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회색 머리칼의 암살자를 죽이고, 요넬과 아이린.
그리고 바이에른 가신들을 다시 찾아 나선 아더는 곰곰히 고민했다.
‘드래곤을 죽인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드래곤이 사라진 시대.
드래곤을 죽인다는 말은 농담으로도 듣기가 힘들었다.
그 탓에 기억을 되짚던 아더는 곧 어렵지 않게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카셀 브리드.’
우쳔이 않게 칠황의 바란스에 맞서 함께 싸운 업계 동료.
거기다 그와는 레온을 같이 추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회색 머리칼의 암살자와 카셀 브리드의 외모는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오… 그럼 고성을 침입한 암살자가 카셀. 그 사람이라고?’
상당히 의아한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카셀과 자신의 사이는 썩 나쁘지 않았기 떄문이다.
그런 그가 왜 바이에른 고성에 침입한 걸까?
‘그것도 영혼까지 쪼개면서.’
고민하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은 카셀이 왜 그렇게 변했는 지 보다 바이에른 가신과 가족들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상념을 접은 아더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쾅-!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고성의 정원.
눈빛을 빛낸 아더가 정원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 안 있어 정원 한 가운데 옹기종기 모인 바이에른 가신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곳을 검으로 내려치고 있는 다섯명의 카셀 브리드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 광경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 그 때, 흰수염이 중얼거렸다.
[흠… 역시 예상대로 영혼이 분열되어있군.]
아더가 비스트를 치켜들며 물었다.
“사람의 영혼이라는 게 분열도 될 수 있어요 흰수염 씨?”
[왜 못하겠나? 마법에 제한은 없어. 단지 리스크가 커서 아무도 사용 안 할 뿐이지.]
“오호? 무슨 리스크가 있는데요?”
[사람의 영혼은 하나의 그릇이야. 그 그릇이 꺠지면 그 안에 담긴 것이 어떻게 되겠나?]
흰수염이 혀를 찼다.
[그릇 안에 담긴 내용물들이 여러저리 흩어지겠지. 영혼도 마찬가지야. 지금 저 자는 더 이상 '자신'이란 본질이 없어. 그저 각인된 명령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일뿐.]
흰수염의 긴 설명에 아더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왜 카셀 씨가 저렇게 변해버린 거지?’
그 내막이 궁금해졌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지금은 카셀 브리드에게 습격 받고 있는 바이에른 가신들이 먼저였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폴짝 뛰어올라 비스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다섯명의 카셀 브리드 중 한명의 미간에 피분수가 솟아올랐다.
허나 아더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제2의 운철검을 휘둘러 그 목을 베어냈다.
서걱.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베인 카셀 브리드가 스르륵 쓰러졌다.
그 광경에 옆에 있던 지니가 소리쳤다.
“가주님! 저 자는….”
“네 알고 있어요 지니.”
고개를 돌린 아더가 인사했다.
“오랜마이네요 카셀 브리드 씨.”
“드래곤을… 죽인다.”
“이상한 분이었는 데, 지금은 더 이상해졌네요.”
“드래곤을 죽인다!”
“드래곤은 여기 없는 데요?”
“드래곤을… 죽인다!”
“드래곤을 죽이려면 드래곤 레어로 가셔야죠. 왜 남의 집에 와서 깽판을 부리세요.”
“드래곤을 죽인다!”
한결 같은 카셀의 대답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끄응… 이래서야 대화가 안 통하네. 흰 수염 씨, 뭐 방법 없어요?”
[왜 대화를 하려 하나? 평소 같이 목을 안 자르고?]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지를 것 같지 않다 말이죠.”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야. 그냥 평소처럼 목을 자르게.]
“…제가 무슨 미치광이 살인마도 아니고 어떻게 지인의 목을 함부로 베요?”
[미치광이 살인마 아니었나?]
“…….”
[아, 실수했군. 정정하겠네. 그냥 미친놈이었지?]
아더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계속 놀리시면 비스트 부셔버립니다?”
[놀리는 게 아니라 진담인데… 흠. 그래서 대화를 원한다고?]
“네. 죽일 떄 죽이더라도 아는 사람이니깐 사정 정도는 들어줘야죠.”
흰수염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일단 한 명 생포해보게. 그동안 방법을 생각해보지.]
흰수염의 말에 아더가 씩 미소지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네요. 네 명중에 누굴 생포해야 하나….”
고민하던 아더는 곧 어꺠를 으쓱였다.
“뭐, 끝까지 살아남는 분으로 하면 되겠죠?”
이 말과 함께 자신을 견제 중인 카셀 브리드 중 한명에게 비스트를 갈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네 명 중 한명의 다리에 총탄이 박혔다.
허나 그 예의 회복력으로 곧바로 상처를 회복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에 아더는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흩트러진 전열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
지켜보던 지니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아니,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그렇지.
저렇게 원을 그리고 있는 상대에게 뛰쳐든다고?
상식에 어긋난 그 돌진에 지니가 자신도 모르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얼마 안 있어 기우에 그쳤다.
채채채채채챙-!
상대방의 진영에 파고든 아더가 칼춤을 췄다.
4명의 카셀 브리드가 검을 내질렀지만 아더는 그 4개의 검을 모조리 막아냈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지니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바이에른 가신들의 입이 벌어졌다.
“세,세상에……”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검의 신이라도… 깃드신 거야? 저게 무슨….”
사방에서 찔러들어오는 검을 막아내는 것도 모자라 튕겨내며 반격까지 하는 그 광경은 가히 검의 신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허나 정작 그 무지막지한 검술을 펼치는 아더는 불만족스러웠다.
‘쓰읍… 아버지랑 대련 할때마냥 몸이 안 따라가네.’
그 이유가 뭘까 잠깐 고민하던 아더는 곧 답을 깨달았다.
‘그곳에는 육체가 없었고, 지금은 있어.’
인간의 육체는 불안정하다.
아무리 단련하고 단련해도 결국은 필멸자의 몸.
아더는 그 제약이 제 머릿속에 있는 검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 탓에 입맛을 다셔졌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필멸자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월자가 되야 해.’
그리고 그 초월자가 되기 위해서는 10개의 고리.
즉 소드마스터의 마나를 모아야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 검술을 재현해내는 것에 만족 할 수 밖에 없단 소리.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아더가 단번에 네 명의 카셀 브리드의 검을 모조리 튕겨냈다.
“……!”
그 괴력에 놀란 네명의 카셀 브리드가 물러났다.
허나 그 틈을 봐줄 아더가 아니었다.
노움을 소환한 아더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발몪 좀 묶어줘요 노움 씨!”
[어… 어… 알았어 아더!]
노움이 두 손을 모아 제 능력을 일으켰다.
그 순간 네 명의 카셀 브리드의 발밑으로 흙으로 된 손이 솟아나 두 발을 묶었다.
“……!”
깜짝 놀란 카셀 브리드들이 일제히 그 손을 칼로 잘라냈다.
허나 그 짧은 틈은 아더에게 있어 충분했다.
서걱-!
한 명의 카셀 브리드의 목을 잘라냈다.
그것에 만족 하지 않고 아더가 다른 한 명의 카셀 브리드의 가슴팍을 찼다.
중심을 잃은 그가 비틀거린 순간 이번에는 쥴리의 혈통 능력을 일으켰다.
쾅-!
번개가 내려치며 아더의 신형이 사라졌다.
눈을 치켜뜬 카셀 브리드가 황급히 아더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컥!”
신음을 내뱉은 카셀 브리드가 어느사이엔가 제 목을 꿰뚫은 운철검을 떨리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의 목이 하늘로 솟구쳤다.
“…!”
터져나오는 피분수와 함께 아더가 이번에는 뱀파이어 로드의 혈통 능력을 사용했다.
동시에 터져나온 피분수가 아더의 뜻대로 움직여 총알마냥 두 명의 카셀 브리드에게 쏟아졌다.
후두두둑-!
두 명의 카셀 브리드가 그 핏방울 세례를 검으로 쳐내려 했지만 수가 워낙 많았다.
결국 그들의 몸 곳곳이 산탄총을 맞은 것마냥 구멍이 뚫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비스트를 치켜들어 오른 쪽에 있는 카셀 브리드의 머리를 날렸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두 명 중 한명의 카셀 브리드가 스르륵 쓰러졌다.
마지막 카셀 브리드가 그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그 순간 현장에 침묵이 깃들었다.
“…….”
전투를 지켜보던 지니는 물론이고, 바이에른 가신들조차 입을 떡하고 벌렸다.
“내가… 뭘 본 거지?”
이게 말이나 되는 전투법인가?
마법도 쓰고 검도 쓰고 권총도 쓰다니?
그런데 그 전투법에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그 탓에 바이에른 가신들이 경외가 담긴 눈길로 아더를 바라볼 때, 마지막 남은 카셀 브리드를 향해 아더가 칼을 겨누었다.
“이대로 죽으실래요? 잡히실래요?”
“…….”
“또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는 헛소리 하면 베어 버릴 거에요. 카셀.”
아더의 경고에 카셀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표정이 어린 갈등과 두려움.
허나 안쪽 너머 숨겨져 있는 옅은 호승심이 느껴져 왔다.
그 속에서 카셀이 대답했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아더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럼 죽으세요.”
이 말과 함꼐 카셀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한 밤중의 소동이 끝났다.
그 과정에서 다섯명의 암살범이 죽고, 한 명의 암살범이 살아남았다.
헤이치는 이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니 가주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암살범이 찾아와?’
바깥에서의 아더 바이에른의 평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허나 다른 한 편으론 아더 바이에른의 능력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무예… 인간의 한계를 벗어 났어.’
지난 밤 보여주었던 아더의 전투는 상식 밖이 었다.
검을 휘두르고 권총을 쏘며 혈통을 다루었다.
말로 설명해도 긴 이 전투 과정을 아더 바이에른은 너무나도 능숙히 해냈다.
‘다른 건 몰라도… 싸움 하나 만큼은 역대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 같군.’
혀를 내두른 헤이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더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주의 집무실을 찾으니 권총과 칼을 정비하고 있던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아 오셨어요 헤이치 씨?”
그 미소에 헤이치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예. 호출을 받고 왔습니다 가주님.”
“네.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시죠.”
아더의 권유에 헤이치가 별말 없이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 사이 아더가 차를 따라 그의 앞에 건네주었다.
헤이치가 감사의 의미로 꾸벅 고개를 숙이자 아더가 불쑥 물어왔다.
“전쟁 준비. 어떻게 하면 될까요 헤이치 씨?”
“……!”
헤이치가 마시고 있던 차의 일부분을 뿜어냈다.
눈을 끔뻑인 아더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당황하던 헤이치가 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햇다.
“무,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전쟁 준비라니….”
“어? 제 연설 때 못들으셨어요? 도르문트와 전쟁을 할 거라 밝혔었는데?”
헤이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알지 이 바이에른 혈족놈아!’
하지만 그 전쟁을 이렇게 갑자기 한다고?
거기다 전쟁이라는 게 말한다고 해서 뚝딱 준비되는 게 아니다.
‘물자 동맹 군사 기사 그 밖의 여러 후원자들… 그것들이 모여 이뤄지는 게 전쟁인데!’
그래서 사정을 설명하니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헤이치 씨가 준비하셔야죠. 이제 바이에른의 부집사가 되셨잖아요?”
헤이치가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에요. 바이에른 계승식을 통과했으니 약속대로 헤이치 씨가 바이에른의 업무를 처리해 나가셔야죠?”
“……!”
헤이치의 입이 벌어졌다.
‘이,이런!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군!’
간밤의 사고 덕에 아더와 했던 내기가 완전히 머릿속에 사라진 그였다.
그 탓에 신음을 흘린 헤이치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크으… 정말 저 같은 골렘한테 그런 귀중한 자리를 맡기셔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헤이치 씨는 유능한데.”
“…그 유능한 인적자원한테 전쟁 준비를 맡긴다?”
“유능한 인적자원이니깐 전쟁도 준비를 잘 하겠죠?”
아더의 대답에 헤이치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 미친놈. 이럴 려고 나한테 이 자리를 맡겼군!’
허나 바이에른의 골렘으로서 가주의 명령을 거부 할 수는 없다.
헤이치는 체념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가주가 생각하는 전쟁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전쟁이요?”
“예. 그것에 따라 준비해야 될 게 많이 달라집니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전쟁에도 종류가 있나요?”
“목적에 따라 달라지죠. 돈 영토 항쟁. 돈이 목적이면 돈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고 영토가 목적이면 영토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헤이치가 다시 질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주가 생각하는 전쟁은 무엇입니까?”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케인 도르문트.”
“……?”
“그 자의 목과 칸 마드리드. 이 두 사람의 목을 베는 게 전쟁의 목적이에요.”
헤이치의 눈이 커졌다.
‘…케인은 그렇다 치고, 칸 마드리드. 황태자 자리에 올라선 그하고도 반대편에 설거라고?’
그 말은 즉 제국을 지키는 공작가의 가문이 제국을 적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이건 반역.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 탓에 헛웃음을 터트린 헤이치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이번 당대에 바이에른 멸문 할지라도 가주의 명령을 따르는 게 골렘의 일.
그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이번 전쟁에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될 건 이거로군요.’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그게 어떤 거죠?”
아더의 질문에 헤이치가 어디선가 지도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린 그 때, 헤이치가 한 부분을 탁! 소리내어 가리켰다.
“공자께서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이 분’을 섭외해야 합니다.”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이분은….”
헤이치의 손가락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