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97화 (197/265)

제197화

며칠 뒤, 악마들의 침공이 다시 시작되었다.

수백에 달하는 악마들과 드래곤을 닮은 괴수, 드라칸.

그리고 인간의 외형을 닮은 악마 거신병이 하트의 성벽을 두들겼다.

허나 그 양상은 전과는 명백히 달랐다.

화악-!

가장 선봉에서 칼을 휘두르는 남자.

그 남자의 칼에 달빛이 물든 순간 악마들은 비명을 질렀다.

“가주님을 호위해라-!”

“가주님의 뒤를 우리 바이에른 기사단이 지원한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가주님의 뒤를 지켜라!”

그 뒤를 따르는 30명의 바이에른 기사.

그리고 회색 머리칼의 사내가 드라칸과 악마 거신병을 교란했다.

그 틈은 아더에게 있어 칼을 휘두르기에 충분했다.

달빛이 번쩍인 순간 검기조차 잘라내지 못했던 악마 거신병과 드라칸의 비늘이 처참히 부서졌다.

결국 참지 못한 악마들이 괴성을 질렀다.

[끼에에엑-!]

그 순간 악마 군단이 뒷걸음질 치며 퇴각했다.

전진만을 반복하던 그 악마 군단이 또 다시 물러난 것이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 병사들이 전율에 몸을 떨었다.

“세상에…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놀랍게도 지금의 저 광경을 만든 이는 단 한 사람이었다.

수천의 군대도 물러서지 못하게 했던 그 악마 군단을 단 한 명의 칼잡이가 물러서게 만든 것이다.

‘이게… 소드마스터의 힘인가.’

1인 군단.

흔히 소드마스터에 다다른 자를 칭하는 호칭이다.

그 개인이 능히 한 개의 군단에 필적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허나 그 전투를 실제로 본 레버쿠젠 병사들은 이 이야기가 과소평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1인 군단이라는 말로도 손색이 부족했다.

수 백 수천이 참여하는 전쟁을 단 개인의 힘으로 그 판도를 바꾸어 버렸으니.

그 장엄한 광경을 되새기던 병사들이 낮은 탄식을 토해낼 때, 레버쿠젠 기사들은 다른 의미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소드마스터의 힘이 맞다….’

‘홀란 레버쿠젠. 그 분과 동급의 실력이다.’

‘아니 어쩌면… 그 분 보다 더 한 실력일지도… 몰라.’

홀란 레버쿠젠은 검만을 다룬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검뿐만이 아니라 권총도 다룬다.

헌데 또 기괴한 마법적 능력도 다루었다.

한 가지만 다루어도 특이하다 할 판에 눈앞의 사내는 3가지의 능력을 다루는 것이다.

그것도 모두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로.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레버쿠젠 기사들이 깊이 고민하는 그 때 바이에른 기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승리했다-!”

“또 다시 괴물들을 격퇴했다!”

그 거친 함성에 레버쿠젠 병사와 기사들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잠시 눈치를 보다 뒤늦게 바이에른 기사들을 따라 소리쳤다.

“맞아-!! 승리했어!”

“과정이 뭐가 중요해! 일단 이겼다는 게 중요하지!”

“그 악마들을 무찔렀다! 우리가 또 해낸 거야!”

그 거친 함성에 하트가 들썩일 때였다.

악마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산 위에서 설원 너머를 바라보던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흠… 아니야. 이래서는 안 돼.”

어깨에 묻은 악마의 눈알을 손가락으로 툭 튕겨낸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런 소모전을 펼쳐서는 끝이 없어.’

이번 침공은 거의 완벽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부상자와 사상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악마들의 공격에 쓰러진 병사들의 숫자만 수십이오, 그 수치는 한계에 달한 레버쿠젠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결국 끝을 내야 해. 이 전쟁을 일으킨 시발점을 말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의 시선이 설원 너머, 검은 숲으로 향했다.

조금 전 싸움에서 살아남은 악마들이 도망친 곳이다.

그곳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정대로 해야겠네.”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드래곤을 닮은 괴물을 죽여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아더는 몸을 돌려 제 이름을 연호하는 하트로 향했다.

* * *

계획을 말하니 거친 반발이 있었다.

특히 레버쿠젠 가문의 중신들과 엘린은 거의 졸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그 결정을 만류했다.

“아더! 제정신이야? 할아버지도 못 죽인 괴물을 죽이러 간다는 게!?”

허나 홀란 레버쿠젠이 나서서 그 결정을 지지해주는 순간 분위기는 뒤바뀌었다.

“아더의 말이 맞다. 이번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수를 던져야 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할아버지?”

“레버쿠젠은 한계다 엘린.”

“…!”

홀란이 가문의 중역들과 엘린을 향해 질문했다.

“남은 식량은 얼마지?”

“…?”

“그렇다고 병기가 넉넉하나? 아니, 지금 병사들이 쓰는 창도 나뭇막대기에 쇠꼬챙이를 달아놓은 거 아닌가?”

레버쿠젠 가신들과 엘린이 입을 다물었다.

홀란의 지적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병사나 기사들의 숫자가 아니었다.

식량과 물자.

이 두 가지가 거의 한계에 달해 있었다.

특히 악마들과의 연전에서 군 물자는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다면, 병사나 기사들이 있어봐야 무의미했다.

그 탓에 엘린과 레버쿠젠 가신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그 때, 홀란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말라 죽는다.”

“…….”

“그럴 바에는 승부수를 던져야지. 하트를 버리고 달아날 게 아니라면.”

눈치를 보던 엘린이 소리쳤다.

“그렇다고 해도 검은 숲에 아더 혼자 어떻게…!”

그 외침을 아더가 끊었다.

“혼자가 아니에요, 엘린.”

“뭐?”

“여러분들도 같이 싸우실 거예요.”

“…?”

끼고 있던 팔짱을 푼 아더가 방긋 웃었다.

“제가 그 드래곤을 죽이러 가면 여러분들도 나와서 합공을 해주세요.”

“…!”

“양쪽에서 찔러 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그 드래곤을 닮은 괴물을, 여러분들은 하트를 괴롭히던 악마를 노리고서.”

엘린이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그 말은 지금… 우리보고 성 밖을 나와 싸우란 소리야?”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갇혀 죽는 것보단 낫지 않나요?”

“…….”

“엘린,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모두 죽어요. 그럴 바에는 뭐라도 해보고 죽어야죠. 다행히….”

말을 흐린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확률은 나쁘지 않아요. 제 동료 중에 그 드래곤을 닮은 괴물의 레어 근처까지 간 사람이 있거든요.”

엘린의 눈이 커졌다.

“그 드래곤의 레어에… 가서 살아남아 돌아왔다고?”

“네. 그러니 해볼 만한 싸움이에요. 제가 그 드래곤 레어에 도달해 그 괴물의 목을 치느냐… 아니면.”

고개를 돌린 아더가 레버쿠젠 가문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전에 여러분들이 버티지 못하고, 악마들에게 잡아먹혀 저도 실패하거나.”

“…….”

“물론 선택은 여러분 몫이에요. 저는 그 선택에 따를게요.”

말을 끝마친 아더가 한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무거운 침묵이 회의장에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악마들을 상대로 과연 성문 밖으로 나가 승리 할 수 있을까?

성을 끼고 싸워도 이기리란 보장이 없는 판국에 과연 그 수가 통할까?

여태 쌓아온 패배와 두려움이 레버쿠젠 가문 사람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탓에 침묵이 길어지려는 그때, 홀란이 입을 열었다.

“나 또한 함께 하겠다.”

“…!”

“더 이상 성안에 틀어박혀 드래곤 하트를 지키고 있어 봐야 의미가 없겠지. 그러니 나 또한 이번 싸움에 함께 하겠다.”

홀란의 눈길이 레버쿠젠 사람들을 훑었다.

그 시선을 받은 레버쿠젠 가문의 사람들이 움찔 몸을 떠는 그때, 홀란이 웃었다.

“혼자 싸우게 해서 미안하구나.”

“……”

“지금부터는 같이 싸우겠다. 살아남건 죽음을 맞이하건 그 어떠한 경우에도.”

홀란의 선언에 레버쿠젠 가문 사람들의 입술이 달싹였다.

“…가주님.”

레버쿠젠 가문의 사람들이 울컥한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소리쳤다.

“가주님이 나서신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이 싸움을 가주님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가주님의 옆을 지키겠습니다!"

홀란의 출전 선언과 함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두려움은 흥분으로 공포는 기대로 바뀌었다.

그 달라진 분위기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인 악마들의 토벌이 결정났을 때였다.

아더는 간단히 짐을 꾸린 뒤 제 뒤편을 돌아보았다.

“다들 왜 그런 자세로 서 계세요?”

이 말에 바이에른 기사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가주님… 저희는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레버쿠젠 성의 상황이 좋지 않다 해도….”

“어떻게 가주님을 적진에 혼자 보낸다 말입니까?”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며 지적했다.

“제가 왜 혼자예요? 옆에 카셀이 있는데.”

기사들이 흥분해 소리쳤다.

“카셀 경의 실력이 뛰어난 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주님은 바이에른의 주인이십니다!”

“그런 주인이 가는 길에 기사들을 대동하지 않는다니요! 저희 충심을 헤아려주십시오!”

기사들의 하소연에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이분들은 다 좋은데, 어딜 가나 따라가려 하는 게 문제라 말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사정을 설명하려 할 때였다.

여태 침묵하던 카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같이 갈 수 없네.”

“……?”

“그 괴물의 레어가 있는 [검은 숲]은 미로야. 자격이 없는 자들이 발을 들이밀면 길을 잃어버리지. 그리고 현재 자격이 있는 자는….”

말을 흐린 카셀이 아더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나와 아더뿐이네.”

“…….”

“그 자격이라는 건 내가 가진 검. [사 카투니아]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사람을 뜻하네.”

이 말과 함께 카셀이 거대한 대검을 뽑아들었다.

붉은빛의 칼날이 번뜩이는 그 대검은 보는 것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검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 속에서 카셀이 설명을 이었다.

“사 카투니아의 영향력 아래에 놓일 수 있는 건 최대 두 명. 그러니 자네들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그 숲이야.”

설명을 끝낸 카셀이 팔짱을 끼며 다시 침묵했다.

그런 카셀을 기사들이 약간은 놀란 눈치로 바라보았다.

그건 아더도 다르지 않았다.

‘뭐지? 이 미묘한 흐름은?’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지만, 아더도 알고 있었다.

바이에른 기사들과 카셀의 사이가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그런데 카셀은 조금 전 기사들을 위해 검은 숲에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의 진전이 있었나?’

생각과 함께 아더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지금은 자신이 끼어들기 보다는 저들끼리 해결하는 게 나아보였다.

그 사이 바이에른 기사들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질문했다.

“진짜로 우리는 갈 수가 없나?”

팔짱을 끼고 있던 카셀이 대답했다.

“갈 수는 있지만, 다 같이 미아가 될 확률이 높네.”

“…그 말은 따라오지 말란 소리군.”

카셀이 당황해 황급히 설명했다.

“그런 소리는 아니네. 단지 따라 올 수 없는 이유에 관해 아는 게 편하….”

“됐네. 우리가 아무리 무식해도 그 정도 뜻이 숨겨져 있다는 건 알고 있어.”

“….”

“대신 부탁 하나 하지 카셀 경.”

기사들의 말에 카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탁? 무슨 부탁?”

“가주님을 반드시 지켜주게.”

“…내가 아더를?”

“그래. 자네의 명예, 그리고 이름에 대고 맹세하게.”

바이에른 기사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카셀을 추궁했다.

“목숨을 받쳐서 라도 반드시 가주님을 지키겠다고. 그러면 이 동행을 허락하지.”

카셀이 목소리 끝을 살짝 떨며 대답했다.

“…내 이름을 걸고 반드시 맹세하지.”

대답을 들은 기사들은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한 명씩 다가와 카셀의 어깨에 제 주먹을 살며시 가져가 됐다.

카셀은 그 주먹을 말없이 받아내며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저게 대체 뭐 하는 쇼일까요?”

이 말에 어느 사이엔가 등장한 지니가 대답했다.

“바보들의 의식이죠. 도대체 누가 가주님을 지킨다는 건지 원….”

“그래도 귀엽지 않아요?”

“저 다 큰 사내놈들이 말이에요?”

“저 덩치 큰 분들이 저런 식으로 구니깐 귀여운데요?”

지니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아더를 바라봤다.

“제 실수네요. 생각해보니 가주님도 이상한 분이셨어요.”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지니를 향해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사자 문양이 걸린 패였는데,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이게 뭐예요 가주님?”

“바이에른 가주를 뜻하는 상징 패에요.”

“……!”

지니가 경악해 입을 벌렸다.

“이, 이런 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아더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왜긴요. 제가 자리를 비우니 그 공백을 지니가 메꿔야죠.”

지니의 눈이 커졌다.

“기, 기사들도 있는데 제가 가주님의 자리를 대신하라고요?”

“저 바보들에게 어떻게 맡겨요? 똑똑한 지니가 절 대신해야죠.”

“….”

지니가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지니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부담되겠지만 믿고 있어요 지니. 다른 사람은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에요.”

지니가 머뭇거리며 중얼거렸다.

“…제가 출세를 위해 이 가문에 온 건 아니지만, 진짜 너무 막 굴리시네요.”

“대신 봉급은 두둑이 줄게요. 지니가 좋아하는 돈 말이에요.”

“…됐어요. 제가 돈 받자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투덜거린 지니가 아더가 건네준 패를 소중히 품에 넣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시선을 돌려 설원 너머.

끝없이 펼쳐진 검은 숲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준비는 끝났고….’

말을 흐린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사악한 드래곤. 그 놈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되겠네.”

마침내 드래곤을 사냥할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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