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안젤리나와 윌렛의 입이 벌어졌다.
그들은 잠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더를 빤히 바라봤다.
‘제안을… 거절했다고?’
‘도대체 왜?’
그들의 상식으로서는 아더의 결정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조금 전 건넨 제안을 아더 바이에른이 거절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르문트라는 공동의 적을 둔 지금.
바이에른과 아케인이 손을 잡는 것만큼이나, 이상적인 일이 있을까?
그 탓에 안젤리나와 윌렛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할 때였다.
뒤이어 들려온 아더의 대답에 흐릿하던 의식이 다시 강제로 현실로 끌려왔다.
“하실 말씀 끝났으면, 일어나도 될까요?”
“…!”
먼저 정신을 차린 윌렛이 황급히 질문했다.
“아더… 자네. 정말로 이 제안을 거절할 생각인가?”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받아들일 생각 없는데요?”
“…….”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안젤리나도 황급히 질문했다.
“저희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공자?”
“아뇨? 제가 왜 두 분을 마음에 안 들어 하겠어요.”
“그럼 왜 제안을 거절하신 건가요?”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래도 대답을 꼭 듣고 싶어요.”
그녀의 질문에 고민하던 아더가 방긋 웃었다.
“두 분이 아직 잘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서 제안을 거절했어요.”
“…잘 모르다니요?”
“케인 도르문트요. 그 남자와 대적한다는 의미를, 두 분은 이해하지 못하고 계세요.”
정신을 차린 윌렛이 눈을 끔뻑였다.
“…잘못 이해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음… 쉽게 말해서 이거에요.”
아더가 손가락을 튕겼다.
“여기서 아케인이 저와 손을 잡고, 도르문트와 대적하면 이 도시는 일주일도 안 돼서 사라질 거에요.”
“…!”
“이것도 조금 널널하게 잡은 거고, 빠르면 3일 안에 점령당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여러분과 손을 잡지 않은 거예요.”
안젤리나가 당황해 입을 벌렸다.
그건 윌렛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윌렛이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뒤, 질문했다.
“…자네와 손을 잡으면, 아케인이 사라진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케인 도르문트는 명분을 중요시 여기죠.”
“…?”
“꽤나 위선적인 남자거든요. 그런데 아케인과 제가 손을 잡으면 그 명분을 쥐여주는 꼴이 되어버리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제국의 수도에서 이곳 아케인으로 달려와, 모든 걸 지워버릴 거에요.”
“…!”
“전 그걸 원치 않아요, 어르신. 잘못된 판단 하나로 이 도시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
“이 정도면 제안을 거절한 이유로 충분할까요?”
안젤리나와 윌렛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아더를 바라보았다.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이런 거였다고?’
제안을 거절한 것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이유가 더 충격적이었다.
자신과 손을 잡으면, 아케인은 도르문트에 의해 멸망할 것이니 협력하지 않겠다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고민해 보니 영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7년 전… 케인 도르문트가 쳐들어왔을 떄, 그는 진심을 다해 아케인을 공격했는가?’
던져진 질문에 윌렛은 고개를 저었다.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케인 도르문트였지만, 그렇다 해서 아케인을 멸망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제국 최고의 실권자인 그라 할지라도, 대륙 곳곳에 연이 닿은 아케인을 상대로 선을 넘을 수 없는 일.
분명 수습할 수 있는 선에서 군 병력을 가동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밝혀지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확실한 명분을 쥔 케인 도르문트는 모든 걸 쏟아부을 것이다.
그 탓에 윌렛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설마 여기까지 생각할 줄이야.’
그런데 그 생각을 아더 바이에른이 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 윌렛이었다.
그때, 안젤리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하지만 공자.”
안젤리나가 눈빛을 빛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이유 때문에 저희가 꼭 손을 잡아야 해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시장님?”
“공자는 ‘아케인’의 저력을 너무 간과하고 있어요.”
“…?”
“케인 도르문트… 그가 대단한 남자기는 하지만, 아케인도 대륙 최고의 도시에요.”
“…!”
“진짜 필사적으로 그에게 저항한다면, 몇 날 며칠이고 버틸 수 있어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단 소리죠.”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진한 관심에 안젤리나가 다시 열띠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손을 잡게 된다면 적어도 공자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손을 잡지 않으면 둘 모두에게 손해로 이어지겠죠.”
아더가 입을 열었다.
“…흠.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에요 시장님?’
“처음과 똑같아요, 공자.”
자리에서 일어난 안젤리나가 눈빛을 반짝였다.
“저희를 한 번 믿어보세요. 절대로 후회 안 하게 할 자신 있으니깐.”
그녀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아더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 * *
안젤리나의 끈질긴 제안에 아더는 고민에 빠졌다.
‘…흠. 곤란하네, 이거.’
나쁜 의미로 곤란하다는 게 아니라, 좋은 의미로 곤란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케인과 손을 잡는 것은 아더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나를 지지해주는 세력이 생긴다는 거잖아?’
케인 도르문트의 목을 치기로 결심한 뒤, 단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어떤 미친놈이 제국의 실권자의 목을 치는 데 협력하겠는가?
그래서 줄곧 혼자서 그와 맞서 싸워온 아더였다.
하지만 아케인과 손을 잡게 된다면, 처음으로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가 생기는 셈.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케인 정도면 힘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든든한 우방이 생기는 것이다.
그 탓에 마음 한편으로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 남자가 과연, 이 일을 가만히 두고 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케인 도르문트,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광기에 찬 그 남자라면 절대로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케인을 압박할 것이다.
그 광경을, 아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케인 도르문트… 그를 온전히 독점하고 싶은데 말이지.’
이안 도르문트 때와 똑같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그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의 최후건 죽음이건 삶이건.
제 손으로 끝을 보고 싶었다.
그 탓에 아더의 고민이 길어지던 그때, 윌렛이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나?”
정신을 차린 아더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네?”
“표정을 보니, 조금 전 이유만으로 거절한 건 아닌 것 같군. 다른 이유가 있지?”
“…….”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윌렛 어르신은 당해낼 수가 없네.’
아케인의 거물 브로커로 이름을 떨치던 사내다웠다.
그 탓에 아더는 결국 제 솔직한 심정을 밝히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이유가 있기는 해요.”
“…그 이유가 대체 뭔가?”
“여러분과 케인 도르문트를 나누고 싶지 않아요.”
“…?”
아더의 대답에 윌렛과 안젤리나가 눈을 끔뻑였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지?’
케인 도르문트를 나누고 싶지 않다니?
이게 동맹을 하지 않는 이유라고?
그 때 아더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여러분과 동맹을 맺으면, 케인 도르문트를 같이 죽여야 하잖아요.”
“…!”
“전 그걸 원하지 않아요. 그 남자는… 꼭 제 손으로 죽여야 하거든요.”
안젤리나와 윌렛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반대로 아더의 입꼬리는 살며시 말려올라갔다.
“그 사내만큼은 꼭 제 손으로 죽여야 해요. 이게 제 삶의 이유거든요.”
“…….”
“이 정도면, 대답으로 됐을까요? 어르신?”
아더의 질문에 윌렛은 대답하지 못했다.
“…….”
입을 다문 그는, 아더의 시선 속에서 느껴지는 광기에 몸을 떨었다.
‘…그렇군. 내가 줄곧 느꼈던 위화감이 이거였어.’
아더 바이에른.
그가 어째서 남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는지, 이제야 조금 납득한 윌렛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케인 도르문트에 미쳐 있었다.
그를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을 7년만에 깨달은 윌렛의 눈빛이 빛났다.
‘…이렇게 되니, 더더욱 욕심이 나는군.’
아더 바이에른은 케인 도르문트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홀로 그 길을 걸어간다면 분명 괴롭고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윌렛은 그 모습을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그 탓에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아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목숨을 살려준 아더 바이에른을 위한 욕심으로써 말이다.
고민을 끝낸 윌렛이 입을 열었다.
“그럼… 더욱 간단한 일 아닌가 아더?”
“네?”
“자네의 복수에 우리를 이용하게.”
“…!”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윌렛이 단호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우리를 이용하란 말이네. 자네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어.”
* * *
윌렛이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우리 목표는 케인 도르문트의 죽음이 아니야.”
“…….”
“케인 도르문트가 아케인을 점령하지 못하게 하는 거네. 즉 자네와 손을 잡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지.”
아더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그 사이 윌렛이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자네가 원한다면, 아케인은 자네를 위해 케인 도르문트와 전쟁도 불사하겠네.”
“…!”
“이유는 묻지 말게. 자네에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깐.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게.”
윌렛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정녕 아케인이 필요 없나? 아더 바이에른?”
윌렛의 질문에 아더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릿속의 고민들이 전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단출한 의문.
‘나는… 아케인이 필요 없나?’
아니, 필요하다.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상업 도시와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이보다 든든한 우방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아더는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이 너무 많아졌네.’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그런가.
미쳐있던 시절보다 이것저것 고려하는 게 많아졌다.
‘나쁘지는 않은데, 확실히 이럴 때는 불편하긴 하네.’
지금은 미쳐있던 시절처럼 간단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보였다.
아케인이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되지 않는가?
그 간단한 질문에 아더는 곧 결정을 내린 뒤, 입을 열었다.
“…어르신은 제가 필요한가요?”
윌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네. 자네는 내가 필요 없나?”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씩 미소지었다.
“아뇨. 필요해요. 어르신은, 항상 제게 정확한 답만 가르쳐줬으니깐.”
아더의 미소에 윌렛도 씩 미소지었다.
“그럼 답이 정해졌군.”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칼을 뽑아들었다.
그 뽑아든 칼을 이용해, 제 손바닥을 베어낸 윌렛이 무릎을 꿇었다.
“…!’
깜짝 놀란 아더의 입이 벌어진 그때, 윌렛이 선언했다.
“나 윌렛 크레스톨도 맹세한다. 아더 바이에른의 더 없이 든든한 전우가 될 것을.”
“…….”
“이 맹세의 끝은 내 목숨이 끝날 때까지다.”
윌렛의 진지한 선언에 아더의 눈이커졌다.
그 사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리나도 일어나 아더에게 무릎을 꿇었다.
다시 한 번 아더가 깜짝 놀랐을 때, 안젤리나가 중얼거렸다.
“기사들은 피에다 맹세를 하지만, 저희 마법사는 이름에 맹세를 하죠.”
말을 흐린 안젤리나가 주문을 읊조렸다.
그 순간 작은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 바람이 안젤리나와 아더를 감싼 그 때, 안젤리나가 방긋 미소지었다.
“[안젤리나 베이비]라는 이름에 대고 맹세합니다.”
“…….”
“저는 공자가 부르는 그 때 언제건, 당신에게 달려갈 것을.”
주문의 선언과 함께 바람이 그쳤다.
다시 정신을 차린 아더가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 씩 미소지었다.
“…알겠습니다.”
“…!”
“저 아더 바이에른은 아케인과 정식으로 손을 잡겠습니다.”
마침내 떨어진 아더의 허락에 안젤리나가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윌렛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럼 우리에게 '깃발'을 줄 수 있나?”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깃발이요?”
“그래. 깃발… 아더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깃발 말이네.”
이 말에 끔뻑이던 아더의 눈이커졌다.
“이제 아케인은 자네의 것이네. 그러니 자네의 것이라는 깃발 정도는 걸어나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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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렛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3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더는 고개를 들어올려 아케인 성벽을 바라보았다.
아케인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새겨진 깃발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휘날리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를 가진 사자였다.
아더는 그 깃발을 바라보다, 탄성을 터트렸다.
“저게 내 깃발이구나….”
사자는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동물.
붉은 눈동자는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었다.
처음으로 가져본 자신만의 깃발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쁘지 않은 데?”
살면서 한 번도 자신만의 것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가지고 있던 것마저도 도르문트에게 모두 빼앗겨 버렸으니.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만의 것을 가지게 되었다.
아케인.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상업도시를.
그 순간 가슴이 거칠기 뛰기 시작했다.
아더는 그 묘한 감각을 조용히 만끽했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목표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 느낌이다.
줄곧 멀리 떨어져 있던 케인 도르문트와의 격차가 좁혀졌다는 소리다.
그 탓에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을 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누군가가 뛰어왔다.
“공자님-!”
지니 데이븐.
현재 마피아의 두목으로 활동 중인 엘프였다.
아더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지니?”
“끝났어요!”
“…?”
“아케인 열차가 가동될 준비가 모두 끝마쳤다고요!”
“…!”
그녀의 외침에 아더의 벌어졌다.
“그럼….”
“네! 가실 수 있어요!”
지니가 신이나 소리쳤다.
“이제 제국으로 가실 수 있어요! 안나를 다시 만나실 수 있다고요! 공자님!”
그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운 집.
그리운 가족.
흰 수염의 저주에 갇혔던 자신을 지탱해주던 소중한 존재들.
그 기억을 떠올린 아더가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 사실에 아더의 가슴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