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89화 (189/265)

제189화

아더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저게 뭐지?’

어둠이 내려앉은 설원.

그 너머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크르르…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뱉는 그것에는 두 날개와 꼬리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뿔도 하나 있었다.

그 모습은 놓고 보면 놀랍게도 전설 속의 드래곤과 비슷했다.

그 탓에 아더는 의아해졌다.

‘저런 게 설마 드래곤이라고?’

외형은 비슷했지만, 드래곤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검은색 비늘은 왠지 모르게 흉측했고, 긴 주둥이에서 솟은 어금니는 불쾌했다.

그래서 아더가 다시 한번 드래곤을 닮은 괴물을 관찰하던 그 때, 놈이 뛰어올랐다.

“…!”

눈을 치켜뜬 아더가 검을 휘둘렀다.

허나 괴물은 그 일격을 놀랍게도 피해냈다.

놈의 덩치를 생각하면 상식에 벗어난 움직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아더가 당황한 건 아니었다.

놈의 발톱을 고개를 트는 것만으로 피해낸 뒤, 그대로 제2의 운철검을 놈의 어깨에 찔러넣었다.

-끼에에엑!

소음에 가까운 비명과 함께 놈이 꼬리를 휘둘렀다.

비스트를 꺼내든 아더가 그 일격에 반격하려는 순간, 누군가 끼어들었다.

챙-!

카셀 브리드.

이제는 제 기사가 된 칼잡이였다.

그가 괴물의 꼬리를 쳐내며 소리쳤다.

“조심해야 한다 아더! 놈을 따르는 도마뱀이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놈을 따르는 도마뱀이라니요?”

“드래곤을 닮은 괴물! 이 놈들은 그 괴물을 따르는 수하들이다!”

카셀의 설명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이 아니라, 드래곤을 닮은 괴수의 부하라고?’

꽤나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곤을 닮은 괴수의 부하가 왜 이곳에 있을까?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재밌네, 이거. 북부에 오자마자 이런 사건이 터지다니.”

이 말과 함께 비스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괴물의 두 날개가 찢겨나갔다.

괴물의 노란색 눈동자가 그 순간 크게 치켜떠지며 조금 전 보다 훨씬 큰 비명을 질렀다.

허나 아더와 카셀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자의 검을 휘둘렀다.

서걱-!

무언가 베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피분수가 솟구쳤다.

아더는 괴물의 머리를, 카셀은 괴물의 두 다리를 검을 휘둘러 잘라낸 것이다.

그 광경을 뒤늦게 토굴에서 빠져나와 지켜보던 기사들이 놀라 소리쳤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그들의 외침에 아더가 괴물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손을 흔들었다.

“네 괜찮아요. 다들 추운데 들어가 계세요.”

아더의 말에 기사들이 경악해 입을 벌렸다.

저런 꼴을 하고 괜찮다는 말을 하다니!

생각과 함께 바이에른 기사들이 뒤늦게 아더를 향해 다가오려 할 때였다.

잘린 괴물의 시체 사이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

그 순간 아더와 카셀이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그 속에서 묘한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재밌구나. 드래곤 슬레이어를 꿈꾸는 인간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함께 하다니.]

아더가 눈을 치켜뜬 채 중얼거렸다.

“어라? 연기가 말을 하네요?”

[연기가 아니라 내 사념이니라 천사야.]

“오호… 마법인가요?”

[그렇지. 정확히는 기적이라 말하는 게 옳겠지만….]

말을 흐린 검은 연기가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이번에는 카셀의 눈이 커졌다.

“설마 네 놈은….”

검은 연기가 카셀의 이름을 불렀다.

[카셀 브리드… 그런 꼴이 되고도 이곳에 다시 오다니. 네 놈은 다른 의미에서 참으로 특별하구나.]

카셀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라(RA) 하르칸!! 네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

하지만 그 외침은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

검은 연기에서 뿜어져 나온 묘한 기세가 카셀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닌 바이에른 기사 그리고 지니.

현장에 있는 모두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그 속에서 라 하르칸이라 불린 존재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감히 필멸자 따위가 내 이름을 부르다니… 다시 한번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맛보고 싶은 게냐 카셀?]

이 말에 카셀은 대답하지 못했다.

‘놈의 기세가… 더 강해졌어?’

라 하르칸.

드래곤을 닮은 괴물.

이치에 어긋난 그 생물은 드래곤을 잡아먹고 드래곤에 맞먹는 힘과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존재가 자체가 이치에 어긋난 괴물인데, 놀랍게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강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설마… 또 다른 드래곤을 그 사이에 잡아먹은 것인가?’

생각과 함께 카셀이 입술을 깨물 때였다.

바이에른 기사들이 검은 연기의 기세에 못이겨, 하나 둘 무릎을 꿇었다.

“커, 커헉-!”

“저, 저게 대체 뭐야…!”

“왜 몸이 저절로…!”

5서클에 이른 기사들이 고작 기세에 짓눌러 무릎을 꿇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허나 바이에른 기사들은 도저히 저 연기의 기세에 반항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고막이 울려대고 역함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 공황 속에서 바이에른 기사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 때였다.

어둠을 몰아내는 환한 달빛이 갑자기 터져나오며 그런 기사들을 감쌌다.

“……!”

현장에 있던 모두가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달빛을 두른 검을 치켜 세운 아더가 보였다.

그 광경에 기사들이 두려움을 잊고 탄성을 터트리는 사이, 아더가 볼을 긁적였다.

“흠… 곤란하네요. 갑자기 들이닥쳐서 왜 제 일행들을 겁주시는 거예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달빛을 두른 검으로 검은 연기를 베어버렸다.

[……!]

괴물의 시체에서 다시 한번 피가 터져나오며 연기가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해졌다.

그 속에서 라 하르칸이 놀람을 감추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검강… 아직 불안정하지만, 그 힘을 깨우친 자였다니.]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 드래곤인데 검강에 대해 알아요?”

[…알 수밖에. 그것은 인간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천상의 무기.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힘이다.]

“오호? 원래 검강이 천상의 것이었어요?’

[그래. 하지만 너는… 이야기가 다르겠군.]

라 하르칸이 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태생부터가 천상의 존재가 검강을 두른 것이니 오히려 이치에 맞는 것이겠지.]

이 말에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어찌 되었건 당신을 죽일 수 있다 이 말이죠?”

[그래. 내게 닿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뭐….]

말을 흐린 라 하르칸이 또 다시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천사야. 널 위한 존재는 따로 준비되어 있어.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거라.]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을 해주시려고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오랜만에 보는 천사를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 그러니 만남은 여기까지.]

검은 안개가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물들던 어둠도 천천히 가시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라 하르칸이 저주를 퍼부었다.

[세상의 끝에 온 것을 축하한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 것이다.]

* * *

한바탕의 소란이 끝난 후, 침묵이 내려앉았다.

“…….”

모두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 채, 조금 전 저주를 되뇌였다.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이곳에서 잠드리라.

한낱 마법사가 그러한 저주를 남겼더라면, 코웃음을 쳤을 테지만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조금 전 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법사가 아니다.

그보다 조금 더 위험한 그리도 고귀한.

그러면서도 사악한 존재였다.

그 탓에 모두가 입술만 달싹이며, 조금 전 느낀 공포를 곱씹을 때였다.

아더가 침묵을 깨며 탄성을 터트렸다.

“오… 신기하네요. 괴물의 시체가 사라졌어요.”

이 말에 모두가 깜짝 놀라 괴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괴물의 시체가 놓여 있어야 할 곳에 검은색 액체가 흩뿌려져 있는 게 보였다.

눈길을 좁힌 카셀이 중얼거렸다.

“놈이 가져간 모양이군… 시체라도 빼앗기기 싫다 이건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시체도 빼앗기기 싫으면, 왜 여기로 왔대요. 그것 참 희한하신 분이네.”

이 말과 함께 기지개를 켠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 얼어붙어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잠시 고민한 아더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자 여러분. 소란은 다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들어가서 잠이나 자죠.

“…?”

“뭔가 쓸데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내일 또 열심히 걸어야 하니 이제 어서들 주무세요.”

아더의 말에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당황해 질문했다.

“저… 가주님? 그래도 조금 전 일에 대해 대책 정도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대책을 세워요?”

“…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대책을 세우냐고요.”

“…….”

질문했던 기사가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 사이 아더가 얼이 빠진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어차피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뚜렷한 방법이 나올 것 같지 않은데요. 적은 저희를 알고 있지만, 저희는 적을 모르니깐.”

“…….”

“그러니 일단 일찍 잠에 들고 내일 고민하시죠. 일단 오늘은 더 습격해오지 않을 테니깐.”

이 말에 기사들의 눈이 커졌다.

“…….”

놀랍게도 아더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대책을 논의해봐야 뚜렷한 방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더의 말대로 오늘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내일 고민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기사들을 옥죄던 공포와 두려움이 놀랍게도 씻겨 내려갔다.

그 묘한 감각 속에서 아더가 다시 재촉했다.

“자자. 결정됐으니 막사로 들어가서 자세요. 이건 아더 바이에른이 아니라 가주로서의 명령입니다.”

가주의 권위까지 내세우자, 기사들이 결국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휴… 든든해도 너무 든든해.”

그렇게 일행이 모두 천막으로 들어간 순간, 아더는 잠시 고민하다 비스트를 꺼내들었다.

“흰 수염 씨?”

아더의 부름에 비스트가 옅게 진동했다.

[왜? 또 무슨 일이라도 났어?]

“네. 그래서 뭐 좀 물어보려고요.”

흰 수염의 목소리에 흥미가 깃들었다.

[자네는 항상 사건을 달고 다니는군. 참 흥미로운 운명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드래곤을 닮은 괴수라는 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어요?”

[드래곤을 닮은 괴수?]

“네. 드래곤을 닮은 괴수의 부하가 갑자기 쳐들어왔거든요.”

아더의 말에 흰 수염이 잠시 침묵했다, 대답했다.

[저 하늘을 지키는 것이 천상의 신들이라면, 이 지상을 지키는 존재들은 드래곤이야.]

흰 수염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그런 드래곤을 닮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어. 자네가 잘못 본 거 아닌가?]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확실히 드래곤을 닮기는 했거든요. 그럴 만한 존재가 짐작 안 가세요?”

[…글쎄. 천 년을 살아온 나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흰수염의 말에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박학다식한 흰수염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또한 드래곤을 닮은 괴수를 본 적은 없는 듯했다.

‘흠… 이러면 레버쿠젠 영지에 도착해서 물어봐야 하나?’

제국의 북쪽 지역을 지배하는 군주인 그들이라면, 뭔가 단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흥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드래곤을 닮은 괴물.

그 괴물과 연관이 있는 도르문트 가문.

전에는 알지 못했던 비밀들이 한데 모여 거대한 물결이 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물결에 휩쓸리기 전에 내가 먼저 목을 쳐야 하는 데 말이지.’

물론 아직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그 현장에 직접 와있기까지 했으니.

눈빛을 빛낸 아더가 비스트를 휘리릭 돌려잡으며 말했다.

“일단 알겠어요. 나중에 그 드래곤을 닮은 괴물을 마주치면 부를 테니깐, 괜찮으시다면 한 번 봐주세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나도 흥미가 생겼거든. 세상의 지배자라 불리는 드래곤을 닮은 존재가 있다니.]

그렇게 흰 수염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아더가 토굴로 들어갔다.

그 후 다음날이 되고 일행은 또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전날처럼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닌 일정한 간격을 두고 휴식을 취했다.

덕분에 바이에른 기사들이 한결 수월하게 아더의 뒤를 따랐고 행군의 속도 또 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걷기를 이틀.

아더는 마침내 레버쿠젠 가문 영지의 [하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치켜뜬 채 중얼거렸다.

“어라 저게 뭐죠?”

이 말과 함께 레버쿠젠 가문의 영지, 하트에서 거친 고함과 비명이 오갔다.

“죽더라도 하트를 사수해라-!”

“악마들로부터 이 성을 구원해야 한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레버쿠젠의 드래곤들이여-!”

처음으로 도착한 레버쿠젠 영지에서는 놀랍게도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습격하는 이들의 정체가 심상치 않았다.

[…끼에에엑-!]

괴상한 비명을 내뿜는 존재들.

그들의 외형은 흡사 [악마]를 떠올리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