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82화 (182/265)

제182화

소년은 고아였다.

부모가 누군지도, 제 출생지도 몰랐다.

그런 소년이 ‘기억’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될 무렵 가장 먼저 본 것은 노란색 눈동자였다.

[필멸자의 아이야. 갈 곳을 잃었느냐?]

노란색 눈동자를 가진 존재가 물었다.

소년은 말을 몰랐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허나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산맥까지 오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 또 한 운명. 네가 스스로의 길을 개척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보살피마.]

그렇게 존재와 소년은 동거를 시작했다.

존재는 소년에게 말을 가르치고 행동을 가르쳤다.

예의와 사람 사이의 관계도 약간이나마 교육했다.

소년은 존재를 부모처럼 따르며 그 모든 것을 쑥쑥 흡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재는 소년을 불러 일렀다.

[모든 존재가 선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필멸자들 또 한 모두가 선한 것은 아니다. 네 한 몸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마.]

이 말과 함께 존재는 소년에게 검 하나를 쥐어주었다.

아직 10살도 채되지 않은 소년이었기에 묵직한 장검을 제대로 쥐지 못했다.

허나 존재에게 미움 받는 것이 두려웠던 소년은 낑낑대며 그 장검을 억지로 그러쥐었다.

존재는 그 모습에 흡족해하며 다시 일렀다.

[필멸자들이 만든 칼은 무엇이든 벨 수 있다. 설령 나와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소년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게 눈앞의 존재가 이런 납덩이에 쓰러지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소년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여태 존재가 한 말은 모두 맞았고,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년은 검을 배웠다.

그 횃수가 3년이 넘어가자, 이제 자유자재로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존재의 가르침도 끝이 났다.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앞으로는 너 스스로 검의 길을 개척해 나가거라.]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홀로 수련을 시작했다.

거대한 산맥을 날람쥐마냥 넘나들며 검을 휘둘렀고 육체를 단련했다.

그 시간은 처음에는 정오였다 해짘녃이었고 끝에는 밤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날에도 소년은 수련을 하다 '레어'라 불리는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존재시여!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인사를 먼저 한 소년이 허리를 반듯이 굽혔을 때였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깜짝 놀란 소년이 고개를 드니 가슴팍이 찢어진 존재의 모습이 보였다.

‘…….’

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존재가 흉측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그 사실에 소년이 넋을 잃었을 때, 하늘 위에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시선의 끝에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괴물.

이 세상의 악의란 악의는 모든 것을 다 담은 듯한 한 드래곤이 하늘을 비상하고 있었다.

&

지하실을 빠져나온 아더의 눈길이 가늘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바이에른의 시련을 통과한 뒤 지상으로 나오니 수상한 기척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날카로운 기운. 거의 소드마스터에 근접했다 봐도 무방한데?’

폭주하는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이 정도 마나의 양이면 현재의 자신보다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나는 깨달음을 얻어서 소드마스터가 된 거지, 고리를 달성해서 소드마스터가 된 건 아니니깐.’

역사를 뒤져보아도 기형적인 사례.

그리고 지금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가 또 하나 있는 듯했다.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소드마스터. 하지만… 뭔가 어설퍼.’

소드마스터의 날카로움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 탓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쩝… 비유가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런데….”

허나 곧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털었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것보다 빨리 현장으로 가는 게 중요했다.

눈빛을 빛낸 아더가 쥴리의 혈통능력을 일으켰다.

파지직-!

터져나오는 전류와 함께 아더의 신형이 사라졌다.

번개에 가까운 속도로 현장을 누비던 아더는 고성 내에 있는 기척이 전부 사라졌단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저 폭주하는 마나를 따라가는 게 빠르겠는 걸?’

결정을 내린 아더가 방향을 돌렸다.

강대한 마나가 느껴지는 장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고성 내 꼭대기.

그곳에서 마나가 폭주하고 있었다.

아더는 무릎을 굽혔다, 그대로 뛰쳐올랐다.

파앗-!

한 차례 허공을 답보한 아더가 그대로 고성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 상태로 앞을 가로막는 창문을 발로 깨버린 그 때 날카로운 무언가가 쇄도해왔다.

“……!”

눈을 치켜 뜬 아더가 아버지가 준 제2의 운철검으로 그 일격을 막아냈다.

파직-!

빛의 알갱이가 터져나오며 목을 노리고 날아온 참격이 벽면을 부셨다.

표정을 굳힌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회색 머리 칼의 사내가 검을 들고 있었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이 말과 함께 회색 머리칼의 사내가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아더도 지지 않고 제 2의 운철검을 쥐었다.

‘저 분이 적인가?’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오호… 재미난 마법이군. 정신이 아니라 영혼 자체를 조종하는 마법이라니.]

천 년을 산 흰수염.

그의 목소리였다.

아더는 사내에게서 눈을 때지 않으며 말했다.

‘영혼 자체를 조종하는 마법이요? 그럼 저분이 지금 조종당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 셈이지. 그보다 조심하게. 지금 저 놈 몸에 걸린 마법은 그게 끝이 아니야.]

‘또 뭐가 걸려 있는데요?’

[인위적으로 마나를 폭주시키고 있어. 자네라도 저런 마법에 방심하는 순간 목이 날라갈거야.]

흰수염의 경고에 아더가 다시 사내를 바라보았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확실히 저 사내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은 위험했다.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흐음… 저 분은 도르문트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바이에른 고성으로 쳐들어온 걸까?

아더는 잠시 고민하다 질문했다.

“원래라면 바로 목을 베야 하는데, 그래도 예의상 질문하나 할게요.”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누가 시켜서 보낸 거예요? 조종당하고 있으니깐 자발적으로 여기 온 건 아닐 테고.”

“드래곤을… 죽여야한다.”

“말씀만 잘하면 편하게 보내드릴게요. 죽는다는 감각도 없으실 거예요.”

사내가 대답했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이런, 대화가 안 통하는 분이었군요. 말 걸어서 죄송해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비스트를 재장전 했을 때였다.

사내가 움직였다.

“……!”

비스트의 방아쇠도 거의 동시에 당겨졌지만, 사내의 움직임이 먼저였다.

사내가 비스트의 탄알을 피해냈지만 아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심장은 무리고 발목 정도는 맞춰주지.]

이 말과 함께 빗나갔던 탄알이 다시 되돌아와 사내의 발목에 명중했다.

그 순간 사내의 돌격이 크게 흔들리고, 아더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휘리리릭-!

반 바퀴 돌려 잡은 제2의 운철검으로 사내의 어깻죽지에 검을 찔러넣었다.

피가 솟구쳤지만 사내는 비명 대신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되뇌었다.

“드래곤을… 죽여야한다.”

이 말과 함께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검강과 검기 사이.

그 무언가에 둘린 기운이 시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허나 아더는 가볍게 운철검으로 그 일격을 튕겨냈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가 다시 돌진해왔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외침과 함께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아더는 그 일격들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며, 사내의 상처를 주시했다.

‘어라? 아물었네?’

조금 전 제2의 운철검으로 찔러넣었던 사내의 상처는 놀랍게도 아물어 있었다.

시선을 좁힌 아더가 중얼거렸다.

‘혈통? 마법? 흠… 이번엔 마법 쪽에 가까워보이는데?’

조금 전 난 상처는 아물어 있었지만, 그 흉터는 그대로였다.

만약 혈통 능력이라면 저 흉터마저도 지워졌을 터였다.

그 때 사내의 검이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이 말과 함께 아더와 사내가 연달아 수를 교환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하늘에 두 칼잡이가 뿌리는 빛이 반짝였다.

그 과정 속에서 아더는 틈을 보다 한 수를 찔러넣었다.

챙-!

사내는 그 일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하지만 뒤이어 겨누어진 비스트는 미처 보지 못했다.

“생포는 어려워보이니깐, 잘 가세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사내의 미간에다 비스트를 겨누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미간에 구멍이 뚫린 사내가 비틀거렸다.

허나 아더는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이 자는 재생능력은 비정상적이다.

그 생각과 함께 아더가 정확히 사내의 목을 베어냈다.

서걱.

솟아오르는 핏줄기와 함께 사내의 입술이 달싹였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마지막 유언과 함께 그의 목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아더가 제2의 운철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드래곤을 왜 여기서 찾지? 여기는 레어가 아닌데?”

아더의 말에 흰수염이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흠… 이놈. 한 놈이 아니었군.]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흰수염 씨?”

[말 그대로야. 이놈 한 놈이 아니야.]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럼 드래곤을 찾는 정신병자가 또 있단 말씀이세요?”

[그래. 그것도 꽤 많군… 한 다섯 정도 더 있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비스트에 깃든 흰 수염이 혀를 찼다.

[이 놈. [복제 인형]이야. 아주 악질적인 복제 인형.]

* * *

지니가 눈앞의 광경에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 이 새끼 뭐야!’

똑같은 외모, 똑같은 체형을 가진 회색 머리칼의 사내 다섯명이 검을 쳐들고 있었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카셀 브리드.

업계에서 꽤 수준 높은 용병이라 불리는 그가 제정신이 아닌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분신술까지 쓸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였다.

허나 그 기괴한 술법치고 밤 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는 검기는 날카롭기 그지 없었다.

퍽!

퍽!

퍽!

규치적으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베리어가 들썩였다.

그와 동시에 성내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베리어에서 보호 중이던 헤이치가 피를 토했다.

“커, 커헉!”

“헤이치 씨 괜찮아요!?”

“이, 이게 괜찮은 걸로 보입니까!?”

이 말과 함꼐 헤이치가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젠장… 골렘인데 왜 통증을 느끼고 피를 토하도록 만든 거야! 망할 바이에른의 초대 가주.”

옆에 있던 안나가 놀란 가신들을 다독이다 황급히 질문했다.

“저 사람 대체 누구예요? 설마 암살자인가요?”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습니까?”

“…하필 이럴 때, 가주님께서 안 계시다니. 지니! 어떻게 불러올 방법 없어요?”

지니가 실프를 이용해 보겠단 말을 하려는 그때, 헤이치가 소리쳤다.

“가주님을 지금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분은 시험에 드셨습니다. 그 시험은 바이에른 가주의 자격을 증명하는 자리.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안나가 경악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그 때까지 헤이치 님께서 버티실 수 있겠어요?”

“끝까지 해봐야죠. 제 뒤에 전 가주님을 포함한 바이에른 혈족분들도 계시니.”

헤이치의 말에 지니가 고개를 돌렸다.

혼절한 아이린과 요넬이 보였다.

두 사람은 놀랍게도 가장 먼저 공격을 받았고, 헤이치와 안나가 각각 구출한 뒤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허나 구출만 했을 뿐,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헛소리를 내뱉는 저 다섯 명의 카셀 브리드의 검기는 여전히 위협적이었고, 뒤에는 바이에른 가신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무, 뭐야….”

“저놈들 대체….”

“가주님은? 기사님들은 어디 계신 거지?”

저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기사 병력들은 죄다 쓰러졌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니는 오랜만에 맞은 위험 속에서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해. 가주님이 올 때까지.’

그 결심과 함께 지니가 말했다.

“보호막 좀 열어주세요. 헤이치 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시간이라도 끌어봐야죠.”

헤이치의 눈이 커졌다.

“지금 미끼가 되겠단 겁니까?”

“그거라도 안 하면, 이대로 다들 저 칼에 맞아 죽을 거에요?”

헤이치가 고민하다 한숨을 퍽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말과 함꼐 헤이치가 결계를 해체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다섯 명의 카셀 브리드 중, 한 사람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

그 광경에 헤이치가 결계를 해체하려던 걸 멈추고, 지니의 눈이 커졌다.

“…가주님?”

지니의 부름에 허공에서 한 바퀴 몸을 돌려 나타난 아더가 활짝 웃었다.

“다들 꽁꽁 숨어 있어서 찾는 데 시간이 오래걸렸네요. 괜찮아요?”

그 모습에 결계에 갇힌 모두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가주님께서 돌아오셨어!!”

“가주님만 있다면 저런 놈들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 외침 속에서 지니가 그제야 긴장을 풀며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허. 항상 아슬아슬한 떄에 나타나신단 말이지.’

그 때 다섯 명에서 네명이 된 카셀 브리드가 중얼거렸다.

“드래곤을… 죽인다.”

이 말에 흠칫 놀란 지니가 소리쳤다.

“공자님! 저 녀석들…!”

“네 알아요. 이제 기억났어요.”

대답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인 암살자의 얼굴 위에, 천진난만하게 웃던 회색 머리칼 청년이 떠올랐다.

그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며 아더가 질문했다.

“드래곤을 만나냐 한다더니… 어쩌다 그런 꼴이 됐어요, 카셀?”

회색 머리칼 청년들이 대답했다.

“드래곤을 죽여야한다.”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그 대답은.”

7년만에 만난 업계 동료는 어딘가 많이 이상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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