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71화 (171/265)

제171화

이른 아침.

바이에른 가신들이 새벽부터 출근해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하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시리언 집사님!”

“오 켈루덴 경!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나오셨습니까?”

“밤잠을 잘 자니, 새벽바람부터 일어났지 뭡니까? 그래서 일찍 출근했습니다!”

차디찬 새벽 바람이 부는 이른 시간이지만, 바이에른 가신들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하호호 웃으며 서로를 향해 인사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기분이 좋다고 그렇지, 아침 댓바람부터 저렇게 웃을 기운이 있나?”

그녀의 말에 아이린이 우아하게 커피를 들이켜며 대답했다.

“그 정도로 가문의 상황이 좋다는 이야기겠지요. 도르문트가 가문 내부에서 완전히 싹 물러가지 않았습니까?”

“흠… 그건 그렇네요. 거기다 가주님께서도 돌아오셨고.”

“맞아요. 어제 저녁에 어머님이랑 이야기 하시니 완전히 나으신 것 같다 하더라고요.”

“도르문트 가문도 완전히 물러나고, 가주님도 돌아오고 완전히 겹경사네요?”

“그렇죠. 제가 본 가문의 상황 중에서 최고로 좋아요.”

안나가 짖궂게 웃었다.

“그게 다~ 7년만에 돌아온 공자님이라는 덕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아이린이 시선을 좁혔다.

“…안나. 며칠 전부터 제게 왜 계속 오라버니를 언급 하시는 거예요?”

“네~? 제가 언제요~ 그리고 공자님 이야기 좀 하면 어때서요? 다른 가신들도 다 공자님 이야기만 하던데?”

“…안나는 뭔가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아이린의 지적에 안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이고… 아이고 귀여워라! 진짜!'

오빠 이야기만 하면, 화가 난 아기 고양이처럼 반응하는 아이린.

직책상 직속 상사만 아니었다면, 두 볼을 쭉 늘리고 싶은 안나였다.

'공자님 이야기만 꺼내면 부끄럼 타는 게 어우….'

말을 흐린 안나가, 심호흡 하며 충동을 억눌렀다.

아무리 아이린이 귀여워도, 볼을 꼬집는 건 안 된다.

상대는 무려 공작가의 공녀.

상황에 따라 곧바로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안나가 제 음흉한 속내를 다스리는 사이, 아이린은 웃음꽃이 만개한 바이에른 가신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오빠지만,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바이에른 가신들을 저토록 웃게 만들 수 있다니.

물론 그 업적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그 케인 도르문트에 칼을 들이대고, 바이에른의 공작인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지 않았는가?

'거기다 검술 실력은 소드마스터에,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술사?'

안나와 약속해 아직 비밀로 하고 있긴 하지만, 소문이 퍼진다면 제국을 넘어 대륙이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사실이었다.

그 탓에 아이린은 제 오빠에게 뿌듯함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부담감도 동시에 느꼈다.

'오빠가 돌아온 이상 후계자 자리를 더 이상 유지 안 해도 되지만 공작가의 일원으로서 나도 뭘 해야 하는데….'

아더 바이에른이 대단한 만큼, 제 초라함이 더욱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신은 공작가의 공녀라는 직위만 빼놓고 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녀일 뿐이었으니.

그 탓에 아이린이 남몰래 속앓이를 할 때였다.

저 멀리서 가주 직속 집사가 다가와 말했다.

“공녀님 집사장님. 가주님의 호출입니다.”

집사의 말에 두 여자의 눈이 커졌다.

“가주님의 호출이요 갑자기?”

“예. 긴히 드릴 말이 있다고 합니다.”

두 여자가 서로를 쳐다봤다.

“흠… 무슨 일이실까요?”

“글쎄요. 갑자기 호출 하실 이유가 딱히 없는데….”

말을 흐린 안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뭐 큰일이야 있겠어요? 가시죠 공녀님.”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이 가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가주님. 집사장 안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안나.”

이 말과 함께 방문이 열렸다.

그 순간 안나와 아이린이 동시에 눈을 치켜떴다.

“오라버니?”

“공자님?”

두 여자의 부름에 요넬과 대화를 나누던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아 왔어요 여러분?”

아더의 인사에 두 여자가 눈을 굴렀다.

아더까지 이자리에 있다는 건,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꽤 무거운 주제란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때 요넬이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 다 같이 앉을까요?”

그녀의 제안에 아이린과 안나가 슬그머니 아더의 옆에 앉았다.

잠시 그런 세 사람을 지켜본 요넬이 입을 열었다.

“모일 만한 사람들은 다 모였구나 아더. 그러니 이제 답을 들려주겠니?”

그녀의 질문에 아이린이 눈을 끔뻑였다.

“답이라니요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어젯 밤, 나는 아더에게 제안을 했고 아더가 그 답을 마침내 가져왔다는 구나.”

제안? 답?

영문 모를 소리에 아이린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침묵하던 아더가 입을 열었다.

“네 결정했어요 어머니.”

이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집중된 이목 속에서 아더가 방긋 웃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가주가 되겠습니다. 저에겐 바이에른 사람들의 힘이 필요해요.”

* * *

방안에 잠시 침묵이 깃들었다.

“…….”

그 침묵 속에서 두 여자가 눈을 끔뻑였다.

조금 전에 내가 뭘 들은 거지?

가주? 바이에른 가문의 힘?

잠시 고민하던 두 여자가 뒤늦게 경악했다.

“가, 가주-!!”

“오, 오라버니가 가주가 된다고요!?”

아이린이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오라버니? 가주가 된 다니요?'

그녀의 질문에 아더 대신 요넬이 대답했다.

“말 그대로란다 아이린. 나는 어제 아더에게 가주가 될 거냐 제안했고, 아더가 그 답을 내놓은 거란다.”

아이린이 순간적으로 숨을 참았다.

“…그럼 어머니께서 가주의 자리에 내려오신다는 말씀이세요?”

요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슬슬 내려올 때가 되었지. 애초에 내 자리가 아니었으니깐.”

넋을 놓고 있던 안나가 더듬거리며 질문했다.

“하, 하지만… 가주님.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 아닐까요? 이런 일은 가문 사람들 전부를 불러놓고 결정을 내리시는 게…”

“안나.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네?”

“지금 가문 사람들한테 물어, 아더가 가주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

안나가 입을 다물었다.

요넬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아더가 가주되는 것에 딱히 반대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들 반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한 가문의 가주.

그것도 바이에른의 새로운 공작이 탄생하는 일을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해도 되는 지 의문이었다.

그 탓에 안나가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요넬이 질문했다.

“아더. 두 사람이 납득을 못하는 것 같고 나도 궁금하구나. 가주가 되기로 한 이유가 뭐니?"

요넬의 말에 여태 침묵하던 아더가 입을 열었다.

“힘.”

“…?”

“힘이 필요해서 가주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어머니.”

안나와 아이린이 눈을 끔뻑였다.

힘? 갑자기 웬 힘?

이미 소드마스터에다 정령왕과 계약한 남자가 무슨 힘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 때 요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힘이 필요하지. 그걸 이제 깨달은 거구나.”

“예.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기엔 부족함을 느꼈어요.”

두 사람의 대화에 아이린이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오라버니? 가주가 되는 이유가 힘이 필요해서라니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전쟁을 혼자서 치를 수 없잖아요?”

“…전쟁이요?”

“네. 도르문트와의 전쟁.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이에른의 힘이 필요해요.”

“……!”

아이린이 경악해 입을 벌렸다.

“저, 전쟁이요 오라버니? 도르문트와 전쟁을 하실 생각이에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전쟁이라니… 더군다나 상대는 황가를 등에 업은….”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이린. 이번 전쟁은 꼭 필요해요.”

“전쟁이… 꼭 필요하다고요?”

“네. 어차피 우리 쪽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저쪽이 알아서 쳐들어올거에요.”

“……!”

“케인 도르문트가 과연 이번 사태를 그냥 넘길까요? 아뇨. 전 아니라고 봐요.”

아더의 대답에 아이린이 숨을 참았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전쟁이라니.'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범한 소녀인 아이린에게 있어, 전쟁이란 쉽게 받아들 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으니.

그 탓에 아이린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요넬이 입을 열었다.

“나도 전쟁이 두렵고 무섭구나 아이린. 하지만 이번 만큼은 아더의 말이 맞다고 본다.”

“…어머니?”

“우리는 오랜 세월 참아왔어. 허나 도르문트는 우리를 향한 도발을 멈추지 않았지.”

요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 달라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요넬의 분노에 아이린과 안나가 순간 몸을 떨었다.

“평화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그들은 어떤 식으로 보답했지 아이린?”

“…….”

“더욱 더 악랄하게 우리를 괴롭혔지. 그리고 이번에는 괴롭히는 정도로 멈추지 않을 것이란다.”

요넬이 눈빛을 빛냈다.

“어떻게 해서건, 우리를 멸문시키기 위해 진격해 올 거란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지.”

아이린과 안나가 침묵했고, 아더는 방긋 웃었다.

'어머니… 나랑 똑같은 생각이구나?'

요넬의 말대로 도르문트는 이번 일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에 걸맞는 복수를 해올 것이고, 그 복수의 수위는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르문트가 정말로 바이에른을 멸문시키려 들지 모르지.'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역시나 전쟁 밖에 없었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최후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참혹한 전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야 말로 바이에른 이라는 힘을 한 데 모을 시간이야.'

바이에른의 저력은 충분히 확인한 뒤였다.

아이린과 빌의 약혼 식에서 당당히 제 등뒤에 섰던 그 기사들의 충성심.

그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아더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걱정하지마세요.”

“…….”

“어떤 일이 생기건, 두 사람은 반드시 지켜낼 테니깐. 이건… 맞아요.”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케인 도르문트와 저의 싸움에 싸움에 가깝기도 해요. 결국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죽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 날 테니깐.”

아더의 말에 아이린과 안나가 침묵했다.

“…….”

두 여자는 아더의 말에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 한 편, 흔들림이 없는 아더의 모습에 무한한 신뢰를 느꼈다.

그 탓에 깊게 고민하던 두 여자였지만, 결국 대답했다.

“오라버니를 믿을게요.”

“저도 공자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아더가 공자의 자리에 오른 다면, 그에 맞게 지지를 해줘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 사이 원하던 대답을 들은 아더가 방긋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절 믿어줘서 고마워요. 그 보답으로 반드시 케인 도르문트도 이안처럼 목을 베어낼게요.”

“네. 오라버니. 반드시 케인 도르문트도 이안….”

아이린이 순간 움찔 놀라 몸을 떨었다.

“…?”

그건 옆에 있던 안나와 요넬도 다르지 않았다.

세 여자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다, 아더를 향해 질문했다.

“어… 공자님?”

“네?”

“조금 전 말씀… 무슨 이야기에요?”

안나가 말을 더듬거리며 질문했다.

“그, 그… 이안 도르문트처럼 케인 도르문트의 목을 벨 거라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안나의 말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제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이안 도르문트를 죽인 거 바로 저예요.”

“……!”

세 여자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이안 도르문트를… 오라버니가 죽였다고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모르더라고요? 심지어 그 케인 도르문트도.”

세 여자의 표정이 공포와 충격으로 물들었다.

* * *

칸 마드리드.

황태자로 올라선 현 제국의 실권자.

차기 대륙의 패자로서 새 시대의 황제인 된 그였지만,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떠도는 소문이나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그를 봤다는 사람도, 마주쳤단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그 탓에 신비주의 황자라고도 불리는 그가 천천히 밤길을 거닐었다.

“…….”

달밤이 내려앉은 거리는 매우 고요하고 한산했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칸이 한 곳에 멈추어 섰다.

그 순간 닫혀 있던 대문이 열리고, 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대문 너머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황궁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저택은 마치 미로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칸은 그 저택을 익숙하다는 듯 거닐었다.

그렇게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등불 삼아 한참을 걷던 칸이 다시 멈추어 섰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뱀이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황태자 전하.”

“…….”

“안으로 드시지요.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뱀이 굽혔던 허리를 펴고, 방문을 열었다.

동시에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케인 도르문트가 보였다.

얼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흉터를 가진 그가, 쥐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칸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케인 도르문트.”

“……!”

칸의 명령에 케인의 감겨 있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동시에 거친 숨을 토해낸 그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황태자 전하?”

케인의 말에 칸이 웃었다.

“그래. 너의 주인 이 나라의 황제 칸 마드리드다.”

그 미소와 함꼐 칸의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칼이 달빛에 반사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인은 생각했다.

“…….”

눈앞에 보이는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

그것이 꼭 제 가슴팍을 베어낸 [아더 바이에른]과 비슷하다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