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63화 (163/265)

제163화

수도에서 가장 거대한 두 가문의 약혼식.

그 명성에 걸맞게 전례 없는 화려한 연회식이 열렸다.

“허허… 내 생에 이렇게 화려한 파티는 처음보는군.”

“이 정도면 거의 왕가의 축제에 버금가는 정도 아닌가?”

“그런데 또 도르문트와 바이에른의 명성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군.”

연회에 참여한 귀족들은 파티의 규모에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의 파티는, 매일이 연회와도 같은 그들로서도 실로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케인 도르문트가 등장했다.

“…!”

연회의 음악이 잠시 중단되고,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

얼굴 중앙을 가로지르는 섬뜻한 흉터.

한 마리의 사자를 연상케 하는 사내가 파티의 입구장에 서 있었다.

‘저자가 제국의 실권자… 케인 도르문트.’

‘참으로 놀랍군… 저토록 젊은 나이에 제국의 1인자로 올라서다니.’

‘범상치 않은 자로다. 위세만으로 이 모두를 제압하다니….’

그 때,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케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앞을 가로 막던 인파가 놀랍게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마치 왕이라도 행차한 것 같은 현상이었지만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건 케인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아주 이 길이 아주 당연한 듯이 걸었고, 그 모습을 주변의 귀족들이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파티의 정중앙에 도착한 케인이 고개를 숙였다.

새하얀 백색 드레스를 입은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보였다.

케인은 그 소녀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다, 천천히 질문했다.

“공녀. 준비 됐소?’

그의 질문에 검은 머리칼의 소녀.

아이린이 대답했다.

“…예. 준비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케인이 명령했다.

“약혼식을 시작한다. 빌을 대려오도록.”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이었다.

* * *

케인 도르문트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었다.

술과 음악이 넘쳐흐르고, 무희들이 파티의 흥을 돋구었다.

그 흥겨운 분위기에서 한 쪽눈이 없는 사내와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등장했다.

이번 파티의 주인공 빌 도르문트와 아이린 바이에른이었다.

주변에 있던 귀족들이 그 두사람의 등장에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빌 공자님! 언제봐도 늠름하시군요!”

“어이쿠… 저번에 봤을 때는 소년 같으셨는데 벌써 약혼식을 올리시다니!”

“허허… 수도에서 제일 가는 미녀인 바이에른 공녀와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시다뇨? 제가 다 부럽군요.”

귀족들이 건네는 인사치례에 빌이 헤벌쭉 입꼬리를 올렸다.

“흠흠-! 내 신부가 예쁘기는 하죠!”

그 바보 같은 모습에 귀족들이 겉으로는 미소를, 속으로는 비웃음을 터트렸다.

‘참… 이걸 보면 도르문트 가문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어찌 이 바보 놈을 바이에른 공녀와 약혼시킨 걸까?’

‘진짜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

수도에서 제일가는 머저리인 빌 도르문트.

그의 존재는 수도 사람들이라면 모를 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한쪽 눈을 잃은 뒤, 바보가 되어버린 그는 매일 같이 해괴한 짓을 일삼고 다녔으니.

그 탓에 이번 약혼식은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견해가 다분히 들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바보의 결혼 상대가 누구인가?

바이에른 가문의 공녀.

제국에서 제일로 유서 깊은 가문의 한 명뿐인 후계자이자, 대단한 미인으로 소문난 아이린 바이에른 아니던가?

차이가 나도 어느 정도 났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번 결혼은 그 속내가 너무 보여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굳이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는 케인 도르문트를 위한 자리.

그런 곳에서 도르문트를 욕보일 행동 하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 없었다.

그 탓에 모두가 가식적인 미소를 띄운 채 빌과 아이린을 축복해주고, 그 광경을 상석에 앉아 지켜보던 케인이 중얼거렸다.

“뱀. 연회는 언제 끝나는 거냐?”

그의 질문에 두꺼운 후드를 둘러 쓴 뱀이 나타나 대답했다.

“적어도 12시까지는 자리를 지키셔야 될 것 같습니다. 가주시여.”

케인이 손가락을 툭툭 두들겼다.

“고작 약혼식일 뿐인데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군.”

“…식을 빨리 진행시킬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케인이 손을 휘저었고, 뱀이 자리에서 물어났다.

다시 홀로 남게 된 케인이 술을 홀짝일 때였다.

그런 그의 옆에 누군가 나타났다.

“어이쿠. 이 좋은 날에 왜 그리 처량하게 혼자서 술을 마시고 계십니까.”

제국의 칠황자.

동시에 최고의 바람둥이로 소문난 레온 마드리드였다.

케인은 에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에 눈을 치켜떴다.

“…황가의 인원을 뵙습니다. 황자.”

“오래만입니다 백작. 잘 지내셨습니까”

레온의 인사에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게 제국의 칠황자와 자신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날 찾아 온거지?’

그 때 넉살 좋은 미소를 입가에 건 레온이 호들갑을 떨며 질문했다.

“잠시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백작? 혼자와서 그런 지 아무도 저랑 어울려줄 생각을 않는군요.”

케인이 고민하다 자리를 내주었다.

그 옆에 털썩 주저앉은 레온이 잔을 내밀었다.

“짠 한 번 하시겠습니까?”

“…….”

케인이 잠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봤다.

‘이 망나니가 진짜 왜 이러지?’

2황자 칸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피의 숙청’날.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가의 일족.

그 일이 있고난 후부터, 레온 마드리드는 천하에서 손꼽히는 한량이 되어 살아갔다.

오죽하면 제국의 귀부인들 태반이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니, 그가 얼마나 방탕한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소문난 망나니가 귀부인이 아니라, 제 옆으로 와 잔을 부딪치자는 제안을 해오다니?

수상쩍인 그 행동에 케인이 눈길을 좁히며 질문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레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아닙니다만, 공과 잔을 부딪치려면 대화가 필요합니까?”

“저희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그랬던가요? 저와 공의 사이는 딱히 나쁘지 않은 걸로 알았는데.”

레온의 넉살에도 케인은 여전히 잔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레온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자 이야기 나라 이야기 정치 이야기.

주제는 중구난방이었고, 깊이 또 한 있지 않았다.

그 탓에 케인의 표정이 점점 기괴하게 물들어 갈 때, 레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남자 꼬시는 건 진짜 힘드네요. 보통 이렇게 했으면 뭔가 반응이 오기 마련인데.”

“…?”

케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자… 꼬시는 게 힘들어?’

이 천하의 난봉꾼 놈이 뭐라는 거지?

설마 지금 나한테 수작을 부렸다고?

어이가 없어진 그가 헛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레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백작. 아직 게임이 끝난 게 아닙니다.”

벌어졌던 케인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그 상태로 눈을 치켜 뜬 케인이 레온을 바라봤다.

레온의 입가에 걸고 있던 가식적인 미소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있었다.

“아직 내 형님… 칸 마드리드는 황위에 오른 게 아니죠. 누가 황위에 오를지는 끝까지 두고 봐야 할 겁니다.”

케인이 고개를 숙였다.

“황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말과 함께 케인이 레온을 향해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인생 다 산 것 같은 한량으로 살아오시던 분이, 갑자기 황위를 논하다니요. 갑자기 미치기라도 하신 겁니까?”

그의 말에 레온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흠…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요. 예. 미쳤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온이 비어있는 케인의 잔에다 와인을 따라주었다.

“친구 따라 수도로 간다는 말이 있지요? 절친한 친구가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백작.”

레온이 한가득 따른 케인의 잔을 퉁, 밀어넘겼다.

그 순간 잔에 담긴 레드 와인이 케인의 옷을 흠뻑 젖셨다.

그 탓에 케인의 표정이 굳어진 그 때, 레온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친개가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목을 물어뜯을 미친개가 말이죠.”

이 말과 함께 허리를 숙인, 레온이 자리를 벗어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케인이 레온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무슨 수술을 부렸는지 몰라도, 코앞에 있던 레온 마드리드는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그 탓에 케인의 표정이 굳어진 그 때, 주변의 시종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배, 백작 각하-!”

“이런-! 얼른 닦을 것을 가져오너라!”

그 난잡한 상황에 케인이 버럭 화를 내려던 순간이었다.

어느사이엔가 나타난 뱀이 놀란 눈으로 케인을 바라봤다.

“…가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의 말에 케인이 거친 호흡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뱀. 지금 당장, 레온 마드리드를 찾아와라.”

“…예? 제국의 칠황자 말씀이십니까?”

“그래. 당장 그 놈을 찾아 내 앞으로 대려와라.”

케인의 말에 뱀이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주의 말씀대로, 식을 앞당겼습니다.”

이 말과 함께 뱀이 연회의 한 가운데 선 아이린과 빌을 가리켰다.

“반지를 교환하고, 백년 가약을 선언하면 오늘 일정은 모두 마무리 될 겁니다.”

케인이 잠시 시선을 돌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제 아들과 바이에른의 공녀를 바라보았다.

제 아들 빌은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하고 있었고, 바이에른 공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레온의 경고를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레온 마드리드… 그 놈이 그런 말을 할리는 없고, 뭔가 있어.’

수상한 기류를 감지한 케인이 급히 명령했다.

“지금 당장 파티의 경호를 강화하고, 도르문트의 13귀 중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

허나 그의 말은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탕-!

난데없이 울려퍼진 총성.

그와 함께 대문이 열리고, 피투성이의 남자가 파티장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 광경에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이 눈을 끔뻑였다.

“…하루덴 경?”

놀랍게도 피투성이가 된 사내의 정체는 이번 파티의 경호를 담당하던 바이에른의 수호 기사.

하루덴이었다.

그 탓에 귀족들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던 그 때, 뱀이 놀라 소리쳤다.

“…무, 뭐!? 하루덴이 왜!?”

바이에른의 수호기사 하루덴.

그는 도르문트가 심어 놓은 바이에른의 세작이면서, 7서클의 경지를 이룬 고귀한 칼잡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피투성이가 되어 파티장 한복판에 쓰러진 것이었다.

‘무, 뭐지? 무슨 일이 얼아는 거야?’

중얼거림과 함께 뱀이 경악한 심정을 숨기지 못할 때였다.

파티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그 순간 피를 흠뻑 뒤집어 쓴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등장했다.

“…!”

파티장에 참석한 모두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 피에 흠뻑 젖은 채 나타난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기다리려다 죽을 뻔 했네요. 인내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말을 흐린 사내가 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 순간 케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아더… 바이에른?”

혹여 착각인가 싶어, 눈을 감았다 떴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피투성이가 된 사내는 7년 전 사라진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

아더 바이에른이었다.

그 사실에 케인이 경악한 심정을 숨기지 못할 때, 아이린도 놀라 자리에 쓰러졌다.

“오라… 버니?”

어찌나 놀랐는 지, 그녀는 자신이 숨을 잠시 멈추었단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상태로 아더를 지켜보던 아이린은 생각했다.

‘정말로 오라버니라고?’

믿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7년 동안이나 실종된 오빠가 아니던가?

‘설마 내가 만들어낸 환상인가?’

지금 제 옆에 있는 남자와 약혼이 하기 싫어 만든 꿈?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었다.

그 탓에 아이린의 표정이 점차 기괴하게 변해 갈 때였다.

머릿속으로 레온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겁니다. 아더 바이에른은 살아있습니다.’

그 말을 떠올린 아이린이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그녀의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끄흐흑. 오빠… 오빠-!”

그녀의 외침에 아더의 시선이 돌아갔다.

동시에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다.

화사하기 짝이 없는 그 미소에 아이린은 오열했고, 그 옆에 있던 남자는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

이번 파티의 주인공.

빌 도르문트였다.

* * *

빌의 인생은 순탄했다.

도르문트 백작가의 막내로 태어나 호위호식하며 일평생을 보냈으니.

가문의 일은 형님들이 책임지고, 자신은 그 그림자에 숨어 평생을 이렇게 살다 편안히 죽었을 운명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아더 바이에른을 만나고 틀어졌다.

‘지금부터 오른쪽 눈알을 뽑아낼 건데요 빌. 부디 잘 참아주세.’

벙어리에서 돌연 살인마가 되어버려 제 오른 쪽 눈을 돌연 뽑아버린 미친놈.

그 미친놈을 만난 뒤로 인생의 모든 것이 뿌리째로 흔들렸다.

그 누구를 만나건 괴성을 지르게 되고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어대는 지독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 병을 고치려 빌도 노력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제 눈을 뽑아버린 아더 바이에른이 누구인가?

수도에서 제일 가는 벙어리이자 머저리라 불리던 녀석 아니었는가?

그런데 그 벙어리이자 머저리 아더 바이에른이 갑자기 말을 더듬지 않더니 제 오른쪽 눈을 덜컥 뽑아버린 것이다.

그 누구라도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덕에 빌은 하루하루를 두려움에 떨며 살아갔다.

그런데 7년 전, 그 아더 바이에른의 실종 소식이 들려왔다.

아케인 대학에 입학한 그가, 제국의 수도로 돌아오던 길에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빌은 제 영혼에 새겨진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료되는 걸 느꼈다.

‘시발! 그 사이코패스 새끼! 잘 뒤졌다!’

지독한 트라우마였던 아더 바이에른이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그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제 오른 쪽눈을 이렇게 만들고, 정신이상자로 만들어 버린 아더 바이에른의 복수.

그 복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빌은 아이린 바이에른을 떠올렸다.

‘똑같이 만들어주겠어… 네 놈이 그토록 아끼던 여동생에게도 이 고통을 똑같이 전해주겠어!’

각오와 함께 빌은 조금씩 사회에 적응해 나아갔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아버지, 케인 도르문트도 말없이 아이린 바이에른과의 접전을 계속해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오늘.

마침내 아이린 바이에른과 약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10년을 참아온 복수가 마침내 이뤄지는 것이었다.

이날 부로 아이린 바이에른은 제 부인이 된다.

자신을 이꼴로 만든 아더 바이에른의 여동생에게 제 고통을 똑같이 건네줄 기회를 얻은 것이다.

빌은 그 사실에 전율했고, 오늘이 자신의 인생 중 가장 기쁘고 화려한 날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오늘이 마무리 될 줄 알았다.

피투성이인 아더 바이에른이 대문을 열고 나타나기까지는.

“빌 도르문트. 오랜만이네요.”

빌의 입이 벌어졌다.

동시에 그의 신체가 사시나무 떨리 듯 덜덜 떨렸다.

뭐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7년 전 사라진 아더 바이에른이 지금 나타난다 말인가?

‘설마 악몽인가? 아니면 누군가 나를 골려주기 위해 만든 쇼인가?’

머릿속으로 온갖 의문이 떠올랐지만, 아니었다.

눈앞의 아더 바이에른은 진짜였다.

제 눈을 뽑아내면서 미소짓던 그 모습이, 10년이란 세월을 지나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 영혼에 각인된 트라우마가 떠오른 순간, 빌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또 아이린을 건들였네요 빌. 역시 쓰레기는 재활용 될 수 없군요. 그러니…….”

말을 흐린 아더가 방긋 웃었다.

“남은 왼쪽 눈도 가져갈게요. 불만 없죠?”

빌의 비명이 파티장을 뒤덮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