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78화 (178/265)

제178화

헤이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지금 바이에른의 시험에 드셔야겠습니까?”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늦출 필요도 없잖아요?”

“…가주께서 치신 사고를 보십시오.”

“제가 친 사고요? 언제 사고를 쳤는데요?”

아더의 말에 헤이치가 뒷목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저, 저 뻔뻔함!! 내가 이래서 바이에른 존속들을 싫어해!’

허나 바이에른 고성의 관리사이자 골렘으로서 가주의 명령을 거부 할 수는 없는 일.

헤이치는 한숨을 퍽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즉시 시험을 준비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헤이치가 사라지고, 옆에 있던 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가주님? 시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바이에른 가주가 되면 치르는 시험이 하나 있어요.”

“진짜요? 처음 듣는 사실인데?”

“저도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이에요.”

안나가 눈빛을 빛냈다.

“궁금하네요. 누가 그 시험을 관리하는데요?”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 아버지요.”

* * *

헤이치가 돌아오고 난 뒤, 곧바로 아더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시험은 간단합니다.”

그 예의 어두컴컴함 속에서 헤이치가 등불을 밝혔다.

“문을 넘으면, 바이에른의 혼령이 어떤 과제를 제시할 겁니다. 그 과제를 수행하시고 돌아오면 됩니다.”

헤이치의 설명에 아더가 질문했다.

“과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게 끝입니다.”

“끝이요?”

“네. 과제에 실패 할 수도 성공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가주님 능력에 달렸습니다.”

아더의 눈이 커졌다.

‘흠… 자격이라길래, 꼭 통과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곰곰히 고민한 아더가 다시 질문했다.

“과제에 성공한 가주들이 많았나요. 아니면 실패한 가주들이 많았나요?”

헤이치가 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단 다섯 명.”

“…?”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제에 성공한 가주들은 단 다섯 명 밖에 없습니다.”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어… 제가 44대니깐, 그럼 전 39명의 가주들이 전부 실패했단 소리네요?”

“그런 셈이죠. 그러니 탈락해도 너무 걱정마시기 바랍니다 가주.”

헤이치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시험에 실패해도 가주는 가주. 단지 그 능력이 약~간 부족하다는 걸 빼면 그대로니 말입니다.”

헤이치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헤이치 씨는 제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 같네요?”

“어허. 무슨 섭섭한 소리를. 저는 무려 천 년동안 가문을 지켜온 충직한 골렘입니다! 제 충성심을 의심하지마소서!”

“흠… 하지만 표정은 안 그런 걸요?”

“사람의 표정과 골렘의 표정은 다릅니다 가주!”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불리할 때만 골렘이라 주장하네?”

평소에는 인간이라 주장하던 양반이 말이다.

그 탓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제안했다.

“그럼 내기 할까요?”

“무슨 내기를 말입니까?”

“제가 시험에 통과하냐 안 하냐로 말이죠.”

헤이치의 눈이 커졌다.

“…진심이십니까? 이 시험은 진짜로 어렵습니다 가주.”

“에이, 어려워 봐야 시험이죠. 그리고 저 시험 잘쳐요.”

“…가주가 생각하는 그런 시험과는 다릅니다.”

“그건 해봐야 알죠. 통과하라고 내준 시험이면, 어떤 돌파구건 있을 거에요.”

헤이치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저는 솔직히 말해 사양 할 이유가 없군요. 좋습니다! 내기의 보상은 뭐로 할까요?”

아더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제가 이기면 헤이치 씨가 가문의 일 좀 봐주세요.”

“…?”

“바이에른 고성의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절 도와 가문을 이끌어주세요. 그게 이번 내기에서 제가 얻고 싶은 보상이에요.”

헤이치의 눈이 커졌다.

“왜 저 같은 골렘에게 그런 일을 맡기시려는 겁니까?”

“음… 부려 먹기 좋아서?”

“…….”

“농담이에요. 그냥 헤이치 씨가 유능해 보여서요. 지금의 전 믿을 수 있고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헤이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흠… 이런 제안을 받을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설마 일개 골렘인 자신에게 바이에른의 일을 도와달라 하다니.

많은 가주를 봐왔지만 이런 제안을 하는 가주는 또 처음 보았다.

물론 그렇다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바빠죽겠는데, 일을 더 늘리라고? 절대 안 되지!’

자신의 임무는 바이에른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바이에른 고성을 관리하는 것.

이 이상 해야 할 일을 늘리기 싫었다.

‘그러니 내기 보상을 잘 걸어야 하는데….’

말을 흐린 헤이치가 고민하다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만약 제가 이기면, 바이에른 고성의 재정을 두배로 늘려주십시오.”

“오호. 그거면 돼요?”

“바이에른 고성의 재정의 두배면, 바이에른 가문의 전체 20%입니다. 만만하게 볼게 아닙니다 가주.”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요? 어디 다른 데로 새어가는 것도 아니고, 고성 관리인데? 좋아요. 받아들이죠.”

아더의 대답에 헤이치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흠흠… 저도 나쁘지 않군요. 좋습니다! 그럼 가주님에게 행운의 여신이 깃들기를 바라죠!”

이 말과 함께 헤이치가 횃불을 등불에다 옮겼다.

화르르륵-!

타오른 불꽃이 주변의 어둠을 잡아먹는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사자 문양이 새겨진 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더는 그 대문을 잠시 지켜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굳게 닫혀있던 대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쏟아졌다.

파앗-!

터져나온 빛이 아더를 집어삼켰다.

그 후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조금 전까지 아더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헤이치가 입꼬리를 올렸다.

“흐흐… 자신만만한 건 좋지만 가주님.”

헤이치의 눈빛이 번뜩였다.

“시험은 아마 실패하실 겁니다. 그 시험을 통과한 자들은 모두 '날개'를 단 자들이었으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기는 자신의 승리였다.

* * *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온 순간,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일전에 보았던 새하얀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왔느냐, 아들아.]

레오 바이에른.

제 아버지가 반대편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더도 작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아버지. 다시 돌아왔어요.”

[…그 말은 바이에른의 가주가 되었단 소리겠지?]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바이에른의 가주가 되었어요.”

이 말에 레오가 침묵했다.

“…….”

그는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아더가 빤히 지켜보던 그 때, 마침내 레오의 입이 열렸다.

[…그렇군. 내 아들이 바이에른의 가주가 되었단 거군.]

그의 눈가는 어느사이엔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놀란 아더가 다가가려 했다.

허나 아더가 다가온 만큼 레오가 반대로 멀어졌다.

[괘찮다. 감정이 조금 격해졌어. 그러니 가까이 오지 말거라.]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감정이 격해졌으니, 다가가서 위로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버지가 되서 아들에게 위로 받아야겠냐?]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런 게 있어 임마. 아무것도 못해준 아버지가 위로까지 받으면 위신이 말이 아니지.]

이 말과 함께 레오가 웃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아버지? 바이에른의 시험이란 걸 여기서 치르는 거 맞나요?”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단다. 이곳은 바이에른의 혼령을 모아놓은 곳임과 동시에 시험장.]

설명과 함께 레오가 손짓했다.

그 순간 환한 빛으로 휩싸여 있던 공간이 뒤바뀌었다.

화르르륵-!

거대한 연무장과 함께 밝혀진 횃불.

그 속에서 드러난 사자 문양.

갑자기 생겨난 무대에 아더가 눈을 치켜뜬 사이, 레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곳에서 모든 바이에른 가주들은 제 자질을 시험받지.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이겨낼 것인지.]

고개를 돌린 아더가 질문했다.

“그 운명이란 게 뭐죠?”

레오의 눈빛이 번뜩였다.

[우리의 숙적을 베어내는 것.]

“…숙적이요? 도르문트를 말씀하시는 거에요?”

[숙적은 매 세대 달라지지. 지금의 너에겐 그 숙적이 도르문트 일수도 있겠구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저 말은 도르문트가 숙적이 아닐 수도 있단 거네?’

그렇다면 칸 마드리드를 뜻하는 건가?

하지만 그는 황가의 사람인데 매 세대 숙적이 될수가 있나?

곰곰히 고민한 아더였지만 곧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중요한 건 숙적이 누구냐가 아니라 이번 시험을 통과해 바이에른의 진짜 힘을 깨닫는 것이다.

상념을 지운 아더가 질문했다.

“이번 시험을 통과하면, 바이에른의 진짜 힘을 일꺠울 수 있는 거죠?”

[그렇지.]

“그 시험 과제가 뭔데요?”

레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시험은 간단하다. 나를 쓰러트리는 거다]

“……?”

[너의 앞길을 가로막는 나를 베고 진정한 힘을 깨달아라 아더. 그게 이번 시험의 목적이다.]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진심이세요 아버지?”

[그럼 진심이지.]

“제가 어떻게 아버지를 베요?”

아더의 질문에 레오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순간 아더의 검은 머리칼이 눈앞에서 휘날렸다.

“……?”

그 이변에 아더의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

어느사이엔가 일자로 잘려진 제 앞머리가 보였다.

그 사이 손에 쥔 검을 휘리릭 돌린 레오가 경고했다.

[난 널 벨거다.]

“…….”

[내 앞에 나타나기 위해 받친 대가가 이거거든. 그러니 어중간한 각오로 임하지 말거라.]

레오가 눈빛을 번뜩였다.

[이 곳은 시험의 무대. 각오가 서지 않은 자들은 절대 힘을 얻지 못한다.]

이 말과 함께 레오가 아더에게 칼을 겨누었다.

[검을 들어라 아더 바이에른. 네가 여태 쌓아올린 것을 시험하겠다.]

* * *

칸 마드리드가 정신을 되찾은 케인 도르문트에게 말했다.

“내 충직한 시종아. 너는 지금 무엇을 원하느냐?”

그의 질문에 케인이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예… 지금 제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칸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직했던 칼잡이가 패배를 맛보았다.

그 패배는 그가 걸어온 길과 신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그 모습은 가여웠고 비련했다.

그 탓에 조금 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대로 놔두었다간 소중한 장기말을 잃게 될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진실’ 보여주고자 했다.

“다시 잠들어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의 명령에 케인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는 깊은 바다에 떨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않은 심연 속으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위에서 지켜보던 칸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다시 깨어났을 땐, 너는 별빛을 쥐게 될 것이다.”

이 말과 함꼐 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복수에 타오르는 별빛… 그 별빛으로 내 명령을 다시 수행해라.”

주문과 같도 같은 명령을 남긴 그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도르문트의 뱀이 다가왔다.

“안내하겠습니다 황태자 저하.”

이 말과 함께 뱀이 앞장서 걸어가려던 때, 칸이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자리에 서서 고민하던 그가 불쑥 질문했다.

“…내가 준 선물은 어쩄느냐?”

“예?”

“내가 준 선물 말이다. 아직도 세뇌가 안 끝났느냐?”

뱀이 당황해 대답했다.

“어… 선물이라 하심은, 그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제 슬슬 정신이 무너질 때도 됐는 데 아직 멀었나?”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해도 워낙 뛰어난 칼잡이다 보니 정신 자체가 워낙 단단해서….”

말을 흐리는 뱀의 모습에 칸이 시선을 돌려 케인을 바라보았다.

‘첫번쨰 장기말은 거의 완성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장기말인 아더 바이에른은, 아직 덜 완성되었다.

그는 조금 더 분노해야 하고 조금 더 갈망해야 한다.

‘그래야 바이에른의 진짜 힘이 깨어나지.’

그런 의미에서 꽤나 큰 충격을 줘야 할듯 싶었다.

고민하던 칸은 입꼬리를 올린 채 속삭였다.

“안내해라.”

“…예?”

“그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날 안내해라. 직접 주문을 걸어놔야겠구나.”

뱀의 눈이 커졌다.

‘직접 주문을 거신다니… 갑자기 어쩐 일이시지?’

칸 마드리드가 직접 움직이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 앉았지만 그림자와도 같은 사람이며, 절대로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었으니.

하지만 뱀은 구태여 입을 열어 묻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즉시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안내하겠습니다.”

충직한 신하는 주군의 명령에 의문을 갖지 않는 법.

뱀은 허리를 숙인 채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던 칸은 생각했다.

‘보자… 아더 바이에른이 모든 걸 뒤집고 분노할만한 계기로 뭐가 좋을까.’

곰곰히 고민하던 그는 곧 어렵지 않게 답을 떠올렸다.

가족.

바이에른 혈족들이 환장하는 그 가족을 건드면 아더 바이에른은 분노 할 것이다.

칸이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재밌있겠군… 가족을 잃은 두 칼잡이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장면이.”

빙그레 웃은 칸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생각했다.

이제 결말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말 속에서 웃고 있는 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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