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92화 (192/265)

제192화

7년.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엘린에게 있어 아더 바이에른이란 사람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의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캄캄해진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껴본 그녀였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약이었다.

첫사랑이라 부를 수 있던 남자는 점점 잊혀지고, 소녀는 어느 사이엔가 어른이 되었다.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하게 되고,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엘린은 자연스레 레버쿠젠 가문의 후게자로 지목 되었다.

한 명뿐인 레버쿠젠 가문의 핏줄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후계자가 된 그녀는 정신없이 살아갔다.

레버쿠젠 가문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가문이었고, 미래에 그 가문을 이끌어가 후계자인 그녀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더욱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어린아이처럼 떼쓰던 아이가 집단을 이끄는 어른으로.

사랑을 꿈꾸던 소녀에서 전장을 누비는 장군이 되었다.

그렇게 엘린 레버쿠젠이 점차 어른이 되어갈 때였다.

돌연 사건이 터졌다.

[끼에에엑-!]

악마를 닮은 괴수들이 레버쿠젠 가문의 영지를 침공해왔다.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등장하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완전히 달랐다.

인간의 외형을 한 괴물들은 평소에 등장하던 괴물들과 달리 집단적이고 지능적이었다.

그들은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레버쿠젠의 영지인 하트를 공격했다.

그뿐만이 아닌 후퇴와 진군이라는 개념을 알았고, 전술도 조잡하지만 병행하곤 했다.

‘물론 그 정도로 레버쿠젠 가문이 흔들릴 이유는 없어.’

생각을 하는 괴물이라 해봐야 결국 괴물.

북부를 지키며 수많은 전투를 거친 레버쿠젠 가문의 병사들을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허나 그 악마들과 함께 등장한 드라칸과 악마 거신병이 문제였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놈들한테 검기가 안 통했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5서클 이상의 칼잡이들만이 발현 할 수 있는 절기인 검기.

그 무엇도 잘라낼 수 있다 알려진 그 기술이 한낱 괴물의 비늘을 베어내지 못한 것이었으니.

물론 놈들을 죽일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검기를 막는 비늘을 제외하면 여전히 드라칸이건 악마 거신병이건 그 목줄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단지 그 약점을 발견하기까지 너무 많은 기사가 죽었다는 것이오, 드라칸과 악마 거신병 또 한 점점 제 약점을 보호하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놈들은… 학습을 하고 있어.’

레버쿠젠 가문과의 전쟁에서 놈들은 점점 성장해나갔다.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하고 레버쿠젠 가문의 전술을 습득했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도통 의문이었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레버쿠젠 영지의 하트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군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어.’

북부 전체에 결계라도 깔렸는지, 외부와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마력 통신구도, 말을 탄 전령도.

그 누구도 북부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 사실에 엘린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누가 계획한 거야. 하트를 고립시키기 위해.’

허나 길게 고민을 할 틈이 없었다.

괴물들은 밤낮이 멀다하고 하트를 습격했고 강인하던 레버쿠젠 병사와 기사들도 그 무차별적인 습격에 점차 지쳐갔다.

하나둘 쓰러지는 전우들.

끝이 안 보이는 괴물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트가 점점 무너져 갈 때, 또 다시 위기가 터졌다.

[끼에에엑-!]

북부의 겨울이 시작된 날.

평소보다 훨씬 거칠게 악마들이 습격해 왔다.

거기다 최근 등장하지 않았던 악마 거신병과 드라칸까지 이번 공세에 합류한 상태였다.

지칠대로 지친 하트가 과연 이번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까?

엘린은 부정적인 견해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이성적인 지휘관이라면 여기서 하트를 버리고 달아나야 해.’

하지만 선조가 대대로 지켜온 이 성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수 천을 넘어 수 만에 달하는 영지민들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그녀는 그 선택을 도저히 하지 못했다.

그렇게 희망 없는 전투를 억지로 이어갔지만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쾅-!

성벽이 점령당하고 악마들이 포효했다.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고, 기사들의 마나는 동난 지 오래였다.

그 최악의 상황 속에서 악마 거신병이 성문을 부수려던 순간이었다.

한 남자가 등장했다.

쾅-!

총성과 함께 등장한 그 남자가 악마 거신병을 쓰러트렸다.

수백이 넘는 악마들을 살해했다.

그뿐만이 아닌 제 할아버지.

그리고 현 레버쿠젠 가주인 홀란과 마찬가지로 찬란한 달빛을 뿜어냈다.

화악-!

그 장엄한 빛이 북부를 점령한 순간, 엘린은 놀란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아.’

7년 전 잊어버린 첫사랑.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던 남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하러 왔다.

운명적인 만남보다 더한 이 기적적인 상황에서 전쟁은 승리로 끝마쳤다.

허나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이건 동화가 아니야. 운명적인 만남, 감동적인 재회 따윈 있을 수 없어.’

그녀는 현재 레버쿠젠 가문을 이끄는 수장의 대리인으로서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더의 등장은 말이 되지 않았다.

7년 전 사라진 남자가 무슨 이유로 지금 등장한단 말인가?

어쩌면 눈앞의 남자는 레버쿠젠 가문을 무너트리기 위해 등장한 또 다른 악마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엘린은 아더에게 거리를 두며 냉철하게 굴었다.

그를 심문하고 정보를 캐려했다.

허나 아더가 건넨 질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제 편지 잘 받았어요 엘린?’

가슴이 뛰었다.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더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서 좋아하는 자신.

밤낮을 이루지 못하며 읽고 또 읽은 편지.

가장 좋아하는 보석함에 고이 숨겨두며 답장을 써내려가는 자신.

이제는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 되어버린 그 일들을 떠올린 순간,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빨개진 귓볼이 얼굴마저 점령하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아더가 보내온 편지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엘린 레버쿠젠에게.]

그 순간 어른이었던 엘린 레버쿠젠은 소녀가 되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가 방긋 웃었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엘린.”

엘린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열기가 차오른 눈으로 아더의 미소를 멍하니 훔쳐볼 뿐이었다.

* * *

엘린과의 면담이 갑자기 중단됐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자리를 떠버렸고, 결국 아더는 방안에서 내쫓겨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쩝… 대답도 못 듣고 와버렸네.”

그때 보냈던 편지가 잘 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입맛을 다신 아더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당분간 하트에서 머물러야 하니, 사실을 확인할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돌리니 심각한 표정이 된 바이에른 기사들이 보였다.

“어라? 여러분, 왜 그런 표정이세요?”

아더의 질문에 바이에른 기사들이 좁혀진 미간을 풀지 않으며 대답했다.

“…가주님.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상황이요?”

“레버쿠젠 가문… 정확히는 이곳 하트의 상황 말입니다.”

바이에른 기사들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몇 달째 저 괴물들에게 습격을 받고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외부와의 소통이 전부 단절된 상태라 하더군요.”

“아무래도 찾아온 시기를 잘 못 고른 것 같습니다.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면 저희도 이곳에 갇혀….”

그 설명을 아더가 도중에 끊었다.

“그게 왜 상황이 나쁜 거예요? 오히려 좋은 거 아니에요”

“…네?”

“아니 그렇잖아요? 동맹을 제안하러 왔는데, 동맹군의 상황이 나쁘면 저희에게 이득이죠.”

기사들의 눈이 커졌다.

그사이 아더가 설명했다.

“이 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동맹을 제안하면 되는 거잖아요.”

기사들이 커진 눈을 끔뻑였다.

“어…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런 거죠. 솔직히 레버쿠젠 가문이 무슨 이득을 위해 바이에른 가문과 동맹을 맺고 도르문트와 싸우겠어요?”

“…….”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레버쿠젠 가문에게 손을 먼저 내민다? 동맹을 맺을 구실로 아주 좋다는 생각 안 들어요?”

기사들이 잠시 고민하다 감탄을 터트렸다.

“허허…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역시 가주님! 남들과는 다른 시야를 자랑하시는군요!”

기사들의 반응에 아더가 우쭐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재치가 좀 넘치긴 하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가 혀를 차며 카셀에게 물었다.

“…바보도 저런 바보들이 없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 안 그래요 카셀?”

“…어? 저게 왜 바보 같은 건가?”

“….”

“나도 좀 감탄했는데? 위기를 기회로! 역시 아더다운 발상이야.”

입을 다문 지니가 약간의 경멸을 담아 카셀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셀이 깜짝 놀라 질문했다.

“어디가는 건가 지니 양?”

“바보들 사이에 있으니 저도 바보 될 것 같아서 말이죠. 자체적으로 상황을 좀 더 알아봐야겠어요. 가주님에게는 그렇게 전해주세요.”

이 말과 함께 지니가 홀연히 사라졌다.

머리를 긁적인 카셀이 지니가 했던 말을 그대로 아더에게 전했다.

“내버려두세요. 지니니깐 알아서 잘하겠죠.”

그 후 시간이 흘러 밤이 찾아왔다.

많이 바쁜 모양인지, 엘린을 포함한 레버쿠젠 가문의 가시들은 첫 만남 이후 찾아오지 않았다.

그 탓에 아더와 바이에른 기사들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성안의 상황이 어수선하니 굳이 움직여 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하트에서의 첫날밤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아더는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른 의문에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흠? 그러고 보니 홀란 레버쿠젠 대부님은 왜 안 보이시지?”

제국이 자랑하는 소드마스터.

북부를 지키는 노기사.

수많은 기사들의 귀감이 되는 남자이자 제게는 대부가 되는 홀란을 어째서인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대부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나?’

평소 같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조금 전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데 대부님께서 모습을 안 드러낼 이유가 있나?’

레버쿠젠 가문은 대단한 저력을 자랑하지만 가장 큰 전력은 역시나 소드마스터인 홀란 레버쿠젠이다.

그런 그가 레버쿠젠 영지인 하트가 위기에 빠졌는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흠. 내일 일어나면 이것부터 물어봐야겠네. 대부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다시 눈을 감으려는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목덜미를 노리고 쇄도했다.

두 눈을 번쩍 뜬 아더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비튼 뒤 진실이를 꺼내들었다.

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둠이 내려앉은 방안이 일렁거렸다.

눈 사이를 좁힌 아더가 질문했다.

“야밤중에 찾아온 손님은 아닌 것 같고 누구세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대신 또다시 어둠을 가르고 무언가 쇄도했다.

아더는 그것을 쳐낸 뒤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다.

허나 생각보다 그 일격이 쉽게 가로막혔다.

챙-!

마치 반격을 할 것이라는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준비된 방어였다.

그 탓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내 수가 읽혔어?’

소드마스터가 된 뒤로 이런 적이 몇 번 없던 터라 상당히 놀라운 상황이었다.

허나 길게 고민할 수 없었다.

채채채챙-!

날카롭게 찔러들어오는 무언가가 상당히 매서웠다.

아더는 그 일격들을 방어하며 몰래 비스트를 꺼내들었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인영이 꿈틀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더가 진실이를 길게 찔러넣었다.

그 일격에 어둠이 반으로 갈라진 순간, 낮은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재밌군. 상당히 일격이 날카로워졌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어? 대부님?”

이 말에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입을 벌렸다.

“대부님… 팔이.”

홀란 레버쿠젠이 어깨를 으쓱였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 겨우 팔 한 짝 가지고.”

7년 만에 만난 대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외팔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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