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아케인 역으로 향했다.
철컹철컹-!
그 순간 거대한 철마의 울음소리가 아케인 전역에 울려퍼졌다.
그 거친 포효에 눈빛을 빛낸 아더가 폴짝 날아올랐다.
“어, 어!? 공자님!”
뒤에 있던 지니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아더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지니가 실프를 불렀다.
“실프, 저 사람 좀 쫓아가 줘.”
[알았어, 지니.]
날아오른 지니가 뒤늦게 아더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역에 도착한 두 사람은 증기를 내뿜는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철컥철컥-!
그 광경에 아더가 탄성을 흘렀다.
움직이기 시작한 철마를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운 가족, 그리운 저택.
그 모든 것을 7년만에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더는 벅차오르는 심정을 숨기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집으로 돌아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네요.”
아더의 말에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안나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공자님… 그간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왜요?”
“……?”
“지니가 직접 건네주면 되죠. 설마 오랜만에 만나면 부끄러울까봐 그래요?”
지니의 눈이 커졌다.
“어… 저는 아케인에 남아야 하는데요?”
“지니가요?”
“네.”
“지니가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는데요?”
“…….”
아더의 대답에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더를 바라봤다.
“아니… 공자님. 공자님은 모르시겠지만, 저도 아케인 탈환에 엄청난 활약을 한 반군 중 한 명이거든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봐야 깡패잖아요?”
“…….”
“설마 자유를 되찾은 아케인에서, 깡패 생활 이어가려는 건 아니죠?”
지니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반론하려던 순간이었다.
아더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말했다.
“그리고 저랑 먼저 약속했잖아요?”
“…뭐를요?”
“기억 안 나요? 7년 전에 저희집에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지니의 눈이 커졌다.
“어… 그건 맞는데.”
“설마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죠?”
“…제가 따라가도 되는 거예요? 공자님 말대로 저는…….”
말을 흐린 그녀가 뒷말을 삼켰다.
‘깡패 두목인데 바이에른 가문에 폐가 되지 않을까요?’
망설이던 지니는 결국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아더의 입에서 곤란하다는 말이 나온다면 몹시 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더는 되려 이런 지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얼른 준비나 해서 와요, 지니.”
“…….”
“가서 안나도 보고, 제국의 수도도 구경해야죠.”
아더의 재촉에 지니가 망설이다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가서 후회나 하지 마세요.”
이 말과 함께 몸을 돌린 그녀가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면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 아이에서 소녀가 되어버린 쥴리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저씨…….”
그 모습에 아더가 고민하다 방긋 웃어 보였다.
“쥴리. 잠시 동안 이별을 해야겠네요.”
* * *
쥴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니 몹시 괴로웠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은사.
그에게 하고 싶은 말도, 같이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았다.
그 탓에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차마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고집을 부리는 자신 때문에 곤란해 하는 아더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쥴리는 웃었다.
“…다시 돌아올거죠?”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다시 돌아와야죠.”
“언제 오실 거에요?”
“음… 모든 일이 정리되면?”
“그게 언제인데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7년 보다는 훨씬 적게 걸릴 거에요.”
쥴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끝까지 웃으며 보내주고 싶었는데, 갑자기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는 잘만 가면을 쓰고, 어른인 척 행세하는 데 꼭 아더 앞에만 서면 이랬다.
그 탓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 있을 때였다.
커다란 손이,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윌렛 어르신, 잘 부탁해요 쥴리.”
“…….”
“이렇게 잘 큰 쥴리라면, 믿고 맡길 수 있죠. 할 수 있죠?”
아더의 말에 쥴리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할 수 있어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라니깐, 끝까지 아저씨라 부르네요.”
이 말과 함께 눈물을 펑펑 흘리는 쥴리의 등을 토닥여준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시가를 입에 문 윌렛과 안젤리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더가 그런 둘을 향해 방긋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어르신, 시장님.”
아더의 말에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고맙긴, 그건 이쪽에서 해야 할 말인데.”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잠시 망설이다, 걸음을 옮겼다.
“……?”
그 모습을 아더가 눈을 끔뻑일 때, 윌렛이 갑자기 허리를 숙이더니 울고 있는 쥴리와 아더를 감싸 안았다.
그 갑작스러운 포옹에 아더의 눈이 커진 순간, 윌렛이 중얼거렸다.
“꼭 피가 이어져야 가족이 아니지.”
“…….”
“잘 다녀와. 몸 건강하고…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
윌렛의 말에 쥴리가 놀라 울음을 그쳤고, 아더도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안젤리나가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어머… 어르신에게 저런 면모가 다 있네.”
그 사이 몸을 일으킨 윌렛이 빨개진 귓불을 숨기지 못한 채 몸을 돌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르신. 많이 부끄러우신 가봐요?”
“닥치게.”
“몸 건강히 다녀올게요.”
“…빨리 다녀와.”
둘의 만담에 눈물을 줄줄 흘리던 쥴리도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세 사람이 눈물이 아닌 미소로 작별의 준비를 하는 그 때, 두 교수가 다가왔다.
“아더… 바이에른 학생.”
“어? 치즈이 교수님?”
“이제… 떠나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 열차가 다시 가동됐으니, 금방 떠날 것 같아요.”
아더의 말에 치즈이 교수가 눈짓했다.
그 순간 놀스 교수가 앞으로 걸어나와 무언가를 건넸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이게 뭐예요?”
“졸업장이네.”
“……!”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반응을 지켜보던 놀스 교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7년 만에 아케인을 졸업하는 학생은 처음이네.”
“…….”
“우리 학교에 다녀줘서 고맙네. 졸업식은….”
말을 흐린 놀스 교수가 아더의 어깨를 두들겼다.
“다음에 자네가 아케인에 왔을 때 하도록 하지.”
그의 말에 아더가 입을 뻐끔거리다, 간신히 중얼거렸다.
“1학년밖에 하지 않았는데, 졸업이 가능한가요?”
“특별 졸업이네. 아케인을 구한 학생을 위한 특별 졸업.”
아더가 망설이다 졸업장을 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케인을 위해 함께 싸운 반군들이었다.
“아케인에 와줘서 고맙네, 아더 바이에른!”
“다음에 또 이 도시를 들려주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 언제든 오라고!”
그들은 더 이상 아더를 던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아더 바이에른은 공작가의 후계자가 아닌 같이 싸운 전우이자 동료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너무 아쉬워.’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이들과 함께 더 많은 일들을 나누고 싶었다.
이제야 자유를 되찾는 아케인을 같이 변화시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같이 호흡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래서 아더는 아쉬움을 삼킨 뒤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아케인 역에 도착한 지니가 아더를 향해 말했다.
“공자님 준비 끝났어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몸을 돌리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아케인의 영웅들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꼭 다시 돌아올게요, 여러분. 그 때도….”
말을 흐린 아더가 웃었다.
“지금처럼 절 반겨주실 거죠?’
아더의 말에 윌렛이 대표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언제든 찾아오게 아더 바이에른.”
그 대답에 아더가 기차에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아케인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와와악-!
7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기찻길이었다.
* * *
멀어져 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치즈이 교수가 중얼거렸다.
“진짜로… 가버렸군요.”
그의 말에 놀스 교수가 점점 멀어지는 기차에게서 시선을 떄지 못했다.
‘결국… 못 물어봤구나. 어떻게 소드마스터가 되었는지.’
아더 바이에른이 아무리 천재라 하지만 7년만에 소드마스터가 된 것은 상식을 벗어난 범주였다.
그런데 그 상식을 벗어난 일이 일어났다는 건, 그만한 대가를 치렀단 일.
그 탓에 떠나는 순간까지도, 사실을 묻지 못한 그였다.
하지만 막상 아더가 떠나니 그 일이 너무 아쉽게 느껴진 그였다.
그 탓에 떠나간 기차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 옆에 있던 치즈이 교수가 미소 지으며 조언했다.
“곧… 기회가 있을 겁니다 놀스 교수.”
“…그렇겠죠 치즈이 교수님?”
“물론이죠… 아더 바이에른 학생, 아니 아더 바이에른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테니.”
치즈이 교수의 말에 놀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쥴리도 떠나간 열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탄식을 흘린 쥴리가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떠나셨구나….’
마지막에 웃으면서 보내줬지만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니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윌렛이 그런 쥴리의 어깨를 살며시 감쌌다.
“많이 아쉬우냐?”
“… 네.”
“하긴, 넌 어렸을 때부터, 아더를 많이 따르긴 했으니.”
이 말과 함꼐 윌렛이 미소지었다.
“다시 아더를 보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거라 쥴리.”
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르신?”
“말 그대로다. 아더 바이에른을 다시 보고 싶으면, 오늘부터 열심히 아케인 재건에 힘을 쏟아붓거라.”
쥴리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윌렛이 이제는 시야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열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더 바이에른… 아니 아더는 우리의 힘을 꼭 필요로 할 것이다. 그 때를 위해, 지금부터 너 자신과 이 도시를 위해 힘쓰거라.
이 말과 함께 윌렛이 눈빛을 빛냈다.
“그날이 오게 되면, 이번에는 우리가 아더를 도와야 할 테니.”
* * *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검은 먹구름과 장대비였다.
여름의 향기를 날려버리는, 그 폭우를 창문을 통해 지켜보던 한 사내가 술잔을 기울였다.
쓰디쓴 양주가 입안에 열을 불어넣는다.
그 불쾌한 감각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술에 몸을 맡기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아케인이… 해방됐다고?’
“그렇습니다, 가주시여.”
사내의 질문에 그림자에 녹아들어 있던 뱀이 혀를 낼름거렸다.
“13귀의 견. 그가 목숨을 다하였고, 아케인의 반군들이 총독부를 강탈했다는 전보입니다.”
뱀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초점을 잃어버린 붉은 눈동자가 광기에 차 번들거렸다.
“그 일을 누가 한 거지? 아케인의 시장? 아니면 그 반군의 리더라던 용병 나부랭이?”
사내의 질문에 뱀이 머뭇거렸다.
“그게… ”
“보고해라.”
“…둘 모두 아닙니다. 견을 죽이고 총독부를 무너트린 건, 7년 만에 나타난 아케인의 전설의 용병이라고 합니다.”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설의… 용병?”
“예. 아직 조사 중에 있지만… 놀랍게도 그 용병의 경지가 [소드마스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뱀의 보고에 사내의 눈이 치켜떠졌다.
“소드마스터라고? 사실인가?”
“일단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사내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소드마스터? 그 고결한 경지를 어찌 용병이 밟는다 말인가?’
믿기 힘든 이야기다.
수많은 칼잡이들 중에서 천재.
그 천재들 중에서도 한 시대, 단 한명의 칼잡이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가 소드마스터다.
그런데 그 필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 초월자의 영역에 다다른 자가 용병이라니?
저잣거리의 저 시답잖은 소문들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을 것이다.
그 탓에 사내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정말 사실이냐, 뱀?”
“그, 그… 일단 조사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잠시 뱀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사내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 가주의 심기가 어지럽다. 이 다음 이야기는 해서는 안 돼.’
이 말과 함께 뱀이 그 다음 보고를 떠올렸다.
그 전설의 용병이라 불린 자가 놀랍게도 7년만에 나타난 바이에른의 공작가의 후계자.
아더 바이에른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가주께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조금 더 확실히 조사한 뒤 진위여부를 밝히고 난 후 보고한다.’
그 탓에 뱀이 입을 다물고, 다음 가주의 명령을 기다릴 때였다.
창밖을 바라보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약혼식이었지?”
뱀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늦어도 다음 주, 빠르면 이번 주 내로 마무리 지을 것 같습니다.”
사내가 잔에 잠긴 양주를 모조리 털어 넣은 뒤 명령했다.
“아케인 일을 처리하기 전에… 끝내놓는 게 좋겠지. 준비해라.”
사내의 눈빛이 광기에 차 번뜩였다.
“지금 당장 바이에른 가문에 들리겠다.”
이 말과 함께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쾅-!
그 속에서 드러난 사내의 얼굴에는 거대한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기이한 상처를 잠시 훔쳐본 뱀이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드옵니다. 케인 도르문트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