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윌렛이 지하 감옥에 없다는 사실을 안 아더는 곧바로 지니에게로 향했다.
숨어있던 수색경찰들을 뒷정리하던 그녀는 아더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공자님?”
“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인상을 찌푸린 지니가 두 귀를 파르르 떨었다.
“…짐작이지만, 이것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 같네요.”
“이것 자체가 함정이라고요?”
“네. 윌렛 크레스톨을 구하기 위해 지하감옥으로 뛰어든 반군. 저희를 이곳에 가두는 것 자체가 놈들의 함정이었던 거예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그럼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 거 아니에요?”
아더의 말에 지니가 씩 미소 지었다.
“그렇죠. 아직 기회는 남아있죠. 윌렛 크레스톨을 구하러 지하감옥에 온 반군은 단 ‘두 명’이니깐.”
아더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리죠?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잖아요.”
“그건 걱정 마세요. 실프를 이용하면, 금방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보다….”
말을 흐린 지니가 걱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공자님 괜찮아요?”
“…저요?”
“네. 어깨를 떨고 계시는데?”
지니의 말에 아더가 움찔 놀랬다.
‘내가 어깨를 떨고 있었나?’
고개를 돌린 아더가 제 어깨를 바라보았다.
지니의 말대로 정말로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어라 진짜네요? 제가 왜 어깨를 떨고 있죠?”
이 말에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윌렛 어르신이 없어서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그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아더 바이에른.
자신이 보아온 그 어떤 사람보다 광기에 찼던 사내가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아더에게 있어 윌렛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왔다.
그 괴리감 속에서 고민하던 지니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공자님.”
“네?”
“사심 없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 말과 함께 지니가 아더를 덥썩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아더가 저항하지 못하고 그녀 품에 안겼다.
그 상태 그대로 아더의 등을 쓸어넘기던 지니가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윌렛 어르신은 아직 살아 계실 거예요.”
“…….”
“그분이 어떤 분이에요? 공자님보다, 먼저 전설의 용병이라 불렸던 분이에요. 그런 놈들한테 죽을 분이 아니라는 거에요.”
지니의 이야기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거칠게 떨리던 어깨가 점점 잠잠해졌다.
그 놀라운 변화에 아더가 낮은 탄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겠죠? 아직 살아 계시겠죠.”
“그럼요.”
“하긴, 윌렛 어르신이라면 양팔이 잘려도 아직 살아 계시겠죠.”
아더의 이야기에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뭐라고요 공자님?”
“네?”
“윌렛 어르신이 양팔이 잘렸다고요?”
아더가 환하게 웃었다.
“네. 윌렛 어르신 팔이 저기 지하감옥에 있던데요?”
지니가 경악해 입을 벌렸다.
‘이, 이런 미친!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하는 거야!’
아무리 윌렛 크레스톨이라 해도, 그 나이에 양팔이 잘리고도 오래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지니가 포옹을 풀고서 소리쳤다.
“고, 공자님! 얼른 여기를 떠나세요!”
“…갑자기 왜요?”
“왜긴요! 윌렛 어르신을 구해야죠!”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윌렛 어르신이 어디에 계신 줄 알고요?”
“실프가 찾아줄 거예요. 그러니 얼른 출발하세요!”
“지니는요?”
“저는 뒤처리 하고 갈게요! 반군들하고도 연락해야 하니깐!”
갑자기 다급해진 지니의 태도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윌렛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 상태가 온전하냐고 묻는다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니의 말에 따라 지하 감옥을 벗어나니 머리칼을 넘기는 훈풍이 불어왔다.
아더는 본능적으로 그 바람이 실프의 의지라는 걸 깨달았다.
‘방향은 이쪽을 따라가면 될 것 같고… 남은 건, 어떻게 가는 냐인데.’
이대로 뛰어가야 하나?
그래도 될 것 같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조금 더 빨리, 자유롭게 이동 할 수단이 있어야 했다.
고민하던 아더는 곧 눈을 치켜떴다.
‘쥴리의 능력을 사용하면 되잖아?’
조그맣던 아이가 소녀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혈통도 자신이 알던 그 쥴리 프로스키처럼 성장한 상태였다.
번개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그녀의 혈통 능력이라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터.
마음을 먹은 아더는 곧바로 쥴리의 혈통을 일꺠웠다.
파앗-!
몸이 빛으로 변한다.
그 기묘한 감각 속에서 아더의 정신이 하늘로 떠올랐다.
후욱-!
때마침 불어온 훈풍이 길을 가리켰다.
아더는 그 길을 따라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파앗-!
주변의 시야가 바뀌고 아케인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상쾌한 감각 속에서 아더는 탄성을 내질렀다.
‘번개로 변하면 주변이 이렇게 보이는 구나.’
그 때 코끝으로 비릿한 피비린내가 맡아져왔다.
시선을 돌리니 익숙한 면면들이 보였다.
“수색경찰을 죽여라-!”
반군.
도르문트의 지배에 반기를 든 뒷거리의 용병들.
“저 범죄자 새끼들을 찢어죽여라-!”
수색경찰.
도르문트의 밑으로 들어가 아케인을 좀 먹는 해적들.
두 반대되는 세력이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소리치고 있었다.
“아케인을 위하여-!”
그 외침과 함께 옆에 있던 처형인들이 도끼를 쳐들었다.
눈빛을 빛낸 아더가 허공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쾅-!
그 도약에 맞추어 번개가 내리쳤다.
천지가 뒤집어지는 소음과 함께 두 처형인이 새까맣게 타버린 채로 떨어져 내렸다.
“…!”
깜짝 놀란 광장의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그 틈을 타 다시 원래 대로 돌아온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
중년의 신사가 새하얀 노인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는 가슴이 울컥한 것을 참으며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만나뵈네요 어르신. 술을 가르쳐주기로 했으면서, 손은 어디다 버리신 거에요?”
7년만에 건네는 인사에, 제 은사(恩師)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 * *
윌렛은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지? 설마 죽어서 지옥에 온 것인가?’
수많은 생명을 갈취한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갈리는 없을 테니, 이곳은 지옥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지옥에 왜 아더 바이에른이 있단 말인가?
설마 아더 바이에른도 7년 전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나?
믿기지 않은 현실에 윌렛이 아무런 말도 못할 때, 눈앞의 아더 바이에른이 갑작스레 포옹해 왔다.
그 순간 목덜미로 느껴지는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윌렛의 정신을 일꺠웠다.
“…….”
느껴지는 아더 바이에른의 심장 박동에 윌렛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 자신을 껴 안은 이 사내는 아더 바이에른이 맞다.
그 사실이 머릿속으로 각인된 순간 윌렛이 중얼거렸다.
“아더 바이에른… 맞나?”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대답했다.
“네. 오랜만이에요 윌렛 어르신.”
“…늦게 왔군.”
“그렇죠? 안 그래도 후회중이에요.”
“왜 날 구하러 왔나?”
“안 구할 이유는 또 뭐 있겠어요?”
윌렛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그럼 친하죠. 술 약속 까지 한 사인데.”
“…술 약속?”
아더가 포옹을 풀고서 씩 웃어보였다.
그 미소에 윌렛의 눈이 살짝 커진 그 때,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윌렛 어르신이 그러셨잖아요. 다시 아케인으로 돌아오면, 술 한잔하자고. 그 때 술을 가르쳐준다고.”
“…….”
“이 정도면 친한 사이 아니에요? 윌렛 어르신?”
윌렛이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기억하고 있었죠.”
아더의 대답과 함꼐 윌렛이 입을 다물었다.
‘…….’
7년 만에 나타난 아더 바이에른.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무엇을 먼저 질문해야 할지 구분이 안 갔다.
7년 동안 어디에 있었나.
왜 이제야 나타났나.
쥴리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아나.
그 갈등 속에서 윌렛이 고민하던 그 때, 새까만 피가 입을 통해 왈칵 터져나왔다.
“…!”
아더가 깜짝 놀라고, 피를 토한 윌렛도 놀랬다.
제 상반신을 흥건히 적신 핏덩이를 한동안 바라보던 윌렛은 생각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윌렛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입을 벌린 아더 바이에른이 보였다.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던 윌렛이 눈빛을 빛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한 윌렛이 입을 열었다.
“아더 바이에른… 아니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의 용병 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네 말씀하세요. 어르신.”
“의뢰. 하나 부탁해도 되나?”
윌렛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어떤 의뢰죠?”
윌렛이 씩 웃어보였다.
“아케인을 구원해주게. 보상은 나와의 술 한잔이네.”
그 미소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허나 곧 윌렛과 마찬가지로 입가에 미소를 걸고서 대답했다.
“매력적인 의뢰네요. 받아들일게요.”
아더의 대답을 들은 윌렛이 눈을 감았다.
스르륵, 앞으로 쓰러지는 그를 받아든 아더가 침묵했다.
윌렛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고문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
찢어지고, 파이고, 썩어들어갔다.
인간의 육체가 이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는 것이 신기 할 정도였다.
그 상처를 눈에 새긴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이쪽을 바라보는 반군과 수색경찰이 보였다.
그들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
낮게 가라앉은 중저음.
하지만 왜 인지 몰라도, 그 목소리가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똑똑히 들려왔다.
그 사이 아더가 피로 된 검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죽습니다. 이건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에요.”
한 사내의 분노가 검에 어린다.
* * *
아더의 말에 침묵하던 수색경찰 중 한 명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씨발.”
“…?”
“뭐야 너? 마법사냐? 갑자기 나타나서 웬 헛소리야?”
그의 말에 아더의 시선이 돌아갔다.
조금 전 소리쳤던 수색경찰이 보란 듯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방긋 웃었다.
“어라? 움직이셨네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손에 들린 비스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조금 전 움직였던 수색경찰의 머리가 사라졌다.
“…!”
깜짝 놀란 광장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그 사이 처형대 위에서 아더가 휘리릭, 뛰어올랐다.
그 곡예와도 같은 움직임에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뺏긴 그 때, 가볍게 지상에 착지한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이쪽을 바라보던 중인 쥴리과 견이 보였다.
먼저 시선을 마주친 쥴리가 울먹였다.
“던… 아저씨.”
그 모습에 빙그레 미소지은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쥴리가 터져 나오려는 울음과 환희를 애써 참으며 물러났다.
그 때 줄곧 침묵하던 견이 입을 열었다.
“너… 뭐냐?”
견의 질문에 아더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여졌다.
“사람인데요?”
“…사람?”
“네. 그러는 당신은 개인가요?”
3개의 머리를 가진 견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씨발. 사람 보고 개라고 해?”
“개를 개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아더의 말에 견이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손에 들린 피의 검을 휘리릭 돌렸다.
“저기요 개 씨.”
“닥쳐라! 난 견이다!”
“그래요 견 씨.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
“…?”
“제가 누군가를 죽일 떄 보통 고통스럽게 안 죽여요. 아무리 원한이 깊은 원수라도, 마지막 선… 그걸 지키기 위해서 말이에요.”
아더가 휘리릭 돌리던 피의 검을 멈춘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당신한테는… 그 선을 지켜야 할지 의문이네요? 그래서 묻고 싶어요.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
견이 눈을 끔뻑이다,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날 죽인다고?”
“네.”
“하! 네 놈들이 그토록 따르던 윌렛 크레스톨도 날 죽이지 못해, 숨어 다녔는 데 갑자기 나타난 네놈이 날 죽여!?”
견이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난 도르문트의 13귀다!”
견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케인 도르문트 님에게 인정받은 13명의 가신 중 한명이다! 그런 날 죽이려면 소드 마스터는 와야 할 것이다!”
그 외침과 함께 견이 3개의 머리에 달린 3개의 주둥이를 벌렸다.
화르르륵-!
새까만 불꽃이 그 주둥이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역시 개라서 그런가. 사람 말이 안 통하네요.”
이 말과 함께 씩,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럼 뭐… 제가 알아서 할 게요. 나중에 원망마세요.”