑옷 투구 창 칼! 있는 거 다 꺼내들어! 어차피 이번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게 끝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레버쿠젠 가문의 병사들의 사기는 더 없이 높았다.

여태 악마들의 공세에 수비만 하던 차, 처음으로 반격 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허나 그 사기의 원인이 단순히 공세를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주님께서 참전을 선언하셨다-!”

여태 성내에 은둔하며 자리를 지키던 레버쿠젠의 용.

홀란 레버쿠젠이 마침내 전쟁의 참전을 선언했다.

그 사실은 오랜 전쟁에 지쳐있던 레버쿠젠 가문의 분위기를 달라진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주님께서 나서시면 모든 게 끝이지!”

“제국 최고의 기사가 싸움에 임하신다!”

“이번 싸움은 절대로 질 수 없어! 반드시 승리한다!”

레버쿠젠 가문에게 있어, 홀란 레버쿠젠은 승리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그 존재의 전쟁 참여는 이미 승리가 확정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 탓에 모든 가문의 사람들이 힘을 내어, 전쟁의 준비를 치를 때였다.

홀란을 대신해 그간 전쟁을 지휘했던 엘린도 더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니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돼.’

아마 이번 공세가 실패하면 전쟁의 승패는 패배로 끝날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실수해도, 무언가를 빠트려서도 안 됐다.

엘린은 그가 성을 지휘해온 경험을 살려, 전쟁의 물자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했다.

그 속에서 정신없는 3일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출격의 시간이 찾아왔다.

“레버쿠젠의 용사들이여! 악마들을 토벌하자!”

선언과 함께 레버쿠젠 가문의 병사와 기사들이 거친 환호성을 질렀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엘린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이제 남은 건….’

저 하늘에 이번 전쟁의 승패의 명운을 맡기는 것.

엘린은 더없이 푸른 하늘을 지켜보며 그 명운이 제발 승리에 깃드기를 간절히 빌 때였다.

누군가 제 어깨를 툭 두들겼다.

깜짝 놀란 엘린이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까지 단상 위에 있던 홀란이 옆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엘린의 질문에 홀란이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엘린. 네게 보여줄 게 있다.”

“…보여줄 게 있다고요?”

“그래.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날 따라오너라.”

홀란의 경고에 엘린이 눈을 끔뻑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엘린이 다시 질문했다.

“대체 뭘 보여주시려고, 그런 말씀까지 하시는 거에요?”

홀란이 굳은 표정을 풀지 않으며 대답했다.

“대대로 모든 가주들은 하나의 사명을 부여받는다.”

“……?”

“그 사명이란, 레버쿠젠 가문의 존속보다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 가문을 버리더라도 이 사명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

홀란의 말에 엘린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드래곤 하트(Dragon heart).”

“……!”

엘린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그 사이 몸을 돌린 홀란이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너는 레버쿠젠 가문이 오랫동안 지켜온 비밀을 보는 것이다. 날 잇는 차기 가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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