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79화 (179/265)

제179화

레오 바이에른 말에 아더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나보고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밀라고?’

헤이치가 경고를 했기에 바이에른의 시련이 쉽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설마 아버지를 쓰러트려야하다니.

여태 껏 앞길을 가로막은 그 누구라도 베어넘겼던 아더였지만 이번 만큼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절 패륜아로 만드실 생각이에요?”

아더의 질문에 레오가 방긋 웃었다.

[잡담 할 시간이 있느냐 아들아?]

이 말과 함께 레오가 사라졌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슈욱.

레오 바이에른의 손에 들린 검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허공을 베었다.

허리를 45도로 꺽은, 기예와도 같은 자세로 그 일격을 피해낸 아더가 중얼거렸다.

‘운철검. 내가 부러트려먹은 검이다.’

오랜만에 보는 그 검에 반가움보다는 곤혹스러움이 밀려왔다.

저 검을 통해 레오의 살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정말로 날 베려고 했어.’

헤이치에게 설명을 들어 꽤나 이상한 사람인 걸 알았지만, 정말 아들을 베려 할 줄이야.

그 때 레오가 다시 한 번 연격을 펼쳐왔다.

시선을 좁힌 아더가 뱀파이어 로드의 혈통을 일으켰다.

캉-!

피의 검이 운철검을 막아냈다.

그 광경에 레오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꽤나 좋은 혈통을 얻었구나 아들아. 뱀파이어 로드의 피라니.]

아더가 검을 맞댄 상태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이 피에 대해서 아세요 아버지?”

[척보면 척이지. 이 아비도 소싯적에 혈통 좀 섭취했거든.]

“…오. 아버지는 어떤 혈통을 모으셨는데요?”

[뭐, 이것저것 많이 먹었지… 하지만 지금 잡담을 나눌 때가 아닌 것 같구나.]

레오가 아더의 검을 쳐냈다.

한 발자국 물러선 레오의 손에 불꽃이 일었다.

그 광경에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마법 혈통?”

어느쪽이건 꽤나 위험했다.

아더는 그 불꽃에 맞서기 위해 벼락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혈통을 일으킨 두 부자가 다시 한 번 격돌했다.

쾅-!

벼락과 불꽃이 하나가 되어 하늘로 승천했다.

그 속에서 아더와 레오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더가 찌르면 막고, 레오가 막으면 찔러 들어왔다.

그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연무 속에서 레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슬슬 진심이 되어가는구나?]

아더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직 진심은 아닌데요 아버지.”

[그래? 그럼 더 거칠게 몰아붙여야겠구나.]

이 말과 함께 레오의 두 눈빛이 번뜩였다.

그 순간 아더의 신체가 정지했다.

‘뭐지? 육체가 왜….’

말을 흐린 아더가 억지로 몸을 틀었다.

그 반동으로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간신히 이겨냈다.

덕분에 치고 들어온 레오의 검을 쳐낸 아더가 비스트를 떠올렸다.

그 순간 검은색 묵빛 권총이 왼손에 쥐어지고, 아더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퍼진 총성과 함께 레오가 손에 든 운철검으로 날아온 탄알을 반으로 쪼갰다.

그 기예와도 같은 일격에 아더가 감탄을 터트렸다.

“검으로 총알을 베다니… 아버지 장난 아니시네요.”

[이래뵈도 한 때 천재라 불리던 몸이다.]

이 말과 함께 레오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아직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던 아더는 그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운철검째로 잘라내기로 마음먹었다.

채앵-!

피의 검을 타고 검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 위로 검을 쳐올린 아더가 운철검을 말끔히 베어냈다.

그 광경에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검기. 이제야 꺼내드는 군!]

이 말과 함께 레오가 반으로 잘려진 운철검을 버렸다.

그 순간 그의 손에는 반으로 갈라지기 전의 운철검이 새로이 쥐어졌다.

아더가 약간은 놀란 눈치로 질문했다.

“흠… 역시 현실이 아니긴 한가 보네요. 잘려진 검이 곧바로 생겨나다니.”

레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현실과 상상은 때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경계가 무너질 때가 있지.]

이 말과 함께 새로이 쥔 운철검에서 무언가 치솟아 올랐다.

검기.

아더 자신의 검기와 어딘가 비슷한 회색빛 검기였다.

입을 벌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어… 아버지도 5서클 이상의 칼잡이셨군요?”

[말했지 않으냐? 한때 천재라 불리던 몸이었다고.]

이 말과 함께 레오가 사라졌다.

입을 다문 아더가 감각을 일깨웠다.

위? 아래? 옆?

레오가 치고 들어올 만한 각도 전부를 살피던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아래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피의 검을 제 발밑으로 휘둘렀다.

그 순간 아래에서 치고 들어오던 레오의 목이 홀라당 베어졌다.

“…어라?”

깜짝 놀란 아더가 굳어진 그 때, 목이 잘린 레오가 속삭였다.

[낚시다, 요놈아!]

이 말과 함께 어느사이엔가 위에서 등장한 레오가 아더의 등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왼손에 든 비스트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바람에 그 일격은 흔들리고 말았다.

그 사이 몸을 회전시킨 아더가 운철검을 막아냈다.

캉-!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며 빛을 흩날렸다.

그 상태로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때, 아더가 질문했다.

“방금 전 그건 뭐예요, 아버지?”

[뭐가 말이냐?]

“제 감각을 속인 기술 말이에요. 분명 아버지는 아래에서 치고 들어왔는데, 위에서 또 다시 나타나던데요?”

레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저기 대륙 넘어, 왜국(倭國)이란 나라에서 훔쳐온 혈통이다.]

“…왜국이란 나라에서 훔쳐온 혈통이요?”

[그래. 그곳에서 사는 '닌자'라는 아주 특수한 전사들의 혈통이지. 나라는 개채를 몇 십명으로 늘릴 수 있는 데 예를 들어….]

말을 흐린 레오가 분열했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7명?”

[이 놈의 자식이! 네 아버지는 한 명이다!]

이 말과 함께 7명으로 분열한 레오가 사방에서 덮쳐들어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한 명이 한 명이 진짜 같아.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알수가 없어.’

그 말은 즉, 7개의 검기가 사방에서 찔러들어온단 소리다.

‘피할 수는 없어. 한 곳을 뚫는다.’

생각과 함께 아더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순간 오망성의 눈동자가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진짜 레오 바이에른을 가려준다.

‘가운데. 정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비스트를 치켜올렸다.

…쾅-!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정면에서 뛰어오는 레오가 사라졌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돌파한 아더가 참격을 흩뿌렸다.

쏘아져 나간 무형의 기운이 분신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 속에서 레오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내 분신을 눈치채다니… 좋은 눈동자군.]

이 말과 함께 땅 밑에서 솟아난 레오가 아더의 턱끝을 향해 검을 찔러들어왔다.

아더는 그 일격을 피하기보다는 레오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걸 선택했다.

그의 무릎 관절을 오른 발로 찍어누른 아더가 레오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다.

그와 동시에 치켜 든 검을 레오의 가슴팍에 찔러넣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레오가 아더의 중심을 무너트렸다.

조금 전 수와 똑같이 아더의 무릎 관절을 가격한 레오가 아더의 일격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캉-!

다시 한 번 맞부딪친 검기 속에서 두 사내가 거친 호흡을 골랐다.

그 속에서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네요.”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 아버지를 때리는 게 재밌느냐?]

“그러는 아버지도 아들에게 칼을 들이밀면서 웃고 계시잖아요.”

레오가 경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들과의 연무는 내가 항상 바라던 거였지. 지금의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즐겁구나.]

이 말과 함께 레오가 아더의 검을 튕겨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가파온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강하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전투 스타일이 자신과 비슷했다.

‘혈통과 검술… 그냥 또 다른 나를 상대하는 느낌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신선하면서도 그 파훼법을 떠올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 해서 이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더는 피의 검을 휘리릭 돌리며 말했다.

“흠 아버지?”

[왜 그러느냐 아들아?]

“진짜 마지막으로 묻는 건데, 이 대련. 한쪽이 죽을 때까지 게속 해야 되죠?”

레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누누이 말하지만, 시련을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 한 명 목이 베일 때까지 계속해야 한단다. 이게 바이에른의 시험.]

레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축복과 저주를 받은 미쳐버린 가문만이 할 수 있는 시련이지. 그러니 날 베고 싶지 않다면 시련을 포기하거라 아들아.]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곤란한데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피의 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전 힘이 필요해요. 가족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서 바이에른의 진짜 힘이라는 걸 꼭 얻고 싶어요.”

그 순간 아더의 기세가 바뀌었다.

그 이변을 눈치챈 레오의 눈이 커진 순간, 아더의 가슴 팍에 새겨진 고리가 진동을 시작했다.

솨악-!

동시에 흘러넘치기 시작한 마나의 폭풍 속에서, 아더의 검이 달빛으로 물든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오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린 그 때,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미리 사과드릴게요, 아버지.”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아버지의 목을 베어야겠어요. 이해해 주실 수 있죠?”

아더의 말에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을 봤나.]

그 순간 달빛이 레오를 향해 쇄도했다.

* * *

화창한 날씨에 먹구름이 꼈다.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소나기를 지켜보던 지니가 시선을 돌려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하아… 오라버니는 대체 또 어딜 가신거지.”

제 앞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소녀는 놀랍게도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귀족가의 영애와 똑 닮아 있었다.

검은 생머리칼.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새하얀 피부는 장인이 만든 인형과 비교해도 그 미모가 손색이 없었다.

그 탓에 여러모로 자신과 비교 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통점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네.’

닮은 구석이 없으니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린 바이에른 쪽은 자신이 조금 편해졌는지, 티타임까지 제안했지만 거리감은 여전했다.

허나 이대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바이에른 가문에 들어온 이상, 아이린 바이에른과의 관계 개선은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지니는 고민하다 불쑥 질문했다.

“공자… 아니. 공작 각하께서는 자주 사라지시니 너무 걱정 마세요 공녀.”

지니의 말에 아이린이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지니와 함께 있을 떄도, 종종 사라지셨나요?”

“음… 종종 그랬었죠?”

“…후우. 그래도 그렇지. 공작이 되자마자 사라지시다니 오라버니의 생각을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분이시긴 하죠. 남들하고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신 분이니깐.”

지니의 말에 아이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런데 지니는 오라버니하고 어떻게 친해지신 거에요?”

“네?”

“오라버니하고 지니는… 뭔가 좀 많이 다른 사람 같아서요. 저희 오라버니하고는 어떻게 친해지신 거에요?”

아이린의 질문에 지니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여러 사정이 있는데… 이야기가 길어져도 괜찮나요?”

“물론이죠. 남는 게 시간이 사람인데.”

그녀의 대답에 지니가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첫 만남은 윌렛 크레스톨의 합동 의뢰에서.

두 번째 만남은 도르문트의 연구소에서.

세 번째 만남은 노예 경매장에서 만났다.

그 범상치 않은 만남들을 떠올리던 지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보니, 참.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르겠네.’

첫 만남 때, 제 배에다 총알을 박아 넣은 사람이 나중에는 제 목숨을 구해준 은사가 되다니.

지니는 이 얄궂은 만남을 되새김질 하다 천천히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에 무언가 걸렸다.

그 순간 머리보다는 몸이 움직여 아이린을 덮쳤다.

“꺄악-!”

새된 비명과 함께 지니와 아이린이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아이린 바이에른이 앉아있던 의자를 반토막냈다.

서걱.

그 일격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지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누구냐-!”

그 외침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문 넘어 한 인영이 일렁거렸다.

시선을 좁힌 지니가 제 권총을 꺼내든 순간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드래곤… 을 죽여야한다.”

이 말에 지니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비바람을 뚫고 등장한 한 사내가 거대한 대도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그와 동시에 맺어진 검기가 참격이 되어 날아왔다.

깜짝 놀란 지니가 실프의 능력을 이용해 아이린과 함께 다시 한 번 바닥을 굴렀다.

쾅-!

응접실이 박살 나며, 유릿조각이 사방에서 튀었다.

혼절한 아이린을 안아든 지니가 표정을 굳힌 채 참격을 날린 회색 머리칼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너는….”

말을 흐린 지니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때, 그… 용병이잖아?’

이 말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우 속에 회색 머리칼의 용병이 중얼거렸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그 순간 그의 칼에서 달빛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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