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73화 (173/265)

제173화

미간이 구멍이 뚫린 헤이치가 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넬이 입을 뻐끔거렸다.

“헤이치 관리사님이… 살아나셨어?”

탄성을 내지른 요넬이 그대로 혼절했다.

옆에 있던 아더가 자연스럽게 쓰러지는 요넬을 안아들었다.

그 사이 헤이치가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이런 씨부럴… 이래서 내가 바이에른 가문 놈들을 안 좋아해.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뜸 총알을 박아? 이런 미친 짓은 전대나 후대나 다를 게 없군."

이 말과 함께 헤이치의 긴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그의 미간에 난 구멍이 말끔히 메워졌다.

쓰러진 요넬을 안아들고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놀라 질문했다.

“어라? 상처가 재생되다니… 당신 정체가 뭐예요?”

“뭐긴 뭡니까. 바이에른 성의 관리사지.”

“평범한 관리사가 미간에 구멍이 뚫리고도 살아남는다고요?”

아더의 질문에 헤이치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뭐, 조금 특별한 관리사입니다. 미간이 구멍이 뚫리고도 살아남는.”

“흐음….”

“불길하게 왜 말을 흐리십니까?”

“다른 곳에 구멍이 뚫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

순간 경직된 헤이치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진심이십니까?”

“그런 진심이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손에 들린 비스트를 휘리릭 돌렸다.

위협적으로 빛나는 검은색 묵빛 권총의 자태에 헤이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권총… 위험하군. 미간이 아니라 심장에 맞았으면 바로 골로 갔겠어.’

그 탓에 헤이치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던 욕지거리를 참았다.

어째 바이에른 혈족이 가주의 취임식을 한다 했을 때부터, 느낌이 쎄하다 했더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 와버렸군.’

그것도 대뜸 미간에 총알부터 박고 보는 미친놈.

그때 내성 경비대가 뒤늦게 몰려와 소리쳤다.

“관리사님! 갑자기 총성이…!”

“아이고 아닙니다 경비병 여러분.”

“…네?”

“실수입니다, 실수. 그냥 천재지변 같은 실수이니,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헤이치의 설명에 내성 경비대가 망설였다.

“그, 그래도 총성이 울려퍼졌는데 실수는 조금….”

“괜찮습니다. 누가 에덴의 성에서 총을 쏘는 미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흠.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다시 경비를 서로 가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경비대들이 다시 물러났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헤이치가 돌연 표정을 바꾸며 중얼거렸다.

“하아… 저 무식한 창잽이놈들. 사고가 터진 뒤에 오면 무슨 의미가 있어? 확 다들 자르던가 해야지….”

“…….”

“그것보다 공자님? 지금 설명하기에는 자리가 조금 아닌 듯하니, 장소를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헤이치의 질문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당신 재밌네요.”

“…네?”

“재밌다고요 당신. 흠… 일단 도르문트 첩자는 아닌 것 같은데, 정체가 대체 뭐예요?”

헤이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대화가 안 통하는 것도 바이에른 핏줄답군요. 다 설명 드릴 테니 장소부터 옮깁시다.”

* * *

헤이치를 따라, 바이에른의 내성으로 들어온 아더가 감탄을 터트렸다.

“와… 완전히 옛날 건축 양식이네요?”

그가 데리고 온 응접실은, 평범한 저택에서는 볼 수 없는 1000년 전 시대의 양식을 본 따 만들어진 그림과 도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흔하게 볼 수 없는 고대 양식들에 아더가 눈빛을 빛낼 때 헤이치가 설명했다.

“이 성은 천년 전 세워진 뒤로 줄곧 증축과 보완만 해왔습니다. 천년 전 시대의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죠.”

이 말과 함께 헤이치가 쓰러진 요넬을 조심스레 쇼파에 눕힌 뒤 질문했다.

“차로 하시겠습니까, 커피로 하시겠습니까?”

“커피요.”

“샷은?”

“한 다섯 개만 넣어주세요.”

헤이치가 미묘한 탄성을 터트렸다.

“그 빌어먹을 입맛도, 바이에른 가문답군요. 혹시 초대 바이에른 가주의 환생 아닙니까?”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대 바이에른 가주가 커피를 이렇게 먹었나요?”

“커피뿐만이 아니라, 여러면에서 닮으셨습니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바이에른 초대 가주와 닮았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데 바이에른 초대 가주는 천사 아니었나?’

그때 어느사이엔가 커피를 만들어온 헤이치가 잔을 내밀며 말했다.

“…일단 설명하기에 앞서서 확인을 좀 하고 싶은데, 제가 왜 1급 관리사 헤이치가 아니란 겁니까?”

그의 말에 아더가 잔을 집으며 대답했다.

“제가 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거든요. 그래서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어요.”

“오호. 바이에른 혈통 능력으로 수집한 능력입니까?”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아더의 질문에 헤이치가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이에른의 고성을 관리하는 관리사라면 이 정도는 당연하죠. 그보다….”

말을 흐린 헤이치가 돌연 고개를 숙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이었지만, 아더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게 딱 한 뼘을 두고 서로의 시선을 한동안 마주치던 때 헤이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이에른 혈통이 서서히 깨어나고 계시는군요.”

“바이에른 혈통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고요?”

“예. 뭐, 이건 설명을 하려면 길지만….”

말을 흐린 헤이치가 고민하다 눈빛을 빛냈다.

“일단 전 평범한 인간은 아닙니다.”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 평범한 인간은 아니겠죠? 미간에 구멍이 뚫렸는데?”

“…킁 실망스러운 반응이군요.”

“아. 깜짝 놀라는 척할까요?”

“됐습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실도 아니고… 흠. 그래서 제 정체는.”

헤이치가 제 가슴팍의 상의를 갑자기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수북한 털에 아더의 눈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진 순간.

그의 가슴팍 한가운데 박힌 원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 그건….”

“핵입니다. 쉽게 말해서….”

헤이치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바이에른 고성을 지키는 골렘(golem)입니다. 그것도 무려 천 년 동안 지켜온.”

* * *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바이에른 성을 지키는 골렘이라고요?”

“뭐, 말이 골렘이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요?”

“먹고 자고 싸는 거?”

“…….”

“농담 같지만 정말입니다. 아주 특수한 주술 몇 가지를 제외하면 저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골렘이라. 그래서 오망성의 눈동자가 거짓말이라 했구나.’

1급 관리사가 아닌 데 1급 관리사라 말해 오망성의 눈동자가 거짓이라 판별한 듯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상황은 해결된 게 아니었다.

‘천 년 동안 바이에른 고성을 지켜온 골렘? 이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요넬도 깜짝 놀라 기절한 보니,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인 것 같았다.

흥미를 느낀 아더가 질문했다.

“뭐 때문에 성을 지키고 있는데요?”

“가주의 명령 때문이죠.”

“…가주의 명령이요?”

헤이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데니안 바이에른]. 그분의 명령에 따라 고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더의 눈이 커졌다.

“데니안 바이에른이라고요? 그분은 바이에른의 시초 아니에요?”

“맞습니다. 저는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 성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요? 천 년 동안 지켜올 정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은데?”

아더의 질문에 헤이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금 들을 수 있는 대답이 아닙니다.”

“…그럼?”

“가주가 된 뒤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

헤이치의 눈빛이 번뜩였다.

“가주가 된 뒤에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자격이 되면 모든 비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더 바이에른.”

* * *

헤이치의 만남이 끝난 뒤, 요넬이 깨어났다.

“…뭔가 또다시 꿈에 꾼 것 같구나. 설마 다시 병이 도진 건 아니겠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요넬은 조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더는 헤이치가 조금 전 그녀의 기억을 지워준 것이라 생각했다.

‘흠… 제 정체를 비밀로 해야 해서 지운 건가?’

보면 볼수록 신기한 골렘이었다.

기억도 지울 수 있고, 미간에 뚫린 구멍의 상처도 치료하고.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골렘이 바이에른 영지인 [에덴]에서 꽤 신임받는다는 사실이었다.

“헤이치 님! 여기 사과 좀 가져가십시오!”

“어이쿠! 헤이치 님 수염은 오늘도 멋지십니다, 허허-!”

“일 좀 쉬엄쉬엄 가려서 하십시오. 그러다 쓰러지실까 걱정됩니다!”

어딜 가나 에덴의 영지민들이 그를 반겼다.

어쩌면 바이에른 일족들보다, 영지민들은 헤이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아더가 유심히 지켜보던 때,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안나가 속삭였다.

“공자님. 저기 좀 봐요.”

“…뭔데요?”

“저기. 지니하고 아이린 공녀님이요.”

안나의 말에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찻잔 하나를 두고 어색하게 대치 중인 아이린과 지니가 보였다.

그 모습에 아더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오… 저 두 사람. 뭔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요?”

“큭큭… 그래서 재밌지 않아요?”

“…….”

“아아… 너무 좋아 저런 거. 어색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안나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안 본 사이에 뭔가 고약한 취미가 생긴 것 같은데 안나?’

그사이 싱글벙글, 입가에 미소를 띤 안나가 부탁했다.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긴 한데, 저 두 사람 이대로 좀 놔둬 보는 거 어때요, 공자님?”

“…이대로 놔두자고요?”

“누가 개입하는 것보다, 알아서 친해져야 진짜 친구가 되죠!”

그녀의 말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러죠. 어차피 제가 개입한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깐.”

그 사이 바이에른 가신들이 부지런히 짐을 날랐다.

즉위식에 필요한 물품 준비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고성의 청소까지.

덕분에 고요하던 바이에른 고성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해졌다.

허나 밤이 내려앉고, 달이 뜬 순간 성은 예전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 속에서 아더도 잠을 잘 준비를 하고서 침대에 누웠다.

이런저런 상념과 함께 서서히 눈을 감은 아더가 숙면을 취하려던 순간이었다.

낯선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더 바이에른.]

“…!”

눈을 치켜뜬 아더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뱀파이어 로드 혈통을 일으켰다.

채앵-!

핏빛으로 된 검을 오른손에 쥐어지고, 남은 한 손에는 침대 머리 위에 올려둔 비스트를 쥐었다.

순식간에 경계 태세를 마친 아더가 재빨리 적을 찾으려던 순간이었다.

“…흠?”

분명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탓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환각인가?”

그 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더 바이에른.]

“…!”

깜짝 놀란 아더가 입을 벌려 중얼거렸다.

“어라? 유령?”

허나 그런 것치고, 유령 비슷한 무언가도 보이지 않았다.

아더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질문했다.

“저기요? 누구길래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아더 바이에른.]

“저 아더 바이에른 맞는데, 누구신데요?”

[아더 바이에른.]

“…….”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대화가 안 통하는 건 오랜만이네. 설마 흑마법사인가?”

흑마법사는 대화가 안 통한다.

그 공식을 떠올리며,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가족들이 있는 성에 흑마법사의 등장은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일을 벌이기 전에 처리해야지.’

그렇게 방 밖을 빠져나온 아더가 복도를 거닐었다.

그 사이에도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아더 바이에른.]

[아더 바이에른.]

[아더 바이에른.]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어느 방향을 지점을 해서 커졌다가 작아졌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오? 설마 나보고 이쪽으로 오라는 표시인가?”

상황을 보니 그런 듯했다.

아더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이럼 나야 좋지. 굳이 길을 찾지 않아도 되니깐.”

예민한 감각으로 목소리가 커지는 방향을 잡아낸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아더 바이에른.]

그 방향은 오른쪽도 왼쪽도.

그렇다고 해서 위도 아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목소리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지하에서 날 부르는데?’

그런데 이성에 지하가 있던가?

고민하던 아더는 일단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헤매니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성의 중앙 현관 한가운데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위치해 있었다.

“땅밑에 숨어 있는 것도 딱 흑마법사 같은데?”

비스트를 휘리릭 돌려잡은 아더가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이곳이 맞았는지, 아래로 내려갈수록 머릿속으로 들려오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더 바이에른.]

이제는 슬슬 귀청이 얼얼해질 때쯤.

지하의 계단이 끝났다.

아더는 고개를 들고서, 사자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대문을 바라보았다.

“…성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네?”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고민하다 문을 툭 건드려보았다.

쿵.

단단히 닫힌 문은 열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아더가 고민했다.

‘부셔버리고 지나갈까. 아니면 사람을 불러와서 열어달라 할까.’

그 선택지 속에서, 일단 부시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였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작은 것들은 따질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부수고 보자.’

결정을 내린 아더가 비스트의 방아쇠를 당겼을 떄였다.

갑작스럽게 굳게 갇혀 있던 대문이 벌컥 열렸다.

“…!”

깜짝 놀란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물러나는 사이, 환한 빛이 아더를 휘감았다.

자연스레 두 눈을 감은 아더가 짧은 신음을 토해낸 순간이었다.

낯선 목소리가 아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더 바이에른.]

“…?”

순간 몸을 떤 아더가 입을 벌렸다.

‘뭐지?’

왜 이 목소리가 지금 들리는 거지?

그 사이 다시 한번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더 바이에른.]

그 부름에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자신과 똑 닮은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아더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질문했다.

“아버지가 왜 여기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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