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90화 (190/265)

제190화

새하얀 눈밭 위에 펼쳐진 전장.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처음 레버쿠젠 영지인 [하트]를 찾아온 날.

그 때가 하필 영지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라니.

그런데 하트를 습격하는 이들의 외형이 심상치 않았다.

[끼에에엑-!]

새까만 피부에 등 뒤에 달린 작은 날개.

그것을 제외하면 놀랍게도 인간과 비슷한 괴물 수백 마리가 성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만 놓고 보면 지금 성벽을 향해 달라가는 저것들은 [악마]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 탓에 아더가 옆에 있는 지니를 향해 물었다.

“지니. 설마 지니가 말한 제국의 북쪽에 산다는 악령과 귀신이 저것들이에요?”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대답했다.

“그, 글쎄요?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설마 진짜로 저런 것들이 있을 줄은….”

“흠… 그럼 지니도 저것들의 정체를 모른다 이 말이죠?”

지니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속에서 아더가 다시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끼에에엑-!]

놈들은 제 피부가 찢어지건 사지가 절단되건 상관하지 않으며 하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광기 어린 전투는 생물이라면 가지고 있는 생존본능을 어기는 것이었다.

‘그럼 진짜로 악마인가?’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존재를 처음 봤으면 악마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 비슷한 것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드래곤을 닮은 괴수… 그 놈과 비슷한 냄새가 저 악마들에게서 나고 있어.’

그 탓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인간을 닮은 악마.

그리고 도르문트.

연결고리라고는 없는 이 세 존재가 묘하게 얽히고 얽혀 북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흥미를 느끼며 아더가 중얼거렸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아니면 저런 것들과 엮여 있어 운이 없다 해야 하나….’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상념을 정리한 아더가 제2의 운철검을 뽑아들었다.

챙-!

새하얀 설원 위에 뽑혀 나온 검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렸다.

그 속에서 검면에 새겨진 글귀가 빛이 났다.

[진실을 목도한 순간 흔들리지 마라.]

그 글귀를 바라보며 아더는 생각했다.

‘진실을 목도한 순간 흔들리지 마라… 아버지는 이 광경을 염두에 두고 이 검을 제게 넘겨주신 건가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너를 계속 제2의 운철검이라 부를 수도 없고…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은데.”

고민하던 아더는 곧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제2의 운철검이 아니라 진실이야. 아버지가 새겨준 글귀에 따라 진실이.”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진실이를 하늘 높이 쳐올린 아더가 선언했다.

“전원 준비.”

바이에른 기사들이 각자의 칼을 뽑아 들었다.

“지금부터 저희는 전장을 돌파하고 하트로 갑니다. 모두들 준비하세요.”

* * *

엘린 레버쿠젠의 이성은 거의 반쯤 날아가 있었다.

“제너럴-! 북쪽 문의 수비대가 거의 궤멸 직전입니다!”

“남쪽 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벽 위를 거의 점령당했습니다!”

“동쪽 문이 부서지기 일보직전입니다! 기사들을 파견해주십시오-!”

곳곳에서 들려오는 패전보.

귓가를 울려대는 비명소리.

사방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간신히 버텨오던 성은 이제 함락 직전이다.

그 탓에 이성적인 지휘관이라면 성을 버리고 탈출해야 했지만 그녀는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하트는 레버쿠젠의 심장.

이곳을 버린다는 건 레버쿠젠 가문의 멸문을 의미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엘린은 포기하지 않고서 소리쳤다.

“레버쿠젠 기사단은 즉시 동쪽 문으로 가라-! 제 1보병대는 남쪽을 지원하고, 나머지 자원들은 북쪽으로 향해라!”

그 명령과 함꼐 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엘린이 다시 전황을 살피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거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끼에에에엑-!]

깜짝 놀란 엘린이 고개를 들었다.

드래곤을 닮은 괴수 10마리가 허공을 비상하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다르칸-! 저 놈들까지 왔다고?’

먼 옛날 드래곤이 되지 못한 구렁이들을 뜻하는 잊혀진 언어인 다르칸.

북쪽의 영지에서는 저 드래곤을 닮은 괴물을 그리 불렀다.

그리고 지금, 그 다르칸이 성벽 위를 마구잡이로 헤집고 있었다.

“으아아악-!”

“사,살려줘!”

“다르칸이다! 다르칸!! 죽은 드래곤이 환생한 괴물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성벽 위가 초토화되며 비명이 터져나왔다.

수성을 하는 입장에서 성벽 위가 점령당하는 것은 곧 함락을 의미.

엘린이 검을 뽑아들며 황급히 소리쳤다.

“자리에 남아있는 부관들은 모두 날 따라라-! 일단 저 괴물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 외침과 함께 엘린의 검에서 붉은 빛 검기가 치솟아올랐다.

부관들도 검기를 두른 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11명의 칼잡이와 10명의 다르칸이 성벽 위에서 맞붙었다.

쾅-!

그 무엇도 잘라낼 수 있다 알려진 검기와 다르칸의 비늘이 충돌했다.

허나 결과는 놀랍게도 다르칸의 비늘에 작은 흠집이 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칼잡이들의 절기인 검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레버쿠젠 가문의 기사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몇 달간 치른 놈들과의 전쟁 속에서 이런 경험을 너무나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주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재빨리 명령했다.

“올가미와 쇠창살로 놈들의 시선을 끌어라-! 움직임을 봉쇄하고 난 뒤, 단번에 목을 베어야 한다!”

이 말에 병사들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올가미와 쇠창살을 꺼내들었다.

기사들과 격돌하던 다르칸들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날아오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끼에에에엑-!]

올가미가 다르칸들의 발목을 묶고, 쇠창살이 비늘로 뒤덮이지 않은 놈들의 날개를 찢어놨다.

그 틈을 이용해 레버쿠젠 기사들이 검기가 두른 검으로 비늘로 뒤덮이지 않은 놈들의 복부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콰직-!

무언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다르칸들의 배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엘린은 그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다시 소리쳤다.

“다르칸들을 잡았다-! 부관들은 다시 자리를…!”

허나 그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뇌를 두들기는 강한 충격과 함께 몸이 벽면으로 쏠렸다.

쾅-!

엘린이 흔들리는 시야를 억지로 다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다리의 뼈가 부서졌는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검을 지침대 삼아 자리에 일어난 엘린의 눈이 커졌다.

“저건… 악마 거신병?”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동시에 검은 털로 이루어진 거대한 무언가가 울부짖었다.

[우워워워워-!]

그 크기가 거의 성벽에 맞먹는 거대한 괴물.

수많은 침공 속에서도 몇 번 등장하지 않은 악마 거신병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드라칸에 악마 거신병에… 오늘 따라 왜 저놈들이 이렇게 갑자기….’

생각과 함꼐 엘린이 움직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서진 다리에서는 통증만 보내올 뿐,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 사이 갑작스레 나타난 악마 거신병이 성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사,살려줘!”

“떨어진다! 떨어진다고!”

레버쿠젠 가문의 문양을 단 병사들이 그 거신병의 주먹질에 비명을 질렀다.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뒤늦게 거신병을 제압하려 했지만 아직 살아남은 드라칸들이 끈질기게 그 움직임을 방해했다.

결국 하트의 성벽에 금이가고,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안 돼… 끝이야.”

“성벽이 무너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여기가… 여기가 끝인 거야.”

레버쿠젠 병사들이 절망해 쓰러지고, 기사들의 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엘린이 입술을 꺠물며 소리쳤다.

“희망을 놓지마라-! 아직… 아직… 우리는 할 수 있다!”

이 말과 함께 엘린이 홀란 레버쿠젠의 조언을 떠올렸다.

‘엘린.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눈빛을 빛낸 엘린이 중얼거렸다.

‘생명을 태워서라도… 저 놈을 막는다!”

그 각오와 함께 엘린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거친 총성이 울려퍼졌다.

쾅…

“…?”

쾅-!

“…….”

쾅쾅쾅-!

“……!”

콰아아아앙-!!!

수십발의 총성이 전장의 소음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그 이변에 깜짝 놀란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하트의 성벽을 부수던 거신병이 돌연 무너져내렸다.

[꾸에에에엑-!]

괴상한 비명과 함께 쓰러진 거신병이 주위에 있던 악마들을 깔아뭉갠 채 그대로 절명했다.

그 광경에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무,뭐야? 저 놈이 왜 갑자기 쓰러져?”

설마 조금 전 에 울린 총성 때문에 저 거신병이 쓰러진건가?

그런데 기사들의 검기에도 끄덕도 없던 괴물이 총에 맞았다고 쓰러졌다고?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모두가 당황을 금치 못할 때였다.

전장을 주시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저게 뭐야?”

“누,누군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

“뭐지? 지원군이 올리가 없는데… 저 자들은 대체 누구야?”

동시에 비명이 아닌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인간의 비명이 아닌 악마들의 울음소리였다.

그 이변에 엘린의 눈이 커졌을 때, 거친 외침이 전장을 뒤엎었다.

“와아아아-! 바이에른이 나가신다!”

절대로 들려서는 안 되는 이름을 담은 외침이었다.

* * *

성벽을 두들기던 웬 거인을 비스트로 요격한 아더가 중얼거렸다.

“흰수염 씨 저놈 정체가 뭐에요?”

[글쎄. 나도 처음 보는 군. 오우거는 아닌 것 같고 골렘도 아닌 것이… 인위적으로 만든 키메라 같은데?]

“키메라요? 오호… 그거 신기하네요.”

[신기할 일이 아니야. 저정도의 키메라는 나조차도 만들 수 없어.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저건 생물 하나를 '창조'한 셈이야.]

아더의 눈이 커졌다.

“생물을 창조했다고요? 그런 일이 가능해요?”

[가능이야 하겠지. 자네만 하더라도 신이 창조했기에 여기에 있지 않나?]

“전 어머니 아버지가 낳아주셨는데요?”

[그런 말이 아니라, 자네라는 종 자체를 신이 창조했단 뜻이야.]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그말은 신이 이번 일에 개입했단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지. 어찌되었건, 방심하지 말게. 내가 보기엔 지금 저 악마를 닮은 것들도 비슷한 종류니깐.]

흰수염의 충고에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가주님의 뒤를 지켜라-!”

“한 걸음도 물러서지마라!”

“절대로 가주님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됐다!”

뒤따라오는 바이에른 기사들이 거칠게 소리치며 악마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위험한 순간들을 지니와 카셀이 보완하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린 아더가 지금 선 자리와 하트의 거리를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흠… 도약하는 거면 몰라도 일일히 칼질하며 뛰어가기에는 거리가 제법 먼데?”

그러니 그 시간을 단축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눈빛을 빛낸 아더가 뱀파이어 로드 혈통을 일으켰다.

화륵-!

피로 뒤덮인 전장이었기에, 평소보다 더욱 긴밀하게 반응해온 뱀파이어 로드의 혈통이었다.

그 힘을 이용해 아더가 머릿속으로 수 십필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이 힘으로 여러가지를 만들었었어. 그러니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전장을 뒤덮인 피들이 한데 뭉쳐 아더의 생각대로 수십 마리의 말들로 바뀌었다.

“…!”

그 이변에 놀란 바이에른 기사들의 칼질이 순간적으로 멈추었을 떄, 아더가 명령했다.

“모두 이 말에 타요!”

“…네?”

“이 말을 타고 전장을 돌파할 거에요! 기사분들이 말도 없이 싸울 수는 없잖아요?”

기사들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아더의 말대로 기사가 말없이 싸우는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금 눈앞의 말들을 그 '말'로 볼 수 있을까?

‘피,피로 만들어진 놈들인데?’

그 때 피의 말들이 다가와 예고없이 날름거리며 혀로 기사들의 얼굴을 쓸었다.

움찔 놀란 기사들이 중얼거렸다.

“이,이런 걸 보면 말 같기도 하고…….”

고민하던 바이에른 기사들이 결국 피의 말에 탑승했다.

그 사이 맨 앞에 선 말에 탑승한 아더가 소리쳤다.

“지금부터 달립니다 여러분-!”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선봉에 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이에른 기사들이 소리쳤다.

“…우와와와왁-!”

“뭔지 모르지만, 가주님을 따라라!”

“바이에른이 나가신다!”

달려나가기 시작한 바이에른 기사와 아더가 한 점이 되어 전장을 돌파했다!

[끼엑?]

하트의 성벽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악마들이 뒤늦게 이변을 알아차리고 그 앞을 가로막았다.

허나 아더를 필두로 한 바이에른 기사들의 돌진을 막을 수가 없었다.

타타타탕-!

왼손에는 비스트를 오른 손에는 진실이를 든 아더가 거침없이 앞을 뚫었다.

그리고 그 빈틈을 바이에른 기사와 지니와 카셀이 각기 보조했다.

그 폭주하는 열차와도 같은 돌격에 악마들이 짜증을 담은 비명을 내질렀다.

[끼에에엑-!]

동시에 수 백마리의 악마들이 몸을 돌려 아더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아더는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화아악-!

가슴 팍의 고리를 일으켜 검기를 진실이에게 둘렀다.

그 순간 앞을 가로막는 악마들의 머리 수십개가 허공을 날랐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바이에른 기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가주님이야-!”

“바이에른이 여기에 등장했다!”

“가주님을 보좌해라!”

이 말과 함께 바이에른 기사들도 검기를 내뿜었다.

그 광경에 카셀도 잠시 망설이다 제 검기를 뽑아들었다.

채채채챙-!

검기까지 두른 바이에른 기사와 아더가 돌진에 속도를 더했다.

그리고 그 이변은 조금 전까지 치르던 전쟁의 양상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끼에에엑-!]

거세게 몰아붙이기만 하던 악마들의 군세가 처음으로 주춤거린 것이다.

그 놀라운 변화 속에서 한 여자가 다급히 성벽 위에 올라왔다.

“…아더?”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떨림을 숨기지 않으며 소리쳤다.

“아더 바이에른!?”

그 외침에 악마를 베어넘기며 하트를 향해 달려나가던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엘린!”

7년만에 재회한 남녀가 서로를 확인하고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이 악마들이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끼에에에엑!]

싸움을 방해받은 악마들이 화를 내며 아더의 일행을 사방에서 덮쳐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린이 경악해 소리쳤다.

“안 돼!! 지금 내가 가야…!”

허나 그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터져나오는 달빛.

그 찬란한 빛이 악마들은 물론이고 전장을 뒤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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