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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155화 (155/265)

제155화

윌렛이 잔 두 개를 꺼내들어, 새로 단 의수로 술을 따랐다.

한 잔은 자신의 앞으로, 한 잔은 아더에게로.

윌렛이 건네준 잔을 쥔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잔에 담긴 주황색 액체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오호… 맥주가 아니라 양주구나.’

색만 보면, 영 나쁘지 않다.

그 때 잔을 든 윌렛이 충고했다.

“첫 잔은 가볍게 들이켜게. 서로의 잔에다 잔을 부딪치면서.”

윌렛의 말에 따라, 아더가 잔을 부딪쳤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진 순간, 윌렛이 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어라? 가볍게 마신다면서요?”

“이게 가볍게 마시는 거지.”

“…흠. 술의 세계에서는 가볍게가 원샷이었군요.”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그대로 윌렛을 따라 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윌렛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볼 떄, 아더가 인상을 찌푸렸다.

“…웩. 맛이 없는데요?”

기대했던 반응에 윌렛이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술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야. 상대방과의 분위기로 마시는 거지.”

윌렛이 다시 한 잔을 따라주었다.

아더는 이번에도 원샷 했다.

윌렛이 약간 놀라 눈치로 말했다.

“두 번째부터는 각자 속도에 맞추는 거네.”

“아 그런 건가요?”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다시 잔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윌렛이 턱을 쓰다듬었다.

‘흠… 예상과 달리 술이 잘 받는 몸이군.’

그리고 보통 이런 자들이 보통 말술이 된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윌렛이 다시 술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술에는 안주가 필요하지. 그리고 내가 느낀 최고의 안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야. 아더 바이에른. 자네 이야기를 해보게.”

잠시 고민한 아더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에는 두서가 없었다.

목적 없이 흘러가는 가벼운 잡담과 같았다.

하지만 아더와 윌렛은 그 분위기를 즐겼다.

아무런 고민 없이,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술 한잔과 기울이니 이만큼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쥴리가 그렇게 커버린 게….”

술 한 잔을 들이켠 아더가 정신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윌렛이 중얼거렸다.

‘…아쉽군. 이게 마지막 술잔이라는 게.’

조금 더 많은 이야기, 깊은 관계를 맺고 싶었는 데 상황과 운명이 여의치 않게 됐다.

하지만 그것이 또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알기에 윌렛이 의수를 들었다.

그 동작에 아더가 입을 다문 사이, 윌렛이 질문했다.

“아더 바이에른. 내가 왜 자네를 엘디움 호수에 대려왔는지 아는가?”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 술 자리가 좋은 곳이라 데려오신 거 아니였어요?”

“그럴 거였으면, 아케인 최고의 바로 데려갔지.”

“흠… 그럼 잘 모르겠네요. 이유가 뭐예요, 어르신?”

아더의 질문에 윌렛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엘디움 호수는 무덤이야.”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무덤이요?”

“그래. 도르문트와 함께 맞서 싸우던, 전우들. 그 친구들을 묻은 무덤이 바로 엘디움 호수네.”

이 말과 함께 윌렛이 빙그레 웃었다.

“갑작스럽겠지만,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나?”

“어떤 부탁이요?”

“날 묻어주게.”

“…?”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윌렛이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

“날 저곳에 묻어주게 아더 바이에른. 이게 내가 자네에게 주는, 마지막 의뢰네.”

* * *

윌렛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르신? 갑자기 묻어달라니요?”

윌렛이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별 거 아니야. 며칠 뒤, 내가 숨을 거두면 저곳에 묻어 달란 거네.”

아더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지. 숨을 거두면 저 호수에다 던지면 되는 일인데, 뭐가 어렵나?”

“그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아직도 몸이 아프신 거예요?”

“아프다라… 글쎄.”

윌렛이 손가락을 툭툭 두들겼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윌렛은 생각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싫어하는군.’

아더 바이에른이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윌렛이었다.

‘한 번도, 내 앞에서 인상을 찌푸린 적이 없는데 말이지.’

그 탓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갑자기 왜 웃으시는 거에요?’

윌렛이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대답했다.

“기분이 묘해서.”

“…기분이 묘하다고요?”

“이 나이 먹으면 그래. 인간관계도, 가족도… 모두 떨어져 나갈 때가 딱 이때즘이거든.”

윌렛이 의수로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날 이렇게 좋아해 주면 기분이 좋아져.”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르신. 저 여자 좋아하는데요?”

아더의 대답에 윌렛도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여자가 좋다는 말이 왜 나오는 거지?

곰곰히 고민하던 윌렛은 흠칫 놀랬다.

“…나도 여자 좋아하네!”

“아. 다행이네요.”

“…어떻게 하면 그런 오해를 하는 건가?”

“혹시나 했죠. 매일 투덜대시던 분이, 갑자기 좋아한다고 하니깐.”

윌렛이 혀를 차며 설명했다.

“손주 같아서 좋단 거야.”

“오… 손주요?”

“그래. 내가 정상적으로 결혼해 아들을 낫고, 평범하게 생활했으면… 딱 자네 같은 손주가 있겠군.”

아더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깐깐한 윌렛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 탓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 데….’

말을 흐린 아더가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르신. 다시 한 번 물을게요.”

“뭘?”

“정말로 아픈 곳 없어요?’

아더의 질문에 윌렛이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 젊은 청춘에게, 죽음과 이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수많은 경험을 한 윌렛이었지만 쉽사리 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조자도 이별과 죽음은, 전혀 익숙지 않은 것이었으니.

하지만 여기서 당황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때로는 경험이 없어도, 경험이 있는 척을 해야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경험이 있는 척을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윌렛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더 바이에른… 아니 아더. 인간은 누구나 죽네.”

윌렛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윌렛이 의수를 들어올려, 아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죽음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지. 자네는 이 죽음을 앞으로 수없이 마주할거야.”

아더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죽을 병에… 걸리셨나요?”

“아니. 병이 아니네. 그런 차원의 문제였다면, 나도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쳤을 거야.”

“그럼….”

“육체의 수명이 다했네.”

윌렛의 말에 아더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사이 윌렛이 담담한 어조로 설명을 이었다.

“긴 싸움 끝에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거야. 내 심장은 이제 언제 멈춰도 안 이상해.”

* * *

윌렛과 아더는 다시 아케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이 지난 날.

아더는 아케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위로 올라가 앉았다.

“…….”

밝은 보름달이 코앞에서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윌렛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자네와 나. 그리고 내 담당 주치의 뿐이네.’

‘…비밀로 하고 있는 중인 건가요?’

‘괜히 바쁜 사람들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거든. 지금은 내가 아니라 아케인에 신경 써야 될 때니깐.’

‘…그럼 저한테는 왜 비밀로 하지 않으신 거예요, 어르신?”

윌렛이 살며시 웃었다.

‘자네는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하니깐.’

‘…….’

‘다른 사람은 절대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더. 자네라면 내 부탁을 들어주겠지.’

이 말과 함꼐 윌렛은 아더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

‘자네와 난… 아더 바이에른과 윌렛 크레스톨이기 이전, 용병과 브로커의 사이니깐.’

‘…!’

‘그리고 자네는 내 생애 최고의 용병이네. 그런 자네가 아니라면, 누구에게 부탁하겠나?’

아더의 어깨를 잡은 윌렛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악력에 아더가 아무런 말도 못하는 사이, 윌렛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 내 숨이 멈추면, 다른 곳이 아닌 이 호수에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묻어주게. 화려했던 인생이었던 만큼, 갈 때 만큼은 조용히 가고 싶네.’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고, 그 뒤로 윌렛은 술잔만 기울였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아더가 중얼거렸다.

“몸이 망가졌다라….”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윌렛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들을 떠올렸다.

그 상처는 솔직히 말해 살아있는 한 인간이 감당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윌렛이 살아있었고, 이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 탓에 윌렛이 제 마지막을 언급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더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윌렛은 살아있다.

즉, 기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랬기에 아더는 그 기적을 더늘리고 싶었다.

‘이대로 죽으면, 윌렛 어르신… 너무 불쌍하잖아.’

아케인을 위해 지난 7년간 노력해왔다.

그 7년이란 노력의 결실이 이제야 빛을 발했다.

그 누구보다 노력해왔던 윌렛은, 그 빛을 조금 더 볼자격이 있었다.

그 탓에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방법은 많아. 불가능이란 없어.’

대륙 최고의 신관.

대륙 최고의 명의.

그조차도 안 된다면, 드래곤 하트라도 구해와 먹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윌렛 어르신이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야.’

포기는 나중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결심을 한 아더가 지붕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윌렛에게 이런 제 마음을 털어 놓기 위해, 그의 병실로 향하던 중 누군가 저 멀리서 뛰어왔다.

윌렛의 담당 주치의였다.

“…던님!”

그의 등장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주치의가 헐떡이는 숨을 애써 추스르며 재촉했다.

“…던님! 어서 빨리!”

그 외침에 아더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

기적이 사그라져간다.

마치 마지막 빛을 발하고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 * *

병실에 도착하니, 윌렛은 눈을 감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서, 눈을 감은 그 모습에 아더는 덜컥 겁을 먹었다.

만약, 옆에 있던 주치의가 상태를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죽었다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아직 살아는 계십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고비입니다.”

이 말과 함께 주치의가 아더에게 한 장의 양피지를 건네주었다.

“…이건?”

“어르신께서 제 숨이 꺼지기 직전, 꼭 던님에게 보여드리라 했던 문서입니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주치의가 건넨 양피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1/23 아니샤 브레스]

[1/28 풀 나티안]

[2/12 게허 한, 티라스 벤, 벤 배크]

빼곡히 적힌 수백 명의 이름.

아더는 그 이름들을 천천히 살펴보다 눈을 치켜떴다.

‘도르문트와 싸우다 전사한… 뒷거리 용병분들의 이름이구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그 이름 전부를 윌렛이 기억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랬다.

그 때 익숙한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뛰었다.

[…윌렛 크레스톨]

양피지 맨 미지막.

그 마지막에 적힌 익숙한 이름을 지켜보던 아더가 윌렛의 유언을 떠올렸다.

‘엘디움 호수는 무덤이라네. 그간 도르문트와 함꼐 싸우던 전우들의 무덤.’

그 기억을 떠올린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양피지를 구겼다.

옆에 있던 주치의가 놀란 듯 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침착히 윌렛의 다음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용병 던]”

“…….”

“[부디 나와의 마지막 의뢰를 져버리지 말게.]”

주치의의 말에 아더가 자신도 비틀거렸다.

화들짝 놀란 주치의가 그런 아더를 부축했다.

다행히 곧 중심을 잡은 아더가 가팔라진 호흡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진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 밤이 고비인가요?”

아더의 질문에 주치의가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내일을 맞이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의 말에 아더가 돌연 그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다시 한 번 깜짝 놀란 주치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떨림에 광기에 차 있던 아더의 눈이 다시 돌아왔다.

“어, 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머리를 숙인 아더가 이내 무릎까지 꿇어 주치의에게 사과했다.

그 모습에 주치의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많이 혼란스러운가 보구나.’

하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라도 저런 처지가 되면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 탓에 주치의는 고민하다 솔직히 조언했다.

“…의사로서 이런 말은 실격이지만, 인생의 선배로서는 감히 한 마디 해보겠습니다.”

주치의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마주친 주치의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당신을 비난 할 사람은 없습니다 던.”

“…….”

“오히려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저이지요.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이 말에 아더가 입을 뻐끔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리, 비켜드리겠습니다.”

주치의가 방을 나서고,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은 윌렛이 보였다.

곤히 잠든 그는 정말로 편안해 보였다.

마치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는 듯, 후련함까지 엿보였다.

아더는 그런 윌렛을 한참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혼절한 윌렛을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파앗-!

보름달이 만연한 밤.

창틀을 넘은 아더가 그 밤이 비추는 빛을 따라 아케인을 벗어났다.

* * *

윌렛을 업은 아더가 어둠이 내려앉은 아케인을 달렸다.

수많은 고민 번뇌.

그리고 갈등이 그 속에서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감정들 사이에서 아더는 생각했다.

과연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잘 하는 짓일까?

던져진 질문에 아더는 대답하지 못했다.

행동을 했지만, 지금의 이 행동이 맞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브로커 윌렛이 건넨 부탁을, 용병 던은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윌렛을 업고서 아케인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 탓에 아더는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래서 윌렛 어르신이 내게 이런 일을 맡겼구나.’

결국 자신이 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을, 윌렛 크레스톨은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아더는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도 왜 나일까… 차라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몰랐더라면….’

말을 흐린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달빛에 반사된 엘디움 호수가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은 그 때, 윌렛이 중얼거렸다.

“고맙네. 아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어? 어르신?”

아더가 고개를 돌려 윌렛을 보챘다.

하지만 윌렛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따뜻해던 그의 육체가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

자리에 선 채로 얼어붙은 아더가 입을 벌렸다.

“…어르신?”

불러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육체는 조금 전 보다 더 차갑게 식었다.

두근…

등뒤로 느껴지는 심장의 박동도,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 순간 아더는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어….”

입을 벌린 아더가 새 된 숨소리만 내뱉었다.

동시시에 머릿속으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 윌렛 크레스톨이 죽었다.

자신에게 있어 은사,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일지 모르는 아케인의 노신사가 숨을 거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아더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뚝.

한 방울, 두 방울이 된 눈물이 소나기처럼 후두둑 쏟아졌다.

“아아….”

신음을 흘린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목끝까지 차올라 전신을 괴롭혔다.

“아… 어르신… 어르신… 왜….”

오열하던 아더의 정신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괴리감 속에서 아더의 두 눈동자가 새빨개졌다.

끓어오르는 괴로움이 충동으로 이어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번쩍였다.

아더는 머리가 터져나갈 듯한 그 상황에서, 피의 검을 뽑아들었다.

채앵-!

밤하늘 달빛에 반사된 피의 검이 요망하게 빛났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탄식을 터트렸다.

“아아….”

비틀비틀.

중심을 잃은 몸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그 상태에서 피의 검을 돌린 아더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아케인을 바라보았다.

“…….”

그 풍경을 한동안 눈에 담던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의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

눈을 치켜뜬 아더가 피의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조금 전 흔들렸던 수풀이 크게 베어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아더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퓨즈가 나가버린 정신은 눈앞의 광경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아더가 검을 크게 휘두르려는 순간, 한 사내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더! 아더! 아더!!!! 아니 주인님!]

아더가 멈칫했다.

동시에 시야 너머로 보이는 새빨갛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더는 낮은 한숨을 토해낸 뒤, 자리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어라? 노움?”

아더의 말에 [땅의 상급 정령].

노움이 눈물, 콧물을 쏟으며 납작 엎드렸다.

[사, 살려줘 아더! 죽기 싫어 제발!]

영문 모를 소리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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