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61화 (161/265)

제161화

아케인을 떠난 지 이틀째.

아더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뭘하고 있을까.’

7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그 두 사람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특히 아이린은 쥴리처럼 훌쩍 커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쥴리랑 비슷한 나이니깐… 지금 쯤 숙녀가 되어 있겠지?’

변해버린 여동생을 알아보지 못할까, 아더는 문득 걱정이 들었다.

허나 곧 고개를 저으며 그 걱정을 털어냈다.

어떻게 변했건, 제 여동생을 못 알아 볼리 없다.

그건 아마 아이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하루.’

하루 뒤면,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다.

그 사실에 아더가 눈빛을 빛낸 순간, 객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아더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메이드 복을 입은 지니가 보였다.

눈을 끔뻑인 아더가 질문했다.

“지니.”

“네?”

“혹시 머리 아파요?”

지니가 아더처럼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공자님?”

“…아니, 갑자기 메이드 복을 입고 있길래요.”

지니가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잘 어울리나요?”

“…?”

“바이에른 가문에 들리기 전에 예행연습을 입어 본 건데, 나름 나쁘지 않네요. 옷감도 좋아보이고.”

상당히 들뜬 듯한 지니의 모습에 아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메이드복 자체는 상관이 없는데, 그 메이드 복을 입고서 콧노래를 흘리는 지니의 모습이 웬지 모르게 기괴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맞은 편에 있던 지니가 불쑥 고개를 숙였다.

움찔 놀란 아더가 뒤로 물러선 그 때, 지니가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며 중얼거렸다.

“주인님~”

“…?”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커피 차? 말씀만 하시면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아더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지니.”

“네 주인님!”

“…이런 말 해서 죄송한데, 진짜 소름 돋네요.”

지니의 인상이 왈칵 구겨졌다.

“소름이 돋는다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하지만 진짜 소름 돋았어요.”

“…그렇게 안 어울렸어요?”

“네.”

아더의 대답에 풀이 죽은 지니가 스르륵 몸을 일으켜 객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빈말로라도 잘 어울린다 해줬어야 하나?”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니 빈말로라도, 잘 어울린다는 말이 안 나오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때 닫혀있던 객실문이 다시 한 번 벌컥 열렸다.

다시 한 번 깜짝 놀란 아더가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 객실을 나갔던 지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 공자님-!”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 아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사이 아더의 앞으로 다가온 지니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신문 한 부를 건넸다.

“여, 여기.….”

정신을 차린 아더가 신문을 집었다.

자연스레 신문의 1면에 실린 대문짝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내용을 확인한 아더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뭐지 이거?”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손에 들린 신문이 구겨졌다.

“아이린이… [빌 도르문트]랑 약혼식을 올린다고?”

* * *

아이린은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연신 드레스를 쥐었다 폈고, 두 눈동자가 쉼없이 떨렸다.

굳이 묻지 않아도 느껴져오는 그녀의 불안에 안나가 움직였다.

깜짝 놀란 아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안나?”

그녀의 부름에 안나가 아이린의 어깨를 부드럽게 안마하며 질문했다.

“많이 불안하시나요, 공녀님?”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이다, 솔직히 대답했다.

“네. 불안해요.”

“지금이라도, 자리를 무를까요?”

“…….”

입을 다문 아이린이 조금 전까지 보이던 발작 증세를 멈췃다.

그 상태로 잠시 고민하던 아이린이 자조적인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네요.”

“저는 항상 공녀님 편이에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안나.”

“진심이에요 공녀님.”

아이린이 웃었다.

15살 소녀의 미소치고는 지나치게 조숙한 미소였다.

그 탓에 안나는 한숨을 퍽 내쉬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 어린 소녀에게 이런 시련을….’

이제 겨우 15살.

다른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한창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릴 시기에 아이린 바이에른은 가문을 물려 받았다.

그것도 제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유서 깊은 가문인 바이에른의 후계자 자리를.

자의이건 타의이건,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어른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안나는 너무 안타까워다.

이토록 예쁜 소녀가, 왜 벌써 어른이 되어야 한다 말인가?

다른 아이들처럼 카페를 가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때로는 가슴 떨리는 첫사랑도 경험한 뒤 어른이 되어도 늦지 않을 텐데.

그 때, 방문 너머 대기하고 있던 가문의 수호기사.

하루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녀. 케인 도르문트 각하와, 빌 도르문트 도련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하루덴의 보고에 아이린도 깜짝 놀라고, 안나도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 중 먼저 정신을 차린 아이린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들어오라 하세요.”

이 말과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순간 사자 갈기 같은 붉은 머리칼을 가진 한 사내가 거침없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케인 도르문트.

제국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의 등장에 아이린이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 여기서 겁 먹으면 안 돼 아이린 바이에른!’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한 아이린이 간신히 입꼬리를 올려 미소라는 걸 그려 냈다.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케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이군 공녀.”

“어서오십시오 백작.”

“공작 각하는 어디갔소?”

“…몸이 편찮으셔서, 오시지 못했습니다.”

“약이라도 한 첩 달여 보내야겠군. 딸의 약혼을 논하는 자리에 어미가 안 나와서야 되겠소?”

“…….”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 반응을, 케인이 말없이 지켜보던 때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케켁. 아이린!”

수도에서 제일 가는 머저리.

삐꾸 빌 도르문트였다.

한 쪽눈을 안대로 감은 그가, 침을 줄줄 흘리며 양팔을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릴 때, 케인이 중얼거렸다.

“…그럼 논의를 시작해보지.”

이 말과 함께 케인이 제 아들을 바라보고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공녀와 내 아들… 빌 도르문트의 약혼식을.”

* * *

제국의 수도가 오랜만에 떠들석해졌다.

그 이유는 전에 없던 세기의 약혼식이 잡혔기 때문이다.

“세상에… 바이에른과 도르문트의 약혼식이 열린다고?”

“그 바이에른과 도르문트가?”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바이에른과 도르문트가 약혼식을 열 수가 있지?’

제국의 권력자의 집안으로 우뚝 선 도르문트 가문.

제국의 건국과 함께 해온 가장 유서 깊은 간문인 바이에른.

물과 기름과도 같은 그 두 가문의 약혼식 소식에 직위를 막론하고 제국 시민들이 수군거렸다.

“…그런데 말이 약혼식이지 팔려 가는 거 아니야?”

“뭐!? 팔려간다고? 누가 팔려간다는 거야?”

“누구긴, 바로 바이에른의 공녀지.”

한 시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약혼 상대가 그 빌 도르문트잖아? 백작가의 머저리 빌 도르문트.”

이 말에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니… 그 총명하기로 소문 난 바이에른 공녀가 백작가의 머저리랑 약혼식을 한다고?”

“더군다나 바이에른의 공녀는 차기 공작가의 후계자 아니야?”

“그렇게 되면… 바이에른이 도르문트에게 복속당하는 거잖아?’

두 가문의 약혼식.

하지만 그 누구도 두 가문의 약혼식이 단순히 두 가문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라 생각하지 않았다.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인 아이린 바이에른.

도르문트의 수치라 불리는 머저리 빌 도르문트.

바보가 아닌 이상, 이번 약혼에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개입되어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 탓에 호들갑은 떨었지만, 크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상황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언젠가 도르문트 백작이 바이에른을 집어삼키리라 모두가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른 쪽으로 쏠렸다.

“…과연 도르문트 백작이 바이에른 사람들을 살려둘까?”

바이에른을 집어삼킨 케인 도르문트.

그가 과연 아이린 바이에른과 요넬 바이에른을 살려둘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 * *

빌과 아이린의 약혼식 소식을 들은 아더는 생각했다.

‘…미래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구나.’

전생의 삶에서도, 빌과 아이린은 약혼했다.

정확히는 결혼이었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귀족 가문끼리의 약혼은 곧 결혼을 의미했으니.

그 탓에 아더는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게 흘러가네 상황이.’

때마침 제국의 수도로 돌아온 타이밍에 이런 소식을 접하다니.

이걸 두고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아더는 고민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뭐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수도로 돌아왔다는 것.’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어둠에 잠긴 거대한 도시가 시선에 들어왔다.

아케인도 거대한 도시였지만, 역시 제국의 수도에 비할 수는 없었다.

천 년이란 역사를 간직한 도시는 어둠에 잠겼음에도 그 위엄을 잃지 않았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던 아더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제 정신병이 다시 도졌기 때문이었다.

‘아아… 오랜만이네 이 감각.’

이안 도르문트 이후로 처음 아닌가?

세상이 이렇게 미쳐보이는 게?

생각과 함께 아더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제 정신병이 다시 도진 이유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케인 도르문트. 그 남자가 이 도시에 있어서.’

아더는 그 사실에 작은 전율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옆에 있던 지니가 놀라 소리쳤다.

“고, 공자님! 어딜 가는 거에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도르문트 가문이요.”

“…!”

“가서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 하지 않겠어요? 제 여동생과 약혼을 했다는데?”

아더의 말에 지니의 입이 벌어졌다.

‘이,이렇게 무턱대고 도르문트 가문으로 간다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재미없는 농담이라 생각 할텐데, 아더 바이에른이 그 이야기를 하니 도저히 농담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 남자가 도르문트에 가진 증오를 7년 전에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안 도르문트를 제 손으로 죽이기 위해 북부설원까지 갔던 사람이 바로 공자님이야.’

그런 남자가 제 여동생과 강제로 약혼식을 추진한 도르문트 가문을 그냥 둘리가 없었다.

‘분명 누가 죽고 다칠 거야… 하지만 도르문트 가문 내에서 그 일이 벌어지면.’

그 죽고 다치는 게 아더 바이에른이 될 것이다.

그 탓에 고민하던 지니는 결국 아더의 앞을 가로 막았다.

“…뭐하는 거예요, 지니?’

“가면 죽어요 공자님!”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제가 왜 죽어요 지니.”

“공자님! 죽어요! 이성적으로 판단해요!”

“저 지금 이성적인데요?”

“아니에요 공자님은 지금….”

말을 흐린 지니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더 바이에른의 눈이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조금 속된 말로 비유하면 완전 미친 놈의 눈이었다.

‘미, 미친놈이 미쳤어!’

그 탓에 어떻게 해서건 막아야 했다.

지금의 아더 바이에른은 정상이 아니다.

생각을 끝마친 지니가 아더를 설득 하기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먼저 아더가 중얼거렸다.

“노움.”

“…!”

아더의 부름과 함께 어디선가 나타난 땅의 정령이 지니의 발목을 묶었다.

경악한 지니가 눈을 치켜뜬 사이,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나중에 봐요 지니.”

“공자님!!”

지니의 외침을 뒤로하고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케인 도르문트가 있는 대저택.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라 하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그 기괴한 저택은, 어둠이 내려앉은 지금 상황에서 유별나게 눈에 튀었으니깐.

그 탓에 아더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고, 얼마 안 있어 도르문트 저택 앞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아더는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 느껴진다.”

케인 도르문트.

그 남자 특유의 피와 향수가 섞인 특유의 썩은 내.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그 냄세에 아더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기에 케인이 있어.’

생각과 함께 아더가 비스트를 꺼내들었다.

철컥-!

총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아더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케인의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그 사실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 그 때, 낯선 웃음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푸하하하하!”

“…?”

“진짜 자넨 여전하군. 설마 했는데, 진짜로 여기로 올 줄이야.”

그 순간 기괴하게 변해가던 세상이 다시 원래의 색감을 찾았다.

“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린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낯이 익은 사내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말을 흐린 아더의 눈이 살짝 커진 그때, 사내가 인사해왔다.

“오랜만이네, 내 친구. 아더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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