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파티장의 2층.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던 레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저 미친 친구. 자기네 수호기사는 또 왜 저렇게 만든 거야?"
잠자코 있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설마 바이에른의 수호기사 하루덴을 죽이며 들어올 줄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레온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쁘지 않군. 하루덴 저자는 도르문트가 바이에른에 숨겨 놓은 세작이었으니깐.'
문제는 아더가 그 세작을 어떻게 눈치챘냐는 거다.
고민하던 레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뭐가 문제야?'
아더 바이에른이 돌아왔다.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아케인의 전설적인 위업을 달성한 용병.
그가 7년이란 시간을 뛰어넘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런 와중에 도르문트가 점령한 아케인을 제손으로 구해냈다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다른 누구도 아닌 7년 만에 살아 돌아온 아더 바이에른이 그 아케인을 구원했으니.
'만약, 치즈이 교수님이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더라면 절대 못 믿었겠지.'
그래서 레온은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즉각 움직였다.
아더 바이에른은 항상 놀라운 일을 해내지만, 가끔은 무모함을 넘어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이안 도르문트.
아더 바이에른의 손에 죽은 도르문트의 장남과의 첫 만남 때도 그랬다.
그는 놀랍게도 아케인 대학 교정 내에서, 이안 도르문트를 죽이려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짐작으로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이성을 맡긴 듯해 보였다.
그 탓에 레온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성공하든 못하든 그 여파는 엄청날 것이고, 아더 바이에른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아더가 염두에 뒀을까? 아니… 아니지.'
괜히 아더 바이에른을 미친놈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그래서 레온은 아더의 다음 행적지를 손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아이린과 빌의 약혼식? 이 미친놈이 갈 곳은 뻔하지.'
다행히 예측은 맞 떨어졌다.
도르문트의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사고를 치러 오는 아더 바이에른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직은… 이르다. 아더 바이에른과 케인 도르문트가 싸우기에는 아직 일러.'
설령 아더가 케인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 후폭풍으로 인해 바이에른이 무너질 것이다.
그 모습을 레온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더는… 케인을 넘어서 칸 마드리드. 그 남자도 죽여야 한다. 하지만 바이에른이 무너진 아더는 칸을 죽이지 못할 거야.'
허나 7년 만에 돌아온 미친놈의 분노를 잠재울 무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레온은 고민 끝에 빌과 아이린의 약혼식을 무대로 선택했다.
'여기라면 명분도 실리도 충분하다. 덤으로 아더의 복귀 사실도 널리 알릴 수 있고.'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 판단이 맞는 듯했다.
레온은 얼이 빠진 케인 도르문트와,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마음껏 날뛰게 내 친구."
레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뒷수습은 내가 해주지. 자네의 복귀식… 마음대로 해보라고."
* * *
아더는 눈앞의 광경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놀랍게도 이 공간에 보고 싶던 사람들이 전부 다 모여 있었다.
애꾸가 된 빌도 있었고, 도르문트의 13귀도 보였다.
입을 벌린 채 경악을 숨기지 않은 케인 도르문트도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쓰러져,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린도 있었다.
"오… 빠?"
그녀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거리가 있음에도 귓가에 똑똑히 박혔다.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그녀의 모습에 아더는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저게 훌쩍 커버린 아이린이구나.'
과거에는 저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훌쩍 커버린 아이린은, 자신이 돌아왔을 땐 이미 자살한 뒤였으니.
'듣기로 빌 도르문트에게 두들겨 맞다가 그렇게 됐다지?'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을 떠올린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을 때였다.
아이린 옆에 있던 누군가가 털썩 쓰러졌다.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
고개를 돌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빌."
"……."
"진짜 오래만이네요. 안대를 한 모습이 잘 어울리는데요?"
아더의 말에 빌의 입이 벌어졌다.
'진짜… 아더 바이에른이라고?'
제 눈을 빼버린 그 미친놈?
정말로 그 미친놈이 7년만에 돌아왔단 말인가?
쉽사리 믿을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떴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눈앞의 아더 바이에른은 진짜였다.
자신의 악몽이 만들어낸 거짓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아더 바이에른이었다.
이 사실을 인지한 순간, 빌의 입에서 거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끼에에에엑-!"
그 비명과 함께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넋을 놓고 있던 귀족들이 뒤늦게 경악을 토해냈다.
"저, 저놈 뭐야!"
"꺄아아아아-!"
"미친놈이다! 미친놈이 등장했어! 어서 저놈을 잡아!"
귀족들의 외침과 함께 바이에른의 사병들은 물론이고, 귀족들의 개인 호위 병력이 움직였다.
"시발! 생포고 뭐고, 일단 반쯤 죽여놔!"
"귀빈들의 안전이 우선이다! 얼른 움직여!"
"총기 발포를 허락한다! 정확히 조준해서, 저 인간만 쏴-!"
쏟아져 나오는 고함소리와 함께 장전되는 총구들.
그 난장판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이린이 소리쳤다.
"안 돼-!!!"
허나 그 간절한 외침은 총기를 든 군인들에게 닿지 못했다.
아더를 향해 장전된 총구로부터,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지켜보던 아이린이 비명을 지르다, 그대로 혼절했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린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쥴리!'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번개이 혈통이 깨어나며 벼락이 내리쳤다.
"…!"
바닥을 뒤덮은 전류가, 총기를 든 호위병력들을 모조리 기절시켰다.
날아오던 총알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귀족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건 빌도 다르지 않았다.
'무, 뭐? 어떻게 저놈이 벼락을 다루는 거지?'
설마 안 본 사이에 마법사라도 된 건가?
고민하던 빌은 몸을 돌렸다.
지금 상황에서 아더 바이에른이 마법사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날 죽이러 돌아온 거야! 날 죽이러 저 미친놈이 다시 돌아온 거라고!'
그 탓에 빌이 두려움으로 떨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달아나려던 순간이었다.
아더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어딜 그리 급히 가세요, 빌?"
"…!"
깜짝 놀란 빌이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 사이 단 한번의 도약으로 빌의 앞에 도착한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하고, 남은 눈도 반납해야죠?"
빌이 공포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빌었다.
"…사,살려줘! 아더 바이에른!"
이 말에 아더의 표정이 낮게 가라앉았다.
"살고 싶으면, 얌전히 살았어야죠. 아이린과 약혼식은 대체 뭐에요?"
"……."
"제가 경고했잖아요. 아이린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말라고. 그런데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아더의 질문에 빌의 표정이 핼쓱해졌다.
두근두근.
세차게 뛰기 시작한 심장과 함께 그의 영혼 속에 각인된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났다.
맨정신으로 뽑히는 눈알.
그 신경이 가닥가닥 끊기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는 섬뜩한 고통.
그 순간, 놀랍게도 빌의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트라우마에 각인된 고통이 한계를 넘어서 그의 맨정신을 잡아 이끈 것이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분노에 빌이 몸을 떨었다.
'이 자식이 왜 내 앞에서 당당한 거지?'
아더 바이에른은 갑자기 제 눈알을 뽑은 미친놈 아닌가?
그런데 그 미친놈이 왜 당당히 제 잘못을 따진단 말인가?
빌은 이를 뿌득 갈며 10년간 쌓아왔던 감정을 토해냈다.
"미친 새끼-!"
"…?"
"내 복수는 정당한 거다! 내 눈알을 산채로 뽑아냈으니, 너도 그 고통을 받아야지!"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흠… 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마 아이린과의 약혼, 더 나아가 자신이 한 행동이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잠시 고민하던 아더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와 동시에 아더가 빌의 목을 붙잡았다.
숨이 턱 하고 막힌 빌이 발버둥쳤다.
하지만 아더 바이에른의 악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허공으로 들어올려진 빌이 자연스레 아더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당신네 핏줄이 염치가 없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두려움에 벌벌 떨던 빌이 중얼거렸다.
"…내가 염치가 없어?"
"그럼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누구 때문이에요?"
빌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시발! 너 때문이잖아!"
이번에는 아더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모든 일이 저 때문이라고요?"
"그래! 네 놈이 내 눈알을 빼서 이 사달이 난 거잖아!"
"…진짜 바보예요, 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거예요?"
"…?"
"우리 가문을 먼저 건든 건, 당신네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눈알을 뽑힌 것만 생각해요?"
빌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약자가 도태되고, 잡아 먹히는 건 당연한 거야! 가문을 건드렸다고? 아니! 그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 바이에른이 도르문트에 잡아먹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이 말에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진짜 이렇게 생각한다고?'
약자가 도태되고 잡아먹히는 게 당연하다니.
그래서 도르문트가 바이에른에 잡아먹혀야 한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변을 어찌 이렇게 당당히 내뱉을 수 있을까.
그 탓에 믿을 수가 없었지만, 빌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 사실에 아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날 보고 미친놈 미친놈 그러지만, 진짜 미친놈들이 여기 있었네.'
그것도 핏줄 자체가 미친놈들인 가문이.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의 표정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래요? 그럼 지금부터 하는 제 행동도 정당방위겠네요. 그러니 너무 원망 마세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손이 움직였다.
그 순간 빌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깜짝 놀란 빌이 몸을 떨었다.
뭐지? 갑자기 왜 앞이 안 보이는 거지?
설마 아더 바이에른, 이 개자식이 무슨 수술을 부린 걸까?
시야가 암전 된 상태로, 그 원인을 고민하던 빌이 움찔 몸을 떨었다.
'…….'
오른쪽 눈이 화끈거렸다.
하나뿐인 눈이었기에, 그 고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빌이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점차 커지더니 머릿속을 광광 울려댈 정도로 커졌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그 감각에 빌이 당황할 때였다.
머릿속으로 불현듯, 조금 전 들었던 아더의 말이 떠올랐다.
'어딜 가시려고요, 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하고, 남은 눈도 반납해야죠?'
그 순간 빌의 입이 벌어졌다.
그와 동시에 황급히 손을 움직여 제 오른쪽 눈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 눈알, 눈동자.
지금 제 신체 중에 가장 중요한 부위가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빌이 비명을 토해냈다.
"…크아아악-!"
세상이 떠나갈 것 같은 그 비명과 함께 빌이 울음을 토해냈다.
"내, 내 눈!! 내 눈!!!"
"……"
"내 눈이… 내 눈이 없어! 없다고! 어디 간 거야!"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 눈물과 함께 빌이 더욱 발광했다.
그 모습은 딱하다기 보다는 추잡스럽고, 더러웠다.
잠시 그 광경을 아무런 말없이 지켜보던 아더가 손에 들린 눈알을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약자가 도태되고, 잡아 먹히는 건 당연하다."
조금 전 빌의 말을 따라 한 아더가 피의 검을 뽑아냈다.
"그럼 제 손에 당신이 죽는 것도 당연한 거네요. 당신은 쓰레기인데다 약자니깐…."
말을 흐린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그러니 너무 절 원망 마세요. 나중에 지옥에서 봐요, 빌 도르문트."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두 눈을 잃은 빌의 목에다 피의 검을 박아넣으려 할 때였다.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감각이 뒷덜미를 스산하게 만들었다.
눈빛을 빛낸 아더가 빌에게 찔러넣으려던 피의 검을 돌려 뒤쪽을 향해 휘둘렀다.
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내가 표정을 굳힌 채 검을 치켜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아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케인 도르문트."
케인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더… 바이에른."
10년.
그 긴 시간을 뛰어넘어, 두 사내가 다시 검을 맞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