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94화 (194/265)

제194화

라 하르칸으로부터 최초의 하트를 지키고 있던 홀란은 눈을 치켜떴다.

‘달빛이 느껴져?’

절정의 경지에 오른 칼잡이들만이 발현할 수 있는 절기.

그 기운이 놀랍게도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터 너머에서 느껴졌다.

그 탓에 홀란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달빛을 뿜어낸다 말인가?’

레버쿠젠에 충성을 맹세한 수많은 기사들 중 재능있는 몇몇 이들이 달빛을 바라보긴 했어도, 그 달빛을 손에 쥔 자들은 아직 없었다.

설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전쟁 중에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고민하던 홀란은 고개를 저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전투를 겪었을지라도, 달빛을 쥐는 깨달음을 얻는 건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그래서 홀란은 오랜 칩거를 깨고 방 밖으로 나왔다.

드래곤 하트를 생각하면 쉬이 자리를 떠서는 안 되지만 또 다른 소드마스터의 등장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소드마스터뿐이다. 만약 하트에 등장한 소드마스터가 우리의 적이라면….’

굳이 결과를 보지 않아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을 것이다.

표정을 굳힌 홀란이 달빛의 주인공을 수소문했다.

범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칠흑같은 밤하늘을 닮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

아직 서른도 채 넘어보이지 않은 저 사내가 달빛의 주인공이었다.

그 순간 홀란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더… 바이에른?’

달빛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7년 전 사라진 친우의 아들이었다.

‘정말로 아더가 소드마스터라고?’

사라진 아더 바이에른이 하트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가 소드마스터란 사실에 홀란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아더의 나이는 고작 24살.

여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달빛이란 하늘이 내려준 기회와 선택받은 재능을 가진 자들.’

그 천재들이 피를 깎는 노력과 수많은 시간을 녹여야만 얻을 수 있는 절기였다.

즉 아더 바이에른이 이 나이에 달빛을 쥐는 건 말이 안된다 소리였다.

그래서 홀란은 아더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때로는 그 어떤 설명과 말보다 행동이 나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적기라 판단한 그였다.

그렇게 기습적으로 아더를 향해 검을 찔러넣은 홀란은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짧게 나눈 몇 합 속에서 엿보인 절정의 경지.

아더 바이에른은 놀랍게도 소드마스터가 맞았다.

그 순간 홀란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기적, 이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는 한 편 의문을 가졌다.

하늘은 왜 이런 시기에 아더 바이에른을 하트에 보내온 것일까?

그것도 소드마스터가 된 아더 바이에른을 말이다.

‘설마 하트를 포기하지 말라는 계시인가?’

악마들의 침공이 거세진 이후, 홀란은 모든 걸 내려놓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사악한 드래곤 때문에 직접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레버쿠젠의 기사와 병사들은 점차 지쳐갔고 수 백년간 북부를 지켜온 성도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그건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싸움에 임하지 못하고 멀리서 죽어가는 레버쿠젠 가문의 병사와 기사들을 지켜보는 건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었다.

그 탓에 성을 버리고 탈출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더가 찾아온 것이다.

단 한명이지만, 소드마스터가 가세한 상황.

그 탓에 계획을 변경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소드마스터가 한 명 더 늘었다 해서 바뀔 상황이 아니다.’

이미 전세가 기울어진 상태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칼잡이 한 명이 더 늘어났다 해서, 바뀔 흐름이 아니었다.

허나 선택지가 늘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아이에게 레버쿠젠 가문의 식솔과 영지민들을 맡기고 나는 레버쿠젠의 이름과 최후를 맞이하면 되겠구나.’

만약 아더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성을 탈출하는 영지민과 레버쿠젠 가문을 자신이 이끌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더의 등장으로 자신은 레버쿠젠의 이름과 최후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선조들의 이름에 적어도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는 이 사실에 홀란은 깊이 감사했다.

‘그 친구… 레오가 죽어서도 부족한 나를 도와주는구나.’

그래서 아더에게 레버쿠젠 가문의 영지민들을 이끌어 달라 부탁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왜 벌써 포기하세요, 대부님?”

생기가 넘쳐흐르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눈빛.

“상황이 아주 간단해졌잖아요? 제가 그 괴물을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이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그 흘러넘치는 생기로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당황한 홀란이 만류했지만 아더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 탓에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쳤다.

“나조차 죽이지 못한 괴물을 네가 어찌 죽인단 말이냐!”

젊은이의 패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이토록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됐다.

허나 아더의 의지는 여전했다.

“이미 결정을 한 상황이에요. 제 앞길을 막으시면 대부님이라도 쓰러트리고 가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칼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아더가 기세를 뿜어냈다.

자신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은 그 강렬한 기세에 홀란은 놀람과 경악.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소드마스터가 된 뒤로 누군가 내 앞에 칼을 들이밀었던 적이 있던가?’

고민하던 홀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도 자신 앞에서 칼을 들이밀었던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홀란의 전신이 가벼워졌다.

‘…….’

복잡하던 머릿속이 가벼워지고, 낮게 가라앉았던 육신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 속에서 단 한 가지 생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저 오만방자한 젊은이에게 가르침을 내려줘야겠구나.

패기와 젊음만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는 것을.

생각과 함께 홀란이 검을 잡으며 말했다.

“건방지구나. 아직 네 시대가 오려면 멀었거늘.”

칼잡이들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오로지 칼 뿐이었으니.

* * *

두 소드마스터의 대치가 시작됐다.

“….”

달밤 아래 형형히 빛나는 두 사내의 눈빛 속에서 두 개의 검이 반짝였다.

한쪽은 타오르는 듯한 불꽃과도 같은 검.

다른 한쪽은 밤하늘을 닮은 검이었다.

그 상반된 검이 서로를 견제하며 끝없는 수싸움을 하는 그 때, 홀란이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다, 아더.”

홀란이 붉은빛 검을 사선으로 내리깔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네가 포기만 하면 우리는 굳이 검을 나눌 필요가 없어.”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칼을 뽑아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죠? 대부님.”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움직였다.

눈을 치켜뜬 홀란이 황급히 제 뒤를 가로막았다.

쾅-!

검과 검이 격돌하는 거친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그 속에서 홀란이 한쪽 뿐인 손을 타고 느껴지는 엄청난 힘에 시선을 좁혔다.

‘말도 안 되는 힘이군. 저 얇은 육체에서 어찌 이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설마 저 아이도 레오 그 친구처럼 그 특별한 ‘혈통’을 각성한 것일까?

고민하던 홀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이 싸움에 이런 잡념은 불필요하다.

홀란은 침착히 아더의 검을 쳐낸 뒤, 곧바로 응수해 들어갔다.

아더는 그 일격을 가볍게 허리를 트는 것으로 피해냈다.

하지만 홀란의 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정직하면서도 일직선인 검이 무겁고 빠르게 내려찍어졌다.

그 일격에 흠칫 놀란 아더가 재빨리 검을 들어올려 방어했다.

그 순간 허공에 교차한 두 검이 다시 한번 광음을 내뱉었다.

쾅-!

그걸 시작으로 홀란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검술은 정직하면서도 정교했다.

기교라고는 한 점 없는 베고 찌르기의 연속.

하지만 여태 마주한 그 어떤 칼잡이들의 검보다 위협적이었다.

‘기본에 기본… 하지만 그 기본에 극에 달해있어.’

단순한 베기가 수백 가지의 기교보다 위협적이었다

단순한 찌르기가 그 어떤 마법보다 재빨랐다.

그 사실에 아더는 큰 충격을 받아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런 검을 얻으려면 몇 번의 검을 휘둘러야 하는 걸까?’

수백 번? 수천 번?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런 검이 아니었다.

이건 홀란 레버쿠젠이란 칼잡이의 인생이 녹아든 검.

그리고 홀란 레버쿠젠이란 칼잡이의 이름은 무겁고 거대했다.

‘제국이 자랑하는 소드마스터. 괜히 그런 칭호를 얻은 분이 아니니깐.’

그 탓에 아더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중얼거렸다.

‘괜히 대부님을 도발했나?’

지금 홀란의 일격을 보니 이러다 사지 하나가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허나 곧 고개를 저으며 그 잡념을 버렸다.

이미 저지른 행동에 후회하는 것은 제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래 계획대로 홀란 레버쿠젠이란 산을 넘으면 그만일 뿐.

그 생각과 함께 아더의 검도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쉬익-!

홀란의 검이 정직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했다면, 아더의 검은 기교 그 자체였다.

쉬쉬쉭-!

비정상적인 몸놀림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변화무쌍한 일격들.

그 눈으로 쫓아갈 수 없는 연격들에 홀란의 눈이 커졌다.

‘현란하다. 하지만 무겁다.’

보통 이런 화려한 검술을 구사하는 자들의 검이 가볍다는 걸 고려하면, 아더가 보여주는 연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찌 이런 변화무쌍한 검술을 구사하는데, 깊이가 있단 말인가?

그 사실에 홀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 이런 걸로도 말이 되지 않는군.’

그 속에서 홀란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심하면 이 대련에서 패배한다.

그 위기감은 홀란이 잠시동안 잊고 있었던 열정이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쾅-!

그 열정과 함께 그는 모든 것을 내던진채 검에 집중했다.

찌르고 막고 베어내고, 또 다시 치고 들어가 상대의 목을 노렸다.

그건 아더도 마찬가지였다.

홀란의 검을 막고 베어내고 또 다시 치고 들어가며 그의 목을 노렸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 수십번의 공방을 주고 받던 두 칼잡이가 돌연 한 걸음 물러섰다.

밤하늘의 달을 밝히는 그 달빛과 함꼐 두 칼잡이가 잠시 숨을 골랐다.

“후우….”

낮게 가라앉은 숨결이 공간을 지배했다.

이미 이 대련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 어떤 목적이 깔려있는지, 그런 복잡한 사정들은 모두 잊은 두 칼잡이였다.

그 무아지경의 경지 속에서 홀란이 중얼거렸다.

“오너라.”

아더가 거친 숨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대답했다.

“네.”

이 말과 함께 진실이를 치켜든 아더가 뛰쳐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홀란이 눈빛을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도 움직였다.

타오르는 붉은 검신이 허공을 가르며 아더의 허리를 노렸다.

그 일격을 지켜보던 아더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홀란의 검 끝에 잠시 멈추어섰다.

“……!”

눈을 치켜뜬 홀란이 황급히 검을 위로 쳐올렸다.

허나 이미 허공으로 다시 뛰쳐오른 아더였다.

그 상태에서 아더가 검을 내질렀고, 홀란은 그 일격을 지켜보다 황급히 수습한 검을 사선으로 올려 쳤다.

그 순간 두 칼잡이의 검에서 달빛이 폭발했다.

쾅-!

그 찬란한 빛과 함께 아더의 검.

진실이가 위로 솟구쳤다.

“…아으.”

앓는 소리를 낸 아더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홀란의 눈이 커진 그 때, 아더가 투덜거렸다.

“검강을 꺼내드는 건 반칙 아니에요, 대부님?”

황급히 정신을 차린 홀란이 중얼거렸다.

“그러는 너도 달빛을 꺼내들지 않았느냐?”

“대부님꼐서 먼저 꺼내드셨으니, 꺼내들었죠.”

“…….”

홀란이 입을 다물었다.

그 상태로 잠시 넋을 놓던 그가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

오랜만의 대련일 탓일까.

아니면 상대가 소드마스터라 그런 것일까.

둘 중 어떤 것인지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그리고 번뇌도 사라졌어.’

더불어 잊고 있던 자신감도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드래곤에게 한쪽 팔이 뜯긴 이후, 무기력하던 정신이 다시 날이 세워졌다.

이 늙은 몸으로 저 떠오르는 샛별과도 같은 칼잡이를 이겼다.

아직 내 검은 죽지 않았다.

그 사실이 홀란의 어지럽던 마음을 다시 바로 세워주었다.

‘그렇군… 아더가 내게 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였던 건가.’

생각과 함께 홀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건방진 놈.”

“……?”

“검으로 나를 가르치려 들다니. 네 놈이 한 짓이 무엇인지 아느냐?”

홀란의 말에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어라? 못 깨달으실 줄 알았는데, 잘 전해진 모양이네요?”

이 말과 함께 홀란이 손에 들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주한 두 칼잡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쪽은 황혼을 바라보는 칼잡이.

한쪽은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칼잡이.

새 시대와 허물어져 가는 시대가 서로의 생각을 말없이 읽어내려갔다.

그 상태에서 홀란이 중얼거렸다.

“할 수 있겠느냐?”

홀란의 질문에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정말 그 드래곤을 네가 죽일 수 있단 말이냐?”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죽일 수 있어요 대부님.”

“나조차도 이기지 못한 괴물을?”

“네. 대부님조차 이기지 못한 괴물이요.”

홀란이 아더를 잠시 바라보았다.

대련에서 패배했어도, 아더의 두 눈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달아올라 생생히 불타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본 순가 홀란은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새 시대가 왔구나.’

홀란 레버쿠젠이란 하나의 시대가 저물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그 시대의 이름은 아무래도 '아더 바이에른'인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홀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레오에게 보여주고 싶구나. 네가 이렇게 훌쩍 커버린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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