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75화 (175/265)

제175화

“바이에른의 진정한 힘은… 바로 빼앗는 것입니다.”

헤이치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빼앗는 거요?”

“예. 빼앗는 거.”

아더가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이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도 가능한데요?”

바이에른의 진짜 힘이 빼앗는 거라면, 지금도 충분히 빼앗고 있었다.

상대방의 피를 마시고 혈통을 훔쳐오고 있었으니.

허나 헤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씀드렸지만, 바이에른의 진짜 힘은 혈통을 뺏어오는 게 아닙니다.”

아더가 질문했다.

“그럼 대체 뭘 뺏어오는 건데요?”

“모든 것.”

“…?”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을 뺏어오는 게 진짜 힘입니다.”

아더의 눈이 커졌다.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을… 뺏어오는 게 힘이라고요?”

“예. 예를 들어 공자께서 나이를 먹어 내일 당장 죽을 운명입니다.”

헤이치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바뀌었다.

“그럼 뭐가 필요할까요? 생명이죠. 다른 말로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만약 공자께서 바이에른의 진짜 힘을 일깨우신다면, 그 삶을 뺏어올 수 있습니다.”

“…!”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왜 공자께 바이에른의 혈통의 진짜 힘을 반도 못 쓴다는 말이.”

아더가 입을 뻐끔거렸다.

‘저게 말이 되나?’

그 어떤 마법이나 주술도.

타인의 생명이나 삶을 쉽사리 가져오지 못했다.

설령 가져온다 하더라도 큰 위험부담을 지게 된다.

‘단적인 예로 그 흰 수염만 봐도 그렇지.’

그 대단한 흑마법사조차,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바이에른의 진짜 힘은 그 일이 가능하단 소리다.

그 탓에 아더가 쉽사리 믿지 못한 그때, 헤이치가 미소지었다.

“믿기 힘들 겁니다. 허나 천 년 전 제가 그 광경을 직접 보았습니다, 공자.”

헤이치의 말에 아더가 놀라 질문했다.

“천 년 전에 바이에른의 힘을 보았다고요?”

“예. 당신 핏줄의 시초. 난세를 평정한 영웅 중에 영웅. 데니안 바이에른.”

“…!”

“그는 모든 바이에른 핏줄의 원조이며, 처음으로 이 힘을 사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데니안이 이 힘을 가지고 한 일은….”

말을 흐린 헤이치가 눈빛을 번뜩였다.

“망해가던 세상을 신으로부터 뺏어 온 것입니다.”

신화 속에 숨겨진 진실.

그 사실을 목도한 순간, 아더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

헤이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수만 가지의 설명보다, 직접 체험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주무시지요.”

헤이치가 방긋 미소지었다.

“시간은 많고 알아가야 할 게 많으니, 조급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자.”

아더는 헤이치의 말에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제 방으로 돌아온 아더는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허나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헤이치의 말이 맴돌았다.

“신으로부터 세상을 뺏어왔다고?”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상상이라도 해보려했지만, 작은 실체마저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아니 다른 것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타인의 생명을 뺏어올 수 있는 거지?’

그게 피를 마시면 가능한 일일까?

그럼 나는 상대방의 피를 마시기만 하면, 생명을 빼앗아 그자를 죽일 수 있는 건가?

궁리하던 아더는 눈을 치켜떴다.

“…어라? 이건 조금 좋은 능력일지도?”

피 몇 모금 마신 뒤, 타인의 생명을 모조리 훔쳐와 버리면 그 어떤 대단한 강자도 단번에 죽일 수 있단 소리 아닌가?

“오호… 이거 흥미로운데?”

물론 그 일이 가능한지는 직접 해봐야겠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사기적인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의 상태로 어떤 상대방이건 목숨까지는 몰라도 피를 취할 자신은 있었다.

그런 와중에 피 몇 방울만 먹으면, 세상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단 소리 아닌가?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생각하니 반드시 손에 넣고 싶어지는데?”

그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동시에 바이에른 성의 가신들의 움직임이 점차 분주해졌다.

“빨리 빨리 움직여-!”

“시간이 얼마 없어! 가주의 취임식이 코앞이다!”

“이번 취임식은 가장 성대하고 거대하게 치러야 해! 바이에른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순간이니깐!”

아더를 제외한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 긴박한 상황을 느낀 것일까.

에덴의 영지민들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들었어? 이번에 바이에른의 새로운 가주가 탄생한다더군!”

“새로운 가주? 요넬 바이에른 님이 아직 건재하신데, 새로운 가주가 탄생한다고?”

“그래! 그분의 장남이신 아더 바이에른님이 새로운 가주가 된다더군!”

그와 함께 몇몇 소문이 고요하던 에덴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나이에 검으로 이룬 성취가 장난아니라던데?”

“7년만에 돌아와 그 도르문트 백작에게 검을 겨눴다더군!”

“그뿐일까? 불치병에 걸린 요넬 바이에른 각하도 치료했다잖아!”

새로운 가주라 짐작되는 아더 바이에른.

그가 이룬 업적 능력, 모든 것들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에덴의 영지민들이 아더 바이에른의 존재감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할 때였다.

요넬이 아더를 호출했다.

“어머니 부르셨어요?”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공무를 보고 있던 요넬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더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어서오너라 아더.”

“네. 많이 바빠보이시네요?”

“많이 바쁘지. 네 취임식은 이 어미가 가장 고대하던 날이니깐.”

이 말과 함께 요넬이 넌지시 질문했다.

“그리고 그 날이 이제 며칠이면 코앞으로 다가오는구나. 혹시 긴장되거나 그러지는 않지?”

“긴장이요? 흠….”

말을 흐린 아더가 고민했다.

가주의 취임식이 다가와 긴장이 되냐?

솔직히 대답하면 긴장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되지.’

바이에른 가주가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이에른 가주가 되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허나 가장 궁금한 것은 가주라는 자격을 갖추고 난 뒤, 얻게 될 바이에른의 진짜 힘이었다.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 바이에른의 진짜 혈통의 힘을.’

빼앗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요넬에게 솔직히 고백하니,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역시 내 아들이구나… 나는 이런 일이 있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죽을 것 같은데.”

이 말과 함께 빙그레 미소 지은 요넬이 아더에게 한 장의 양피지를 건네주었다.

“음? 갑자기 웬 양피지에요 어머니?”

“그곳에다 연설문 적거라.”

“연설문이요?”

“그래. 네가 바이에른 가주가 되기 전의 업적 한 일들… 그뿐만이 아닌 앞으로 바이에른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생각.”

요넬이 눈빛을 빛냈다.

“그 모든 것들을 그곳에다 적거라. 그리고 앞으로 네 신하가 될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것을 취임식 때 말해주도록 하거라.”

아더의 눈이 커졌다.

“제 생각… 모든 걸 말이에요?”

요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름지기 좋은 군주란, 독단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

“…….”

“네 뜻을 알리고 네 의견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거라. 그게 이 어미가 가주가 되는 너에게 해주는 첫 번째 조언이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내 생각이라.’

솔직히 말해 제 생각을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생각을 사람들이 납득해 주냐는 건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은 대게, 제 생각을 들으면 경악을 토하거나 두려움을 느꼈으니.

그 탓에 아더가 망설이니, 요넬이 힘주어 말했다.

“무섭겠지만 아더. 너는 이제부터 바이에른의 가주다.”

“…….”

“가주의 자리에 올라선 이상, 제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할 줄 알아야 해. 만약 그 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어미가 나서서 같이 설득해주마.”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가 도와주신다고요?”

“그럼. 우리 아들이 의견에 내가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실어주겠느냐?”

요넬의 말에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흠… 어머니가 힘을 실어준다라.’

그럼 굳이 망설일 이유가 있나?

눈빛을 빛낸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어요 어머니. 제 생각과 계획을 바이에른 사람들한테 전해볼게요.”

요넬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기대하고 있으마 아더. 네가 가주로서 밝히는 첫 포부를.”

&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에덴의 영지에 전체가 참여하는 아주 큰 축제였다.

그 상황 속에서 에덴의 영지민들은 술과 고기를 공짜로 풀었다.

“오늘은 우리 에덴에 가장 중요한 날이야-!”

“이런 날에 돈 주고 음식을 팔기엔 아깝지!”

“먹고 마시고 죽어-! 바이에른의 새 가주의 탄생일이다!”

환호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바이에른의 고성도 다르지 않았다.

바이에른의 상징하는 꽃인 백합으로 물들인 성에 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드레스 코드는 새하얀 정장과 드레스.

이번 취임식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그 드레스 코드에 맞추어 입장했다.

허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예로부터 바이에른의 취임식에는 외부의 사람이 아닌 가문의 사람들만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파티의 입장한 사람들은 바이에른에서 동떨어져 나온 방계(傍系)들.

그들은 오랜만에 찾은 바이에른 고성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오호… 이번 가주의 취임식은 꽤 공을 들이는군요.”

“흠… 거의 몇십 년만에 탄생하는 바이에른 핏줄의 직속 가주니깐요.”

“그래서 어떤 것 같습니까, 다들? 새로이 취임하는 가주에 대한 소문이 꽤 요란하던데.”

이 말에 타이탄 가문의 가주가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아더 바이에른. 그에 관한 소문은 무수히 많지만 모두가 다 허황되지 않습니까?”

타이탄 가주의 말에 이번엔 레이첼 가문의 가주가 능글맞은 미소를 띠었다.

“듣기로 소드마스터라던데… 하하! 그 소문을 듣고 나서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대륙에 공식적으로 지정된 소드마스터가 채 10명이 안 되는데,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소드마스터의 자리에 오르겠습니까?”

제이 가문의 가주가 와인을 들이켜며 대답했다.

“하지만 뭐… 가닥은 없는 것 같지 않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의 돌 정도면 뭐라도 한수가 섞여 있지 않겠소?”

새로운 가주의 논평을 한 그들이,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최근 바이에른 상태가 안 좋다느니.

옛 영광을 잃어버렸다느니.

바이에른의 방계치고, 꽤 수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였다. 한쪽 구석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니가 중얼거렸다.

“지랄하네.”

저들의 헛소리를 무시하려 해도 예민한 청각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니는 입술을 삐쭉이며 중얼거렸다.

“소드마스터가 뭐 허황된 이야기? 바이에른이 무너져?”

믿어주는 거 바라지도 않지만, 자칭 방계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저게 뭐라 말인가.

그때 어느사이엔가 등장한 안나가 물었다.

“지니 왜 그래요?”

“아, 안나.”

“표정이 안 좋은데요?”

지니가 고민하다 턱짓했다.

“저 사람들 바이에른 방계 아니에요?”

지니의 말에 안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곁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 맞아요. 타이탄 레이첼 제이. 모든 바이에른의 방계 가문이자, 바이에른을 지원하는 분들이죠.”

“그런데 왜 바이에른을 지원하는 가문의 가주들이, 바이에른을 욕하는 거예요?”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안나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이에른의 권위가 그만큼 약해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것만큼 어울리는 이유가 없네요.”

지니가 단번에 상황을 이해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공자님이 그 케인 도르문트 백작에게 한 방을 먹였음에도, 아직도 이렇구나.’

하긴 망해가는 가문이 그렇게 쉽사리 되살아 날리가 없다.

지니는 그 찹찹한 현실을 느끼며, 바이에른 방계들을 게속해서 노려볼 때였다.

바이에른 성의 1급 관리사.

헤이치의 목소리가 성내 전체에 울려퍼졌다.

“지금부터 바이에른 가주의 취임식이 있겠습니다-!”

“…!”

그 외침에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 모두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연미복을 입은 헤이치와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요넬과 아이린이 보였다.

“오오….”

“저분이 그 미모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아이린 공녀님이군!”

“옆에는 요넬 바이에른 각하시구나…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시구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리며, 바이에른 모녀의 미모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건 바이에른의 방계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은 다른 의미로.

“오호… 아이린 바이에른. 생각보다 미모가 출중하군요.”

“수도에서 내로라하는 미녀라지요?”

“하지만 그 아더 바이에른 때문에 약혼식이 파기 된 몸이지 않습니까?”

“흠칩이 나도 제대로 흠집이 나버렸군요. 귀족가 가문의 여식이 파혼한 몸이라니 큭큭….”

이 말과 함께 그들은 요넬도 품평하기 시작했다.

“가주께서도 외모는 여전하십니다.”

“저 외모 덕분에 바이에른의 시집을 올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허허… 그것 참 성공한 삶입니다. 외모를 팔아서 바이에른의 안주인이 되다니. 계집들이 모두가 바라는 삶 아닙니까?”

그 선을 넘은 발언에, 지니가 울컥해 뛰쳐나가려 할 때였다.

옆에 있던 안나가 만류했다.

“안 돼요 지니. 사고를 치더라도 지금은 안 돼요. 공자님의 취임식이잖아요!”

그녀의 말에 지니가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서, 물러났다.

허나 거칠어진 호흡은 숨길 수 없던 그때, 헤이치가 다시 소리쳤다.

“바이에른의 적통한 핏줄-! 천 년을 이어온 가문을 이어 받을 새로운 주인이 등장합니다!”

그 외침과 함께 모두가 단상 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검은 머리칼이 휘날렸다.

“…!”

새하얀 연미복.

그 연미복과 반대되는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

만약 바이에른이라는 말을 외모로 표현한다면, 지금 눈앞의 남자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내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 탓에 하객들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온 순간, 아더가 입을 열었다.

“아아.”

“…?”

“모두 잘 들리시나요?”

이 말에 하객들이 입을 다물고서, 아더를 바라봤다.

그 집중된 이목 속에서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아더 바이에른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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